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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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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5화 나랑 자보는 건 어때
작성일 : 22-02-04 16:01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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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브래지어가 많이 갑갑했는지 수현은 ‘굳이’를 강조해 말했다.

 

 “집은 몰라도 회사갈 땐 해야지.”

 

 신아가 수현의 등을 떠밀어 욕실로 밀어 넣었다.

 

 “빨리 씻고 나와.”

 “할 말 있어? 급한 거면 지금 여기서 하고.”

 

 그렇게까지 급한 건 아니었다.

 

 “빨리 원래대로 돌아올 방법 찾자고.”

 

 신아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문이 순식간에 닫혔다.

 

 ***

 

 찍찍, 슬리퍼 끄는 소리가 넓은 거실 안을 울렸다.

 거실로 나온 신아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한강뷰가 보이는 창가는 자동식 블라인드로 반쯤 가려져 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ㄷ’자 고급 소파와 테이블, 포인트 조명에 내려앉았다.

 

 “혼자서 사는 건가?”

 

 혼자 살기에는 호화스러운 규모와 인테리어였다.

 오히려 가정집이라기 보다는 모델 하우스의 느낌이 더 강했다.

 방금 수현이 보고 있었던 듯, 검은색 소파에 덮어놓은 신문도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집 안 곳곳에서 수현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옷은 받았나.”

 

 신아가 현관 쪽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분명 수현의 양손은 비어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찰나,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신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거실 뒤편에 있는 문이 덜컥 열렸다.

 샤워 가운을 입은 수현이 태연하게 거실로 나왔다.

 

 ‘왜 샤워 가운을?’

 

 수현이 머리칼을 털며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있는 신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눈으로 수현을 쫒는 신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신아의 체구가 기장을 감당하지 못한 듯, 가운이 발목을 덮은 것도 모자라 바닥에 끌렸다.

 살짝 벌어진 샤워 가운 사이로 아슬하게 하얀 속살이 보였다.

 

 “너, 너 속옷이랑 옷은?”

 “지금쯤 도착하려나.”

 

 태평한 그의 대답에 신아는 혼란스러워 입을 떼려는 순간,

 

 띵동.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은 듯 수현이 현관문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야!”

 

 신아가 황급히 수현의 손을 붙잡았다.

 왜 잡냐는 듯 수현이 잡힌 손을 힐긋 쳐다보다 신아를 바라봤다.

 

 “너, 너 그 상태로 가게?”

 

 신아가 애처롭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문은 열어줘야 할 거 아냐.”

 “그, 그러면 나 죽어!”

 

 진짜로 죽는 건 아니지만.

 이 상태로 마주하면 쪽팔려서 어디 접시에 코 박고 죽고 싶을 정도였다.

 

 “…….”

 “내가, 내가 나갈게. 그러니까 너는, 아 저기!”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신아가 수현의 손을 끌어당겼다.

 수현이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

 저항 없이 방으로 끌려가는 수현의 샤워가운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띵동, 띵동.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신아가 수현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방문이 닫으려는 순간,

 탁.

 문틈에 슬리퍼를 신은 발이 튀어나왔다.

 

 “집주인은 난데,”

 “…….”

 “내가 왜 숨어야 하지?”

 

 미간을 좁히며 수현이 방문을 밀었다.

 

 “그게…….”

 

 신아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는 말이 없던 탓이었다.

 

 ‘너라면 앞으로 같이 지내야 하는 상사한테 이런 꼴을 보여주고 싶냐?’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띠띠띠띠

 울리는 현관 비밀번호 소리에 동공이 커진 신아가 황급히 문을 닫았다.

 

 “진짜, 진짜 미안한데 사람 한 번 살린다고 생각하고 문밖으로 나올 생각하지 마!”

 

 아악!

 분명 안에서 무슨 비명 같은 게 들리긴 했는데.

 

 “……?!”

