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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9. 모든 시작이 그 여인이었다
작성일 : 22-01-27 13:49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1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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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든 시작이 그 여인이었다.”

 

 유아는 성희의 손발을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순히 궁으로 들어와서는 유유히 산책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고있자니 여간 께름칙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온 후원, 그곳에서 성희와 유아가 만났다. 성희는 유아를 미소로 맞이했다.

 

 “전, 마마를 곁에 두고 손발을 묶어버릴 작정입니다.”

 “그러시게.”

 “어찌 자신만만이십니까?”

 “내가 자네에게 진 빚이 있으니, 이번은 순순히 당해줌세.”

 “그뿐입니까?”

 “주상이나 너나,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순 엉터리들이구나.”

 “예?”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나보다 막아야 하는 것은 홍윤희라고.”

 “난 당신이 더 위험해 보이는데?”

 “멍청하긴.”

 

 성희는 눈앞에 보이는 꽃을 하나 툭 꺾어 연못에 던져버렸다.

 

 “쉽지. 꽃 하나 꺾어 버리는 것쯤이야.”

 

 유아는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하려는 것인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만 쉬는 건 어떻습니까? 그냥, 저랑 화원 산책 동무나 하면서. 저도 이제 지쳐서요.”

 

 성희는 피식 웃었다.

 

 “다 없애버리는 게 꿈이었는데.”

 “여길? 이렇게나 예쁜데?”

 “퍽이나.”

 “어째서 매번 그런 겁니까?”

 “시끄러.”

 

 성희가 앞장서 걸었고, 유아가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없이 자리를 비운 후원엔 단 둘 뿐이었다. 유아의 충신들 모두가 말렸으나, 유아는 성희를 홀로 만났다. 그리고 성희가 앞을, 유아가 뒤를 걸었다. 그러다 성희는 후원의 정자 앞에 멈췄다. 울창한 나무들에 홀로 덩그러니 놓은 정자였다.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해, 후원의 연못에 붉은 빛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겨울이 오려는 것인지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치는군.”

 “그만하겠다. 그 말 한마디면 될 일입니다. 뭐가 걸리는 겁니까? 대체, 목적이 뭡니까?”

 “목적... 그런 게 있던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다고? 이런 무모한 짓들을 해 왔다고?”

 

 성희는 정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다들 궐에 들어오고 싶어 난리더군. 높은 담장에 푸른 기와에, 수십 수백의 눈과 귀가 넘쳐나는 여긴, 감옥이야. 아주 큰 감옥. 난 여기 납치됐거든.”

 “누가 납치를 했다 그러십니까?”

 “홍윤희.”

 

 단호한 대답이었다. 또한 예상했던 답이였다. 피해망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답변이었다.

 

 ***

 

 “쿨럭! 쿨럭!”

 “전하!”

 

 봉수는 깜짝 놀라 성에게 다가갔다. 규장각 책상에 앉아 있던 성이 기침을 오래 하는 것 같더니, 결국 각혈을 하고 만 것이었다. 핏덩이가 흰 종이 위에 튀어버렸다. 성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봉수는 급히 다가가 종이를 구겨 자신의 옷소매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혹여 누가 볼까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굴은 매우 상기된 채로. 성은 그런 봉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애쓰지 마.”

 “전하. 괜찮습니다. 페데르가 명현효과가 있다 하였으니, 그 증상일 것이옵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네. 꺼내 봐봐. 기억이 나지 않으니.”

 “아, 예...”

 

 봉수는 주섬주섬 옷소매를 뒤져 종이를 꺼냈다. 피 떡이 된 종이를 펼치니, 이미 글이 많이 번져있었다. 성은 덤덤하게 그 글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피가 흥건하게 젖은 종이 그 위로 퍼진 글자가 무엇인지를 상기하며 한 자, 한 자 흰 종이에 써 내려갔다.

