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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4. 왕의 눈과 귀를 막으라
작성일 : 22-01-27 13:47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8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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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하오나, 오늘 아침조회에 전하께오서는 참석하지 않으십니다.”

 

 대전으로 나간 봉수는 대신들에게 말을 전했다.

 

 “벌써 일주일째일세. 전하의 옥체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곧-”

 “어의를 데려오게. 우리가 직접 들어야겠네.”

 “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곧-”

 “종묘사직을 위해서일세. 아무 대비도 없이 혹여 불상사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어찌되겠나?”

 “영감. 말을 삼가시지요. 전하께오서는 괜찮으십니다.”

 “그러니 어의를 데려오란 말이네.”

 

 대신들의 반말이 거세졌다. 어의를 통해 왕의 상태를 듣겠다는 뜻이었다. 봉수는 당황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런 일 따위,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주상전하께오서 멀쩡히 심신을 단련하고 계시온데, 어찌 그런 막말을 하시옵니까? 이는 역모와 다름이 없습니다!”

 

 봉수의 호통에 더는 어의를 데려오라는 둥의 요구는 사그라졌다. 하지만 대비를 해야 함은 어쩌면 맞을 지도 몰랐다. 다만, 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신들이 모두 흩어지고 있는 사이, 우겸이 봉수에게 다가왔다.

 

 “상선. 나 좀 보세.”

 

 인적이 드문 처소 담장 뒤에서 은밀하게 만난 두 사람의 표정은 같았다. 근심, 걱정, 염려, 어색함.

 

 “차라리 두소마을에 잠시 모시는 건 어떠한가? 그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여론이 많이 나쁩니까?”

 “자네도 듣는 귀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피한다고, 달라질까요?”

 

 우겸은 자신의 부채를 펼쳐 살랑 부쳤다.

 

 “혹, 내 고향에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하나?”

 

 봉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겸은 봉수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부채를 접었다.

 

 “중전마마께 연통을 넣어야겠군.”

 

 ***

 

 별궁. 대비의 장신구를 곁에서 정리하던 상궁이 성희에게 말했다.

 

 “주상전하의 옥체가 많이 심각해지셨나 봅니다. 어전회의가 일주일째 열리지 않고 있다 합니다.”

 “너, 대전나인들과 친분이 있느냐?”

 “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니까요. 헌데, 어찌 물으시옵니까?”

 “사근사근하고, 눈치가 있을 만한 아이 없느냐? 얼굴도 반반하고.”

 “흠...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가 하나 있긴 하온데. 불러볼까요?”

 “은밀하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해야 하니, 궐 안에서 보자꾸나.”

 “궐에 가시려고요?”

 “주상의 옥체 미령하다 하시니, 할미인 내가 가봐야지.”

 

 성희는 또 무언가 재미난 궁리를 하는 듯 보였다. 그녀의 슬쩍 올라간 입 꼬리가 퍽 행복해보이기 까지 했으니까.

 

 ***

 

 “물러가라.”

 “전하.”

 “물러가라!”

 

 성은 자신을 살피려는 페데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두피에 열꽃이 피고 있음에도, 통증으로 괴로움에도 그는 페데르를 곁에 하지 않으려 고집을 부렸다.

 

 “어찌 그러시나이까.”

 

 걱정이 된 봉수는 안절부절 이었다.

 

 “전하. 제발 말씀해주소서. 어찌 그러시옵니까?”

 “시끄럽다. 모두 물러가라.”

 “전하.”

 “어명이다!”

 

 모두 그의 방에 있지 못했다. 페데르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꽤나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을 건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전하의 머리에까지 열꽃이 피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모두 전하의 신경을 건들고 있는 것이옵니다. 때론 성격을 바꾸기도 하지요.”

 “방법이 없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제가 전하를 시료해야 합니다.”

 

 봉수는 문 앞을 지키던 수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 한 가지 뿐이잖습니까?”

 “... 그건...”

 

 모두의 머릿속엔 딱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중전, 김유아. 유아는 성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몸소 두소마을로 찾아가 은밀히 업무를 봤다. 전국에서 오는 상소문을 읽었고, 문제가 있다면 조사를 명하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곁에 옥새가 있었다. 바쁜 와중, 유아는 성의 상태를 전해 들었다. 물론, 대전상궁을 통해서였다.

 

 “더 나빠진 것인가...”

 

 대전상궁이 보낸 짧은 서신. 오늘 왕의 일과를 적은 것이었다. 하루에 수라는 단 한 번. 페데르에게 진료를 받는 것도 꺼려하고 있었고, 오늘은 페데르가 왕의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구나.”

 

 연실은 유아의 곁에서 서류를 정리하느라 말을 듣지 못했다.

 

 “예?”

 “전하께서 아무래도 더 심해지신 것 같아.”

 “페데르가 있잖습니까?”

 “페데르를 거부한대.”

 “어째서요?”

 “하...”

 

 ‘쨍그랑~!’

 

 작은 종지 하나는 깨져 바닥에 흩어졌고, 사발그릇은 한약을 엎어 뒹굴었다. 대전. 성이 마시고 먹어야 할 약들이었다. 성은 괴팍한 상태로 변해가는 듯 보였다.

