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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이름부터 완벽한 평범의 길을 걷던 김지혜, 빙의조차 평범한 백작영애에게 했다?
특징조차 없는 주근깨투성이 이 영애는 도대체 누군데요?
남들은 빙의하면 악녀도 되고, 부자도 되고, 성녀도 된다는데 나는 여기서도 흔한 사람 1 역할을 맡고 있다.

빙의한 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돈 많은 난봉꾼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풀리는 빙의의 실마리들.
난봉꾼은커녕 세상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미남 2명을 모두 꼬셔야 한다?!

썸의 여신, 베스의 훌륭한 조언은 어려워서 성질대로 했더니.

"사업에 관련된 계약만 해야하나요?
제 영혼이나 당신의 지능과 같은 것과는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나요?"

나사가 풀린 마법사와,

"다, 다음에 한 번 가가같,이 한 번 가보는게 어떨지 네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편이었어."

생각보다 더 쑥맥인 검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해야하는 빙의녀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거사 좀 치뤄보자 우리?
응? 100년을 기다렸잖아?"

빌런이 100년간 계획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온의 이야기.


#동생바보 #딸바보 #평범 #빙의 #멸망 #먼치킨 #흔녀의_2회차_삶 #힐링

 
21
작성일 : 22-01-28 23:01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7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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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셀, 여기가 아파?

 뭐가 그렇게 슬퍼."

 

 맞잡은 손 위로 또륵, 키셀의 눈물이 떨어졌다.

 좀처럼 보여주는 적이 없는 키셀의 본 모습은 울보다.

 

 "또 울어?"

 "하하. 그러게."

 "키셀, 네 마력이 너무 아프고 슬프게 느껴져."

 "그만, 제발.

 엘리온.

 잠시만, 아직."

 

 울어도 항상 예쁘게 울던 키셀은 오늘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어디 하나가 무너질 것 같이 울고 있었다.

 내 가슴도 쥐어짜듯 고통스러워 왔다.

 그의 마력도 슬프게 진동하고 있었다.

 차라리 독설을 내뱉고, 비꼬고, 상처입히지 왜 혼자 저렇게 아파하는 걸까.

 바보같이.

 왜 키셀은 저렇게 다정하고 마음이 약한 건지 화가 났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왜 저렇게 아파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것도 화가 났다.

 그가 내게서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는 것도 약간은 화가 났다.

 

 그제야 나도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울지마, 키셀.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

 하지만 키셀.

 네가 울면 내 마음도 찢어지게 아파.

 나는, 너와 하고픈 말이 많아.

 하고픈 것도 많아.

 그런데...... 너에 대한 내 마음이 정확히 어떤 농도인지 잘 모르겠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

 

 네 말이 맞아.

 나는 비밀도 많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까서 보여줘.

 아마 세상에서 날 제일 잘 아는 게 너일거야.

 그래서 말인데, 너는 내 마음을 알아?"

 

 입을 열자 수습할 새도 없이 진심이 후두두 떨어져버렸다.

 내 마음과 같은 정제되지 않은 횡설수설이었다.

 하여간,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성격이 급하다.

 예전의 김지혜로 살 때는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을 키셀에게 느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친구로써인지 가족으로써인지 남자로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두려운 걸 수도 있다.

 실은 그런 확률이 높은 것 같았다.

 확실해지기 전엔 아무말도 말자고 다짐했건만, 이렇게 엎질러져 버릴줄이야.

 

 

 "엘리.

 나는. 내 마음은 알아.

 인내심도 강하지.

 걱정하지마.

 어떤 의미로든 네 곁에 있다면 나는 행복할거야."

 

 내 눈을 똑바로 부딪쳐오며 씨익 미소짓는 키셀의 미소에, 내 심장소리가 들렸다.

 키셀은 아파하면서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서 자신의 마음을 곧게 마주한 그는 용감했고, 거침 없었으며, 단호하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저렇게 자신감있게 돌진하는 울보인 남자는 처음봤다.

 

 턱 하고 멈췄던 숨이 다시 쉬어졌다.

