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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7. 기도
작성일 : 22-01-27 13:48     조회 : 183     추천 : 0     분량 :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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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대전. 늦은 밤 유아는 멍하니 방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마.”

 

 상선은 한참을 돌아다녔는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궐 안에 계시지 않은 듯 하옵니다.”

 “궐을 나가셨다고?”

 “예.”

 “운검은?”

 “함께 사라졌습니다.”

 “영상의 집은?”

 “오지 않으셨다 합니다. 영상께선 며칠 전부터 집에 있지 않으셨다 하고요.”

 

 유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탓이다. 혼자 해결하려 일을 벌인 탓이야.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때, 다리를 절뚝이며 연실이 들어왔다.

 

 “마마. 세자께서...”

 “세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아는 한쪽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연실을 보았다.

 

 “다리는 어찌 그래?”

 “넘어졌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말순이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하를 모시고 있다 합니다.”

 “결국 말순이까지 나서게 했구나.”

 “혜빈께서 백선생 집을 뒤졌다합니다.”

 

 불안해하던 유아는 아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상선은 지금 당장 말을 달려 두소마을로 가세요.”

 “예?”

 “전하를 찾으시거든, 말이 아니라 가마로 입궐하세요.”

 “예. 마마.”

 “김상궁은 세자 모셔와. 말순이도 오라고 하고.”

 “예!”

 

 유아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시간싸움이다. 윤희의 마수에서 세자와 성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의 거짓말을 했다. 덕분에 세자를 곧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고, 대비인 성희를 뒷배로 두던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의 목숨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성이 궐을 떠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유아는 모든 상황을 종료 시켜야 한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흩어지고, 방 안에 다시 유아 홀로 남았다. 유아는 성의 빈 자리를 지켜보았다.

 

 “다 알면서... 다 알았으면서.”

 

 ***

 

 “놓지 못하겠느냐?!”

 

 산 속 어느 폐가 안. 성희는 몸이 포박된 채로 소리쳤다. 그녀의 입 주위는 피를 흘린 자국이 있었다. 성희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폐가밖엔 건장한 사내들 대여섯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거, 시끄럽네.”

 “네, 이노~옴!!!”

 “입에 재갈 물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시는 게 좋소.”

 “천한 것이 어디!!”

 “하... 하는 수 없네. 난 경고 했소.”

 “네 이놈!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느냐?!”

 

 문이 열리고, 사내 셋이 들어왔다. 둘은 버둥거리는 성희의 얼굴과 턱을 잡았다. 강제로 입을 벌리자, 나머지 한 사내가 헝겊에 싼 재갈을 입에 물렸다.

 

 “읍! 으으으!!”

 “이제 좀 조용하네.”

 

 재갈을 물린 사내들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폐가의 문은 잠겨버렸다. 더는 성희의 발버둥이 문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성희는 꼼짝없이 갇혔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

 

 성은 운검인 수와 함께 숙부인 의종대왕의 능 앞에 서 있었다. 동이 틀 무렵의 새벽녘이었다. 시커멓던 하늘이 조금씩 푸르게 변해갔다. 짙던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 성은 의종대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뒤를 따르던 수의 손엔 어느새 긴 족자가 생겼다.

 

 ***

 

 “전하!”

 

 아침. 대전 뜰 앞에는 신료들이 모여들어 읍소 중이었다. 전날 있었던 반란군으로 궐이 어수선해졌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어디선가 숨어있던 대신들은 상황이 마무리 되자 이제야 나타나 왕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전하. 역적들을 참하여 주소서!”

 “전하~! 모습을 보이소서.”

 “신들이 나서서 역적들을 발본색원 하겠나이다!”

 

 하지만 성의 답은 없었다. 대전은 비워져 있었다. 빈 방에 홀로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봉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성이 몰래 쓰고 있던 책을 발견한 것이었다.

 

 “전하...”