 

 “거의 다 써간다. 삼정승 오시라 하고.”

 “예.”

 

 성이 써 내려가는 글은 황금색 왕의 도장이 마지막의 붉은 인장을 찍으며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영의정 채우겸을 비롯한 삼정승이 규장각에 나타났다.

 

 “부르셨나이까?”

 

 성은 황금 비단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렸다.

 

 “내 유언입니다.”

 “전하!”

 “세자의 나이가 아직 어려, 배울 것이 많을 겁니다. 잘 도와주세요.”

 “전하! 거두어주소서.”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 꽤 지치는 일입니다. 공공연하게 공표하는 겁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아요.”

 

 성의 말에 듣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성은 그 얼굴들을 훑어보고는 웃었다.

 

 “나 아직 안 죽었어요. 표정들로 벌써 죽이십니까? 준비 하라는 겁니다. 공백이 없게. 마치 내가 영생하는 듯 느끼도록. 내가 꿈꿨던 나라가 이어지도록 말입니다.”

 

 우겸도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러지요. 그건 제 꿈이기도 하니까요.”

 “고맙습니다, 영상.”

 

 삼정승이 물러나고, 교차해 페데르가 규장각에 나타났다.

 

 “출궁하라.”

 “전하!”

 “해. 출궁. 더는 방법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전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중전마마의 명이기도 합니다.”

 

 성은 봉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봉수는 뒤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 페데르에게 건넸다.

 

 “그것이면, 너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라.”

 “전하. 어찌-”

 “내가 죽으면, 세상이 어찌 변할지 알 수 없다. 널 눈엣가시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당분간 몸을 피해 있으라.”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과인의 명이다. 어명이다.”

 

 페데르는 무릎을 꿇었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전하를 마지막까지 보필하고 죽겠습니다. 그리하게 해 주십시오.”

 “어찌 과인의 말을 거역하려 드는가? 내가 너에게 주는 배려라 하지 않느냐? 너의 벗이 중전인지라, 너의 후견인이 조선 최고 갑부라, 너의 환자가 이 나라 국왕이라 쉽게 보일 수 있다. 허나, 왕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매우 중죄다. 네 목숨을 내어놓아도 죄를 씻을 순 없다. 본디, 그런 죄는 삼족을 멸한다거나, 구족을 멸한다. 그래도?”

 “전 가족이 없습니다. 멸할 삼족도, 구족도 없습니다. 다만, 의원은 환자를 버리고 도망하지 않으며, 자고로 벗이라 함은 그 짐을 함께 지는 것이며, 약속은 천금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이 조선에서.”

 “벗이 꽤 똑똑하긴 한가 보군. 이 양인의 말이 너무 늘었어.”

 

 페데르는 바닥에 엎드렸다.

 

 “가지 않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전하.”

 “추하다. 죽음이란. 내가 왕이라도, 죽는 순간은 추할 것이다. 그대가 나의 죽음을 고귀하게 해 달라.”

 “명심하겠나이다.”

 

 ***

 

 “홍윤희가 날 여기 가둬버렸어. 날기 위해서겠지, 아마?”

 “날기 위해서?”

 

 성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도 예쁘고 고왔어. 니들 사랑처럼.”

 

 때는, 성희의 나이가 일곱이 될 무렵이었다. 어린 성희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금색 수가 놓인 댕기를 한 채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 곳은 담장. 그녀의 시선은 그 너머의 풍경이었다.

 

 “우와~”

 

 성희의 집 거리 앞으로 묘기를 선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있었고, 그 행차를 따라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그때였다.

 

 “야, 거기!”

 

 담장 반대쪽에서 어린 성희를 부르던 십대의 남자아이. 어린 정훈세자였다.

 

 “잘 보여?”

 “응!”

 “나도 같이 봐도 돼?”

 “담장 오를 수 있어?”

 “그럼.”

 “그래!”

