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녀와 괴물이 함께 사는 방법 (1)
주아는 그 말을 듣고 발끈해서 고래고래 목소리가 높였다.
“이게 진짜 대가리에 총을 덜 맞았나! 뭐가 어쩌고 어째?”
“왜 그래? 나는 너를 도와주고 있는데?”
앤드류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주아는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미연에게 소리쳤다.
“과장님! 그냥 은탄환 반납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실망만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음, 아냐. 은탄환을 압수하는 건 보류하도록 할게.”
하지만 미연의 태도는 어쩐지 미적지근했다. 주아는 경악해서 되물었다.
“왜요? 설마 저 녀석 말을 들으려는 건 아니죠?”
미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아, 미안. 방금 너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답변을 들어서 나도 모르게 납득하고 말았어.”
“네? 과장님도 설마 제가 저 녀석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하세요?”
“미안해.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과장님!”
앤드류는 이 상황을 보고 그저 넉살 좋게 웃어보였다.
“와, 잘됐다. 그치?”
“넌 좀 닥쳐!”
이렇게 티격태격 하는 둘을 보다가 미연이 몇 번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래도 나름 구미는 당기는 일인 건 사실이야.”
미연은 앤드류를 보며 지적했다.
“앤드류, 네가 한국에 왜 왔는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아직 신용이 없다. 그런고로 앞으로 활동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
“그래, 어련하시겠어.”
앤드류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미연은 이번에 주아를 향해 턱짓했다.
“주아, 너는 은탄환을 빼앗기고 싶지 않겠지?”
“……그래요, 젠장.”
방금 역정을 내긴 했지만, 지금까지 소중하게 아껴 온 은탄환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은탄환은 주아에게 있어 단순히 유용한 무기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여기까지 대략 상황을 정리한 미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간단하네.”
* * * * *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앤드류는 집에 들어서마자 코를 감싸 쥐고 헛구역질을 했다. 얼떨결에 더러운 자신의 집에 불청객을 들이게 된 주아는 겸연쩍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아, 미안. 수사관”생활이 바빠서 집 청소를 제 때 못했어.”
“이건 제때 못한 수준이 아닌데? 넌 대체 청소를 하긴 하는 거야?”
엔드류는 온갖 쓰레기와 곰팡이로 뒤덮인 주아의 방을 가리키며 추궁했다. 과연 설거지를 얼마나 미뤄뒀는지, 싱크대에는 더러운 그릇이 가득했고, 빨지도 않은 옷은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구석에 쌓여 있다. 집이 아니라 개인 쓰레기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왜 그래? 그래도 청소를 하긴 해. 가끔이긴 하지만.”
주아는 변명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앤드류는 기가 차다는 투로 대꾸했다.
“얼마나 하는데?”
“음……한 번?”
“얼마나?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이 집에 이사한 뒤로 딱 한 번 했어. 이사하던 그날에 말이야.”
“시궁쥐가 너보다 더 깨끗하겠다.”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주아를 쏘아 보았다.
왠지 기분이 나빴던 주아는 발끈해서 반문했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어차피 너희 같은 흡혈귀는 관이나 낡은 폐허에도 잘만 살잖아! 이 정도면 궁전이지!”
“닥쳐! 귀족이 그런 곳을 고집하는 건, 우리의 예민한 감각을 억누르기 위해서다. 이런 쓰레기장과 우리들의 거처를 비교하지 마.”
앤드류는 바닥에 늘어진 쓰레기들을 발로 쳐내며 투덜거렸다. 주아의 처참한 살림 능력 탓에 방 안을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앤드류의 발끝에 ‘툭’하고 닿았다.
“으아아아악!”
자신의 발에 닿은 ‘그 존재’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앤드류는 공포로 가득 찬 비명을 반사적으로 내질렀다.
“저,저게 뭐야!”
그는 자신의 발에 닿은 문제의 물건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나 충격을 먹었는지, 식은땀까지 흘려댔다.
“뭐야? 왜 그러는데?”
아무리 내가 청소를 안 했어도 저렇게 놀랄 물건이 있었던가. 주아는 얼떨떨한 해서 재빨리 그가 가리킨 물건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집에서 보내온 반찬통이 있었는데, 그 안에 담겨 있던 김치가 푹 삭았는지 시큼시큼한 냄새가 났다.
“어, 집에서 보내준 김치가 그새 삭아 버렸나보네.”
주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반찬통을 열었다. 그러자 푹 삭은 김치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다 보니 종종 이렇게 음식이 알아서 발효되는 경우가 없진 않았다. 라면에다가 이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이 만한 별미도 없을 텐데. 주아는 홀로 이렇게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와 별개로 앤드류는 연신 비명을 지르며 그녀에게 애원하듯 소리쳤다.
“제발 이 흉악한 것 좀 좀 가져다 버려!”
“진정해. 그건 그냥 신김치일 뿐이야.”
“신김치? 그게 뭔데?”
“푹 발효되어 시큼한 맛이 나는 김치야. 밥도둑이 따로 없어.”
설명을 들은 앤드류는 두려움에 젖은 얼굴로 몸서리쳤다.
“플루토늄이 우라늄이 됐군. 끔찍해..”
“왜 그래. 듣는 한국인 섭섭하게.”
주아는 신김치를 냉장고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밤의 귀족이니, 사냥꾼이니 떠들면서 단신으로 시체들을 쓸어버렸던 괴물이 고작 김치 가지고 저렇게 발작하는 건 언제 봐도 웃겼다. 김치를 무서워해서 이 한국을 어떻게 버틸는지.
“자.”
주아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 맥주 하나를 꺼내 내던졌다. 캔 맥주를 받아든 앤드류는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이번엔 또 뭐야?”
