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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푸른 수국 같습니다.
작성일 : 22-02-04 22:46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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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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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해국에서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연회가 성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해가 지자 궁 곳곳에 달아놓은 푸른빛의 연등이 아름답게 흔들거린다.

 

 “콜록, 콜록.”

 

 멈추지 않는 기침이 유달시리 깊었다. 아무래도 고뿔이 든 게 틀림없었다.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고뿔이라니 낭패였다.

 

 온해국은 가희국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기도 했고, 일교차가 심한 탓에 제대로 쉬지 못한 몸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높은 단에 일렬로 마련된 자리였기에 온해국 궁궐의 모습이 잘 보였다. 특히 연회 장소가 동궁과 가까운 탓에 멀리서 얼음조각들이 보여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늘 내 운명이 결정된다.

 

 만약 동맹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동일국이 정말로 우리를 점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온해국에 방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테고, 동맹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게 뻔하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시 속이 울렁거렸다. 아무래도 고뿔이 점점 심해질 기세였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혹여 찾아올 최악의 결말을 생각하니 긴장감이 심해진 것이다.

 

 때마침 온해국의 왕이 행차하기 시작했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국왕을 맞이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기품과 당당함이 흘러넘쳤다.

 

 “온해국까지 몸소 방문한 가희국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오늘 연회는 특별히 화합의 장으로 열어보려 한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선 그는 말했다.

 

 “서로의 국적을 신경 쓰지 말고 가면과 함께 연회를 즐기도록.”

 

 전하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다과상 앞에 놓인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보니 각자 정해진 가면을 쓰려 분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잔치와 가무를 좋아한다는 온해국 다운 행사였다.

 

 익히 알던 탈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였다. 얼굴의 반만 가릴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가면을 조심스레 쓰자 시야를 가리지 않게 눈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현재 하고 있는 다각형의 선봉잠과 잘 어우러지는 떨이 가면 군데군데 장식되어 있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며 반짝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가악이 시작되자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향했다.

 

 춤을 추는 기녀가 분위기를 띄우는 가희국과는 달리 원하는 이들은 중앙으로 나와 어울리며 춤을 추었다. 춤을 추지 않는 이들도 술을 마시며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나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습이다. 앉아서 구경하는 내내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가면을 쓴 사내 하나가 불쑥 손을 내밀며 말했다.

 

 “춤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아… 제게 말인가요?”

 

 가면 때문에 그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물론 가면을 벗어도 그를 몰랐을 것이다.

 

 뜬금없고 간 큰 제안이었다. 아무리 가면을 썼다 해도 내가 가희국의 단희공주라는 사실은 모를 수 없었다. 이미 연회 시작 전 내 얼굴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렸다.

 

 “어떠신지요.”

 

 “허나 제가 춤을 춰본 적이 없는지라.”

 

 “저를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흥미로웠다. 그가 어떤 신분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대범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마음에 드네. 재미있을 것 같아.

 

 “좋아요.”

 

 낯선 사내의 손을 잡고 섣불리 춤을 추기란 쉽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미소로 화답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고서 또 언제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해보겠어. 나는 해보지 않은 경험이라면 망설임 없이 하는 성격이었다.

 

 시린 바람에 연등이 한 방향으로 흔들렸고, 어느새 달빛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그와 손과 발을 마주했다. 애써 나오는 기침을 꾹 참고 물었다.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으셔도 되나, 춤을 춘 후에 가면을 벗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여 제가 가희국의 공주라는 걸 모르시는 것은 아니시지요?”

 

 “하하,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공주마마께서 온해국에 행차하실 때부터 이미 고귀하고 아름다운 연꽃과 같다는 말이 자자합니다. 아, 불꽃이라고 해야 할까요.”

 

 “칭찬이 지나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당의와 어우러져 꼭 푸른 수국 같습니다.”

 

 “옷차림을 보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온해국을 상징하는 색이 푸른색이지요. 그래서 맞춰 입으신 듯합니다. 잘 어울리세요.”

 

 “좋게 봐주시니 기쁩니다.”

 

 “그거 아십니까? 수국은 땅에 따라 색이 변합니다. 흙의 성분에 따라 붉게도, 푸르게도 자라지요.”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푸른색으로 변화할 공주마마의 모습이 기대되네요.”

 

 “…”

 

 “아름다우실 거란 말씀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잠시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가면에 가려진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으나, 역시 가면은 뚫어지지 않는다.

 

 물론 능력을 사용해 가면을 태우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그건 너무 위험해서 실천하진 못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머리를 더 굴려보았다.

 

 가희국을 상징하는 색은 붉은색이다. 그리고 땅에 따라 달라지는 수국의 색깔. 푸른색으로 변화할 내 모습. 즉 변화한다는 건 곧 내가 땅을 옮긴다는 뜻이었다.

 

 “지금 제게 언질을 주시는 것입니까?”

 

 “하하, 역시 공주마마시라면 알아차리리라 예상했습니다.”

 

 그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갔다. 다른 이들도 함께 춤을 추고 있었지만 한 번씩 단희와 영문모를 사내를 바라보곤 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자리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런 국가적 기밀을 내게 알려주는 걸까.

 

 “좋은 향이 납니다.”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그녀에게 사내가 말했다.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은 채 눈빛만 마주 보았다.