 

 그 책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자는 보아라 –이 성-’ 첫 장부터 성은 자신의 아들에게 줄 지침서를 빼곡하게 써 놓았다. 자신이 왕으로써 지켜야 했던 일들부터 신하에게 백성에게 그리고 어머니인 유아에게 또, 부인에게 잘한 것과 잘 하지 못한 것들을 써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당부가 있었다.

 

 ‘너를 잃지 말라. 세상이 칭하는 것에 너를 빗대지 말라. 너는 너다’

 

 봉수는 숨이 꺽꺽 넘어가는 울음을 애써 숨기려 노력했다.

 

 ***

 

 유아는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뒤를 힘겹게 따르는 연실에게 물었다.

 

 “혜빈께선?”

 “곧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추정하건데 한 식경(*30분) 정도 남은 듯합니다.”

 “서둘러!”

 

 유아의 뒤는 항상 장용영의 군대가 따랐다. 그리고 혜빈의 처소에 도착한 유아는 처소를 지키고 있던 지밀상궁과 마주했다.

 

 “중전마마.”

 “어마마마께선 아직 오지 않으셨느냐?”

 “예. 돌아오고 계시다는 전갈을 받았나이다.”

 “그래.”

 

 유아는 마당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지밀상궁은 갸웃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혜빈마마를 기다리시옵니까?”

 “응. 문제가 있느냐?”

 “아니옵니다. 시각이 좀 걸릴 듯하온데... 혹, 안으로-”

 “아니다. 주인 없는 방에 어찌 내가 있겠느냐? 더군다나 어마마마의 방이다.”

 “아, 예. 듣고보니.”

 

 유아는 대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때였다.

 

 ‘쿠당탕!’

 

 처소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유아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리고 소리는 다시 들렸다.

 

 ‘쿠당탕탕!’

 

 유아는 연실을 보았다.

 

 “나만 들리느냐? 이 소리.”

 “아니옵니다. 소인도 들립니다.”

 

 모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소 안.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방 안에 누가 있느냐?”

 

 혜빈의 지밀상궁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 나와 있사옵니다.”

 “헌데, 처소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유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처소를 보았다. 그리고는 뒤에 서 있는 장용영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장용영 군사들 열이 한 번에 후다닥 움직였다.

 

 “열어.”

 

 신호를 주고받은 군사들은 순식간에 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혜빈 처소의 궁녀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그러자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더 시끄럽게 들렸다. 그 소리에 밖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잡아!”

 

 연실은 본능적으로 유아를 감싸 안았다.

 

 “안에 무엇이 있느냐?”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다시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대장이 유아에게 왔다.

 

 “마마.”

 “사람이냐?”

 “짐승인 것 같습니다. 뒷문이 활짝 열린 것으로 보아, 그 틈으로 들어온 듯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더 필요한데...”

 

 유아는 뒤에 서 있던 궁녀들을 바라보았다.

 

 “돕거라.”

 “네!”

 

 궁녀들이 추가로 우르르 들어갔다.

 

 ‘우당탕탕! 쿵쾅!’

 

 “꺄악-!”

 “잡으라니까!”

 “저기다, 옆에!”

 

 온갖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무했다. 큰 소리가 날 때마다 혜빈 처소의 궁녀들은 움찔거렸다. 유아는 계단을 내려와 혜빈의 궁녀들에게 다가갔다.

 

 “처소를 어찌 관리했기에 짐승이 들어와?”

 “그럴 리가...”

 “마마께서 혹여 오시면 놀라실 수도 있고 위험하니, 마중을 나가시게. 해결이 될 때까지 마마께서 이곳에 오게 하시면 안 되네.”

 “예? 하오나...”

 “처소 안은 우리가 정리 할 테니까.”

 

 더불어 연실이 부추겼다.

 

 “어서! 혜빈마마께서 위험하시면 큰일일세.”

 “예...”

 

 그렇게 혜빈 처소의 궁녀들이 모두 윤희의 마중을 나간 사이였다. 유아는 처소 안에 있던 한 궁녀와 눈이 마주쳤고, 유아의 세밀한 끄덕임에 궁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윤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리만큼 빨라졌다. 그리고 유아에게 급히 다가온 어린 나인이 말을 전했다.