 심장이 가쁘게 뛰어대고 있었다.

 그제야 간질거리던 내 발가락과 내 손가락의 감각이 온전히 전해졌다.

 토할 것 같이 꼬이는 뱃 속의 울렁거림도 느껴졌다.

 외면하고 있던 나의 풋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그럼 나도 행복하겠다."

 "...... 웃으니까 정말 예쁘다."

 

 갈무리 못한 내 마음이 신호라도 된 듯, 키셀은 눈웃음을 짓지도 않고 다정한 말들을 했다.

 항상 어색한 듯 따라왔던 그의 눈웃음은 더 이상 없었다.

 내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듯 강인하고 올곧은 눈빛만이 남아있었다.

 눈물에 젖어 청초해보였지만, 그 본질은 단단함이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게 진짜 키셀이구나.

 이 모습이 진짜 키셀이었구나.

 

 누구나 다수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예절과 사교성으로 가장한 다양한 가면을 학습하게 된다.

 그것은 어느 인간세계에서나 변하지 않는 진리였고,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을 본 것은 여기 이 자리가 처음이었다.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한겹이라도 더 껴입는 세상에서, 키셀이 모두 내려놓고 내게 다가온 것이다.

 바보.

 

 "더 생각해도 돼, 엘리.

 어차피 난 여기 있어."

 

 조용히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는 마저 말을 이었다.

 

 "엘리, 네게 축하할 일이 생겼다며.

 축하해.

 그리고 배후를 찾아내는 건 더 기다려줘.

 확실치 않은 위험한 일이라.

 그리고 아까 네가 말했던 무도회는...... 나랑 가."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숨을 들이키는 키셀이 귀여웠다.

 잘 몰랐던 그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수록, 나만 알고 싶은 모습들이 나왔다.

 

 "그래."

 

 나의 기쁜 마음과, 그를 귀히 여기는 마음을 담아 그에게 활짝 웃으며 답했다.

 햇빛이 들이쳐 그림자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처음으로 입을 맞춰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볕이 미끄럼틀 타듯 매끄럽게 내려오는 그의 콧날도 한 번 따라 만져보고 싶기도 했다.

 나를 내려보던 그의 눈빛이 기쁨으로 차오를 때, 나도 벅찬 기쁨을 함께 느꼈다.

 작은 균열이 생겨버린 마음 사이로 진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가 돌아가고 한동안 두근거려서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났고, 가만이 있지 못할 정도로 설레었다.

 카엘과 놀아주면서도 어딘가 핀트가 하나 나가 있었고, 가까스로 잠자리에 들어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키셀이 했던 말들과 행동을 다시 한번 되돌려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이게 다 내 오해는 아닐지 겁이 났다.

 생각해보면 좋아한다, 거나 사랑한다, 라고 한 건 아니니까.

 같은 말들을 뉘앙스와 표정을 바꿔서 재생해보았다.

 말이 되는거 같았다.

 진한 우정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뒤척이며 죄없는 양만 주구장창 세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안나가 깨우지 않아도 눈이 번쩍 뜨였다.

 깊어진 여름의 새벽이 이렇게나 상쾌했다니!

 발코니로 나가 이제 막 비쳐드는 햇살을 즐기려 눈을 감았을 때였다.

 

 "아가씨, 훈련가셔야죠!"

 

 ...... 징글징글한 놈들.

 눈물을 머금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미 몸을 풀고 있는 기사단의 눈빛에서 호기심을 느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눈빛에서 호기심이 지워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이 지옥불에 담궜다가 꺼내지길 반복하고 있는데, 호기심따위가 대수랴.

 나도 마력에 대한 반응도가 높아졌을 뿐, 신체 능력은 그대로였기에 이를 악물고 훈련을 완수했다.

 대련이 훈련보다 더 쉬울 정도였다.

 대련을 반복할수록 이를 악물고 훈련에 매진하게 됐다.

 홈크단장이 강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만 했었는데, 마력을 보기 시작하니 더욱 놀라웠다.

