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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5. 살아갈 이유
작성일 : 22-01-27 13:48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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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는 대전을 뛰쳐나와 궐을 나가버렸다. 가마도 없이 그저 두 발로 뛰어서 그대로 나갔다.

 

 “마마!”

 

 연실이 뒤따르기엔 유아는 너무 빨랐다.

 

 “어휴~.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날래!”

 

 연실은 예전 그대로의 풍채에 나잇살까지 더해져 뒤뚱뒤뚱 더는 숨이 차서 뒤따를 수가 없었다.

 

 “중전마마!”

 

 연실을 지나치는 또 다른 무리. 운검인 어 수와 상선인 차봉수였다.

 

 “마마!”

 

 마치 바람에 실려 가듯, 유아의 자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도 뒤따르기 버거울 정도였다. 봉수는 수많은 문을 지나쳐 뒤따랐지만, 수는 담장을 넘고 넘었다.

 

 “하... 하... 무예를 적당히 가르칠 것을.”

 

 수는 대궐 밖으로 금방 빠져나갔다. 유아는 거리를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멈춰선 곳은 페데르의 집이었다. 인기척에 약재를 분류하다 나온 페데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마당 앞에 서 있는 유아를 발견했다.

 

 “마마?”

 “페데르...”

 

 페데르를 보자마자 유아는 금방 울 듯한 얼굴을 했다. 페데르는 유아의 모습을 보았다. 궐 밖을 나오면서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였고, 옷고름은 잘린 채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그리고 다행히 대문 너머에서 뒤따라 온 수가 유아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별궁. 대비의 처소.

 

 “아하하하하하!”

 

 성희는 배를 잡고 깔깔 웃고 있었다. 곁의 상궁은 흐트러짐 없이 계속 보고를 했다.

 

 “중전이 궐을 나간 후에도 주상께선 그 나인의 품에 있다 하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재미나지. 그래도 주상마저 그럴 줄은 몰랐는데.”

 “어찌 할까요?”

 “뭘 어찌해? 품에서 절. 대. 주상을 놓지 말아야지.”

 “양인 의원은 궐에 들지 않은 지 오래라, 용태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지금 상태는?”

 “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지는 오래 되었고, 종기는 차도가 없다 합니다.”

 “더는 약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되면...”

 “머지않아 국상이 있겠지. 이를 어쩐다? 홍윤희가 꽤나 안절부절못하겠는데?”

 

 성희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이었다.

 

 “세자는 어디 있느냐?”

 “행방이 묘연합니다.”

 “헌데, 궐에 조용해?”

 “주상전하와 중전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둘만 아는 곳에 세자를 숨겼다?”

 

 성희는 피식 웃었다.

 

 “내 경고가 꽤 먹였나보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 드디어, 20년의 공든 탑에 금이 가는구나. 나의 승리로구나. 홍윤희부터 죽겠구나.”

 

 ***

 

 혜빈의 처소. 윤희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 일을 어쩐다. 어찌한다?”

 

 그때였다.

 

 “마마! 혜빈마마!”

 “들라.”

 

 상궁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세자는?”

 “아직... 그보다 큰일입니다.”

 “왜?”

 “중전마마께서 궐을 뛰쳐나가셨다 합니다.”

 “왜?”

 “자세한 것은 모르옵고, 옷고름을 자르셨다합니다. 전하 앞에서.”

 

 상궁의 말에 윤희는 갸웃했다.

 

 “부부의 연을 끊겠다고? 스스로 폐비가 되겠다고?”

 “막 우시면서 뛰쳐나가셨다합니다.”

 “투기라기엔...”

 “중전마마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하... 됐고. 세자부터 찾아! 어디 있는지나 빨리 찾아!”

 “헌데, 어찌 세자저하를 그리 찾으시옵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 예...”

 “알 것 없다! 찾아!”