 

 “혜빈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예. 어찌할까요?”

 “내가 가마.”

 

 유아는 입구를 향해 걸었다. 때마침 윤희가 마주오고 있었다.

 

 “어마마마.”

 “중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뭐가 들어갔다고요?”

 

 아주 걱정된다는 듯 유아가 답했다.

 

 “산짐승 같다고 합니다. 그보다 처소의 궁녀들 모르게 뒷문이 열려 있었다 하니, 혹여 어제 처소에 계셨다면 큰일이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 침입을 한 것은 아닐지...”

 “문이 열려요?”

 “지밀상궁이 문단속을 했다 합니다. 헌데, 무슨 틈으로 큰 산짐승이 처소로 들어오겠습니까? 잡겠다고 들어갔더니 이미 뒷문이 열려 있었다 합니다.”

 

 윤희는 무언가 불안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처소의 문이 열리고 발버둥치는 어린 노루를 잡고 나오는 장용영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잡았구나.”

 “어린 노루입니다, 중전마마.”

 

 유아와 연실은 기쁜 듯이 노루를 보았다.

 

 “다행입니다, 어마마마.”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리곤 뒤따라 궁녀들도 나왔다.

 

 “너희는 나오지 말고, 처소 정리를 하고 나오렴. 급해서 신을 벗지도 못하고 들어갔잖니.”

 “아! 아닐세.”

 

 이를 윤희가 만류했다.

 

 “내가 알아서 함세.”

 “예? 하오나, 어마마마-”

 “괜찮네. 어린 노루이니 다행이지 않은가.”

 “그러게 말입니다. 이만큼 온 것이, 아마도 인왕산에서 내려온 녀석인가 보구나. 근처에 무사히 돌려보내고.”

 “예! 중전마마.”

 

 어린 노루를 자루에 담은 장용영 군사들이 자리를 떴다.

 

 “허면, 어마마마.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될는지요? 밤이 꽤 기셨을 터인데...”

 “아닙니다. 나야 옆 전각도 있고.”

 “예. 허면, 쉬십시오. 신첩은 물러가보겠나이다.”

 “그러세요.”

 

 유아는 궁인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서로 은밀하고도 빠른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유아는 그길로 중궁전으로 들어갔다.

 

 “세자는?”

 “옆방에 계십니다.”

 “우선, 들라.”

 

 곁을 따르던 나인이 유아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유아의 앞에 앉은 나인은 자신의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혜빈마마의 처소에서 나온 것이옵니다.”

 “어찌 수상하다 여겼느냐?”

 “이것...”

 

 나인이 말과 함께 자신의 옆 주머니에서 꺼내 보인 것은 페데르가 독극물을 조사할 수 있게 만든 시약 막대였다. 그리고 막대는 색이 붉게 변해있었다.

 

 “이 주머니에서?”

 “예. 이번은 가루입니다.”

 “약병도 아니고, 가루라? 양도 어마어마하구나. 이만하면 궐의 궁인 모두를 죽이고도 남겠구나.”

 “송구하옵니다.”

 “네가 왜. 다른 것은 없더냐?”

 “하나 있었사온데...”

 “헌데?”

 “서책인지라.”

 “서책? 무슨?”

 “천주학 서책이었나이다.”

 “천주학?”

 “예.”

 

 유아는 숨을 내쉬었다.

 

 “너는 모두 잊어라. 알겠느냐?”

 “예.”

 “김상궁은 세자를 모셔오세요.”

 “예, 마마.”

 

 홀로 남겨진 유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애써 이를 악물고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했다.

 

 ‘당신도 매일 이 궐에 앉아, 이런 참담한 것들을 보며 살았겠죠. 날 죽이려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려는 것들과 마주해야하는 순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참았나요? 당신도 지금 나처럼 애써 애꿎은 내 주먹을 괴롭히며 이렇게 버텼을까요. 단 한 순간도, 그 순간만이라도 빨리 알았더라면... 당신에게 만큼은... 그 숱한 원망을 하지 않았을 테죠.’

