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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세벽(世壁) - 세상의 벽 -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22.1.16

세상에 벽이 있었다. 그 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 벽 너머에서, 다른 배후를 발견했다.
그들을 막고자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3부 그 너머 (7)
작성일 : 22-01-31 10:23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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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자들(guardians)"

 제시가 코끝이 빨개진채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리를 죽이는걸 잊지 않았다. 방금까지 울고 있던 것과 달리 또랑또랑한 눈동자였다. 상황판단이 빨랐다. 션은 작은 정보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은근히 씁쓸했다.

 

 교회당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던 인간들이었다. 집앞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 났다. 그들이 아마추어였다면 눈 앞의 이들은 전문가였다. 날리는 눈발,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감정없는 인형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는 수호자들.

 선유와 남자를 필두로 뒤에 서있는 무리는 규칙도, 정갈함도 없었다. 얼굴을 가리는 어떠한 물건도 없었기에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 중 하나. 표정은 한없이 우울했고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 대비되어 더욱 어수선해보였다. 하지만 생기가 없기는 수호자들과 마찬가지여서, 그거 하나만큼은 쌍둥이처럼 똑 닮아있었다.

 사람들이 호수 가까이로 다가오자 검은 옷을 입은 수호자들이 그들을 주시했다. 선유가 말했다.

 "자, 이번엔 당신 차례네요."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 중 가장 앞에 선 이는 나이든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선유에 말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생기가 돌아왔다.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시작했다.

 "안돼요! 죽고 싶지 않습니다 흐어...!!"

 남자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외치는 말이 절절했다. 뒤에 서 있던 다른 무리 중 몇 명도 갑자기 두려움이 얼굴 위로 드러났다. 약? 션은 축제 초기에 받은 약을 떠올렸다. 진정제 정도로만 확인이 되었는데. 혹시 그 약 말고도 다른 약을 먹였을수도 있을까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선유는 그런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주변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옆에 있던 자에게 눈짓했다. 남자는 무리에게 다가갔고, 선유는 가만히 조망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사람처럼 붙어있던 이 하나가 몸을 돌려 걸어나왔다. 덩치가 있는걸로 보아 남성같았다. 그는 망설임없이 허리춤에서 검은 물체를 들어 울던 남자를 바로 '쏴버렸다.'

 총구 끝에는 소음기도 착실하게 달려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눈물범벅이 된 남자가 털썩 쓰러졌다. 일을 마친 수호자는 아무런 동요없이 허리춤에 다시 총을 집어넣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뒤에 있던 무리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리 옆에 있던 남자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며 다독이든 속삭였다.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몽롱한 상태, 아까보다 더 넋이 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쓰러진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그가 엎어진 자리에서부터 피웅덩이가 생기는 중이었다. 진한 피냄새가 여기까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던져."

 선유의 지시가 떨어졌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호수에 서있던-이번엔 다른 이들이었다- 둘이 다가와 남자를 들어올렸다. 집어던질거라는 예상과 달리 조심스럽게 남자의 다리부터 호수에 천천히 잠기게 만들었다. 눈이 와서 살얼은 호수는 남자를 차분히 집어삼켰다. 눈이 감긴 남자의 머리끝까지 호수아래로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척 빨랐다. 할 일을 마친 심복들은 핏물이 섞인 호수를 잠시 바라볼 겨를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대신에 그 작업은 다른 이가 맡았다. 긴 막대를 가지고 있는 수호자가 재빠르게 물을 저었다. 순식간에 호수는 언제 그랬냐는듯 고요해졌다.

 모두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수행동작이었다. 능수능란했고, 지적할만한 일 하나 없었다. 그들이 방금 살인을 저지르고 그 시체까지 아예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빼고는.

 그 뒤로는 일처리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몇 명이 무리 앞에서 향을 피웠다. 매캐한 향이 피냄새를 덮었다. 연기가 너울너울 올라가는 광경은 템포가 미묘하게 틀어져있어 시선이 갔다.

 그에 맞춰 무슨 약을 먹은건지 눈이 흐린 사람들이 선유에 말에 순순히 제 발로 차가운 얼음 호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따금 첫번째 남자가 죽은 흔적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듯, 차분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들은 저항하는 방법조차 잊은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던 상관없이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려상..!"

 제시가 작게 소리질렀다. 재희의 시선이 무리로 향했다.

 덩치 큰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느라 보기 힘들었지만 려상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얼굴을 푹 숙인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제길!"