 

 유아가 궐을 뛰쳐나가던 지금 윤희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녀가 지금 찾아야 할 사람은 세자였다. 후사를 이을 그녀의 유일한 패. 그녀가 영원히 우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기회가 온다면 다시 힘을 가질 수 있는 패였다. 여인에게 빠진 채 병색이 짙은 지금의 왕은 비록 아들이긴 하더라도 가망이 없었다. 그것은 버릴 패였다. 곧 쥐어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버릴 패. 윤희는 서랍을 열었다. 그곳엔 언제나 푸른 비단으로 감싼 서신 하나가 있었다. 윤희는 그 서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날더러 잔인하다 하겠죠. 하지만 당신도 이젠 알 거예요. 그게 나와 당신이 그리고 장차 우리 아들이 세상에 기억되는 방법이라는 걸. 우리가 곧 역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우리가 영원히 남을 방법은 이것뿐이야. 결국 우린 허조대왕을 이길 수 있어.”

 

 윤희는 서랍을 닫아버렸다. 마치 더는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닫아버렸다.

 

 ***

 

 늦은 밤. 나인들의 처소 담장아래. 대전최고상궁은 초승달의 빛에 겨우 의지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은밀하게 다가오는 나인 셋의 무리가 있었다.

 

 “마마님.”

 “따르거라.”

 

 대전상궁은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그림자처럼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오지 않는 폐가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 네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살펴보았느냐?”

 “예.”

 “어떠하더냐?”

 “같은 방 동무가 말하길,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잠들지 않고 은밀히 어디론가 간다 합니다.”

 “그래?”

 “해서, 저희가 방을 바꿔 같은 방에서 잠들다가 뒤를 따랐는데, 박귀인의 처소였습니다.”

 “박귀인이라고?”

 

 대전상궁은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퍼즐이 맞지 않았다.

 

 “박귀인을 만나더냐?”

 “아니요. 박귀인 처소의 빈방에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구나.”

 “헌데, 어느 날 보니, 옷에 먹물이 들어있었습니다. 먹물이 소매에 약간 튀어있는 흔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서신을 썼다. 보고다.”

 “품에 가지고 나오는 것은 못 봤습니다. 아무래도 박귀인 마마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나머지 일은 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의 행동을 예의주시 하거라.”

 “예. 마마님.”

 

 대전상궁과 나인들은 폐가에서 각자 빠져나와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다음날, 대전상궁은 중궁전을 찾았다. 하지만 중궁전엔 주인이 없었다. 대신 연실과 만났다.

 

 “어쩐다... 중전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큰일이네.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대전상궁은 연실에게 그동안의 일을 전했다.

 

 “염려 말게. 마마께서 돌아오시면 내 다 고할 것이니, 자네는 박귀인 쪽을 더 파봐.”

 “자네만 믿네.”

 “수고가 많네.”

 

 중궁전엔 연실의 한숨이 울렸다. 그리고는 앞에 보이는 대전을 노려보았다.

 

 “사내들이란. 어릴 때도 눈치가 없더니, 나이가 들어도 똑! 같네. 지금 다른 계집 품고 에헴 거릴 때야, 지금? 당장 버선발로 달려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에휴~ 내가 더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우리 아가씨, 가여워서 어쩌누.”

 

 연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땅을 내리쳤다.

 

 “마마~ 제발 좀 돌아오셔요. 제발!”

 

 ***

 

 “하~암!”

 

 어느 방 안. 늦잠을 자고 일어난 세자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곁에 한참은 떨어져서 엎드려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기침하셨나이까, 세자저하?”

 “응? 아! 네, 스승님.”

 

 중년남자가 스승이라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백선생이었다.

 

 “소인이 중전마마께는 사사로이 스승이긴 하오나, 그냥 하대하소서.”

 “어머니께 스승이면, 나에게는 더 큰 스승입니다.”

 “소인이 불편하옵니다.”

 “안됩니다. 어찌 어머니의 스승을 하대합니까? 그보다, 스승님 저, 배가 고픕니다.”

 “아이고! 정신 좀 보게. 아침상을 금방 내어오라 하겠습니다.”

 “세숫물부터...”

 “예! 그러겠습니다.”

 

 유아는 자신의 사가에서도 세자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백선생을 몇날 며칠 설득해 백선생의 집에 세자를 데려다 놓았다. 설마하니 백선생의 집에 세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었다. 사람이 자주 왕래하는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백선생이 낑낑거리며 아들들과 함께 밥상을 날랐다.

 

 “아니, 수라상보다 더 맛난 것들이 가득이네요?”

 “과찬이시옵니다.”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잘 먹겠습니다.”

 “예.”

