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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미스터 트윈스
작가 : 메이플
작품등록일 : 2016.10.31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 사이의 미스터리를 풀어라!

 
일파만파
작성일 : 16-10-31 14:01     조회 : 592     추천 : 0     분량 : 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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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일파만파

 

 

 며칠 후 기다리던 기사가 나왔다.

 

 연예 전문 온라인매체인 스포데일리에서는 [단독] 문구를 달고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냈다.

 

 [단독] 혀끝을 사로잡은 끔찍한 스캔들!

 [독점] 당신의 뇌를 조종하는 악마의 푸드!

 

 “제목 한 번 요란하네.”

 

 커다란 컴퓨터 화면으로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보던 윤 박사가 말했다.

 

 “보는 제가 다 민망해요.”

 

 옆에서 같이 보던 장 박사는 자극적인 머리기사에 손발이 오글거렸다.

 

 “꼭 이렇게 해야 했어?”

 

 언짢은 목소리의 최 박사가 마우스를 드래그하며 지애를 돌아본다.

 

 “제가 쓴 거 아닌데요.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네요.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제일 많이 본 기사 1위에요.”

 

 지애는 박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와 모바일을 통해 동시에 포털 상황을 확인했다.

 

 

 **

 

 

 지하철에서 SNS를 보며 학교로 가고 있던 여학생은 친구가 올린 스포데일리의 기사를 별 생각 없이 클릭했다.

 

 “헐. 대박.”

 

 기사의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친구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기사를 공유했다.

 

 잠시 뒤 그녀의 핸드폰은 기사를 확인한 아이들이 올리는 메시지로 알림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이거 진짜임?]

 [스포데일리니까 사실일 것 같음]

 [얘네 이제 이런 것도 터뜨려?]

 [ws 완전 쓰레기다 불매운동 고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기사를 보던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서 쉬는 직장인들, 강의시간에 핸드폰을 잡고 있던 학생들은 각종 SNS를 통해 기사를 빠르게 공유해 나갔다.

 

 WS 소비자 상담실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자 걸려오는 전화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소비자보호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서도 전화 민원이 쇄도했다.

 

 기사에는 박사들이 의뢰를 맡긴 세계 각국의 유수 기관들이 리스트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발 빠른 사람들은 그 기관들을 검색해서 대표 메일이나 전화를 확인하고 직접 연락을 시도했다.

 

 기사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WS식품 본사 앞에는 언론 매체가 앞 다투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WS식품에서는 사실무근이라는 공식 답변을 내고 어떠한 추가적인 언급도 없었다.

 

 선우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대형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기사 내용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방에는 늦은 시각이지만 이따금씩 비서실에서 선우 쪽으로 돌린 긴급한 전화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선우는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 안에 퍼져나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 코드를 찾았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전화기 전체를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누구세요?]

 

 전화의 상대방은 전화를 머뭇거리다 받은 것 같았다.

 

 [생각보다 용기가 있네? 내가 과소평가했어.]

 

 [......먼저 극단적으로 나오니까 그렇지.]

 

 남 박사는 선우의 목소리를 듣고 살짝 놀랐다.

 

 [지애가 도와줬구나? 박사들도 그렇게 나오다니. 하! 그 겁쟁이들이 대단하네.]

 

 선우는 약이 올라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거 같아.]

 

 [나도 눈이랑 귀 있어. 덕분에 고맙다.]

 

 [사실을 밝히고 시정하면 괜찮아질 거야.]

 

 [낙천적이네.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대화도 없이...... 너한테 정말 실망이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게 만든 건...... 형이야.]

 

 선우에게 약간이나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남 박사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선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전에 내가 너한테 준 선물 있지?]

 

 [무슨......말이야?]

 

 [태국에서 돌아오면서 니 이름으로 받은 상자 있잖아. 그거 내가 특별히 널 위해서 준비했던 거야.]

 

 [......뭐? 그것 때문에 다들 얼마나 곤란했는데! 왜 그랬어?]

 

 [내가 마음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보여주려고. 너희 박사놈들 보내버리는 건 일도 아니거든. 다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한 번 보자고.]

 

 선우와 통화를 마친 남 박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선우가 무서워졌다.

 

 공항에서의 그 난리가, 자신을 감옥에 보낼 수도 있었던 그 일이 선우가 꾸민 짓이었다니...... 하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스완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건강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사용해온 그였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형이 박사들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진 않을까 하는 거였다.

 

 선우에 대한 분노나 두려움과는 또 별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그에게 연민의 마음도 들었다.