 옆에서 재희가 욕을 짓씹었다. 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호통하는 것 같았다.

 려상의 차례가 되었다.

 제시가 뛰쳐나가는 순간 션이 그녀를 잽싸게 잡아 안았다. 꺅, 나오려던 비명이 그의 손아귀에 먹혔다. 이러면 정말 납치하는 사람같잖아. 작은 아이가 제 품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감각은, 그럼에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불쾌했다.

 려상은 물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호수의 품으로 돌아가라' 여러번 말하는 입모양새를 보고 알았다. 호수의 품? 의문을 생각해보려는 찰나 그가 물 아래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손가가 축축해졌다. 저항이 거세진 제시가 발버둥쳤다. 안돼! 안돼!!! 채 말이 되지 못한 말이 처절하게 들렸다. 그 사이 려상의 목까지 물이 찼다.

 조금만 더. 아직은 아니야.

 순간 손가락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힘이 풀리고 본능적으로 밀쳤다. 제시가 입을 막고 있던 션의 손을 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손가락과 손바닥을 잇는 경계선에 살점이 덜렁거렸다. 피가 나는 손을 망연자실하게 보는 찰나 제시가 호수로 뛰쳐나갔다. 앗차, 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작은 뒤통수가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재희가 움직였다.

 그녀는 등허리에서 총을 꺼내 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손을 쭉 뻗어 총구를 겨눴다.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0.1초단위로 션의 눈앞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재희는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멀어지던 제시가 앞으로 픽 고꾸라졌다.

 "..."

 소음기를 장착하지 못한 총소리는 호수로 울려퍼졌다. 그러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호수 바로 앞까지 간 제시가 바닥에 쓰러졌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몰리는 건 당연했다.

 바닥에 쓰러진 제시 다음으로 시선이 모인건 이쪽이었다.

 "재희..?"

 선유가 재희를 불렀다. 그녀는 션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부르는 선유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 그 눈동자에 실린 감정이 어떤건지, 션은 알지 못했다.

 재희가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손으로 헤치고 바깥으로 나섰다. 완전히 맨몸으로 사지에 발을 디뎠다. 션도 덩달아 재희를 따라나섰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재희만 그곳에 가게끔 할 수 있을까. 재희가 제시를 쏘고, 악의 최정점에 다가가며, 실제 그녀의 마음 내부가 그렇게 물들었다 할지언정.

 "한 명 더 있었네."

 입꼬리를 쓱 올려 자신을 쳐다보는 선유는 지금껏 션이 알고 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연기였을까. 어찌보면 당연한 대답이 나올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기 있던 션도 무엇이 연기이고 무엇이 진실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유...아니, 지부장님."

 "재희야 그렇게 부를 것까진 없어. 넌 내 부하직원도 아니고,"

 선유는 재희가 들고있는 총에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얼마 안됐어요."

 "내가 여기서 널 호수의 품으로 돌려보내야하니."

 "아닙니다."

 그러면? 이라는 눈빛으로 그녀가 쳐다봤다. 재희는 알수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뜸을 들였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재희가 입을 열었다.

 "교환이죠."

 그 말을 듣는데, 제시가 물어뜯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어슷한 방향에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아이의 잔상이 보기 힘들었다. 재희의 발포실력은 아직 엉망인데... 션은 잠시 주춤했다. 천천히 바라본 아이의 등에는 약간의 핏자국이 있었지만, 치사량의 피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까 전 호수에 들어간 중년남자의 피가 아직도 바닥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릇 총을 맞은 자는, 괴로워하는게 아니라 즉사할 정도면 저정도 피는 흘리는게 이론상 맞았다.

 한가지 가설이 션의 머릿속을 스쳤다.

 '미안해요.' 방금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여기있는 모든 사람을 인질이라고 표현한다면, 우스운 일이네요. 아무도 이들을 추억하거나 애도하지 않을텐데."

 재희가 말했다.

 아마도 제시를 보고있었을 려상이 그녀를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힘이 풀렸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당신 방식은 아주 직관적이지만, 당시의 화려한 불빛 이후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예요."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건가?"

 "아니요. 잘하고 계십니다. 다만,"

 재희가 션을 잠시 시선을 두었다. 션은 그게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느꼈다.

 "테이크를 잡으려면 이정도로는 안되겠지요."

 "그놈들은 통신으로는 말귀를 못알아듣는 모양이야. 그런점에서 우리 얘기가 필요하잖아요, 션. 안그런가요?"

