14. 최고의 천생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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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천사님과 맞는 달달... 했던... 시간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야, 백대빈. 일어나서 밥 먹어."
천사님은 몇 마디 말을 주도하려 하시다가도 종종 내 눈치가 보였는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곤히 자고 있던 사자, 그러니까 악마의 코털을 건드렸다.
덜컥,
"야, 뭐 하냐. 문 열어."
"사람 자는데 놀라게 쳐들어오고 난리야, 난리는."
"말 꼬락서니 봐라?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대빈아."
"으응... 너 되게 우리 엄마 같다. 싫은데 마냥 미워할 수가 없네."
"뭐라는 거야, 너 그냥 나 많이 미워해도 돼. 나는 네가 밉거든."
"응 마음껏 미워할게. 그런데 김예현은? 일어났어?"
"네가 예현이를 알아서 뭐 하게."
"치. 얘기도 안 해주고. 예현이 보러 일어나야겠다~"
응?
아니... 다 들리게 무슨 말을 저렇게 해...
그리고 무엇보다 백대빈이 내 이름을 왜 부르는 거지?
어제부터 천사님보다도 자신과 내가 더욱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지를 않나, 자기 다정함을 살려서 나랑 친해지겠다는 걸 다짐하지를 않나...
"거기 그쪽. 피차 귀찮게 하지 말고 천사님 말 들으세요."
"어, 예현이 거기 있었구나! 응응, 알겠어. 내 모닝콜."
"모닝콜 이러네..."
"왜~ 뭐~"
백대빈... 진짜 미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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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불러, 이제 좀 쉬어야겠다.
라고 하려던 참,
"딩동~! 악마 왔어요!"
악마가 내 방에 왜?
높은 음까지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으면서 애쓰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지?
"이번엔 또 뭔데..."
"예현아, 우리 MBTI 검사하자!"
진짜 뜬금없네...
"그게 그렇게 유명해요?"
"대중성 높은 편 같던데... 하기 싫어...?"
"네."
"... 너 없이 연재 놈이랑 둘이서만 앉아서 성격 유형 검사나 하는 건 나도 싫은데."
하긴, 천사님도 귀찮으시기는 하겠다.
그럼 내가 밥값 겸 천사님 대신 희생을 해 드릴까?
"... 해요, 그거."
"일단, 첫 번째 질문!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어려워합니까? 음... 난 아니다! 예현이는?"
"전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요."
"그럼 두 번째 질문! 종종 주변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생각에 빠지곤 하나요?"
"음, 아마도요? 조금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아, 이건 나랑 똑같네? 나도 생각 완전 많이 하는데..."
"무슨 생각 하시는데요?"
"무슨 생각이게~?"
아오, 놀랐네. 얼굴을 왜 들이밀어.
눈가 밑에는 고추장을 문질렀나 아님 노을빛에 그을렸나 왜 저렇게 빨개.
순간 내 생각 한다는 줄 알고 놀랐네.
"궁금해?"
"아니, 아니요. 전혀 안 궁금해."
"응..."
"네, 다음 질문 읽어 드릴게요. 이메일에 가능한 한 빨리 회신하려고 하고 지저분한 편지함을 참을 수 없나요?"
"편지함 같은 거 쌓아놓으면 오히려 더 편해지던데... 예현이는?"
"참을 수는 있는데... 뭐, 딱히 불편하지도 않고..."
"오! 우리 이건 똑같다, 예현아!"
"우와, 그러게요."
"이거 재밌다, 더 읽어줘!!"
끼익,
"뭐가 그렇게 재밌어?"
어, 천사님 방에서 나오셨네...
우리 때문에 깬 거면 어떡하지...
"어, 너는 저리 가라. 서연재. 맨날 잠만 자는 애가 이거를 한다고?"
"왜... 나도 껴줘어..."
천사님을 향한 내 다정한 희생은 방금 깡그리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잠 덜 깬 천사님의 귀여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 근데, 이런 말은 너무 예의가 없나?
근데 맞긴 하잖아...?
'천사님 귀여워!'
"앗, 네. 이리 오세요."
"야아, 김예현... 너무해......"
"쉿, 조용조용. 대빈이 착하지? 응?"
"헐, 예현이가 방금 나 보고 대빈이래. 진짜 미쳤나 봐! 사람이면서 악마인 나를 홀리네? 응응 나 착해!"
순진한 악마 녀석...
호들갑도 많이 떨고, 고추장 색이 눈시울에서부터 얼굴 전체까지 물드는 게 아주아주 조금은 귀여운 모습이 있는 것 같기도...
응? 미친 건가?
'아니야, 진짜 뭐라는 거야. 예현아, 너 살아있니.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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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꽤 많네요... 저 목 아파요."
"연재야, 예현이 목 지켜!"
"응응. 내가 지켜야지, 마지막 질문은 내가 읽을게."
"당신은 종종 사회적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나요?"
"어, 나! 그런 것 같은데!"
"전 전혀 아니네요."
"다들 다 했지?"
"저 결과 나왔어요!"
"오, 예현이는 뭐야?"
"INTJ예요."
"연재야, 연재야. 봐봐봐, 나는 ENFP!"
"너 안 물어봤는데?"
"서연재 너무해..."
"응응 대빈아. 네가 너무하다고 한 나는 ISFJ네."
"오, 우리 다 다르네요."
"그래, 이런 거 궁합 같은 거 있으면 재밌겠다."
"어, 뭐야. 궁합...? 궁합 나오는데요? MBTI 검사했더니 알고리즘에 이런 게 뜨네요.. 궁합은 다들 안 보실 거죠? 지울게요."
"어어어, 아니야. 잠깐만, 궁합? 지우지 말아 봐. 지우지 마! 지우지 마! 지우지 마!"
"음? 네..."
"어디 보자... INTJ랑 ENFP는... 헐! 야, 서연재. 봤냐? 나 예현이랑 최고의 천생연분이래!"
엥. 저게 뭐람. 진짜네.
"아싸, 신난다~! 나 예현이랑 최고의 천생연분~"
"천생연분이라......"
"예현이랑 나는 뭐지?"
"가만 보자... 야, 너는 예현이랑 잘 될 수 있는데 이상적이지는 않다는데?"
"... 나는 왜... 예현이랑... 치, 이거 별로야."
"우하하, 예현아! 내가 서연재보다 너랑 더 잘 맞아."
매 순간이 뭐가 저리 신날까,
방방 뛰는 모습이 꼭 덩치만 산만한 레트리버 강아지를 닮아서는...
아, 나 또 뭐라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를 감히 악마하고 비교하다니.
난 강아지가 더 좋아, 강아지는 귀여워. 강아지를 닮은 악마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