 

 선우가 벌인 그 동안의 일들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선우에 대한 여론의 단죄와 비난이 다름 아닌 자신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책감이 남 박사를 힘들게 했다.

 

 

 **

 

 

 다음날이 되어도 사람들의 관심은 식지 않고 이어졌다.

 

 WS식품의 주식은 전날 종가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스 보도 프로그램에서는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정부와 관련 기관의 정확한 판단을 촉구했다.

 

 정부에서도 비공식적으로 WS식품 측의 경위 설명을 요청했다.

 

 WS에서는 찌라시 인터넷언론의 보도에 전 국민이 흔들리는 말도 안 되는 사태라고 일축했다. 도리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염 증세에 대하여 유일하게 신약 개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WS에 대한 심각한 음해라고 호소했다.

 

 WS에서는 가족들과 최측근들로 이루어진 긴급이사회가 열렸다.

 

 선우는 쏟아지는 질문 공세 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고성과 걱정이 난무하던 이사회가 마치고 나가려는 그를 아버지가 불러 세웠다.

 

 “선우야, 기사에서 연구원들이 말한 내용들이 사실이냐?”

 

 아들의 눈을 마주보고 말하는 회장의 눈에서는 진실일 경우의 두려움과 그렇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선우의 눈빛은 깊고 까맣게 전혀 흔들림 없이 아버지를 응시했다.

 

 “정말...... 몰랐니?”

 

 “너 이번에 이 일 제대로 처리 못하면 회사 전체가 위기야!”

 

 회장과 선우의 대화에 부회장인 작은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그는 선우를 못마땅해 하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선우는 이사회에서도 부회장의 공격적인 발언에 시달렸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선우는 아버지와 부회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하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

 

 

 여론은 나빠져만 갔다.

 

 기업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 사람들이 물고 뜯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언론은 연일 심층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스포데일리도 본래의 연예인 관련 뉴스 보다는 이번 이슈와 관련된 기사들을 집중해서 내보냈다.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들은 혹시라도 동반 하락할 매출을 걱정하며 자사 식품의 안전성을 내세워 홍보하기에 바빴다.

 

 국내에서 이슈화된 이번 사태는 해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정부는 엄청난 여론에 WS식품에 대해 집중조사와 문제 성분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WS식품과 WS제약도 언론과 소비자 담당과 정부 조사 대응팀 구성으로 연일 정신이 없었다.

 

 [제가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선우는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통화하며 자신의 최후 결정을 전했다.

 

 그는 며칠째 씻지 못한 것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푸른 수염이 살짝 올라온 얼굴로 반쯤 풀린 넥타이와 팔을 걷어 올린 셔츠 차림이었다.

 

 낮 시간이었지만 사무실 유리창 전체의 암막 블라인드를 내려 깜깜한 암실 같았다.

 

 통화를 마친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피식거리며 웃다가 이내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어갈 때쯤에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헷갈렸다.

 

 “이런 일로 얼굴을 공개하게 될 줄이야!”

 

 그는 어두운 방을 밝히는 단 하나의 전등 불빛을 받으며 맞은편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까칠한 턱을 쓸어 만졌다.

 

 

 

 30. 360도 변신

 

 

 “선우가 기자회견을 해요!”

 

 지애가 남 박사 연구실 문을 노크를 생략하고 열고 들어왔다.

 

 남 박사는 매일 같이 이메일계정에 접속해서 각 연구소들의 회신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WS식품의 실질적인 오너잖아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남 박사는 지애의 격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되물었다.

 

 “박사님, 이건 대박 사건이라고요! 선우 걔가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이번 사건은 은둔자 오너라도 전면에 나서야 될 일이에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사과하려나 보죠.”

 

 남 박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선우와 처음 만났던 날과 통화했을 때가 떠올라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지금까지 인정안하고 있었는데 기자회견이라고 달라질까요? 아마 뭔가 다른 수를 쓸 거예요. 식약처에서는 그 동안 한 번도 문제 있다고 한 적 없었으니까 그런 공식적인 자료 제시하면서 반박하겠죠. 그리고 걔가 실제로 TV에 나와서 기자회견 하면 완전 연예인이라고 여자들 난리 날걸요? 학교 다닐 때부터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고 엄청 인기 많았...... 설마 외모로 여론 물타기 하려는 거야?”

