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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안의 그
작가 : 이작송
작품등록일 : 2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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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다음 날,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3화 만져줘, 뜨거운 곳
작성일 : 22-02-02 13:29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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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수현이 검지로 하얀 도자기 잔의 둘레를 만지작거렸다. 수현이 신아를 바라봤다. 볼에 올라온 홍조에 시선이 머물렀다.

 

 술은 진작 깬 상태였다. 살짝 걷은 그의 소매 끝에서 은색 커프스 링크가 반짝거렸다. 수현이 손목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2시간이 넘었다. 이곳에 온 지.

 

 “뭘 봐? 헤어진 사람 처음 봐?”

 

 신아와 눈이 마주쳤다. 풀린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또, 또. 괜히 시비였다.

 

 이곳에 오자마자 술을 시켰다. 이신아와 술잔을 기울였고, 김 실장한테 먼저 가라는 연락을 남겼고, 그 후 대기하고 있겠다는 답장이 돌아왔고, 안주도 없이 술만 들이붓는 이신아를 막다가 팔을 물리고.

 

 “쉬었다 마셔. 너 지금 취했어.”

 “아, 내놔. 그리고 나 안 취했거든?”

 

 또 같은 말을 반복.

 수현이 신아의 손에서 잔을 빼앗았다.

 

 “나랑 같이 마셔.”

 “싫어, 혼자서 마실랭.”

 

 혀는 또 잔뜩 꼬여서는.

 탁. 테이블 위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신아가 잔을 향해 손을 뻗으며 수현을 째려봤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안 돼.”

 

 치사한 자식. 신아가 팔을 거두고 후, 숨을 내쉬었다. 쉬었다 마시긴 해야겠네. 술 냄새가 훅 올라왔다.

 취기가 팍 돌았다. 이렇게 취기가 돌면 온몸에 열이 오르고, 그러면.

 

 “조필담 이 새끼, 하 생각만 해도 열 받네? 어? 나도 히끅, 이참에 확 다른 사람 만나버려? 어?”

 

 생각 없이 말을 뱉게 되는데.

 수현은 그런 신아를 알고 있다는 듯, 장단을 맞춰줬다.

 

 “만날 사람은 있고?”

 “음…….”

 

 신아가 잔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눈에 들어오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사귀자고 할 기세로.

 

 “저기, 저 남자는 어때?”

 

 때마침, 미닫이문이 열리고 직원이 들어왔다.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는 신아에 한번.

 그 앞에서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수현에 또 한 번.

 놀란 직원이 황급히 술병을 내려놓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어? 사라졌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 신아가 손을 거두는 순간, 수현이 신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저항 없이 끌려온 신아가 멍한 얼굴로 수현을 바라봤다.

 신아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검지만 남겨둔 수현이 신아와 눈을 맞췄다.

 

 “그럼 이 남자는?”

 “……으에?”

 “지금 네 앞에 있는 남자는 어떤데.”

 “…….”

 “너랑 모든 면에서 잘 맞기까지 하고, 심지어 한 사람만 보는 미련한 면도 좀 있는데.”

 “…….”

 

 신아가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웃었다.

 이놈 이거, 취했네.

 

 “어때?”

 

 수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안 사요, 안 사.”

 

 신아가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왜 안 사.”

 

 부드러운 목소리인 것 같지만, 그는 ‘왜’를 강조하며 물었다.

 

 “미련한 건 딱 질색이야.”

 “너만 보는데도?”

 “몰라. 근데 그쪽은 아니에요. 그런 얼굴로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아무리 취했다고 하지만 그거 범죄야.”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신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신아를 바라보는 수현의 눈썹도 덩달아 움찔거렸다.

 

 “뭐가 범죄인데?”

 

 수현이 테이블에 팔을 기댄 채 신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말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그쪽은 여자 여럿 울리게 생겼어.”

 “뭐?”

 

 예상치 못한 신아의 말에 수현이 픽, 하고 웃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신아가 미간을 확 좁히며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심지어 웃는 것도 예뻐.”

 

 신아가 수현의 볼 가운데에 깊숙이 패인 보조개를 만지작거렸다.

 수현이 신아의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개었다.

 

 “예뻐?”

 “말했잖아 여럿 울리게 생겼다고.”

 “어디가 그렇게 예쁜데?”