 

 그리고는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 독이 든 주머니를 넣었다. 서랍을 닫는 유아의 손이 떨렸다.

 

 “마마.”

 

 유아는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려 얼굴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엔 세자와 말순이 서 있었다.

 

 “세자!”

 “어머니!”

 

 세자는 힘차게 달려와 유아의 품에 안겼다. 유아는 그런 세자를 꼭 안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저도요, 어머니.”

 “바깥 구경은 잘 하셨습니까?”

 “예. 재미있었습니다.”

 “얼굴 한 번 봅시다.”

 

 유아는 세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째, 살이 더 붙은 것도 같고?”

 “백선생께서 매일매일 수라상보다 더 맛난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순이가 달달한 곳감과 약과를 잔뜩 주었고요.”

 

 세자는 말순이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 손 끝에 말순이 서 있었고, 마침내 유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말순의 눈이 붉게 물들더니 이내 눈물이 차올랐다.

 

 “말순아.”

 

 유아가 이름을 부르자, 말순은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말순아...”

 

 세자는 당황한 듯 보였다.

 

 “말순이가 큰 죄를 지었습니까? 어찌...”

 

 유아는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미가 되레 큰 죄를 지었지요. 저 이에게.”

 “예? 어마마마께서요?”

 “큰 빚을 졌어요. 평생 갚아야 할 빚을.”

 “엉~어어어엉! 어~~엉!...”

 

 유아는 손을 내밀었다.

 

 “그만 울고. 이리 와. 말순아.”

 

 말순은 유아의 말에 곁에 있는 궁녀에게 부축을 받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유아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서와. 내 집은 처음이지?”

 “아가씨...”

 “오랜만이네. 아가씨라는 말도. 손도 거칠지 않구나. 안심이다.”

 “마마께서 때마다 보내주신 약을 잘 바르고 있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었구나. 어서, 들어가자.”

 

 유아는 말순과 세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물을 겨우 추스른 말순은 방으로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유아는 방 구경을 하게 두었고, 세자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말순이 더는 가까이 오지 않고 무릎을 꿇고는 엎드렸다.

 

 “가까이 와.”

 “아니옵니다. 소인이 어찌 주제넘게...”

 “오라는 데도.”

 “아니옵니다. 어찌 감히...”

 “아비를 닮아 고집은 또 어찌나 쇠심줄인 지. 김상궁?”

 

 연실은 앉아 있다가 말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말순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늙고 무거운 몸 들고 옮기기도 힘들구만. 간만에 만나서는 일을 만드네 만들어. 어여 일어나. 어허!”

 

 연실의 말에 말순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히 앉아. 무릎 상한다.”

 

 그러자 세자가 말했다.

 

 “저와 함께 있는 동안 내내 저랬는걸요?”

 “그랬습니까? 어릴 때부터 무릎을 꿇어서 젊은 지금도 벌써 무릎이 아플 겁니다. 세자가 편히 앉으라 하십시오. 이 사람이 내 말을 원래 잘 안 듣습니다.”

 “편히 앉거라. 어마마마의 말은 곧장 듣고. 모든 말이 다 옳으니.”

 

 세자가 또박또박 말하자, 말순은 곧바로 편히 앉았다. 그 모습에 유아가 피식 웃었다.

 

 “헌데, 어마마마. 어찌 죄를 지었다 하십니까? 내내 고마운 분이다 노래를 하던걸요? 노비가 아닌 채로 살게 해주셨다고.”

 “그건 내 덕이 아닙니다. 말순이 아비가 평생을 노력하여 얻은 자유지요.”

 

 말순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네 덕에 세자의 목숨을 구했느니라.”

 “제가 뭐, 한 일이 있나요.”

 “또 빚을 지는 구나.”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수습을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세자. 이제 세자도 내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셨으니, 어미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예. 말씀 하십시오.”

 “세자는 지금부터 아픈 겁니다. 한동안.”

 “제가요? 음... 무엇으로 아플까요?”