 

 성희와 정훈세자의 첫 만남이었다. 정훈세자는 성희와 함께 나란히 장독대를 발판삼아 올라서는 온갖 진귀한 묘기를 재미나게 보았다. 서로의 웃음으로 마음의 문은 이미 열려버렸다.

 

 “내 첫 연정이었다. 일 년에 세 달. 대왕에게 쫓겨나 한 달. 아프단 핑계로 또 한 달. 백성의 삶을 더 배우고 싶단 간청으로 한 달. 그렇게 세 달이었다. 그가 나와 함께 한 시간이. 그에게도 연정이었는가를 묻고 싶겠지. 나도 처음엔 몰랐다. 이것이 좋아하는 마음인가 알아차린 것도 오래 걸렸다. 허나,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해 준 이가 정훈세자다.”

 

 어린 성희는 정훈세자와 함께 운종가를 뛰어놀았다. 계곡도 갔고, 개천도 갔고, 그네도 탔으며, 함께 책도 읽었고, 축제도 함께 즐겼다. 그 사이 성희에겐 여인의 향기가 풍겼고, 정훈세자도 사내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유아가 물었다.

 

 “세자인 것을 몰랐습니까?”

 “몰랐다. 그것에 감사했다. 헌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직접 나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황금 실로 그의 옷에 용이 날아들었다. 푸른, 용포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거든. 다른 여인과 혼례를 하게 되었다 하더구나. 미안하다고. 허나, 데리러 올 테니 염려 말라고. 난 그걸 철썩 같이 믿었다. 해서, 삼간택이 있다 할 때도 난... 그의 후처가 되려나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서야, 죽을 수도 없이 여기 갇혔지만.”

 “그것이 어찌 혜빈의 탓입니까?”

 “홍윤희의 자리는 내 자리가 될 수 있었다. 대왕도 알고, 내 아버지도 알고 있었어. 나와 세자의 관계를. 헌데, 대왕은 내 아버지 대신 홍보함을 택했다. 우리 집안의 세력을 견제한 것이었다. 그래도 후처라도 그 사람의 옆에 있고 싶었는데... 해서 들어온 것인데, 걸려버렸다.”

 “그걸 언제 아셨습니까?”

 “일찍 알았지. 초간택 전부터.”

 “피할 수도 있었잖습니까?”

 

 어린 성희가 방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그때, 성희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눈물을 훔치던 성희가 창문을 열자, 담 너머로 정훈세자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아프다고 해. 죽을병이 걸렸다고 해.”

 “저하...”

 “널,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성희야.”

 

 어린 성희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때 대왕의 나이가 몇인 줄 아느냐? 자그마치 쉰이었다. 헌데, 너무 정정한 거야. 그래서 백성에게 친근한 세자를 경계했다.”

 “혹, 정훈세자를 지키려는 마음도 있었던 겁니까?”

 “너 같은 팔푼이는 그랬겠지만, 난 아니었어.”

 “헌데, 왜 입궐한 겁니까?”

 “내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고 있었다. 내 오라비는 아직 세력을 이끌기엔 부족했고. 해서 시간을 벌 희생양이 필요했다. 더불어 날 간택에 끼워 넣으라 바람을 넣은 이가 홍윤희였다. 제 아비와 작당해 김씨 일가를 볼모로 잡을 기회라고 했다더구나. 하지만 세자의 여인은 오로지 자신 하나여야 했기에, 날 그렇게 늙은 왕에게 보냈다는 걸 안다. 모두의 바람대로 난 입궐했다. 이미 정해진 판이었고, 내가 갈 길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린 성희는 무거운 가채를 쓰고 몇 겹의 혼례복을 입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홀로 방에 앉아 있는 그녀를 몰래 찾아온 이는 정훈세자였다.

 

 “널 어머니라 불러야 해.”

 “...”

 “난 부를 거다.”

 “네.”

 “아바마마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네.”

 “... 미안해.”