 

 거실 안으로 들어온 현규와 신아의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감각이 얼어붙었다.

 

 “부사장님, 안에 계셨습니까?”

 “아, 아니 그게.”

 “계셨으면서 왜 문을 안 열어주십니까.”

 

 현규가 탁자 테이블에 백화점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신아를 바라봤다.

 

 “아 이제 막 씻고 나오느라…….”

 

 이제 막 씻고 나온 사람치고는 꽤 단정한 모습이었다.

 잘못이라면 안에 있었으면서 재깍 문을 열지 않은 제 상사의 잘못이었지만.

 

 “아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괜히 상사의 눈 밖에 나는 일보다는 굽히고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더 이로운 걸 잘 알고 있던 현규가 먼저 사과했다.

 

 “하하…….”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리며 자신을 째려보는 게 여간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았다.

 

 “초인종이 고장 났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기사를 불러서…….”

 

 힐긋 신아의 눈치를 보는 현규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대화 화제를 돌렸다.

 

 “아, 아니에요!”

 

 현규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부사장님.”

 

 현규가 고개를 들어 신아의 얼굴을 살폈다.

 이마에 송골 맺힌 식은땀이 전등 빛에 반사돼 반짝였다.

 

 “예,예?”

 덜컹덜컹.

 안에서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반동이 등까지 전해졌다.

 좋은 말 할 때 문 열라는 수현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문을 힐긋 바라본 신아가 문고리를 꽉 잡았다.

 

 “왜 갑자기 존댓말 하십니까?”

 “네?”

 “혹시 점심 잘못 드셨습니까?”

 “아, 아닙, 아아니.”

 

 생각이 꼬여버린 것도 부족해 급기야 혀까지 꼬여버렸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듯한 신아의 얼굴을 살피는 현규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발 오지 마라, 그냥 가라, 오지 마라.’

 

 현규가 천천히 그녀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신아가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눈빛을 쏘아댔다.

 “그럼 아프십…….”

 “아픈 곳 없어요, 없다고!”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신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덜컹덜컹.

 그 순간, 신아의 등 뒤에서 문이 들썩이는 소리가 났다.

 현규의 시선이 자연스레 신아의 등 뒤로 옮겨갔다.

 

 “혹시 지금 난처하신 상황입니까? 그렇다면 신고를…….”

 

 현규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신아가 현규의 이름을 우렁차게 불렀다.

 

 “기, 김 실장님!”

 “예?”

 

 현규가 놀라 휴대폰을 바닥에 떨궜다.

 

 “그, 그, 앞에 택배 같은 거 오지 않았나?”

 “택배라니 무슨 말씀이죠? 부사장님은 절…….”

 

 아무리 눈치 없는 인간이라도, 이 정도 하면 대강 눈치를 챌 법했다.

 다행히, 현규에게 그 정도의 눈치는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아.”

 

 현규의 표정이 삽시간에 풀어졌다.

 생전 시키지도 않은 여자 옷을 가져오라고 한 것도 그렇고,

 이용하지도 않는 택배를 확인하라는 것도 그렇고,

 필사적으로 안방 문을 막는 것도 그렇고…….

 상황 파악을 마친 현규가 고개를 돌려 신아를 바라봤다.

 

 “이, 있었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이쯤에서 빠져줄 생각인지 현규가 허리를 굽히며 신아에게 인사했다.

 

 “…….”

 

 허리를 펴고 현규가 신아와 시선을 맞췄다.

 잔뜩 굳었던 부사장님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 걸 보니 딱 맞는 처사가 분명했다.

 현관을 빠져나오는 현규가 뿌듯한 듯, 굽은 어깨를 착, 폈다.

 현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긴장이 풀린 신아가 손잡이에서 살짝 손을 뗐다.

 탁.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곧바로 방문이 활짝 열렸다.

 

 “…….”

 

 신아가 몸통을 돌려 수현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화가 난 듯 자신을 째려보는 수현에 신아가 움찔했다.

