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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8. 마지막 장의 비밀
작성일 : 22-01-27 13:49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8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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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의 별궁. 구출된 성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별궁의 뒷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성과 수였다. 수의 부축으로 별궁에 들어온 성희는 걸어가는 도중에도 어째서 성이 자신을 구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때, 앞서가던 성의 걸음이 멈췄다. 성희는 점점 기운이 빠졌고, 자신에게 뒤돌아서는 성을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성은 굳은 얼굴로 성희에게 말했다.

 

 “내가 마마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으니, 은혜를 배반으로 갚는 짓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잠자코 계시라고 모셔다 드리는 겁니다. 그저 조용히.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 조용히, 계세요.”

 “... 주상...”

 “역모의 죄는 묻지 않을 겁니다.”

 

 성의 고갯짓에 수는 성희의 팔을 놓았다. 그리고 성과 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봐라...”

 

 성희가 별궁의 허공에 대고 있는 힘껏 외쳤지만,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기운이 쭉 빠진 성희는 그대로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나 처소까지 걸어갔다. 벽을 잡고 잡으며 겨우 도착했지만,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아무도...”

 

 그때, 그녀에게 뻗은 도움의 손길. 성희는 정신이 혼미했다. 앞이 흐릿해 사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대비마마!”

 

 그녀를 부축한 이는 다름 아닌 유아였다.

 

 “방으로 모셔라.”

 

 성희는 유아의 명을 받은 상궁들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혼란스러웠다. 혼탁했고, 몽환인지 망각인지 모를 곳을 떠다녔다. 유아는 성희를 방으로 두고 별궁을 빠져나왔다. 그때, 그녀의 앞을 막은 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냐?”

 

 연실의 호통에도 꿈쩍 않는 사람. 뒷모습을 보아하니, 갓을 쓴 사내였다.

 

 “비켜서지 못하겠느냐?”

 

 사내가 갓 사이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연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전마마.”

 

 가마도 없이 걸어가던 유아는 자신이 쓰고 있던 장옷을 걷었다. 그러자 사내는 유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 홍영목. 중전마마를 뵈옵니다.”

 “간간히 보낸 연통에 잘 지내고 있는 듯하였는데, 이리 보니 반갑군요.”

 “황공하옵니다.”

 “그대가 나에게 이리 예를 다하는 것도 간만이고.”

 “어찌 그러시옵니까.”

 

 농담을 던졌음에도 유아도 영목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전하는 뵈었습니까?”

 “뵙지 못하였습니다.”

 “이왕 이리 본 거, 내 단골집이나 갑시다.”

 “예?”

 “탁주가 당기네.”

 

 그렇게 졸지에 영목과 유아는 좁은 상을 사이에 두고 주막에 앉아 있게 되었다. 영목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유아는 탁주를 가득 따르더니 꿀꺽 꿀꺽 시원하게 들이켰다.

 

 “캬~!”

 

 사발을 탁 내려놓은 유아의 표정은 뿌듯해 보였다. 영목은 그 모습에 피식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탁주는 안 드십니까?”

 “예?”

 “설마, 처음은, 아니겠지요?”

 

 영목은 뜨끔했다.

 

 “이런... 너무 곱게 자라셨네.”

 “아, 아닙니다.”

 

 영목은 사발을 들고 탁주를 벌컥 들이켰다. 유아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발을 내려놓은 영목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맛 없죠?”

 “제가 즐기는 것은 아닌지라...”

 “역시, 아닌가?”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빈궁일 때, 가끔 궐을 나와 여기서 이러고 있던 날이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함께 잔을 기울여 주던 분이 전하셨습니다. 싸우고도 화해하고도, 함께 오는 날이 많았지요. 전하의 환후가 그러시니, 탁주를 마주할 벗이 줄어들어 좀 늘여볼까 했는데...”

 

 그러자 영목은 술병을 들어 자신의 사발에 부었다.

 

 “세상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은 잘 없죠.”

 

 영목은 사발을 들어 올렸다.

 

 “드시지요.”

 

 그리고는 다시 벌컥 들이켰다. 유아는 그런 영목을 쳐다볼 뿐이었다.

 

 “어찌 드시지 않으십니까?”