 마력이 뻔히 보이는데도 빈틈도 찾기 힘들었고, 가끔 보이는 빈틈도 공략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려면 내 신체가 더 강해져야만 했다.

 

 아카데미는 쑥대밭이 되어 잠시 전체적으로 휴학이 결정되었다.

 단단히 화가 난 왕실의 진두지휘로 또 다른 조사가 시작되어 나라 전체가 뒤숭숭해졌다.

 리베론과의 수업도 재개되었다.

 달라진 점은, 리베론이 나를 매우 어색하게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우리의 수업이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스터디에 가까워졌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그의 변명도 듣지 못하고 자버린 내게 화가 났나? 싶었다가, 나는 그래도 괜찮지!로 결론이 난 후론 그냥 나 혼자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꽁했던 마음도 곧 잊혀졌다.

 무엇보다 신체적 능력과 기술만으로도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홈크 단장과 리베론 뿐이어서, 내가 혼자 풀어졌다는 말이 맞으리라.

 대신 쉬는 시간이나 끝나고 리베론과 대화하던 시간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아쉬웠다.

 나름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모두에게 높은 장벽을 하늘까지 쌓아버린, 특유의 분위기 미남으로 돌아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리베론은 저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모두를 애태우는 게 역시 딱이었다.

 

 매일 키셀은 나를 찾아왔다.

 가끔 내가 훈련량이 많거나 일이 많아져서 거를때도 있었지만, 잠깐이라도 방문했다.

 점심 식사 후, 찾아오는 키셀과 티를 마시고 산책을 하는 시간이 일상이 되어갔다.

 사업 진행을 듣기도 하고, 시덥잖은 이야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나누는 날들이 쌓여갔다.

 키셀이 매번 들고 오는 들꽃과 야생화, 독특한 개량화들은 내게 행복을 선물했다.

 꽃으로 내 방이 가득 차기 시작할 때였다.

 

 아카데미에서 내게 두툼한 우편을 보내왔다.

 그 안에는 검술학과로의 전과 신청서와 월반 신청서, 그리고 학장의 서신이 들어있었다.

 '친애하는 엘리온 챔버양'으로 시작하는 서신에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있었다.

 

 눈부신 무술의 성취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검술학과로의 전과를 권유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특수한 경우 신청하는 예외적 월반 신청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가정학과 학생이 무술대회 4강에 올라가고 마물을 때려잡는 그림은 이상하긴 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가정학과의 수업은 흥미를 잃은지 오래였다.

 엄마가 뒷목을 잡을만한 이런 내용은 역시 아빠에게 상담하는게 최고였다.

 나는 바로 아빠의 집무실로 갔다.

 

 "아빠! 안 바쁘세요?"

 "엘리, 네가 먼.저. 웬일이냐?"

 "같이 점심 드실래요?"

 

 약간 가시가 박혀있는 반응에, 그간 소홀하긴 했구나 싶어 머쓱했다.

 동시에 내 아카데미와 무술 얘기에 열광적으로 반응해주는 아빠의 모습에 미안해졌다.

 아빠 역시 어린시절부터 검과 각종 무술을 익혔던 사람이었다.

 빛을 보진 못하고 운동삼아 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무술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부녀의 점심 시간은 무술에 대한 논의로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단장이 네 칭찬이 자자하더구나."

 "엥? 진짜요?

 맨날 구박하고 굴리면서......"

 "단장 성격 알잖니.

 뭐, 대단한 칭찬은 아니고......

 노력도 엄청하고 근성도 끝내주는데, 근력이나 순발력, 기타 등등 신체 능력이 신의 축복이라며......"

 

 세상에.

 제발 밖에서는 저런 팔불출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칭찬은 한 줄 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 한 줄의 길이가 숨이 찰 정도였다.

 아빠의 건강한 심폐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나에 대한 칭찬이 드디어 마무리가 됐다.

 

 "아, 놀랍네요."

 "그래. 특히나 이번에 네가 한 단계 성장한 걸 두고, 대단하다고 어찌나 강조를 하던지......"