 “... 미안해요.”

 

 어린 성희는 다시 홀로 방에 남겨졌다.

 

 “내가 택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삶이 조금은 행복했을까? 덜 불행했으려나.”

 

 새벽. 하늘이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힘겹고 무거운 혼례복을 끌고 성희는 허조대왕의 앞에 앉았다. 그녀의 옷이 하나씩 바닥에 떨어졌다.

 

 “난 그 날 심장을 잃었다.”

 

 성희는 정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홍윤희는 내가 막아주마. 넌, 나를 막아.”

 

 성희는 점차 유아에서 멀어졌다. 유아는 성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인 것 같았다. 저런 쓸쓸한 모습도, 저 여인의 뒷모습 자체를 처음 보는 것이려나 싶었다.

 

 ***

 

 유아는 궁인들과 금군들을 동원해 수라간을 샅샅이 뒤졌다. 대비인 성희는 모든 전각을 불태울 목적이었다. 그리고 기어코 물건들 사이에서 작은 폭탄들과 기름통들과 화약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마마!”

 “마마!”

 “이곳에도 있사옵니다!”

 “발견하였나이다!”

 

 유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분노로 저절로 어금니가 앙 다물어졌다.

 

 “이렇게도 많이? 미친 것인가?”

 

 유아의 앞에는 하나 둘 흉물스런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증좌였다.

 

 “막지 않았으면 큰일 낼 양반일세.”

 

 그때였다. 급히 나인 하나가 유아에게 달려왔다.

 

 “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서둘러 대전으로 가소서.”

 “전하께 무슨 일이 생겼느냐?”

 

 그리고 그 뒤로 곧 숨이 넘어갈 듯, 어린 생각시가 달려왔다.

 

 “중전마마!”

 “네가 어찌...?”

 

 연실이가 키우는 어린 궁녀였다. 급히 뛰어 들어오는 것이 여간 꺼림칙했다.

 

 “잠시...”

 

 유아는 허리를 숙여 어린 궁녀에게 귓속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주위의 모든 소리와 공기가 멈춘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아니, 멈췄으면 했다.

 

 “가자!”

 

 유아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진짜는 따로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리고 유아가 침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은 늦어버렸다.

 

 “전하!”

 “나의... 중전...”

 

 성은 메마른 목소리로, 창백한 얼굴로 유아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유아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눈앞이 눈물로 아른거려 성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눈물만이 주르르 흐를 뿐이었다. 성은 유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당신의 탓이 아니오.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 최선을 다했잖소.”

 “헌데, 이게 뭡니까... 대체 난 뭘 한 겁니까?”

 “가까이 와 주시오.”

 

 유아는 천천히 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 앞에 앉았다. 서로 마주본 부부는 서로의 모습에 아파했다. 유아는 성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 보들보들하고 윤이 나던 얼굴은 다 죽어가는 순간 푸석하고 메말랐다.

 

 “자책 마시오.”

 “살 수 있습니다.”

 “부인...”

 “날 영원히 지키겠다고 했잖아.”

 “지킬 것이오.”

 “어서, 페데르를 불러오라. 모두들 물러가라! 어의도 물러가라! 내가 살릴 것이다.”

 

 유아의 눈빛은 불타올랐다. 반드시 이 남자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로 불탔다. 성은 그런 의지가 안타까웠다. 매우 미안하여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유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벌써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살기 위해 버틴 그였다.

 

 “그저 편히 살아주시오.”

 “싫습니다.”

 “그럼, 괴로워하며 살 것이오?”

 “당신이 살아난다면. 기꺼이.”

 “이미 많은 이에게 시간을 주었다 생각했는데... 당신은 아닌가 보오.”

 

 성은 유아를 보며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다 안다 생각 했음에도. 새롭군. 여전히. 난 그대의 모습이 좋아.”

 “이리 예쁜 여인이 어디 흔합니까.”

