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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얼음 속 불꽃이 되어
작가 : 비나린
작품등록일 : 2022.2.4

불을 다루는 여인과 물을 다루는 사내의 만남은 득일까 독일까. 그들은 철저하게 상극이였으며, 철저하게 닮아있었다. 동맹으로 만들어낸 인연일지 모르나 그 끝엔 운명이었음을.
(나오는 나라는 전부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배경입니다. 여러 어휘나 명칭들은 조선시대를 참고 했으나, 편의를 위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을 밝힙니다.)

 
소녀의 사내이십니다.
작성일 : 22-02-04 18:35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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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를 전담하라 지시받은 몇 명의 궁인들을 따라 온해국에서 머물 전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아직도 얼음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궁이 드러나자, 그 모습에 함께 온 가희국 신하들이 조금씩 속삭였다.

 

 “얼음이 뾰족뾰족한 것을 보니 온해국 세자의 심성이 보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짜고짜 공주마마께 창을 들이대질 않나..”

 

 “그래도 연회를 취소하지 않는 걸 보니 공주마마의 제안이 긍정적으로 받아졌나 봅니다.”

 

 “신의 능력이 이리 쓰이네요.”

 

 “불과 물이라.. 만약 혼례를 치른다면 장관이겠습니다.”

 

 “하하, 그리되면 가희국은 한 시름 놓겠군요.”

 

 웃음소리와 함께 신하들은 내 반응을 기다렸지만 굳이 동조해주지 않았다. 잠시 걸음을 멈춘 뒤 흡사 얼음 궁을 떠올리게 하는 동궁을 그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성격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가 만들어낸 얼음은 모순적이게도 내 눈엔 아름다웠다. 신비하고도 날카로워 탐나나 아무도 탐낼 수 없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서 돌아가시지요.”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분위기에 얼른 동궁에서 시선을 뗐다. 눈을 돌리자 자태를 보아 한눈에 봐도 지위 높은 가문의 여식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왕궁에 곱게 자란 규수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온해국에는 공주나 옹주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그럼 예동은 아닐 테고.

 

 “무슨 일입니까?”

 

 내 옆에 서 있던 한 궁인이 어리둥절해 울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단희 공주마마.”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여인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서 몸종 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서둘러 여인의 눈물을 닦아낸 몸종은 그녀를 재촉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공주마마. 이러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종의 노력은 소용도 없이 여인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가희국에서 온 공주마마가 맞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소녀, 온해국 한씨 가문의 한세이라고 합니다.”

 

 말을 이어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방금 온해국에 발을 들인 가희국 공주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까. 영문을 모르겠지만 애써 티를 내진 않았다.

 

 “이런 말 어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으나, 세자 저하께선..”

 

 큼지막한 눈망울에 고귀한 자태의 공주가 가득 담겼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인자한 미소, 꼿꼿이 선 등과 목. 단희가 풍기는 기품에 이미 세이는 살짝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이는 자신도 따라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세자 저하께선 소녀의 사내이십니다.”

 

 푸핫.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이제 알겠네. 왜 고귀한 가문의 여인이 고운 옷을 입고 울고 있는지. 저 울음이 왜 내게로 향했는지 이제야 눈치를 챘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본래 사람이라면 연정을 품으니까. 온해국의 세자가 연모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어. 하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딱해 혼인을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가희국의 제안이 빠르게 퍼진 것은 분명하군요.”

 

 “공주마마께서 세자 저하와의 혼례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허나, 부디 그 말을 거두어주세요.”

 

 세이의 당돌한 부탁에 뒤에 서 있던 가희국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는 정치적인 문제도, 논리적인 명분도 없었다. 그저 눈물만 있을 뿐이었다.

 

 누구든 저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세이는 아름다웠다. 작은 얼굴에 큰 눈망울이 꼭 사슴 같다. 하온이 왜 저 여인을 연모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네.

 

 허나 그뿐이다. 그녀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단순히 한 사람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려 제안을 거두기엔 제가 가진 명분의 크기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네..?”

 

 “제가 제시한 혼인동맹은 가희국이 앞으로의 일을 치르기 위한 아주 중요한 정책 중 하나입니다.”

 

 말하면서도 어쩐지 내가 나쁜 사람 같았다. 그 정도로 세이의 얼굴은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 내가 말을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눈에서 물이 툭툭 떨어지는 아이.

 

 하지만 말은 끝까지 해야 하니까.

 

 “저는 제 목숨과 가희국 모든 백성의 목숨을 혼인에 걸었다는 말입니다.”

 

 나의 말에 세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연한 하늘빛 색감의 한복에 새겨진 나비 문양은 그녀를 단아하고 아름다운 꽃 그 자체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어쩐지 정적이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머리에 미치자마자 세이가 앞으로 훅 다가와 순간 무릎을 꿇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세이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흐읍.. 공주마마, 제발 가련한 소녀의 청을 들어주세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몸종도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고, 보다 못한 내 전담 궁인이 그녀를 떼내기 시작했다.

 

 “세이 아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어서 체통을 지키시지요.”