 

 '안 돼!!!'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내가 먼저 수치사 할지도 몰랐다.

 

 "운이 좋았죠 뭐.

 저도 이번 성장이 제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재빨리 디펜스를 한 나는 본론을 꺼냈다.

 아카데미에서 온 제안과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의지를 열심히 피력했다.

 여러 사족이 붙었으나 아빠를 설득하며 나도 깨달을 수 있었다.

 멸망이니 견제니 위험이니 뭐니 해도, 무술을 배움과 성취함에 있어 느끼는 나의 기쁨은 순수했다.

 단순히 대의만을 위해서라면 훈련들이 고통스러웠을테지만, 나는 즐거웠다.

 뿌듯했고, 행복했다.

 가끔은 세계 멸망은 잊고 있고 훈련하다가, '아, 맞다!' 하고 생각이 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멸망을 막기 위해 내가 무술의 고수가 된다, 는 것은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다.

 

 나와 아빠 모두를 설득하는 시간이 끝나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아빠는 말없이 음식을 마저 먹었다 .

 나도 약간은 뻘쭘해져서 음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요새 키셀군이 자주 찾아온다더구나."

 "아, 네.

 수업때문에...

 아니 과제때문에 물어볼 게 많아서요."

 

 갑자기 이게 무슨 자다가 키셀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당황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렇게 자주 만났던가, 기억을 더듬기 시작할 때 아빠의 샐쭉한 입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하다!

 

 "정혼자도 있는 녀석이 구설에 오르기 딱 좋은 행동을 하면 어쩌냐."

 "...... 아빠, 실은 그게 아니고요."

 "밖에서 만나는 건 경계하도록 하고.

 키셀군이 또 오거든 내 집무실로 좀 들르라고 해라."

 "아빠 우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뭔지 모르겠으나, 일단 열심히 부정을 했다.

 물론 매우 찔렸다.

 우리 사이엔 그런 게(?)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읍! 할 말이 있으니 너는 모르는 척 해."

 

 다정한 아빠지만, 가끔 저렇게 나올 때는 답이 없었다.

 다른 빙의자들은 예측도 잘하고, 척척 잘 해쳐나가던데!!

 나는 어째서 장애물이 등장할 때마다 당황하고, 걸려 넘어진단 말인가.

 

 걱정만 한 바가지 얻은 채로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키셀을 경계하던 안나도 이제 익숙한 듯 내 매무새를 고쳐주고 있었다.

 안나의 손을 거쳐 내 미모가 15프로 정도 업그레이드 된 시점에 키셀이 방문을 알려왔다.

 

 "응접실로 안내해줘.

 오늘은 아이스티로 가져다 주고."

 

 응접실로 가서 마주한 키셀은 오늘도 눈이 부셨다.

 눈이 멀까봐 가릴까 잠시 고민할 정도였다.

 저렇게 꽃을 기죽일거면 뭐하러 꽃다발을 들고 온걸까.

 

 날 보고 활짝 웃는 키셀은 매일이 달랐다.

 매일 조금 더 부드럽고 말랑해지는게 보일 정도였다.

 예전에 나를 추앙하던 또라이같은 애정과는 살짝 달랐다.

 내 반응과 상관없이 쏟아붓던 격한 존경(?)에서 벗어나, 나와 교류하며 내 감정에 발 맞추고 싶어했다.

 스승님 말고는 관계를 제대로 쌓아본 적이 없는 키셀의 노력이 감사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간과 장소와 맥락에 상관없이 쏟아지던 애정공세가 꽃다발로 압축됐다는 것?

 어째서인지 밀당을 이제 와서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원래도 나쁜 남자에게 환장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설레고 좋았다.

 

 "엘리, 오늘은 화사한 날이라 활짝 핀 들꽃을 찾아왔어.

 청초하지만 화려한게 꼭 너 같더라."

 "매일 고마워.

 아침마다 꽃향기에 압사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과 함께 일어나는 느낌이 끝내줘."

 "앗, 가져오지 말까?"

 

 실은 정말 이제 그만 가져와도 된다고 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저렇게 시무룩해지면 나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시각에 약한 여자여!!