 “그렇지. 그대가 퍽 아름답긴 하지.”

 

 유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성은 손가락으로 유아의 볼을 톡 건드렸다. 애써 지은 미소가 서글픈, 참으로 쓰라리고 고통스런 이별의 과정이었다.

 

 “차마 말하지 못할 것 같았으나, 반드시 말해야 함을 이제야 깨닫소.”

 “하지 마세요.”

 “고민도 필요 없겠어.”

 “어찌 이리 마음이 약해지셨습니까?”

 “이래서 다들 죽음 앞에 후회는 소용없다는 거군.”

 

 성은 숨을 더욱 거칠게 몰아쉬었다. 숨이 가빠왔다. 현기증이 났고,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할 말이 더 있었다. 많이 있었다. 부디 조금만 버티자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했다. 여태까지 버텨온 만큼. 딱 그만큼만이라도 버티자. 유아는 성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의 심장이 유아에게 닿았다. 숨을 거칠게 몰아쉴 때마다 유아의 심장엔 칼이 꽂히고 빠져나갔다.

 

 “곧 봄이 올 텐데...”

 

 성과 유아는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때문에 서로의 눈물을 볼 수 없었다. 다행이었다.

 

 “당신은, 삐쳐 나가는 뒷모습도 참 좋소.”

 “당신은 언제나 참 빛납니다. 난 그 모습이 좋았지요. 그래서 제 운명을 당신에게 건 겁니다. 저 사내의 그늘이 되어야지 하고 말입니다.”

 “하... 그랬소?”

 “빛엔 언제나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니까.”

 “그림자가 되기엔 너무 아까운 미몬데.”

 

 성의 웃음은 행복했으나, 재미있었으나, 힘이 없었다.

 

 “혹, 내가 모르는 이야기 없소? 내 지금이라도 듣고 싶은데.”

 “많지요. 너무 많아서, 몇 날 밤을 새야겠지요.”

 “다 들어 보지.”

 “각오하십시오.”

 “누구, 하명인데.”

 

 서로에게 후회하지 않게, 혹여 보고 싶더라도, 꺼내고 곱씹을 추억들과 이야기들을 서둘러 쌓아갔다. 이미 쌓은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쌓고 또 쌓았다. 그렇게라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유아는 모든 것을 새로 쌓아도 힘들지 않았다. 하늘은 이 성이라는 남자를 서둘러 쉬게 해주려 자비를 베푼 것일지 모르나, 유아라는 여자에겐 더 없이 잔인했다.

 

 “그때, ‘사뿐 사뿐’의 의미를 몰라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덕분에 박지원, 홍대용 같은 훌륭한 선비들을 만나 좋긴 했지만. 별 해석 다했습니다.”

 “하하하... 봉수가, 나중에, 그대가 그러고 있다는 걸 말한 후론, 일부러, 흘린 것도 많았지.”

 “일부러? 전하!”

 “하하하하... 당신, 그런 모습이, 참 귀여웠거든.”

 “참으로 못나십니다.”

 

 유아의 심장에 닿았던 성의 심장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아는 더욱 조바심이 났다. 마른침을 어찌나 삼킨 것인지, 눈물을 참으려 어찌나 어금니를 깨문 것인지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페데르가 도착했다.

 

 “마마. 페데르 의원이-”

 “들라! 어서 들라!”

 

 페데르가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유아는 자리에 성을 눕혔다.

 

 “페데르.”

 

 페데르는 그동안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눈빛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듣는 듯 했다. 그리고 성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

 “...”

 “페데르?”

 

 페데르는 성에게서 손을 뗐다. 유아의 동공이 흔들렸고, 성은 그것이 죽음을 위한 선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넌... 너라면, 할 수 있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살려. 살려. 살려내, 제발...”

 “죄송합니다, 마마.”

 “너!...”

 “죄송합니다.”