 

 풀린 신아의 두 눈이 자꾸만 수현의 입술을 바라봤다. 이거, 이거. 위험한 녀석이네.

 

 “말 좀 해줘. 나 궁금해.”

 “너 계속 물어보면 아주 나한테 혼쭐나.”

 “어떻게 혼낼 건데?”

 

 신아를 바라보는 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웃으면서 묻지 말라니까. 이거 진짜 범죄인데.

 

 “응?”

 

 수현이 되묻자마자 곧바로 신아의 입술이 수현의 입술에 포개어졌다.

 좀 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은 수현이 신아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좀 더 깊이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려고 할 때,

 

 “내가 묻지 말라고 했지. 너 진짜 내가 혼쭐내준다고.”

 

 신아가 먼저 입술을 뗐다. 다시 술잔으로 향하는 손을 수현이 잡았다.

 

 “난 더 혼나고 싶은데.”

 

 ***

 

 식당 입구 앞.

 고급 세단 한 대가 라이트를 켠 채 서 있다.

 지금 나간다는 수현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현규가 차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앞 유리를 바라보던 현규가 수현을 발견하자마자 뒷좌석 차 문으로 향해 걸어갔다.

 

 “뭐지?”

 

 현규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현의 옆에 여자가 있었다. 그것도 수현에게 거의 안겨 있다시피.

 현규의 눈이 점차 커졌다.

 긴가민가했는데, 얼마 전 스카우트 면접을 이신아 씨였다.

 1차, 2차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합격한 그녀의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저 사람이 왜 부사장님이랑?’

 

 의문의 이유는 간단했다. 얼음 같은 부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한쪽 입꼬리만 올린 사무적인 미소가 아닌.

 

 신아와 수현이 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현규가 서둘러 뒷좌석 문을 열었다. 미소를 거둔 수현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현규를 바라봤다.

 

 “먼저 들어가 보라니까.”

 “괜찮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냥 집으로 가.”

 

 진짠데.

 현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네, 라고 대답했다.

 수현이 조심히 신아를 차 안에 먼저 앉혔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현규가 간신히 입을 꾹 닫고 차 문을 잡고 있었다.

 

 “뭐해, 안 닫아?”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물어볼 수가 있나.

 날카로운 수현과 눈이 마주친 현규가 서둘러 운전석 차 문을 열었다.

 

 “어디로 모시면 됩니까?”

 

 출발하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이신아, 너 집이 어디야?”

 “몰라.”

 

 아무리 수현이 흔들고, 말을 걸어도 신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몰라’ 하나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난처한 건 현규였다.

 저기요, 이신아 씨?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되는데요?

 

 백미러를 만지는 척 뒷좌석을 바라봤다. 미간이 좁아진 현규의 얼굴이 거울에 비췄다.

 역시나.

 그 뒤로 창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신아가 보였다.

 

 “일단 출발해.”

 “!”

 “여긴 그만 쳐다보고.”

 

 신아를 바라보고 있던 수현이 백미러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현규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네, 알겠습니다.”

 

 ‘예, 까라면 까라죠.’

 

 무어라 말을 하려던 현규가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돌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도로의 양옆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 덕분에 밝았다.

 신호가 바뀌고 익숙하게 좌회전했다.

 

 ‘여기로 가면 바로 부사장님 댁 나오는데.’

 

 수현과 일하며 4년 동안 달린 도로였다. 외우다 못해 이제는 몸에 체화된 루트였다.

 

 “우웅, 여기가 어디래?”

 “이신아. 깼어?”

 “응, 나 다 깼어! 완전 해피!”

 

 조용한 차 안에 신아와 수현이 목소리가 울렸다.

 이 길로 가도 괜찮나?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 현규가 뒷좌석을 향해 두 귀를 쫑긋했다.

 

 “기사님!”

 

 기사 아니고, 비서인데.

 깼다는 건, 술이 아니라 잠이었나 보다.

 현규가 대충 신아에게 대꾸했다.

 

 “네, 말씀하세요.”

 “기사님~ 저 좀 내려주세요.”

 “이신아.”

 

 신아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수현의 만류에도 신아가 앞 좌석 사이에 몸을 끼웠다. 술 냄새가 훅, 풍기자 현규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저기, 저기.”