 

 유아는 사발을 손가락으로 탁탁 쳤다. 그 시선을 따라 가보니 사발이 비어있었다.

 

 “비었거든요?”

 “아!... 송구합니다.”

 

 두 사람의 사발은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주막엔 어느새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성은 간만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두통으로 쉽게 자리에 눕지 못했다.

 

 “전하. 두통이 있으십니까?”

 “응...”

 “페데르를 들라할까요?”

 “퇴궐하지 않았느냐?”

 “세자께서 중궁전에 누워계시옵니다.”

 “아... 세자를 본다는 게. 잘 버티고 있느냐?”

 “예. 의젓하게 버티고 계시옵니다.”

 “그래.”

 

 봉수는 주저했다. 그러나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듣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직접 생각을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애써 추측하고 예상하고 싶지 않았다.

 

 “전하.”

 “응?”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이 전하께서 쓰신 서책을 보았나이다.”

 “그래?”

 

 성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너에게 부탁할 것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다면 계속 가지고 있거라. 누구에게 줘야 할지는 알 것이니.”

 “전하-”

 “봉수야.”

 “예, 전하.”

 “슬프구나. 이 상황이.”

 “어찌하여 그러시옵니까?”

 “모두가 나의 죽음을 안다. 중전도, 너도, 운검도, 페데르도. 내가 믿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헌데, 모두가 그 죽음을 외면한다. 허나, 나는 그 죽음과 마주하려 한다. 막상 그러려니... 조금은, 두렵구나. 너만은 처음부터 그랬듯, 나와 함께 마주해주길 바란다.”

 

 그 말에 봉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애써 어금니를 꾹 다물고 참았으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울어다오. 괜찮으니.”

 “전하!... 흑흑...”

 “그래야, 나도 울 수 있으니...”

 

 성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다.

 

 “헌데, 그 사람이 울 생각을 하니, 그건 도저히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

 

 다음날 아침. 영목은 자신의 집, 방안에서 목이 타 잠에서 깼다. 방 안은 널브러진 이부자리로 전날의 과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음...”

 

 영목은 숙취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그러자 영목의 집 노비가 방으로 들어왔다.

 

 “기침하셨습니까, 영감마님.”

 “물.”

 “읏! 차거!”

 

 영목에게 다가가려던 노비는 바닥에 쏟아진 물을 밟아버렸다. 덕분에 버선이 홀딱 젖었다.

 

 “자리끼를 죄다 엎으셨네요.”

 “그랬느냐?”

 “당최, 누구와 그 시각까지 술을 드셨습니까?”

 “내가 어찌 왔느냐?”

 “어라? 기억도 안 나십니까?”

 “혼자 왔느냐?”

 “예. 대문을 누가 두드리나 했는데, 대문 밖에서 혼자 널브러져 계신 걸 이리 눕혔지요.”

 “그래? 의리는 좀 없으시군.”

 “예?”

 “아니다. 물을 좀 가져오너라.”

 “예.”

 

 영목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물을 기다렸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려 해도, 유아와 술잔을 주고받은 이후가 떠오르지 않았다.

 

 “실수를 한 것은 아니겠지...?”

 

 한편, 중궁전. 여유롭게 해장국을 먹고 아니, 들이키고 있는 유아를 노려보는 연실의 눈빛이 꽤나 매서웠다.

 

 “좋구나.”

 “으이구.”

 “간만의 과음이라...”

 “자랑이십니다. 이 시국에.”

 

 유아는 연실의 눈치를 보았다.

 

 “그 자는 무사히 들어 갔으려나? 너무 버려뒀나?”

 “집 앞까지 던져뒀는데, 누가 그런 사내를 주워갔으려고요.”

 “그렇지?”

 “다 드세요. 다~!”

 “응.”

 

 유아는 연실을 향해 해맑게 웃고는 다시 해장국을 들이키는 데 집중했다.

 

 “세자는?”

 “벌써 아침 수라 드시고, 다시 누워계십니다.”

 “그래? 나 늦잠 잔 건...?”

 “아시지요. 어제 궐이 떠나가라 세자를 부르신 통에.”

 “그랬어?”

 

 유아는 민망한 듯 웃어보였다.

 

 “다 큰 아들도 있는 분이, 이젠 좀. 엉?”