 “뭐라도 해줘 봐. 할 수 있는 것은 죄다-”

 

 성이 유아의 손을 붙잡았다. 유아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이미 흘린 눈물이 얼굴을 적셨지만, 이번엔 옷깃을 적셨고, 치마를 적셨고, 성의 손등도 적셨다.

 

 “유아야.”

 “당신 없음 살 수 없어...”

 “그런 말, 말라니까.”

 “무서워.”

 “괜찮아.”

 “어떡해...”

 “당신은, 강해.”

 “싫어.”

 “나, 봐.”

 

 유아는 울음소리를 낼 수 없었다. 성은 소리를 내며 울지 못하는 유아가 안쓰러웠다. 성도 무서웠다.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다.

 

 “당신, 어릴 땐 거리가 떠나가라 엉엉 울었는데...”

 

 유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을 보았다. 성은 유아의 손을 꼭 잡았다.

 

 “유아아...”

 “가지 마.”

 “사랑해.”

 “나빠.”

 

 성에게 성큼 죽음이 다가와 버렸다. 앞이 점점 캄캄해졌다. 성은 유아의 손을 서서히 놓았다.

 

 “사랑해...”

 

 성은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페데르가 곁으로 와 생사확인을 했고, 성은 그렇게 죽음과 떠났다.

 

 “안 돼~!!”

 

 유아는 오열했다. 곁의 페데르도 눈물을 흘렸다. 유아의 오열에 처소 밖에 있던 궁인들은 모두 직감했다. 왕이 죽었다. 유아는 궐에 들어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대전에서 들리는 유아의 울음소리에 급히 대전으로 달려오던 연실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아이고!... 이를 어쩐대. 아이고, 우리 아가씨 불쌍해 어쩐대.”

 “전하~!!!”

 

 모든 이들이 슬퍼했다. 유아는 식어가는 성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말라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성의 몸에서 손을 떼 자리에서 일어난 유아의 눈은 혼이 빠진듯 보였다. 연실은 정신을 놓은 유아를 바라보았다.

 

 “마마. 정신 차리세요.”

 “내가 다 죽여줄게. 당신 이렇게 만든 그 놈 년들, 내가 다 죽일게. 잘 봐.”

 “마마!”

 

 연실은 유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보세요. 저 보세요, 마마! 아가씨!”

 

 연실의 외침에 유아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마음 다잡고, 정신 차리세요. 전하를 편히 보내드리고, 왕실을 지켜야죠. 이제 마마 뿐이에요. 누가 세자를 지켜요!”

 

 성이 죽은 이후, 권력의 흐름은 급변할 것이었다. 이제 시간 싸움이었다.

 

 “내가 마무리 해야지. 세자를 데려오라.”

 

 유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눈빛도, 말투도 모든 것에 서리가 꼈다.

 

 “세자는 어디 있느냐?”

 “혜빈의 처소에 계십니다.”

 “아까부터 데려오라지 않았느냐?”

 “혜빈께서 세자저하를 잡고 놓아주지 않으신다 하옵니다.”

 

 유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혜빈의 처소로 향했다. 효심 가득한 성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지어 준 아름다운 처소는 이제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유아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윤희의 처소로 성큼성큼 들어와 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있었다. 유아는 소리쳤다.

 

 “주상전하께서 승하셨나이다! 헌데, 마마께오서는 또 한 생명을 볼모로 잡으십니다.”

 

 ***

 

 대비전. 성희는 성의 부고를 듣자마자 처소를 빠져나와 별궁으로 향했다. 성희의 가마는 그렇게 급히 궐을 빠져나갔다. 성희의 방 책상 위에 서찰 하나만 남겨둔 채였다.

 

 ***

 

 윤희에게 간 유아는 직접 문을 열었다. 쾅 하며 문을 여는 소리에 혜빈의 처소 궁인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첫 번째 문이 열렸다.

 

 “세자는 어서 어미에게 오라.”