 

 지애의 머릿속에서는 선우가 기자회견장에서 자사 식품의 안전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게다가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자사 연구원들이 회사에 반감을 가지고 근거 없는 내용을 정식 종합일간지도 아닌 근본 없는 온라인 매체에서 떠들게 했다고 난색을 표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지애는 남 박사를 앞에 두고 상상의 시나리오를 써나가다 선우가 미남계를 활용해 난국을 헤쳐가려나 보다 결론을 내렸다.

 

 선우가 기자회견까지 한다고 하는 거 보면 단단히 준비할 것이다.

 

 안 그래도 스포데일리에서 처음 보도한 거라 진위 확인도 안 된 과잉된 마녀사냥이 아닌지 조심스레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선우가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방어한다면 상황은 반전되어 흘러갈 수도 있다.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흐지부지해지면 위험성을 알리려 한 노력이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선우가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이제 어떻게 대응하죠?”

 

 지애는 팔짱을 끼고 남 박사의 책상 앞을 서성이다 갑자기 멈춰 서서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날 이용해요.”

 

 남 박사는 고심하다 말했다.

 

 

 **

 

 

 지애는 남 박사를 최고급 바버샵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는 선우가 자주 오던 단골 샵이다. 이런 곳까지 회사비서를 대동하기 싫어하는 선우가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지애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선우는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밝히지 않았었다.

 

 직원들은 그가 괜찮은 중소기업을 물려받은 젊은 대표인가보다 추측하면서 그를 그냥 ‘대표님’이라 불렀다. 지애는 어쩌다보니 대표의 비서로 불리게 되었다.

 

 지애는 샵에 들어가기 전 남 박사에게 이것저것 교육을 시켰다.

 

 자신은 나 박사가 아닌 ‘지애 씨’로 부를 것, 자신에게 존댓말하지 말 것, 직원들에게는 거리를 두면서 대화를 거의 하지 말 것.

 

 지애는 선우가 평소에 취하던 태도를 남 박사에게 주지시켰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남 박사는 샵의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하는 눈치다.

 

 “박사, 아니, 대표님.”

 

 지애는 아이를 혼내려고 각을 잡는 나직한 엄마의 음성으로 남 박사를 부른다.

 

 “아, 네. 지애 씨.”

 

 “선우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데 자주 다녀서 신기할 게 없다구요. 여기 저기 눈길 주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가요.”

 

 지애는 남 박사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었다.

 

 저 쪽에서 선우를 전담해서 담당하던 바버샵의 대표가 그들을 맞으러 나와 있었다.

 

 “아, 어서 오십시오. 비서님도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표님이 요즘 많이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남 박사와 지애를 보며 반갑게 환대하던 그는 남 박사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네, 그 동안 대표님이 일이 많으셔서...... 너무 바빠서 관리할 시간도 없었어요.”

 

 지애는 선우와 완전히 다른, 하나도 꾸미지 않은 남 박사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샵 대표의 관심을 돌리고자 서둘러 수습했다.

 

 “네, 그러셨던 것 같아요. 평소 뵙던 모습과 많이 달라지셔서 무슨 일이 있으신지 걱정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 늘 하던 스타일로 하신대요.”

 

 그럴 줄 알았다며 급히 친절한 얼굴로 돌아간 대표에게 지애가 남 박사를 대신해 지시했다.

 

 남 박사가 헤어와 얼굴 등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관리를 받는 동안 지애는 다음 동선을 생각하며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련 기사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다.

 

 “다 되셨습니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남 박사를 꾸며준 샵 대표가 그를 홀로 데리고 나오며 외쳤다.

 

 지애는 결제하기 위해 일어나며 남 박사가 제대로 변신했는지 무심코 쳐다봤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놀라서 얼른 입을 다문다.

 

 “비서님, 어떠세요?”

 

 대표는 아까의 촌스럽고 올드한 헤어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자신이 대견스러웠는지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이 오늘은 더 멋지게 변하신 것 같네요.”

 

 지애는 양 손의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만족감을 표했다.

 

 남 박사는 선우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애는 남 박사를 보고 선우인가 싶어 순간 무섭기도 했다.

 

 쌍둥이니 닮은 건 당연하지만 쑥스러운 듯 왼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남 박사는 선우의 세련됨과는 다른 시골 청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있었다.

 

 지애가 남 박사를 끌고 데려간 다음 장소는 백화점이었다.

 

 명품관에는 선우가 평소 즐겨 입는 브랜드의 쇼룸이 입점해있었다.

 

 쇼룸 직원들은 평범하고 투박한 의상의 남 박사가 들어서자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그 때 그의 얼굴을 알아본 매니저가 놀란 표정으로 웃으며 영접하자 다들 그제야 주요 고객의 방문임을 알아챘다.