 

 "그럼 앞으로는 사흘에 한 번만.

 어때?"

 "노력해볼게.

 향기를 없애는 마법을....."

 

 가끔 저렇게 비뚤어진 방향으로 튀는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눈치를 주자 곧 키셀이 방음막을 만들었다.

 주위에 사용인들이 많아 사업 얘기를 할 때는 필수였다.

 

 "그나저나 우리의 이벤트는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어?

 생산라인을 추가해야 하는 거라 보통 일이 아닐텐데."

 "대량생산에 돌입한 건 아니라 아예 새로 라인을 만들었어.

 이제 슬슬 반응이 오는 단계라서 여유가 있어."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 자꾸 성공적으로 일하면 내가 악덕업주가 될지도 몰라."

 "그러지 않을 거라면 기한이 없는 계약서에 싸인을 하지 마셨어야죠. 사장님."

 "그 멘트는 보통 사장이 괴롭힐 때 하는 말 아니야? 푸흐흐.

 귀족가 앰블럼 넣어서 뿌리는 건 어떻게 됐어?"

 "엘리, 저택에만 있어서 모르는구나?

 반응이 엄청나.

 사용인들의 신분증 용도까지 됐어.

 외출할 때도 입고 다닐 정도야.

 카피하려는 업체도 있었는데, 단가를 낮추면 가짜 티가 심하게 나서 모조리 실패지 뭐."

 "벌써 카피까지 등장했어?"

 

 돈 냄새가 솔솔 났다.

 자고로 카피가 등장하면 대박의 조짐이지 않은가.

 

 "응. 백날 시도해도 우리처럼 짱짱하게 만들고 금실까지 쓰는 걸 수작업으로 하려면 집 한 채 값이라 안 될거야.

 사용인들끼리도 자주 빨아도 잘 뜯기거나 헤지지 않는다고 서로 공유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고.

 우리가 뿌리지 않은 다른 귀족가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어."

 "그래 이거지.

 짜릿해.

 오픈 날짜와 장소는?"

 

 째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키셀 앞에서 악당웃음을 짓고 있었다.

 

 "곧 준비가 완료될거야.

 귀족가에서 현금으로 줄테니 본인들부터 공급해달라고 해서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버틸 여력이 되거든.

 일단 장부정리 교육부터 하고 있어.

 다들 이해하기 힘들어하네.

 왜 같은 금액을 양쪽에 적느냐고."

 "괜찮아.

 일단 하라고 해.

 나중에 정산할 때 그 빛을 발하게 될테니."

 "네. 사장님."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낼 뻔한 말을 급하게 삼켰다.

 오늘은 어려운 말을 해야한다.

 

 "키셀. 내가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응.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말해서 아주 잘 알고 있지."

 

 비상비상!

 키셀이 삐딱선의 버튼을 눌렀다.

 

 "내가 뭘 또.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아빠가 너를 보자고 하셔.

 아마 정혼자도 있는 녀석이 매일 남자가 찾아와서 그러시는 것 같아.

 내가 학교 일 때문이라고 말했으니까.

 너도 그렇게 말을 맞추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아마 날 구해준 일도 있고, 심하게 뭐라고 하시진 않을테니."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말이 길어졌다.

 키셀은 무얼 생각하는지 말이 없어졌다.

 

 "키셀?"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아빠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니, 왜 말 없이 거길 들어가는데?!?!?!

 불안함에 방을 맴돌던 나는 못 참고 집무실 옆방으로 쫓아들어갔다.

 벽에 바싹 귀를 붙이자 발달한 기감으로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키셀 군은 ... 정혼자가 ... 아는가?"

 "네."

 "정혼자가 있는데 ... ?"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 당연하지 않겠나?"

 "네."

 "엘리가 뭐라하든 ... 나의 말 ... 기억하게.

 그리고 오늘 대화는 ... 모르게 ... 엘리를 위해."

 "네. 한가지 ... 됩니까?"

 "뭔가?"

 "플렝 ...... 말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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