 “간만이잖아.”

 “또 그래보십시오.”

 “알았어.”

 

 연실은 유아를 그렇게 혼내고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야기 할 기회를 보는 것 같아 보였다. 유아가 기분 좋게 해장국을 다 끝냈을 때, 연실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전하께선 어제 대전에서 침소에 드셨다합니다.”

 “돌아오셨다고?”

 “예.”

 

 유아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참으세요.”

 “어?”

 

 ***

 

 ‘짹!... 짹! 짹!...’

 

 오늘따라 요란한 새소리에 잠에서 깬 성희가 눈을 떴다. 주위엔 지켜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자신이 깔지 않은 이부자리가 곱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성희가 누워 있었다. 누가 떠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자리끼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열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성희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긴장했다. 눈을 굴려가며 누구인지를 추측했다. 남자의 발걸음 소리. 여럿이었다. 그리고 발걸음은 곧 성희의 방 앞에 멈춰 섰다. 성희는 이상하리만큼 그 발걸음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왜 그 걸음이 반갑지?’

 

 누군가를 닮은 발걸음. 두려움에도 약간의 기대감은 왜 가지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방문 너머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이 오래토록 기다리던 그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였다.

 

 “주상전하 납시오.”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천천히 다가오는 용포. 성은 굳은 얼굴로 성희의 앞에 서 있었다.

 

 “대비마마.”

 “주상이 여긴 어쩐 일로...?”

 “모셔가려 왔습니다.”

 “나를?”

 “예. 별궁에 사람이 없다하니, 염려가 되어서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본궁으로 가시지요.”

 

 성희는 순간 멍하니 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슴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가슴을 지지는 것 같았다. 성은 비장했다. 주먹이 쥐어져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애써 용포 안으로 숨겼다. 그의 어금니가 곧 부러질 듯 그는 입을 앙 다물었다. 그의 눈은 매서웠다. 그걸 느끼듯 성희는 한참을 멍하니 성을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 마주하다 성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성희가 움직였다.

 

 “전하.”

 

 성의 주먹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별궁에 찬바람이 불어왔다.

 

 “벌써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홀로 옷을 갈아입은 성희가 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그러나 성은 답하지 않았다. 성희가 나오는 것을 보지도 않고 그저 앞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별궁 마당 한 가운데, 그는 말을 세워두었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말 옆에 대기하고 섰다. 성이 먼저 말에 오르자, 모두들 말에 올랐고, 성이 출발하자, 모두가 출발했다. 성희는 아직 가마에 채 오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쳇!”

 

 성희는 대전 상궁들의 도움으로 가마에 올랐다. 성희가 탄 가마는 성의 행렬 뒤를 따랐다.

 

 ***

 

 ‘신은 모르옵니다. 전하의 서책을 다 읽어보지 않았거든요. 읽을 수가 없었나이다. 차마. 그 모든 장을 넘기면, 결국에 신의 곁엔 더는 주군이 아니 계시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전하의 곁에서 두렵지 않은 순간들이 없었사오나, 결국엔 이겨냈나이다. 그것이 충심이라 믿었사옵니다. 헌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글쎄요... 정녕 충심만일까요? 제 아비가 그랬습니다. 내관의 자식은 가슴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어미의 고통보다 아비의 고통을 더 가진 아이라고. 나이를 먹고 나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신은 아직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가지지 못했다 여겼는데 말이지요. 전하. 이제와 말이지만, 참으로 잘 크셨습니다. 잘 버텨주셨습니다. 그리고 잘 참으셨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매일 밤 서책을 넘기며 수많은 두려움을 애써 잘 감내하셨습니다. 전하의 곁에 있어, 좋습니다. 참으로.’

 

 ***

 

 유아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대전 뜰 앞에 서 있었다. 성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인이 뜰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중전마마!”

 “어찌 그래?”

 “대비... 대비께서!...”

 

 그 다음 말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유아는 알고 있었다. 전날 영목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다.

 

 “전하께서 대비를 곁에 두실 겁니다. 자고로 해가 되는 자는 가까이에 두는 법이니까요.”

 

 유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해서, 전하께선 대비전으로 길을 트셨느냐?”

 “예.”

 “가자.”