 

 유아의 말에 세자가 몸부림 쳤지만, 혜빈은 세자를 꼭 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을 열었다.

 

 “아들을 볼모로 남편을 죽이시더니! 이젠!”

 

 또 하나의 문이 열리고, 드디어 혜빈과 세자의 모습이 보였다.

 

 “손자를 볼모로, 아들을 죽이십니까!”

 

 분노로 충혈이 되어버린 유아의 눈은 어미를 잃은 맹수와 다름없었다.

 

 “세자는 어서 어미에게 오라.”

 “어머니... 할마마마께서...”

 “세자를 놓아주시지요.”

 “그렇게는 못하겠소. 중전.”

 “운검! 세자의 옥체가 위험하지 않느냐! 주군을 구하라! 혜빈의 팔 다리를 잘라버려서라도, 세자를 저 품에서 떼어내라!”

 

 유아의 말에 혜빈이 소리쳤다.

 

 “어찌, 이리 불효막심한! 중전! 그러고도, 이 나라의 국모라 하겠는가!”

 

 혜빈의 말에 유아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신의 아들이, 그리고 나의 지아비가! 그, 효를 행하다 이리 죽음을 맞이했는데. 하찮은 어미 목숨 하나 구하겠다고 손자를 볼모로 잡습니까? 아직도 죄를 모르는 가!”

 “내 목숨을 구하다니?”

 “지옥 굴에서 이 모든 죄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반드시.”

 “중전!”

 “다 벌할 것이다! 나는 다 벌할 것이다! 절대, 역사에 인자한 어미로 남지 마시오. 그리 남기지 않을 생각이니. 어디 한 번, 더 발악해 보시지요.”

 

 궁인들이 재빨리 세자를 혜빈의 품에서 떼어냈다.

 

 “안 돼! 안 돼! 세자! 이리 오시오! 세자!”

 

 세자는 쪼르르 유아의 등 뒤로 가서 숨었다.

 

 “어머니~”

 

 유아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 품으로 낳진 않았으나, 성의 얼굴을 많이 빼닮은 아들이었다.

 

 “세자. 아바마마께서 세자가 많이 보고 싶을 것입니다. 인사 올리세요. 상선은, 세자를 뫼시어라. 그리고 국상을, 준비하라.”

 “예. 중전마마.”

 

 세자는 유아의 품에서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유아의 치맛자락을 잡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는요?”

 “어미는 곧 곁으로 갈 것이다.”

 

 유아의 말에 세자는 유아의 치맛자락을 놓았다. 세자는 봉수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떴고, 유아는 다시 자비가 사라진 얼굴로 혜빈을 마주했다.

 

 “뭐하느냐? 어서 가져오라.”

 

 궁녀가 들고 온 쟁반 위엔 물과 흰 가루가 담긴 종지가 있었다. 쟁반은 곧 혜빈의 앞에 내려졌다.

 

 “원래 주인에게 돌려 드릴 테니, 해결하길 바랍니다.”

 “이게... 어찌...”

 “정훈세자께서 이미 기미하셨으니. 효과는 아시지요?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증인이 있습니다. 국문을 원하면, 버티시던지.”

 

 그 말을 남기고, 유아가 자리를 떴다. 혜빈은 모든 일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혜빈의 처소 밖으로 그녀의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들아! 성이야!”

 

 유아는 금군들에게 일러 혜빈의 처소를 봉쇄해버렸다.

 

 “국상도, 빈전도, 죄인은 참석할 수 없다. 죄인이 죄를 인정하고 행하기 전까지는 처소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알겠느냐?”

 

 별궁 뜰, 아무도 지키지 않는 넓은 뜰에서 성희는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신발을 신지 않아 버선에 피가 물들 정도로 미친 듯이, 한동안을 그랬다.

 

 “홍윤희를 드디어 죽이는 구나! 드디어 죽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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