 “원인을 알 수 없다 하지요. 우선 오랜 시간 납치를 당해 기운이 없고, 손발이 묶여 상처도 있다 합시다. 또한 너무 놀라 심적으로도 쇠약해졌고요.”

 “그렇게나 심각하게요?”

 “그냥 누워계시면 됩니다. 페데르가 세자의 상태를 살필 것이고요.”

 “예. 그러겠습니다.”

 “김상궁은 옆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세자께선 한동안 이곳에서 지낼 것이다.”

 

 그때, 말순이 손을 들었다.

 

 “소인은 무엇을 할까요?”

 

 유아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너는 상을 좀 받아가야겠다. 세자를 구한 은인이니.”

 

 ***

 

 성은 칼을 빼들었다. 곁의 수도 함께 칼을 빼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은 어느 허름한 창고였다.

 

 ‘챙~!’

 

 창고 앞은 건장한 사내 다섯이 빙 둘러 지키고 있었다.

 

 “웬 놈이냐?!”

 

 사내들은 성과 수의 등장에 놀라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성의 칼에, 수의 칼에, 사내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내들이 칼에 맞아 쓰러졌다. 수는 문을 굳게 잠그고 있는 자물쇠를 내리쳐 열었다. 수가 발로 차 문을 열자, 그 안엔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는 성희가 있었다.

 

 “대비마마.”

 “주상!”

 

 성은 성희를 부축하고, 구출된 성희는 성과 수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찌 알고 왔습니까?”

 “궐에 가서 말씀하시지요.”

 

 ***

 

 대신들은 여전히 대전 뜰에 엎드려 있었다.

 

 “전하!”

 

 그때, 유아가 나타났다.

 

 “중전마마 납시오~!”

 

 대신들은 고개를 숙여 유아를 맞이했다.

 

 “어찌 소란들이십니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하께오서 답을 주지 않으시니, 소인들이 어제의 그 무뢰배들을 처단할 수가 없나이다.”

 “전하의 생사가 궁금하신 것은 아니고요?”

 

 유아의 매서운 눈빛에 대신들은 모두 시선을 피했다.

 

 “주상전하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이냐 묻잖소!”

 

 그때, 여유롭게 부채질을 하며 홀로 다른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채우겸이 말했다.

 

 “무사하신 것은 맞고요?”

 

 대신들은 우겸을 향해 원망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홀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영상.”

 “중전마마.”

 “전하를 만나셨소?”

 “예.”

 “언제?”

 “어젯밤.”

 “확인이 되었구려. 다들 물러가시오.”

 “헌데, 오늘의 생사는...?”

 “뭐라?”

 “어젯밤엔 무사하셨으나, 오늘의 생사는 확인이 안 됐잖습니까?”

 

 유아는 이를 악물었다.

 

 “나랑 지금 장난하시오?”

 “그럴 리가요. 주상전하의 안녕에 어찌 제가 장난을 하겠습니까?”

 “어젯밤 주상전하를 알현한 그대가 있잖소. 헌데 오늘은 무사 무탈하지 않으시다면, 역적의 수괴는 그대인가?”

 “어찌-”

 “설마하니, 그대가 주상전하께 칼을 겨누었소?

 “그럴 리가요. 전하께서는 무사히 신의 집을 나서셨습니다.”

 “그러니. 무사하시지. 그렇지 않다면, 그대가 역적인데.”

 

 우겸은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주상전하께서는 무사하시니, 이만 다들 정무를 보는 게 좋겠네. 밀린 업무가 잔뜩이잖은가?”

 

 우겸의 회유에 대신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모인 목적은 왕의 생사가 가장 컸다. 유아는 혼잣말로 이를 갈았다.

 

 “노친네. 한 번을 쉽게 도와주는 법이 없네.”

 

 ***

 

 혜빈의 처소. 윤희는 처소에 앉지도 않고 복도에 서 있었다. 지밀상궁이 급히 다가왔다.

 

 “마마.”

 “없어진 것은?”