 

 유아는 대비전으로 걸어갔다. 속으로 화를 내지 말자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면서 걸어갔다.

 

 “세자께서는?”

 “오늘 아침 수라를 드시고 동궁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혜빈께서 동궁전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도, 세자와 마주하는 일은 없어야 해.”

 “예.”

 

 성의 행렬과 유아의 행렬이 마주보게 되었다. 대비전 뜰 중간이었다.

 

 “전하.”

 “중전.”

 

 둘은 더는 어떤 말도 잇지 않았다. 유아의 시선은 뒤를 걸어오고 있는 의기양양한 성희에게로 향했다.

 

 “대비마마.”

 “중전! 오랜만이구려.”

 

 유아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여길 하마터면 오지 못할 뻔 했잖은가.”

 “병세에 차도가 있으시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내가? 그래?”

 

 성희는 유아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세상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비전 계단을 올랐다. 그러다 휙 돌아서는 다시 유아를 보았다.

 

 “시중들 아이들은 빨리 배정해야겠지, 중전?”

 “예.”

 

 성희는 대비전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성은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뒤를 돌아 대비전을 나갔다. 유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마. 따라나서지 않으시옵니까?”

 

 연실이 안달이 나서 물었지만, 유아는 답하지 않았다.

 

 “뭐 하러. 가서 뭐라고 해. 왜 데리고 오셨느냐 따져? 또 싸워? 저 얼굴을 보고?”

 

 유아 또한 뒤돌아 나갔다. 성은 봉수에게 물었다.

 

 “세자는?”

 “중궁전을 나오시어, 금방 동궁전으로 돌아가셨다 하옵니다. 뫼실까요?”

 “그러자꾸나.”

 

 ***

 

 유아가 돌아온 중궁전 앞엔 세 남자가 서 있었다. 영의정 채우겸, 홍영목 그리고 페데르였다.

 

 “세 분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퍽 신선합니다.”

 

 우겸이 부채를 펼쳐들고는 말했다.

 

 “제가 먼저입니다.”

 “싫은데.”

 “법도가 있지요.”

 “새치기 하신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

 

 그러자 페데르가 어깨를 들썩했다. 긍정의 의미였다.

 

 “세분 모두 들어오세요. 독대는 안되겠습니다.”

 

 우겸이 찬바람에 부채를 접고는 말했다.

 

 “같은 주제가 아닐 텐데요.”

 “같을 걸요? 싫으면 말고.”

 

 결국 세 사람 모두가 함께 유아의 앞에 앉았다. 우겸이 가장 가까이에, 그 다음 뒷자리엔 영목이 그 뒤론 페데르가 앉아있었다. 유아는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요?”

 “재미있어서요. 이 나라 법도가.”

 “예?”

 “어쩔 수 없겠네요. 가장 가까운 분의 이야기부터 들어야겠습니다. 말씀하세요.”

 “폭도들은 어찌 처결하십니까?”

 “그걸 제게 물으십니까? 금방 전하를 뵈었는데?”

 “멀쩡, 하십니까?”

 “허면, 제가 본 것은 유령입니까?”

 “그렇군요.”

 “다음.”

 

 그러자 영목이 입을 열었다.

 

 “술은 깨셨습니까?”

 “내가 물어볼 말인데.”

 “저야 뭐...”

 “탁주가 처음인 사람과는 달라서.”

 

 그 말에 우겸이 뒤를 휙 돌아 영목을 보았다.

 

 “자네, 탁주를 처음 먹었나?”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영목을 쳐다보았다.

 

 “그건... 아닌데...”

 “이런~ 쯧쯧... 젊은 사람이 참, 낭만이 없군.”

 

 우겸도 페데르도 고개를 내저었다. 유아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 노력했다.

 

 “다음.”

 

 그러자 페데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출궁해도 되겠습니까? 환자가 많아서.”

 “그래.”

 

 페데르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헌데, 페데르-”

 “예. 알겠습니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늦은 밤 페데르의 유일한 환자는 성이었다.

 

 “자, 민원 끝. 더 할 말 있습니까?”

 

 영목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전하께서 마음을 굳히신 것 같던데. 맞습니까?”

 “내가 할 말이 있군요. 그러고 보니. 앞으로 두 분이 날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대비전에 사람이 들어왔군요?”