 

 한 손을 쭉 뻗어 한산한 상가 주변 도로를 가리켰다.

 

 “조필담이 만나러 갈 거거든요.”

 

 어, 어 아무리 취했다고 하지만, 그러시면…….

 말 안 해도 필담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

 현규가 힐긋 백미러를 살폈다.

 예상대로 수현의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못 들은 척, 눈치 없는 척 그냥 닥치고 운전만 하는 거였다.

 

 “어? 어? 안 되는데? 기사님! 저기 저, 저, 저 여기서 내려요!”

 

 아무리 그렇게 애원하셔도 안 됩니다.

 저는 기사가 아니라 부사장님의 비서니까요.

 

 

 “앉아.”

 

 명령조에 가까운 말이었다.

 결국 화나셨구나!

 긴장한 현규가 목숨줄인 것처럼 핸들을 꽉 붙잡았다.

 

 “왜 명령조야? 내가 네 개야?”

 

 저기, 이신아 씨. 제발.

 

 “알았어, 앉아줘.”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순식간에 부드럽게 변한 수현의 목소리에 현규가 놀랐다.

 급정거를 할 정도로.

 

 덜컹.

 신아가 수현의 품 안으로 안기듯 넘어졌다.

 신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수현을 올려다봤다.

 단단한 눈동자가 부딪혀왔다.

 

 “뭐해? 이거 놔.”

 “이러면 돼?”

 

 신아의 등을 단단히 떠받친 수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술 냄새가 수현에게도 전해졌다.

 

 “뭐, 뭐가?”

 “그 자식 못 만나게 하려면.”

 

 수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걸로 되겠냐?”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확.”

 “그냥 확 뭐.”

 

 신아가 살짝 고개를 숙여 수현만 들을 수 있도록 귀가에 속삭였다.

 숨소리가 섞인 그녀의 낮은 목소리에 수현의 아래에 열이 쏠렸다.

 

 “만져줘.”

 

 평소 도발과 유혹과는 거리가 먼 신아였다.

 하지만 술기운이 오른 신아는 달랐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웅.”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지만.

 신아가 은근슬쩍 수현의 팔을 살살 어루만졌다.

 

 “취했네.”

 “아니거든?”

 

 수현이 허, 하고 헛웃음을 뱉었다.

 누가 봐도 술 취한 게 맞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꽤 웃겼다.

 

 “진짜 안 취했어?”

 “아 그렇다니까.”

 

 차 안에 진동하는 술 냄새며, ‘나 취했어요~’라고 주장하는 풀린 눈 하며, 살짝 꼬인 혀까지. 모든 것이 신아가 취했음을 증명했지만, 신아는 끝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딜 만져줘.”

 “음……. 뜨거운 곳.”

 

 수현의 눈이 번뜩 떠졌다.

 취해서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이신아 얘가.

 수현이 백미러를 살폈다. 현규는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앞만 보고 있었다.

 

 “뭐?”

 “여, 여기. 뜨거운 곳.”

 “…….”

 

 신아가 순식간에 수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아……. 시원해.”

 

 뜨거운 볼이 서서히 식어감을 느끼자 신아가 기분이 좋은 듯 살며시 눈을 감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수현이 멍하니 신아를 바라보다 픽, 하고 웃었다.

 

 “네 손 왜 이렇게 시원해.”

 

 신아가 수현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조물조물.

 찬 기를 모두 빨아들이고 싶은 듯, 신아가 주무르고 깍지를 끼며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

 

 그럴수록 수현은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위험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녀에게 잡힌 손을 떼어내 다른 곳을 만지고 싶은 욕망을 참았다.

 

 “그래서 집이 어딘데.”

 

 간신히 입술을 떼었지만, 이런 수현의 마음도 모르고 신아가 대답했다.

 

 “집에 가기 싫어.”

 “말해줘. 데려다주게.”

 “싫어, 너희 집 갈래.”

 

 심지어는 쐐기까지 박았다.

 술 취해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도 본능은 마취되지 않고 살아 있었다.

 

 코앞에 닿을 거리에 사는 필담이 집 앞에 서 있을 것이라는 위험을 알아차린 본능과

 

 “너랑 더 있고 싶어.”

 

 9년 전 수현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몸의 본능이.

 

 “김 실장, 그냥 우리 집으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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