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녀라 불리는 여자, 주아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해 변명을 해보실까?”
미연은 뿔테 안경을 들어 올리며 주아를 채근했다.
주아는 눈을 내리깔며 변명조로 말했다.
“……내통자가 있었습니다.”
고작 두 평정도 밖에 되지 않을 좁은 사무실.
주위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지난 며칠간 주야는 이 사무실에 틀어 박혀 거의 살다시피 했다. 오직 이번에 맡은 사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였다.
“이번에 시중에 돌던 마약은 연합에서 예측했던 대로, 구울(Ghoul)들의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본거지인 항구만 조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설마 항구 노동자들 중에서 내통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그래, 그게 끝인가?”
미연은 주아의 설명을 잘랐다. 주아는 차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미연은 몇 번 헛기침을 한 뒤에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알다시피 연합은 마약 밀반입을 수사하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을 들여왔어.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했지?
주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풀 죽은 어조로 말했다.
“혼자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무작정 구울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구울들과 싸우다가 은탄환까지 빼앗기고 붙잡혔죠.”
지은 죄가 있던 주아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모두가 고생했던 사건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모조리 망쳐버렸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때문에.
“맞아. 그리고 자네가 멋대로 소란을 피운 탓에 구울들은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바로 도망쳐버렸지. 덕분에 매복하고 있던 수사관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어.”
미연의 지적에 주아는 억울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건 모두 내통자 때문입니다! 원래대로라면 구울도 제 정체를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 잘난 은탄환 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데, 누가 자네 정체를 못 알아보겠나?”
주아의 왼쪽 옆구리,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그곳에는 은탄환 권총 홀스터가 꽂혀 있었다. 권총의 무게감을 느낄 때 마다 주아는 항상 이유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몸에서 1미터 이상 떼어 놓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이 이번 상황의 결정적 오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이건……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자……”
“말은 쉽지.”
주아가 기어들어가는 말로 변명하자, 미연은 딱 잘라 물었다.
“서주아 수사관, 연합에 몸을 담은 지 얼마나 됐지?”
“올해로 4년입니다.”
“잘 아네. 그러면 이제 조금 책임감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미연은 날 서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가진 은탄환 권총은 연합에 딱 17정 밖에 없어. 그래서 엄중하게 선별된 수사관들에게만 지급되지. 연합에 들어온 지 4년 밖에 안 되는 풋내기에게 이 중요한 물건을 맡긴 건, 그만한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였어.”
그리고 그녀는 주아에게 단호하게 덧붙였다.
“긴 말 안 할게. 은탄환 권총을 반납해. 아니면 옷을 벗거나.”
“잠깐만요!”
주아는 참지 못하고 꽥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사정하듯이 매달렸다.
“과장님도 제가 이걸 가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아시잖아요! 과장님의 지시 하나로 몇 달 동안 귀찮은 서류 작업을 한 게 누구죠? 미해결 아동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거지꼴로 탐문을 했던 건 누구고요!”
주아는 물불 가리지 않을 기세로 미연에게 떽떽거렸다. 은탄환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녀는 뭐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2년 전에 있었던 그믐달 경매에서 과장님은 제게 목숨을 빚지셨잖아요!”
“그래서 자네에게 그 은탄환을 허락해줬잖아. 지금까지 쭉 허탕만 쳤는데도 말이야.”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결국 자신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주아는 권총을 틀어쥔 채 사무실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리고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싫어요! 죽어도 못줘요! 이건 제거예요! 가져가실 거면 저를 죽이고 가져가세요!”
“그래? 내가 못 죽일 것 같아?”
하지만 미연은 여전히 단호했다. 주아는 당황해서 하던 말을 집어 삼켰다.
“윽……!”
“고집도 적당히 피워야지.”
미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주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 그 은탄환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 이거지?”
“네! 물론이죠!”
주아는 곧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탄환이 걸린 이상 그 어떤 일도 무섭지 않았다. 무서울 것도 없었다. 그녀의 말에 미연은 조용히 눈을 빛냈다.
“마침 좋은 일이 있는데, 한 번 해보겠어?”
* * * * *
주아는 어두컴컴한 지하 취조실로 내려갔다.
옅은 전등 불빛만 유일한 지하 취조실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과거 이곳은 제어가 불가능한 죄수를 임시로 감금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설의 현대화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미연은 그런 이곳에 주아가 직접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얼마 전에 해경이 붙잡은 놈이 하나 있어.
일본에서 몰래 밀항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했나봐.
능력을 봐서는 보통내기가 아닌데, 한국에 왜 들어오려고 했는지 말을 하지 않아.
그러니 자네가 책임지고 취조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성공하면 은탄환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해주지.’
주아는 지하 취조실을 가로지르며 미연이 했던 말을 곰곰이 되짚었다. 해경이 발견한 정체불명의 존재. 그게 지금 여기에 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지하 취조실의 스산한 공기를 타고 그녀의 몸을 훑었다.
주아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솔직한 말로, 뭐가 있을지도 모를 이곳에 발을 딛는 건 영 꺼림칙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은탄환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17정 밖에 없는, 그래서 엘리트 17명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무기.
주아는 은탄환 권총을 손에 꼭 쥐었다.
이것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만큼, 하루를 자부심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은 없었다.
여러 각오 속에서 그녀는 문제의 지하 취조실 깊은 안쪽으로 도착했다. 취조실은 굵은 쇠창살로 가로 막혀 있었는데, 구석진 저편에 사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크르르륵……!”
그리고 그 위로는 흡사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 주아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일부로 크게 소리쳤다.
“이,이봐!”
취조실에 주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약하게 보여선 안 된다. 주아는 이 일념 하나로 강하게 말을 이었다.