 

 “거기서 계속 서 있을 건가?”

 

 수현이 신아를 지나쳐 탁자 테이블로 향했다.

 현규가 가져온 쇼핑백을 집었다.

 

 “으, 응?”

 “나 여기서 옷 갈아입을 건데?”

 

 쇼핑백 안을 살피던 수현이 슬쩍 그것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굳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거 보면, 직접 옷을 갈아 입혀주고 싶은 건가?”

 

 언제 째려봤다는 듯, 풀린 얼굴로 당당하게 신아에게 말을 하는 수현이 점차 그녀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게, 좋은 말할 때 문을 열 것이지.

 꼭 수현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했다, 내가.

 

 “그런 거라면, 내가 친히 거기까지 가주고.”

 

 자못 짓궂은 웃음을 얼굴에 띄운 수현과 눈을 마주친 신아가 은근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서 붙잡히면 저 맹수 같은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거였기에.

 

 “아…….”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발뒤꿈치가 방문에 닿자마자 안으로 쏙 들어간 신아가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네가 세 살 먹은 어린 애야? 옷 하나도 못 갈아입게?”

 

 내가 자기 엄마도 아니고!

 굳게 닫힌 문을 방패 삼아 신아가 큰소리를 쳤다.

 

 “하여간 이신아…….”

 

 쇼핑백을 확인한 수현이 방문을 보며 픽, 하고 웃었다.

 

 ***

 

 거실 소파에 신아와 수현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벌써 한 시간.

 어떻게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지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욘석아, 이 할애비 기다리다 말려 죽일 셈이냐? 좋은 말 할 때 오늘 집에 들리거라.]

 

 방금 수현에게 온 메시지 한 통에 두 사람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영감탱이 진짜.”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아는 수현이 머리칼을 헝클었다.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던 신아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지 입술을 움직였다.

 

 “나 혼자 갔다 올까?”

 “뭐?”

 “우리 둘이 가는 건 좀 이상한 거 같고, 그렇다고 지금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진 않을 것 같고…….”

 

 신아가 수현의 눈치를 살피며 뒷말을 흐렸다.

 수현은 어제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 눈을 내리깔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제 있었던 일 중, 두 사람이 몸이 바뀔 만한 일은…….

 

 “너 나랑 자자.”

 “……뭐, 켁, 자?”

 

 켁, 켁.

 침을 잘못 삼킨 신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응.”

 

 단호한 그의 대답에 신아가 당황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 하고 웃었다. 지금 자자는 소리가 그렇게 쉽게 나와?

 

 “야, 너는 어떻게 지금…….”

 “어제 우리가 잔 거 말고 이렇게 될 만한 일이 없지 않나.”

 

 수현의 말에 신아가 말문이 턱 막혔다.

 충분히 납득가는 말이었지만.

 

 “자, 잠깐만.”

 “왜.”

 

 신아가 진정하라는 듯이 수현에게 손짓했다.

 그래도 이건 좀 그렇잖아.

 어제는 술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오늘은 멀쩡히 제정신인데.

 

 “너는 맨정신으로 나랑 할 수 있겠어?”

 

 일부러 목적어를 뺐는데도 신아의 목소리라 저도 모르게 떨렸다.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는 그의 말에 신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데?

 꼭 그 말이 ‘너니까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다’라는 말처럼 느껴지는 건 단순한 착각인가.

 

 “…….”

 

 게다가 표정 변화 없이 점차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수현이었다.

 신아가 몸을 뒤로 점차 물렀다. 뒤로 뻗은 그녀의 두 팔이 소파에 닿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원수현.”

 

 잠시 멈칫한 수현이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좀 화가 나는데?

 신아가 인상을 구겼다.

 힐긋 소파를 바라본 신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말고 방에 가서 해.”

 

 나도 너니까 할 수 있다, 뭐.

 너니까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다고.

 
작가의 말
 

 5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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