 

 그리고 귓속말을 건넸다. 그러자 윤희는 적잖이 당황했다.

 

 “없어졌느냐?”

 “예. 어찌합니까?”

 “중전이?”

 “저도 보았습니다. 이미 문이 열려 있긴 했는데...”

 “누가 몰래 잠입이라도 했단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이런!...”

 

 혜빈의 처소를 뒤지기 위해 유아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 전날, 유아는 세 사람을 불렀다. 중궁전 지밀나인과 장용영 대장 그리고 감찰최고상궁이었다. 은밀히 만난 세 사람은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감찰상궁은 처소를 열 수 있는 비상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몰래 혜빈의 처소를 들어가 뒷문을 열어 두었다. 그리고 처소 아래 아궁이에 약을 먹여 기절시킨 노루를 미리 넣어 두었다. 중궁전 지밀나인은 유아의 말대로 처소를 샅샅이 뒤지기로 했고, 장용영 대장은 장용영들을 통해 방 안에 마치 무엇인가 있는 듯 소리를 내어 수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일.

 

 “시작해.”

 

 은밀한 신호를 주고받고는 장용영 중 하나가 재빠르게 무리에서 나와 혜빈 처소의 열린 뒷문으로 들어갔다.

 

 ‘우당탕탕!’

 

 처소를 헤집고 다니면서 일부러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신호에 맞춰 유아가 수색을 명했다. 그리고 혜빈 처소의 지밀상궁이 열린 뒷문을 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처소를 어찌 관리했기에 짐승이 들어와?”

 “그럴 리가...”

 

 그렇게 이루어진 혜빈 처소 습격사건은 독 가루가 든 주머니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혜빈의 것인지, 어찌하여 얻은 것인지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유아는 이것을 이용할 참이었다. 성과의 합동작전을 통해서였다.

 

 “뭐?! 없어져?!”

 

 윤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몹시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키고 있던 사내들이 모두 죽었다 합니다. 칼 쓰는 솜씨가 아주 탁월한 자라 합니다.”

 “대체 누가!...”

 

 ***

 

 “이제 끝이 나겠구나.”

 

 성은 수와 함께 동굴로 들어갔다. 비밀결사의 지부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주군!”

 

 성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

 

 성희는 비틀거리며 별궁 자신의 처소 앞에서 쓰러졌다. 부축하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

 

 “대비마마!”

 

 누군가 성희를 부축했다.

 

 ***

 

 성은 다시 입궐했다. 봉수의 도움으로 용포를 갈아입은 성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자, 문이 열리고 페데르가 들어왔다.

 

 “왔는가.”

 

 페데르를 보는 성의 눈빛은 다정했다.

 

 ***

 

 유아는 밤이 된 궐을 뛰어가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나,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전이었다.

 

 “전하...”

 

 유아는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앞에서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처소만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페데르가 나와 유아와 눈이 마주쳤다. 멈칫하던 페데르는 신발을 신고 유아에게 다가왔다. 유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대와 염려가 가득한 눈빛으로 아련하게 페데르를 바라 볼 뿐이었다. 페데르는 눈을 피했다. 그러자 유아의 얼굴엔 절망이 내려앉았다.

 

 “제발...”

 “송구합니다.”

 

 유아는 어금니를 꽉 다물었다. 애써 눈물을 참는 것이었다. 페데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최대한 늦춰보겠습니다.”

 

 유아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아는 불이 켜진 처소를 바라보았다.

 

 ***

 

 윤희는 처소에 앉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대비가 별궁에 무사히 돌아왔다 합니다.”

 “어째서...”

 “전하께서도 돌아오셨습니다.”

 “뭐라?”

 “마마, 혹시 처소를 뒤진 이가, 대비 쪽은 아니겠지요?”

 “대비가 그 약을 알 리가 없다.”

 

 ***

 

 세자의 생모인 박귀인은 자신의 처소 한 구석에서 정수를 떠놓고 빌고 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중전이 죽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

 

 모두가 잠든 시간. 유아는 성의 곁에 앉았다.

 

 “제발... 떠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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