 선유가 돌연 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모든걸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김주원은 우리가 데리고 있어."

 "!"

 "너네 상부에 보고해. 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서, 계약 이행하라고."

 선유가 날카로운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여기서 부인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상부와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리가."

 선유는 조소했다. 션은 고개를 내저었다.

 "주원 하나 때문에, TAKE.B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션은 말을 하면서 잇몸을 깨물었다. 여기서 주원이 어떻게 되더라도, 계획은 계획대로 이행될 것이다. 잡힌게 션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재희가 입을 열었다.

 "교환,"

 "?"

 "안하실건가요."

 다시금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분명 재희는 선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무엇을? 선유는 그제야 흥이 동한듯 재희를 다시 쳐다보았다.

 "당신 아들이요."

 선유의 입가가 뒤틀렸다.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저에게 이름을 주시면서 그랬잖아요. 아들 다음에 딸을 낳으면 지으려던 이름이 '재희'였다면서."

 "...."

 "그 아들이 죽지 않았다면..“

 재희가 뜸을 들이는 동안 선유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티내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눈에 띄게 동요하는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

 "저와 거래해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헛소리 하지마."

 선유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아들은 죽었어. 28년 전. 분명히...”

 “직접 본 건 아니었을텐데요.”

 “..!”

 재희가 짧게 숨을 후, 하고 쉬었다.

 “당신은 아들의 시신을 직접보지 않았습니다. 화재였죠. 치아로 확인한 시신은 훼손되어 보호자에게 보여주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타다 만 일기장과 메신저의 비관적인 내용. 유서도 있을거라 추정은 했지만 화재로 알 수 없었겠죠. 장례식도 무사히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은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 세상을 저주하겠다고. 철저히 등을 지고, 그 등이 있다면 칼을 꽃으며 살아가겠다고.”

 "이게 무슨.."

 "저와 거래하시죠. 테이크의 김주원을 여기있는 션 필렌에게 넘기세요. 올해는 여기서 그만하시죠. 그러면 제가 당신 아들이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겨우 네 혀놀림에 나보고 이번 기회를 놓치라는건가?!"

 재희의 제안에 헛웃음을 친 선유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재희는 그 특유의 미동없는 표정으로 덤덤히 선유를 바라볼 뿐이었다. 재희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초조해보이는건 재희가 아니라 선유였다. 션은 행여나 '검은 수호자'들 중 하나가 재희를 쏘기라도 할까봐 감각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게 '누구'든, 션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인솔자."

 "네, 지부장님."

 "하던 일 마저 하세요."

 "네."

 재희의 미간이 약간 좁아졌다. 선유는 재희의 말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차례는 려상이었다. 허망하게 눈만 깜빡이던 려상이 힘없이 끌려나왔다. 그 눈에서 눈물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재희는 려상이 있는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다만, 다시 크게 외쳤을 뿐이다.

 “조항 1. FAKE, 각주 섀도우 그룹은 TAKE.B에 영업매출 20퍼센트 및 연간 천 명 단위의 인력공급을 보장한다.”

 “뭐..?”

 “조항 2. TAKE.B는 섀도우그룹을 내부적으로 FAKE로 지칭한다. TAKE.B는 위 조항1의 대가로 FAKE의 거처 및 수용규모를 확보하고, 연 매출 1천억 상당 (일정 크기) 수익구조가 잡힐때까지 형사처벌을 면할수 있도록 보장한다.”

 “너 지금 무슨...”

 “더 줄줄이 읊어볼까요? 이미 머릿속에 다 외우고 있거든요.”

 "너..!"

 재희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제 말을 들어볼 생각이 생기셨나요."

 섀도우그룹.

 그 이름은 들어본적이 있었다. 아주 찰나의 기억 속에서였다. 션의 아버지가 어딘가로 통화를 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통화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어릴적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거라고, 내심 우쭐했었다.

 몰래 들었고, 자세한 내용은 어린 션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발음이 마음에 들어서 중얼거렸다. 히와 같이 그걸 숨바꼭질 비슷한 놀이로 바꾸어 놀았다. 언제 한번 들킨 후 크게 혼이 나 못했지만.

 아버지도 FAKE의 간부급이었을까. 혹시 모르지, FAKE가 아닌 TAKE였을지도.

 나를 둘러싼 세계는 항상 무너진다. 거짓이 넘친다.

 "너도 보통이 아니구나."