 “증좌는 많습니다. 헌데, 쉽게 틀어 쥘 수 있는 양반들이 아니니, 여러분들이 묶어주면 참 좋겠는데.”

 

 우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제가 이제 열리려나 보군요. 저는 찬성입니다.”

 

 우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아니, 그냥 가만히 있어요. 전하께서 부르실 때까지.”

 “허나...”

 “왕실 일족이 나서면, 주저하게 되니까.”

 

 ***

 

 성은 동궁전 문 앞에 섰다. 주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마침내 성이 발을 뗐다. 한 발짝씩 아주 천천히 그는 아들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바마마께서- 어?! 아바마마!”

 “세자?”

 “아바마마!”

 

 세자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버선발로 성에게 달려왔다. 성은 자연스레 달려오는 세자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나는 오래 있어주고 싶었다. 너의 곁에. 내 아버지처럼, 어린 나날을 함께 할 시간들을 허무하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티고 있다. 너의 하루, 하루를 위해.’

 

 “들어가자.”

 

 다정한 부자의 모습이었다. 보는 사람도 뿌듯한 뒷모습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는 참으로 잘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기에, 낮의 태양빛만큼 빛났다.

 

 “몸은 괜찮은 것이냐?”

 “옥체는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건강해보여 다행이구나.”

 “차도가 있나 봅니다.”

 

 그러다 둘 모두 서로를 보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이야기를 듣지도 않는구나.”

 “아버지야 말로, 듣지 않으십니다.”

 “아비가 곁에 없는 동안, 궐 밖 구경을 실컷 했다던데?”

 “예.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오랜 벗도 만났고요.”

 “오랜 벗?”

 “예. 말자라는 이름의 여인입니다.”

 “말자? 오호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구나.”

 “아버지도 아십니까?”

 “그럼! 내가 중전과의 인연이 오래되었으니. 잘 알지.”

 “허면... 두 분은 모두 첫정이신 겁니까?”

 “그렇지. 난 그런데, 네 어미는 글쎄다... 워낙, 뒤따르는 사내가 많아서.”

 

 성의 귀여운 질투에 세자는 웃음이 터졌다.

 

 “질투하시는 거지요?”

 “저~기, 저 놈도 한 패다.”

 

 성이 눈짓을 가리키는 사람은 멀뚱하니 문가에 앉아있던 수였다.

 

 “운검도? 어머니를 연모했느냐?”

 “아닙니다! 저는. 제가 중전마마의 검술 스승일 뿐입니다.”

 

 성은 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

 

 성희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한껏 느껴보고 좋구나.”

 

 그리고는 방을 쭉 둘러보았다.

 

 “아깝긴 해. 다시 지으려면 돈 꽤나 들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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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아낌없이 빼앗는 것 2022 / 1 / 27 174 0 7977   
87 87. 노래가 없어 2022 / 1 / 27 182 0 7182   
86 86. 옥좌를 노리는 여인 2022 / 1 / 27 182 0 6369   
85 85. 너는 어디에 있는가 2022 / 1 / 27 188 0 5311   
84 84. 피 묻은 적삼이여(2) 2022 / 1 / 27 189 0 5514   
83 83. 피 묻은 적삼이여(1) 2022 / 1 / 27 186 0 6858   
82 82. 추락에도 날개는 있다 2022 / 1 / 27 183 0 7682   
81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2022 / 1 / 27 187 0 7442   
80 80. 당신의 그 사람 2022 / 1 / 27 173 0 5712   
79 79. 괘씸죄 2022 / 1 / 27 198 0 8520   
78 78. 적과 아군 그 사이 2022 / 1 / 27 194 0 6977   
77 77. 두 얼굴의 왕 2022 / 1 / 27 189 0 6712   
76 76. 지킴의 무게에 대하여 2022 / 1 / 27 184 0 6566   
75 75. 젊은 날의 슬픔 2022 / 1 / 27 181 0 9694   
74 74.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2022 / 1 / 27 182 0 11072   
73 73. 한 뼘만 더 2022 / 1 / 27 182 0 9327   
72 72. 이별한 그 날 2022 / 1 / 27 175 0 7058   
71 71. 신의 장난인가 2022 / 1 / 27 185 0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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