“연합 소속 서주아 수사관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할 취조에 정중히 임해주길 요청하는 바이다!”
주아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구석에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반응이 있다. 여기까지 새각한 주아는 슬쩍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봐, 말할 수 있나?”
그 순간, 어둠 저편에서 흰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건 뭐야? 특식인가?”
둔탁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하얀 손은 거칠게 주아의 목을 낚아채 힘껏 끌어 당겼다.
저항할 틈도, 도망칠 틈도 없었다.
“꺄아아악!”
주아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목을 움켜쥔 손아귀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곧 날카로운 통증이 주아의 목덜미를 찢고 들어왔다.
“꿀꺽, 꿀꺽.”
귓가에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꿀꺽거리는 소리.
허기와 갈증에 지친 짐승이 게걸스럽게 배를 채울 때 낼법한 소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를 따라 피와 생명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주아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목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존재의 정체를 간파했다.
“크하하하! 최고야!”
적당히 배를 채운 것인지, 그 존재는 주아를 아무렇게나 내팽겨 쳤다. 주아는 고함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곧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대단한데? 이 정도 힘을 내려면 열댓은 먹어야 하거든. 그런데 너는 몇 모금만 마셔도 충분해. 특식도 이런 특식이 없어.”
이어서 쇠창살이 우그러지며 그 존재의 모습이 주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낡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날렵하면서도 튼튼한 체격의 남자였다. 검고 짧은 머리카락과 흉터투성이 얼굴 때문인지 왠지 흉포한 짐승을 연성시켰다.
그 중에서 주아의 눈을 붙든 것은, 피로 물든 입술과 그 사이에 뾰족하게 나온 송곳니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힘을 되찾았으니, 이 답답한 곳도 이제 안녕이군.”
남자는 낄낄 거리며 취조실 바깥으로 몸을 틀었다. 주아는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비록 피를 많이 빼앗겨 힘들긴 했지만, 저런 괴물을 밖에 내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홀스터에서 은탄환 권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총구를 겨눈 채 경고했다.
“멈춰! 더 이상 움직이면 발포하겠다!”
주아의 경고에 남자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비웃음 섞인 얼굴로 말했다.
“야, 특식. 입 다물고 그냥 쓰러져 있어. 몸보신 시켜준 보답으로 죽이진 않을게.”
“경고하겠다! 어서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가! 안 그러면 발포한다!”
주아는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피를 많이 빼앗긴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지금은 거기에 굴할 수 없었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
남자는 여유 만만한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쏠 테면 쏘라는 투였다.
주아는 이를 악물었다.
“큭!”
그리고 그 즉시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 탕, 탕!
탄환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에서 피가 치솟았다. 사방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차올랐다. 동시에 여유롭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은탄환?”
남자는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보면서 분노와 고통에 차 소리쳤다. 평범한 무기로 상처 받지 않은 괴물들은 이런 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주아의 손에 있는 것은 그런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특제 무기. 이 앞에서는 괴물이든, 사람이든 그 처지가 공평하다.
“제기랄! 아프잖아!”
남자는 상처를 감사쥔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주아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다시 경고했다.
“난 분명 발포한다고 경고했어! 다음 에는 머리야. 아무리 네가 흡혈귀라고 해도 머리를 맞으면 즉사야.”
“그래? 그러면 한번 맞춰보던가!”
남자는 그 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뾰족하게 솟은 남자의 손톱이 날카로운 흉기처럼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손의 궤적은 정확히 주아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여기까지 가늠한 주아는 눈을 감았다. 온 몸의 감각과, 그 안에 흐르는 힘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주문이 흘러나왔다.
“<태양조차 삼킬 나의 용이여.>”
주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일대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손에 쥐고 있은 권총이 기이한 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마력이 충분히 모이자 주아는 권총의 끝을 남자의 이마에 겨눴다.
그리고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 탕!
은탄환 권총이 번쩍이더니, 이번에는 탄환대신 새하얀 섬광을 내뱉었다. 섬광은 빠르게 남자의 몸을 빠르게 꿰뚫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자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공격 받은 부위에서 지직거리며 연기가 치솟았다. 주아는 집중하고 다시 주문을 읊었다.
“<할퀸 흔적은 더욱 깊숙이, 태워진 상처는 더욱 뜨겁게.>”
그러자 남자의 몸의 상처가 붉어지더니, 뜨겁게 달아올랐다. 몸에서 연기가 풀풀 풍길 정도였다. 남자는 예상 밖의 공격에 경각한 얼굴로 물었다.
“너, 너, 너……마녀였냐?”
“그래. 그것도 너희 같은 괴물들을 사냥하는 무서운 마녀야. 거기다 지금은 내가 무척이 기분이 안 좋아. 그러니 이제 좀 알아서 기지 그래?”
주아의 말에 남자는 눈을 부릅뜨며 대꾸했다.
“싫다면? 고문이라도 할 건가?”
“못할 것도 없지.”
“이게 진짜!”
남자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말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호전성 밖에 없는 짐승과도 같다.
주아는 이런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용이여, 적을 삼켜라!>”
짧은 주문과 함께 그녀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구 끝에서 강한 섬광이 튀어나와 남자의 머리 부분을 강타했다. 남자는 온 몸을 지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악!”
주아는 그걸 보면서 단호하게 일렀다.
“내 이름은 특식이 아니라 서주아 수사관이다. 널 괴롭힐 마녀의 이름이니, 알아두도록 해.”
그리고 그녀는 한 번 더 총구를 남자에게 겨눈 채 짧게 덧붙였다.
“참고로 내 특기는 너 같은 괴물들을 괴롭히는 거야.”
탕-. 이어서 날카로운 격발음이 지하를 뒤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