 선유의 눈동자가 호기롭게 빛났다. 저 얼굴을 어디선가 본것만 같다.

 "내 아들이 살아있다는 증거도 물론 가지고 있겠지?"

 "네."

 선유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들어는 보지.”

 그녀가 웃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저녀석은 호수로 돌려보낸 후에 말이야.”

 선유가 눈짓하자, 아까 전 총을 들고 있던 자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려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가 뒤를 돌며 애처롭게 션과 재희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말하고있는것 같았다. 당신이 하란대로 해서 이렇게 됐잖아.

 정말 이게 최선이야? 머릿속에 징징징 드릴 같기도 하고, 종 같기도 한 것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제시를 보았다. 려상의 눈이 놀라움으로 조금 커졌다.

 “안,”

 “안돼—-!”

 풍덩—.

 발이 미끄러지면서 려상이 호수에 빠졌다.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어디선가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렸고, 튀어나온 작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호수로 뛰어들었다.

 민수였다.

 션 앞을 지나가던 찰나, 민수의 얼굴은 션을 꾸짖는듯 했다. 거리라면 션이 훨씬 가까웠다. 려상을 구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전에 다른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테이크가 만들어놓은 체스판에서 션이 맡은 역할은 누군가를 구하는게 아니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이거 놔요!”

 재희가 얼굴을 찌푸리며 션을 뿌리치려 했다. 션은 재희를 막아서고 선유 앞에 섰다. 그녀의 손목을 꽉 쥐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10초.”

 “?!”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할 수밖에 없었다. 션은 마음속으로 시간을 쟀다.

 10,9,8,7,6..

 초단위의 시간이 이토록 길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5,4,3,2..

 "제시 데리고 빨리 가."

 ....1.

 "지금..!!"

 션은 손가락을 모아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윙윙거리는 소리는 필시 반가운 징조였다. 어느순간 하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두 날개를 활짝 편 릭이었다. 호수를 한바퀴 빠르게 돈 그가 사람들 근처로 다가왔다. 선유는 혼비백산하며 피했다.

 "악, 저거 뭐야! 치워 치우라고!!"

 선유 옆에 있던 남자도 쩔쩔매고 있었다. 고개를 수그린 두 사람을 재희가 아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는 릭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가만히 서있던 검은 수호자들의 상황은 좀 달랐다. 몇은 그대로 부동자세를 유지했지만 릭이 나타난 순간, 적어도 반수 정도 되는 자들이 하늘로 시선을 향했다. 그럴수밖에. 새가 한바퀴를 다 도는 때, 프로젝트 마무리를 해야했으니까.

 쿵-----!!

 호수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인적이 없는 가장자리였다.

 그리고 수호자들이 망설임없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하늘을 향한 시선을 거든 자들이었다.

 그들과 목적은 달랐지만 션도 마찬가지였다. 재희가 소리를 질렀다. 재희도 소리를 지르네.. 션은 잠시 탄식했다. 이내 차가운 물이 온몸에 들러붙었다. 10초도 길었다. 이 호수 안에서 션은 해야할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어쩐지 재희가 자꾸만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돼요"

 손이 벌게질 정도로 꽉 잡고 있던 손목이 느슨해졌을때 이미 불길함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의 휘파람소리. 독수리같이 커다란 새. 갑자기 뛰어든 인간들...

 "안돼.. 안돼! 션, 도련님!!! 션...!!"

 지금까지의 태도가 무정할정도로 션은 재희를 쳐다보지 않았고, 망설임 없이 호수로 몸을 던졌다. 정작 재희가 뛰어들려고 했을 때는 막아놓고 말이다.

 호수를 바라보는 사이 선유가 다짜고짜 공격했다. 재희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가발이 벗겨졌고, 선유가 주춤하는 사이 재희는 망설임없이 그녀의 허벅다리를 만년필 뒤 나이프로 찔렀다. 연거비푸 두 번이었다.

 "악!!"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재희를 향했다. 그녀는 옷을 털고 일어나 말했다.

 "자업자득입니다."

 선유는 지금 벌어진 사건에 재희가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오류를 정정해줄 필요는 없었다. 재희는 선유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강한 이질감. 호수의 물이 방금전보다 줄었다. 호수에 이미 들어가있는 이가 열명은 넘었다. 션은 민수와 려상을 찾아내 나올 것이다. 그리 굳세게 믿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었다. 자신은 여기 남아있어야 했다.