“그냥 평범한 맥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서., 일단 손님이니까 주는 거야.”
앤드류는 받아든 맥주 캔의 로고를 찬찬히 읽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기네스라, 군대에 있을 때 처음 먹어봤는데, 아직도 맥주를 만드는가 보네.”
“군대에 있었어?”
앤드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감상에 젖은 얼굴로 답했다.
“잠시 있었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었지.”
뱀파이어들은 피를 매개로 불로장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외견과 달리 까마득한 나이를 먹은 개체도 존재한다고 들었다. 이제 겨우 이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앤드류 역시 자신이 모르는 장대한 세월을 보냈을지도 몰랐다. 세계 2차대전에 참전했다고 하니, 적어도 백살은 넘었겠지.
주아가 가만히 둘 사이의 간격을 가늠하고 있을 무렵, 앤드류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야, 특식.”
- 철컥
“내 집에 왔으니, 확실히 말할게.”
주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장전된 권총을 앤드류 이마에 겨눴다. 그리고 흡사 짐승과 같은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며 경고했다.
“만약 한 번 더 나를 특식이라고 부르면, 네 주둥이에 총알을 쑤셔 박아 줄 거야. 알았어?”
“큭, 집만큼이나 더러운 입도 더럽네.”
앤드류는 질렸다는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도 대꾸를 하지 않는 걸 봐서는 그녀의 경고가 먹힌 모양이었다. 주아는 겨눴던 권총을 내리고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는 왜 네 상사의 제안을 수락한 거냐?”
주아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되물었다.
“너는 왜 수락했는데?”
“말했잖아. 나는 네 피가 필요하다.”
앤드류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 아내를 죽인 그 녀석을 거의 죽일 뻔 했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부족해서 실패했지. 하지만 네 피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 내가 이길 수 있어.”
마력을 머금은 마녀의 피.
뱀파이어의 힘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영약.
주아는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더듬었다. 아직 그녀의 목에는 앤드류가 물아 뜯었을 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 뱀파이에에게 흡혈을 당한다고 해서 뱀파이어가 되는 것은 헛된 미신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래도 자신의 피를 먹이는 게 영 달가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런 그녀와 달리 이 상황을 썩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너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네 상사는 자유를 허락했다. 이만한 장사도 없지.”
앤드류는 여기까지 말하고서 맥주를 말끔히 비웠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어딘가 시원해보이기까지 했다.
미연이 주아에게 내린 제안은 간단했다.
앤드류와 함께 수사를 진행하되, 그가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24시간 동안 밀착 감시할 것.
그 동안 앤드류는 사적으로 사냥을 해서는 안 되며, 식사는 연합에서 제공한 수혈 팩으로 대체하고, 그 어떤 인명 피해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 외 여러 조건을 덕지덕지 덧붙인 조약을 앤드류에게 들이 밀었다. 어차피 가둬둘 수도, 그런다고 죽일 수도 없는 괴물을 제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앤드류는 기분이 나쁠 만하기도 하건만, 주아의 피를 마실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서인지 순순히 수락했다. 어찌 보면 연합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앤드류는 이번에 주아에게 되물었다.
“자, 나는 말했다. 너는 왜 상사의 제안을 수락했지?”
“난 이것만 지킬 수 있으면 어떤 조건이라도 좋아.”
주아는 손에 들고 있는 은탄환을 곁 눈짓하며 말했다. 앤드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소중해?”
“응. 내가 이걸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줄 사람이 있거든.”
은탄환을 바라보는 주아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설렘과 그리움이 뒤섞인, 다소 정의하기 모호한 감정이 읽혀졌다.
흡사 옛날 연인을 추억하듯.
호기심이 동한 앤드류는 슬쩍 물었다.
“남자인가 보네?”
“시끄러워.”
주아는 가차 없이 받아쳤다. 그 말을 들은 앤드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은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너무 무방비하지 않나?”
앤드류는 부드럽게 한쪽 팔로 주아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는 완고하면서도 거칠지 않게 주아와 상체를 밀착시켰다. 옷과 옷 사이 너머, 뱀파이어 특유의 차가운 피부의 감촉이 중의 살갗을 가만히 훑었다.
“여기는 너와 나. 단 둘 뿐이다. 여자가 빈 방에 남자를 초대해 술 까지 대접했다는 건, 참 많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그의 속삭임이 은밀하면서도 부드럽게 주아의 귓가를 두드렸다. 그는 먹잇감을 눈 앞에 두고 가까스로 식욕을 억누르는 포식자처럼 거친 순을 간헐적으로 내쉬며 제안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을 덧붙였다.
“그거 알아? 난 살아오면서 품은 여자의 수가 두 자리가 넘어.”
“그래? 나랑 비슷하네.”
- 탕!
“켁!”
총소리와 함께 앤드류는 배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은탄환이 내리 꽂힌 배에서는 붉은 피가 치솟았다. 주아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쥔 채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살면서 이런 식으로 품에 총알을 박아준 남자가 두 자리가 넘거든.”
그녀는 권총에 은탄환을 장전하며 중얼거렸다. .
“아니다, 세 자리인가?”
얼떨결에 배에 은탄환을 맞은 앤드류는 기겁해서 그녀를 만류했다. 방금 전과 같은 태도는 온데 간데 없었다.
“자,잠깐! 진정해! 자,장난이었어!”
“성범죄는 장난이었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주아는 주저 없이 총구를 앤드류에게 겨눈 채 사무적으로, 그렇기에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동거인씨, 호칭 문제에 이어서 성범죄 특별 교육도 함께 진행할게요.”
“으아아아악!”
이어서 격발음과 함께 한 남자의 비명소리가 일대에 길게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