 

 “천리향이라는 향입니다. 가희국에만 자라는 나무죠. 꽃을 말려 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어쩐지. 처음 맡아본 향이었습니다. 가희국에 방문한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만약 그대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언젠가 천리향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저야 영광이죠.”

 

 어느새 둘은 연회의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 집중하느라 사람들의 온 관심이 여기로 주목되어 있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릴 때 즈음, 온해국의 왕이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악이 멈췄다.

 

 “가면을 벗거라. 딱 보니, 차온이군.”

 

 “역시. 전하께서는 자식을 알아보시나 봅니다.”

 

 자식…?

 

 왕의 말에 옆에 있던 사내가 가면을 벗었다. 가면으로 가려졌던 얼굴은 한눈에 보기에도 훤칠했다. 하얀 피부와 옆으로 째진 눈매는 누가 봐도 같은 온해국 왕실의 핏줄이다.

 

 다른 점이라면 하온이 좀 더 어두운 피부였고, 차온의 눈매는 강아지와 같이 축 쳐져 있다는 점 정도. 꼭 하온이 부드러운 인상을 띤다면 차온의 모습일 것이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온해국 차온이라 합니다.”

 

 “…가희국의 공주 김단희라 합니다.”

 

 “저의 짓궂은 장난에 많이 놀라신듯하네요. 송구합니다.”

 

 “뭐, 아니라면 거짓이겠죠.”

 

 그의 말에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대답했다. 행동에 무게감이 없고, 항상 붙어있는 저 눈웃음으로 보아 이 사람은 딱히 악의가 있는 사람은 아닌듯했다.

 

 하지만 놀랐어. 높은 신분이라 추측은 했지만, 왕실 사람이었다니. 저 여유로운 웃음에 뒤에 왕위를 노리는 욕망이 숨어있을까.

 

 언젠가 살펴보았던 온해국의 왕실 족보가 생각났다. 후궁 희빈의 첫째 아들이자 서자, 차온군. 왕위에는 전혀 뜻이 없다고 선언했으나, 희빈은 아니라는 얘기가 있었다.

 

 내 상상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르네. 희빈을 닮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인 전하를 더 닮았다. 아쉽게도 내명부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아 비교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자, 어느 정도 즐겼으니 그만 본론을 꺼내야겠군.”

 

 하온과 차온을 번갈아가며 오목조목 살펴보던 시야를 전하로 옮겼다. 차온이 동맹이 성사되었다 언질을 주어서인지 마음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가희국 단희공주는 듣거라.”

 

 “말씀하십시오, 전하.”

 

 “가희국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잘 알겠네. 허나 그 방식이 올바르지는 않았어.”

 

 “…”

 

 전하의 말이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당의 안에 숨겨진 두 손이 조금 떨려왔다. 이대로 내 계획은 실패로 결말이 나는 건가.

 

 “온해국 왕실의 기강을 흔드는 발언은 조금 불쾌했으나, 충분히 마음에 드는 조건이었다.”

 

 “그리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세자의 기이한 힘을 숨기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대의 도움을 받아 강인한 군주가 될 수 있길 바라네.”

 

 “신의 힘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굳건한 군주가 되실 겁니다.”

 

 미소를 지었다. 왕권이 흔들리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 그리고 얼마 전 세자의 힘이 드러나면서 온해국은 균열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균열 때문에 내가 들어갈 틈이 생겼다.

 

 “또한 동일국과의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에도 많은 중점을 두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기대하지.”

 

 “그 말씀은…”

 

 어서 내가 원하는 말을 해줘.

 

 “가희국 단희공주를 온해국 세자빈에 봉한다.”

 

 드디어 빙염화 씨앗을 묻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감축드립니다. 빈궁마마!”

 

 왕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입 맞추어 축하의 소리를 내었다. 비로소 차갑던 피부에 열기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혼례가 확정되는 순간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옆자리에는 하온이 아닌 차온이 함께였다. 하온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성사되질 않길 간절히 바랐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넌 나의 동아줄이야.

 

 어릴 적에 가희국 궁궐 안에 있는 연못에서 불꽃을 던지며 놀았다. 물속으로 조금씩 사그라지는 불을 바라보면 꼭 고민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지금이 딱 그랬다.

 

 “허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말이 귀에 들어온다. 나는 애써 놀란 기색을 숨기고 되물었다.

 

 “어떤 조건입니까?”

 

 “가희국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확실한 신뢰를 그대가 보여주었으면 하네.”

 

 “어찌 신뢰를 보이면 되겠습니까.”

 

 “말 그대로 빈궁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신뢰 말일세.”

 

 전하의 말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빈궁이라는 역할의 도리라.

 

 “그대는 이제 온해국의 세자빈이 될 몸이니, 그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맞는 말씀입니다.”

 

 “혼인 전 합방을 치렀으면 하네. 확실하게 세자의 여인이 되란 뜻으로.”

 

 전하가 말하는 빈궁의 역할은 바로 세자의 여인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혼례 전 합방이라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거절하겠느냐.”

 

 “아닙니다. 응당 그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좋다. 허면 이른 시일 내에 합방 날짜를 정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예, 전하.”

 

 하온을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도 알고 있던 조건은 아니었나 보다. 내 몸에 그 정도 낙인이야 어렵지 않아.

 

 “또한 단희공주의 거처는 동궁에 속한 화선당으로 하라.”

 

 “예,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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