 

 직원들이 국빈을 모시듯 남 박사에게 달라붙어 이것저것 권하자 그는 당황하며 어색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셔츠는 미국에서 이번에 이게 신상으로 들어 왔고요. 색상별로 다 보여 드릴까요?”

 

 “아, 음...... 네.”

 

 친절하게 권하는 직원의 물음에 남 박사는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 그냥 ‘네’라고 하고 만다.

 

 직원이 안내한 VIP룸에서는 옷 잔치가 벌어졌다.

 

 선우가 평소에 입던 스타일로 심플하고 단정한 의상을 주문했더니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슈트, 셔츠, 구두 등을 끝도 없이 가지고 나왔다.

 

 이쪽으로는 아무것도 몰라서 직원들이 뭐라고 할 때마다 그러죠, 좋아요 를 연발하는 남 박사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애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좀 더 지켜보다가 이대로 두면 남 박사가 여기 옷을 다 살 기세여서 이쯤에서 교통정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대표님이 공식적이고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실 예정이세요. 아까 봐 둔 이걸 입어보시는 게 좋겠어요.”

 

 지애는 도열한 직원들이 양 손에 들고 있는 가장 비싼 가격대의 슈트 라인들 중에서 까맣고 날렵하면서도 스마트한 느낌을 주는 정장을 가리켰다.

 

 남 박사는 정장과 구두를 든 직원이 인도해준 전용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피팅룸 자체도 상당히 넓었다. 바닥에는 고급스런 카펫이, 천장에는 정교한 조각 장식이 있는 은은한 조명이, 벽은 각 면들 전체가 대형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이런 비싼 옷들은 처음 만져보는 남 박사는 조심스런 손길로 슈트를 천천히 턱 앞까지 들어 올렸다.

 

 지금 바뀐 헤어스타일에는 현재 입고 있는 낡은 정장 보다는 손에 들린 까만색 고급 슈트가 훨씬 잘 어울려 보였다.

 

 남 박사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들을 벗고 셔츠부터 바지, 상의까지 하나씩 새로 입었다.

 

 마지막 슈트의 단추까지 잠그고 사방의 거울 면에 비치는 자신을 본 남 박사는 낯선 모습에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남 박사가 나올 때 지애는 넥타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새 옷을 입고 나온 사람은 더 이상 남 박사가 아니었다.

 

 이선우 자체였다.

 

 똑같은 키와 선우만큼 살이 빠져서 거의 비슷한 체격은 선우가 입던 명품 슈트를 두르자 남 박사를 완벽하게 선우로 만들어주었다.

 

 남 박사와 선우가 쌍둥이임을 눈으로 200퍼센트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때요? 지애 씨?”

 

 선우가 팔을 양쪽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감상평을 듣고 싶은 듯 지애에게 물어본다.

 

 “말이 필요가 없군요.”

 

 남 박사를 보면서 잠깐 정신을 놓고 있던 지애는 그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그리고 이거. 제가 고른 색이에요.”

 

 지애는 짙고 차분한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를 남 박사에게 건넸다.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노타이 복장에 익숙한 남 박사는 넥타이를 매는데 무척 서툴렀다.

 

 “제가 해 드릴게요.”

 

 능숙하게 넥타이를 맬 선우와는 다르게 고군분투하는 남 박사를 보던 지애가 직접 넥타이를 잡았다.

 

 “여자 분이 왜 이렇게 넥타이 잘 매세요?”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고 있는 지애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릴 때 언니랑 아빠 넥타이 매드리기 연습했거든요. 오랜만에 한 번 써 먹네요.”

 

 “아까 이거 가격표 보니까 엄청 비싸던데 무이자 몇 개월까지 될까요?”

 

 남 박사는 넥타이를 매주고 있는 지애의 귀에 대고 직원들이 못 듣게 소곤소곤 물었다.

 

 “네? 무슨 소리에요? 선우가 준 법인카드 있어요. 저한테는 마음대로 한도 없이 써도 된다고 했으니 괜찮아요.”

 

 지애는 넥타이 매듭을 세게 당기며 남 박사에게 조용하게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이건 제가 계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됐어요. 형이 30년 만에 만난 동생한테 양복 한 벌 사줬다고 생각해요.”

 

 넥타이를 다 매고 남 박사의 셔츠 깃을 내려주며 지애는 독하게 말하면서도 형제간의 이런 상황이 서글퍼졌다. 그러다가 그녀도 마음을 정리한 듯 다시 기운을 내서 말했다.