 

 세이의 팔을 잡아 말렸지만, 그녀는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이의 어여쁜 옷이 흙먼지로 더럽혀지고 있었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스러워 그녀를 떼어내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해강전에서 한껏 긴장했던 터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그때 궁인이 노력한 끝에 세이가 가녀린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그 충격으로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멀리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가 막힌 찰나였다.

 

 “당장 멈추시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잠깐 들었던 그 목소리를 바로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눈을 떴다.

 

 “흑.. 세자 저하!”

 

 하온 세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문제의 장소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더니 조심스럽게 쓰러져 있는 세이를 일으켜 세웠다. 세이는 부축을 받으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세자와 기 싸움을 벌인지 불과 한 식경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황당한 장면이 펼쳐지자 평소 마음을 잘 추스르던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공주께서 무례함의 끝을 달리시는군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세이는 누구도 이리 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잘나신 공주라도.”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가희국에서는 자신보다 지체가 낮은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 했을지 모르나, 이곳은 온해국입니다.”

 

 하온의 말에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함부로 행동한 건 누가 봐도 세이다. 물론 앞의 상황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하온은 모르겠지만. 혼인하기도 전에 이런 오해라니 일이 짜증 나게 흘러갔다.

 

 “그대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빈궁이 될 수 있는 몸이니 대할 때 예를 갖추시오.”

 

 물론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으니 그와 난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계획을 완성하려면 하온은 나의 사람이어야 맞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기가 가득 생겼다. 전투력이 상승한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빈궁이 되어야 하고, 죽기보다 싫어도 눈앞의 사내를 내 지아비로 만들어야 했다.

 

 한 차례 심호흡했다.

 

 온해국 사람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희국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수긍할 김단희가 아니라는 걸.

 

 “저하께서 그리 아끼시니 저도 예를 갖추겠습니다.”

 

 일부러 더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너에게 질 생각이 없어.

 

 “허나 저 역시도 전하의 결정에 따라 온해국의 빈궁이 될 수도 있는 몸 아니겠습니까.”

 

 “…”

 

 “세이라고 했나요?”

 

 온화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부드러움 그 자체였다. 누구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세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려다보았다.

 

 “네…?”

 

 “윗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주세요. 기본적인 소양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답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애초에 혼인동맹은 그저 동맹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온이 원하는 것에 공통점만 있다면 우리는 그걸 서로에게 주면 되는 것이다.

 

 가령 가희국을 살릴 동아줄을 내려준다든가 뭐, 그런 거.

 

 “흐읍…”

 

 하온에게 머리를 기대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녀에게는 내가 악역이라는 것이 확실해졌기에 굳이 착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한 사내의 사랑이나 먹고 사는 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전각에 도착하자마자 거슬리는 장신구들을 모조리 정리한 후 옷을 훌렁 벗어버렸다. 고운 비단옷을 벗어 얇게 속살이 비치는 속적삼만 입은 채 그대로 솜이불에 몸을 던졌다.

 

 “목욕물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진영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팔다리를 대자로 쭉 뻗은 채 얼굴을 묻었다. 오랫동안 눈에 힘을 주고 있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전각의 형태며, 하다못해 솜이불의 감촉까지 온해국이라는 낯선 타국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서인지 조금 울적해졌다. 거기다가 쓸데없는 감정소모까지 더해져서…

 

 가희국에 가고 싶어. 부모님을 보고 싶어.

 

 두꺼운 이불을 꽉 쥐고 약한 마음을 지워냈다. 약해지는 건 아직 너무 이르다. 결론이 난 뒤 해도 늦지 않았다.

 

 이부자리에서 벗어나 목욕을 하러 몸을 움직였다. 속적삼과 속치마까지 모두 벗고 분홍빛의 금박으로 장식된 큰 두루마기를 몸에 걸쳤다.

 

 몸을 담그려 탕으로 향하자 물에서 천리향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천리향은 네가 준비한 거야?”

 

 “네. 공주마마께서 좋아하시는 향이잖아요. 말린 천리향을 가희국에서 가져왔어요.”

 

 진영이 부드러운 천으로 단희의 몸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말린 천리향이 물에 풀어져 단희의 움직임에 따라 밀려났다. 쌓여있던 피로가 조금씩 풀린다.

 

 “고맙다, 진영아.”

 

 진영은 가희국에서부터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동무이자 신하였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원망스럽지 않아?”

 

 “에이, 원망이라뇨. 저는 고향에 가족도 없습니다. 공주마마께서 저를 돌봐주시지 않았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걸요.”

 

 진영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원망스러우냐는 질문 자체가 이기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이기심이 가슴 한편을 찔러댔지만, 고통은 무시했다. 그럴수록 내 의지는 더욱 단단해질 테니까.

 

 “그나저나, 혼인이 성사된다 해도 걱정입니다.”

 

 “어떤 걱정?”

 

 “온해국 세자저하의 심성이 좋지 못해서요. 공주마마께서 해를 당하실까 소인은 두렵습니다. 다짜고짜 반말에, 창을 들이대질 않나…”

 

 “그렇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 그자가 이 나라의 세자니까.”

 

 단호한 말에 진영은 한숨을 쉬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괜히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그런 걱정은 그만하자. 너도 알잖아. 내가 그냥 가만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알죠.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가희국을 살리는 일이라면 뭐든 할 거야.”

 

 가희국이 있어야 나도 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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