 

 백선생의 부인은 생선 가시를 발라 세자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부인은 미소로 답을 했다. 세자는 생선을 즐겨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먹고 또 먹고 싶었다. 밥을 가득 떠서 숟가락을 내밀면, 백선생의 부인이 가시를 바른 생선을 올려주었다.

 

 “어머니같습니다.”

 “예?”

 “부인께서 생선을 발라주시니, 어머니가 생선을 발라주는 것 같습니다.”

 

 멀찌감치 세자를 지켜보던 백선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중전마마께오서 직접 생선을 발라주셨습니까?”

 “그럼요!”

 

 백선생은 혼잣말을 했다.

 

 “철딱서니 없더니, 다 컸군...”

 

 세자는 씩씩하게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찬을 너무 많이 남겼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식솔들이 좋아하겠지요.”

 “여기도 남은 찬을 아랫사람들이 나눠먹습니까?”

 “예? 아니요. 먹은 것을 다시 데워먹지요.”

 “아...”

 

 상을 물리자, 세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승님. 저, 바깥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아, 안 됩니다!”

 “왜요?”

 “중전마마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답답한데...”

 “그 면은 참 빼다 박으셨습니다.”

 “뭘요?”

 “중전마마께서도 저하의 나이 때 운종가 거리를 휩쓸고 다니셨거든요. 한 치도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없으셨지요. 매일 집 담장을 넘어서는- 아이고. 체통을... 송구합니다.”

 “담을 넘어요?”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소서. 입이 방정입니다. 소인도 나이가 있는 지라, 옛날 얘기만 하면 신이 나서는.”

 “해주십시오. 그럼 밖에 나가자 보채지 않겠습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그런 얘기는 저보다 더 적임자가 있지요.”

 

 머지않아 방에 들어온 사람은 청씨였다.

 

 “에헴~. 그게 궁금하시다고요?”

 “예!”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워낙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은 삶인지라.”

 “그리 사고를 많이 치셨습니까?”

 “그 뿐입니까? 지금의 주상전하께서는 또 얼마나 사고를 치셨는데요.”

 “아바마마께서요?”

 “그때부터 얘기를 해드리면 되겠군요.”

 

 청씨의 이야기보따리가 열리자, 세자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다. 밖에서 세자의 웃음소리를 들은 백씨의 집안 식솔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신씨가 백씨에게 다가왔다.

 

 “이보게.”

 “쉿! 사랑채로 가세.”

 

 세자가 있는 곳은 백씨네 집 별채였다. 집을 빙 둘러 발견할 수 있는 집이었기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누구든지 발견이 가능한 구조였다. 백씨는 신씨와 사랑채에 마주 앉았다.

 

 “중전마마 소식 들었나?”

 “응.”

 “세자께서 계속 여기 계셔도 되는가? 입궐을 하셔야-”

 “계획의 일부일세.”

 “무슨 계획?”

 “연실이 때문에 자네에겐 비밀로 했네만, 전하를 되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마마께선 지금 페데르의 약방에 계시네. 그리고 곧 만영누이가 돌아오네.”

 “무슨 소리야?”

 “대비가 나라를 무너뜨리자 제안했다 하네. 전하를 노리고, 세자를 노리고, 조선을 노리네.”

 “대비가 왜?”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모르네. 무튼, 지금 가장 먼저 막아야 할 사람은 대비야. 주상께선 이미 독에 중독이 되었다하니.”

 “독?”

 “만영누이가 외국 상단을 통해 해독제를 찾고 있나 보이. 헌데, 그것이 독성이 강한 것이라, 어느 곳에도 이렇다 할 해독제가 없다하네. 그나마 페데르가 만든 탕약이 독이 퍼지는 것을 조금 늦출 뿐이라 하더군.”

 “이러다 일 치르는 것 아닌가?”

 “살려야지. 그러려고 중전께서도 저리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네.”

 

 ***

 

 대전. 수는 성의 곁을 지켰다. 봉수는 성의 탕약을 마지막으로 기미하고 성에게 탕약을 올렸다.

 

 “드소서.”

 

 성은 봉수가 건넨 탕약을 한 번에 들이켰다. 곁에 있던 나인이 손에 달달한 약과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성의 입에 넣으려하자 성은 나인의 손길을 거부했다. 이윽고 성의 시선이 머문 곳은 곁에 묵묵히 서 있는 수였다.

 

 “중전은?”

 “사라지셨습니다.”