 "너 내가 죽여 버릴거야!! 인솔자!! 뭐하는 거야?!"

 "아니, 그, 그게..!"

 개미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인솔자는 대답하다 말았다. 그의 머리에 레시가 총구를 드리운채 서 있었다.

 선유가 레시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레시 이 년!"

 "아줌마도 갈때까지 갔네. 내가 김주원은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레시의 시선이 재희에게 와닿았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가 싶었지만 바로 눈길을 피한다. 레시는 여지껏, 재희를 노려본 적은 있어도 피한적은 없었다.

 "겨우 남자 때문에 나를 배신해?"

 "배신? 말은 똑바로 하시지? 당신이랑 나 사이에 그런 신뢰관계 라는게 있었나?"

 "이것들이 쌍으로!"

 선유가 소리치자 레시는 총구를 지긋이 남자의 관자놀이에 눌렀다.

 "으아악! 지부장님!!!"

 남자가 벌벌떨면서 말했다. 선유는 그런 남자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놈 인질로 잡아봤자 내가 눈도 꿈쩍안한다는 거 몰라?"

 이제 남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알아."

 "근데?"

 "그래도. 둘이 지시하지 않으면 수호자들은 움직이지 않잖아. 그따위 월권이, 당신 목숨줄을 잡아당기는 거야."

 "버러지같은 것."

 "나야 원래 버러지지. 당신처럼."

 제시가 입을 움직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재희는 입모양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안

 그녀가 사과하고 있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으로.

 "우리가 발담그고 있는 섀도우그룹. 그냥 있는 그대로 당당하지 못한 조직이야.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왔어."

 말은 선유한테 하는 것 같으면서도, 레시의 시선은 재희를 살폈다.

 "이제 끝을 볼 때가 되지 않았나."

 그때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얕게 시작된 울림은 점점 크기를 더해갔다. 지진같은 원초적 울림이 아니었다. 뭔가가 가까이 오고있다는 동물적 감각이었다.

 "아..."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하늘로 고개를 든 선유가 결국 탄식했다. 안 돼...안 돼...!

 헬기가 등장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바람이 마구 치솟아 나뭇가지는 풀잎 대신 눈을 마구 흩날렸다. 어느새 눈이 그쳐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눈이 내리는 광경처럼 보였다.

 헬기의 한쪽 문은 반쯤 열려있었고, 거기로 빼꼼히 튀어나온 남자는 어깨에 커다란 카메라를 짊어진 채였다. 명백히 이 호수를, 이 광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노골적인 앵글이 과연 실시간으로 나가고 있는지, 그저 영상을 담는 수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마을을 담으려는 의지는 분명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자라면 말이다.

 재희는 상공 십수미터 위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칠뻔 했다. 그녀의 시야를 커다란 새가 가렸다. 강한 날갯짓에 몸이 밀려났다. 잠깐 주춤한 사이 누군가 팔을 잡아당겼다.

 "재희 언니!"

 제시였다. 일부러 터지게 만든 가짜 피가 그녀의 옷에 여전히 묻어있었다. 피비린내. 역할 것이 분명한데도 제시는 되려 재희를 걱정하는 얼굴이다.

 '내가 제시를 쏠거야.'

 그 말에 민수는 당황했고, 재희는 빠르게 설명했다. 자세한 사항을 얘기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민수는 조금 혼란스러운듯 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를 믿으면 된다는거잖아요.'

 '아니 그렇다기보단..'

 '제가 믿는 방향이예요 그게. 션이 알려줬거든요.'

 믿는 방향. 언제 션은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걸까.

 카메라는 호수는 이제 호수에 방향을 집중했다. 물은 벌써 3분의 2이상 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으어어어.!! 안돼에...!!"

 짐승처럼 내짖는 울음이었다. 선유는 호수를 바라보며 허망하게 손을 뻗었다. 그 소리는 그녀가 최후에 버티던 뭔가를 끊어냈다는걸 알게 했다.

 속도를 더한 호수는 빠르게 물을 빼내갔다. 쿨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지 않아도 카메라 줌이 확대되는걸 느낄 수 있었다.

 무수한 뼈. 아마도 사람들이었을, 그리고 방금 전 물에 빠진 이들 몇까지. 모두가 발목에 묵직한 족쇄를 차고 그곳에 잠들어있었다.

 하늘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내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현재 그 자리에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움직이신 분은 현 상황에 책임이 있는걸로 간주, 형사상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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