 

 “자, 그럼 이제 가실까요?”

 

 

 **

 

 

 지애는 남 박사를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신시켰다.

 

 화려한 외출을 마치고 저녁 밤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을 보는 주변 사람들은 남 박사의 모습을 보고 한 번씩은 돌아보았다.

 

 특히 여자들은 안 보는 척 하면서도 남 박사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지애는 꽤 오래 전 대학교 교정에서 선우와 다닐 때 느낀 기분이 생각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쇼핑을 마친 그들이 간 곳은 한 카페였다.

 

 카페의 스터디 룸 같은 곳을 빌려 지애는 테이블에 면접관처럼 앉았다. 맞은편에는 남 박사가 면접을 기다리는 대기자처럼 굳어있었다.

 

 “선우 한 번 만난 적 있으니까 목소리나 말투 기억나시죠? 제가 듣기엔 목소리는 비슷한 것 같은데 말투가 달라요. 선우가 자신감 있고 시크한 느낌이라면 음, 박사님은 연구원이셔서 그런지 내성적이고 차분하달까?”

 

 “많이 차이가 날까요?”

 

 “선우 가족들은 눈치 챌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그룹 고위급 임원들도 선우를 만난 적이 거의 없어서 모를걸요?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선우를 본 적도 없으니 알 길이 없을 거고요.”

 

 남 박사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 회장을 비롯해서 가족들이 알게 되면 선우가 곤란해 질 수도 있겠지?

 

 아마도 자신이 쌍둥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게 싫어서 기자회견을 한 것은 본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 사실을 부인하고 더 일을 키우기 전에 자기라도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남 박사는 지애와 함께 내일로 예정되어 있는 기자회견에서 말할 내용들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리고 지애가 지켜보는 앞에서 선우가 된 것처럼 예행연습을 했다.

 

 남 박사는 선우의 말투를 떠올리며 기자회견 내용을 고려하여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작성한 원고를 읽고 수정해나가기를 계속했다.

 

 “기분이 어때요?”

 

 발표 내용을 계속 봐주던 지애가 잠시 쉬는 타이밍에 지친 듯이 물었다.

 

 “떨려요. 형이 된 것처럼 행동해야 되는 것도 부담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말해야 되는 것도 걱정되고요.”

 

 “흠. 아까는 자신 있게 본인을 이용하라고 하시더니...... 아, 이건 농담이에요.”

 

 남 박사는 다 식은 머그잔을 양 손으로 쥐고는 책상을 내려다보다 힘겹게 얼굴을 들었다.

 

 “이제 다시는 형과 사이가 좋아지기 어렵겠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에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미리 염려하진 말아요. 그래도 이렇게라도 안 하면 선우가 나중에 더 큰 곤란을 겪을 수 있으니까 박사님이 나서시는 거잖아요.”

 

 “형이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고요.”

 

 늦은 시각까지 지애와 준비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 온 남 박사는 새벽이 지나 아침 무렵이 될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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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뒤바뀐 기자회견 2016 / 10 / 31 371 0 4296   
20 일파만파 2016 / 10 / 31 593 0 9820   
19 주사위는 던져졌다! - 용기 있는 자에게 특종… 2016 / 10 / 31 373 0 5604   
18 협박 2016 / 10 / 31 408 0 5087   
17 또 다른 괴물 2016 / 10 / 31 355 0 4482   
16 최초의 만남 2016 / 10 / 31 372 0 4249   
15 노파와 남자 2016 / 10 / 31 469 0 5836   
14 탈출 2016 / 10 / 31 337 0 8206   
13 '파라다이스' 2016 / 10 / 31 473 0 7815   
12 은둔의 과학자 2016 / 10 / 31 597 0 8078   
11 스무고개 2016 / 10 / 31 381 0 4361   
10 찾아줄게요! 2016 / 10 / 31 393 0 4629   
9 어딘가 닮은 남자 2016 / 10 / 31 336 0 7941   
8 단서 찾기 2016 / 10 / 31 471 0 8846   
7 무모한 남자 2016 / 10 / 31 417 0 5076   
6 환자 찾기 2016 / 10 / 31 389 0 4376   
5 새로운 시작 2016 / 10 / 31 386 0 8149   
4 베일에 가려진 권력자 2016 / 10 / 31 373 0 4447   
3 18년 후 2016 / 10 / 31 400 0 5502   
2 15년 후 2016 / 10 / 31 401 0 4601   
1 사고 2016 / 10 / 31 845 0 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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