 “아직도 못 찾았단 말이냐?”

 “네.”

 “거짓말.”

 “군대를 풀어 도성을 뒤지라하겠습니다. 사대문도 닫을까요?”

 

 봉수의 얼굴도 수의 얼굴도 잔뜩 굳어있었다.

 

 “단체도 날 겁박하는 것이냐? 치사한 놈들.”

 

 봉수는 빈 사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폐비교서를 내리실겁니까?”

 “뭐?”

 

 봉수의 시선은 성의 책상 위 가지런히 놓인 유아의 잘린 옷고름이었다.

 

 “헛소리 말고, 중전을 찾아와.”

 

 봉수과 수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로 납시옵니까?”

 “규장각.”

 

 성은 빠른 걸음으로 휙 나가버렸다. 덕분에 방에 홀로 남겨진 이는 어린나인 뿐이었다.

 

 ***

 

 별궁. 대비의 처소.

 

 “멍청한 것.”

 

 어린나인이 성에게서 총애를 잃고 있다는 얘기에 성희는 혀를 끌끌찼다.

 

 “사내 하나 홀리는 일이 그리 어렵더냐?”

 “송구합니다.”

 “상황 잘 보았다가, 처리해.”

 “예.”

 

 ***

 

 페데르의 집. 늦은 밤. 집을 찾아온 만영은 페데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기어코.”

 “어쩝니까.”

 “그 계집은요? 머리끄덩이를 뽑아버리지.”

 “고모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

 “에헴! 각설하고, 이제 어찌 들어갈 생각입니까? 옷고름도 싹둑 하고 왔담서?”

 “몰라요.”

 “홧김에 폐비교서라도 내리면 어쩌시려고? 배짱이 두둑하시네?”

 “그러라지. 쳇!”

 “정신 차려요. 지금 부부싸움 할 때야? 별궁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면서요?”

 “그러니까요. 벌써 계획을 다 세운 뒤일까요?”

 “언제?”

 “내 말이.”

 

 만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유아의 앞에 내밀었다.

 

 “우선은 이것밖에 못 구했습니다. 이거라도 빨리 먹여야죠.”

 

 성의 몸에 있는 독을 해독할 약이었다.

 

 “아주 미량이라도 효과는 꽤나 있다합니다.”

 “고맙습니다.”

 “구하면 뭐해. 당사자가 두 사람을 찾질 않는데.”

 

 유아는 시선을 떨구었다. 만영은 그리고 팔을 둥둥 걷었다.

 

 “그리고. 운종가 식구들 통해서 그 놈들 싹 잡아들였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놀이 한 놈들.”

 “누구의 사주랍니까?”

 “대비.”

 “그 여인은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라...”

 

 가만히 듣고 있던 페데르는 유아의 앞에 놓인 작은 병을 집어 들었다.

 

 “전하께선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페데르의 말에 유아는 놀란 듯 보였다.

 

 ***

 

 늦은 밤. 모두가 퇴궐을 했지만, 성은 홀로 규장각에 남아 책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전하.”

 

 봉수가 성의 곁을 지켰다.

 

 “시각이 늦었나이다. 처소로 가심이...”

 “시간이 없다.”

 “예?”

 

 성은 책에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봉수야.”

 “예. 전하.”

 “넌 마지막까지 내 명을 수행해야 한다.”

 “예?”

 

 성은 책의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는 덮었다.

 

 “빈 책을 다오.”

 “서고에서 가져오겠습니다.”

 

 봉수가 책을 가지러 나간 사이, 수가 성의 곁으로 왔다.

 

 “원치 않으실 겁니다.”

 “뭘?”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 말입니다.”

 

 성은 수를 쳐다보았다.

 

 “건방지게. 네 놈이 제일 불안하다.”

 “지키시면 됩니다. 저라는 놈이 불안하시면.”

 “감동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

 “아니요.”

 “재미없는 놈.”

 “그게 제 매력입니다.”

 “허!”

 

 성과 수는 피식 웃었다.

 

 “중전과 세자를 지켜다오.”

 “저는 주군을 지키는 것이 제 소임입니다.”

 “갑갑하다.”

 

 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연못을 두른 나무들 사이사이로 반딧불이 날고 있었다. 퍽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겁니다. 제가 지키지 않아도, 전하께서 지키시면 됩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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