 

 “독이라도 탄 것임을 내 어찌 알고!”

 “전하!”

 

 봉수는 바닥에 엎드렸다. 나머지 궁인들도 모두 함께 바닥에 엎드렸다.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소인이 금방 기미를 하였나이다. 독이라니요!”

 “중전은 어디 있느냐?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냐?”

 “두소로 가셨나이다. 대신 시찰을-”

 “내 귀를 막으려는 것인 게지. 나에게서 세자까지 얻었으니. 그럴 테지. 날 버리려고.”

 “전하! 당치 않으시옵니다!”

 “시끄럽다! 물러가라!”

 “전하!”

 “내가 죽길 바라는 것이냐!”

 

 봉수는 성의 안전을 위해 방에서 위험한 물건은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바닥을 정리한 궁녀들이 물러나고, 봉수마저 물러났지만 운검인 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운검도 물러가라.”

 “주군의 신변이 위험합니다.”

 “뭐라?”

 “주군께서 불안해하시지 않으십니까?”

 

 수는 흔들림이 없었다.

 

 “불안하지 않다.”

 “불안해하십니다.”

 “아니다!”

 

 수는 물건을 치우는 궁녀들을 잡아 세우고는 쟁반 위에 오른 사발에서 남은 탕약을 손으로 찍어 자신의 입으로 넣었다. 성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수의 돌발행동에 잠시 멈칫한 모양이었다.

 

 “없습니다.”

 

 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는 더 강조했다.

 

 “이곳에 독은 없습니다.”

 

 그리고는 모두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방에 남은 것은 성과 수 단 둘 뿐이었다. 봉수는 수의 돌발행동에 불안해했다.

 

 “저 이가 어쩌려고...”

 

 대전상궁이 봉수에게 속삭였다.

 

 “중전마마께서 돌아오고 계시다 합니다.”

 “어찌 아는가?”

 “연통을 보냈습니다.”

 “어째서?”

 “허면, 어쩝니까?”

 

 수는 문 앞을 막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주군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것입니다. 허나, 미쳐가는 주군의 명을 들을 만큼 무지하진 않습니다.”

 “뭐라? 내가 미쳤다는 것이냐?”

 “미쳐가는, 중이지 않으십니까?”

 “네 이놈!”

 “경대가 눈물로 부탁했습니다. 제가 아우의 부탁은 무시할 수가 없어서요.”

 “... 경대?...”

 

 경대. 유아의 암호명이었다. 비밀결사는 아직 그대로였지만, 예전만큼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백선생도, 청씨도, 신씨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주군이 세상을 능히 바꿀 수 있는 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암호명을 쓴다는 것은, 성의 곁엔 연인이면서, 아내이자, 왕후이자, 비밀결사 일원의 하나로 유아가 있다는 의미였다. 성은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중전이 울었느냐.”

 “예.”

 “해서.”

 “아우를 울린 놈을 패 죽여야 하나, 했는데... 그게 주군이니 참고 있는 겁니다.”

 “네가 언제 내 여인을 그렇게 아꼈느냐?”

 “함께 목숨을 걸고 임무를 하다 보니.”

 “목숨을... 그랬구나.”

 

 ***

 

 새벽. 궐로 들어오는 중전의 행렬 앞을 막은 한 남자, 채우겸이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는 유아가 탄 가마가 보이자 부채를 접고는 허리를 숙였다.

 

 “중전마마.”

 

 연실이 우겸을 알아보았다.

 

 “영상대감이십니다.”

 “가마를 내려라.”

 

 가마가 멈춰서고, 유아가 가마에서 내렸다.

 

 “이 시각에, 날 기다리신겁니까?”

 “예.”

 “어째서요? 궐에서 봐도 될 텐데.”

 “보면 안 될 일이니 찾아뵌 것이겠지요?”

 “이곳도 보는 눈이 있을지 어찌 아오?”

 “그렇군요. 그럼.”

 

 우겸은 다른 길로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유아가 앞장섰다.

 

 “김상궁은 잠시 있어.”

 “하오나, 아직 어두운데.”

 “괜찮아. 설마하니, 잡아먹겠어?”

 

 유아는 피식 웃고는 앞장섰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멈춰선 두 사람. 유아는 우겸을 보았다.

 

 “은밀히 할 이야기가 뭡니까? 남의 시선까지 걱정하시고. 어울리지 않게.”

 “전하의 일입니다.”

 “말씀하세요.”

 “대신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십니까?”

 “무슨 소문?”

 “왕이 미쳤다. 혹은, 미쳐가고 있다. 혹은, 다른 계집의 치마폭에서 놀아난다. 등등.”

 “할일들이 그리 없습니까?”

 “그러게요. 허나, 쉽게 넘겼다간 기정사실이 되기도 하죠.”

 “염려 마세요. 멀쩡히 어전회의에 참석하실 것이니.”

 “정훈세자께서도 그런 증상이 있었지요.”

 

 유아는 답을 하지 않고 우겸을 빤히 보았다.

 

 “제가 정훈세자의 최측근이었습니다. 허니, 병세를 모르는 건 이상하겠죠?”

 “다릅니다.”

 “비슷할 걸요? 진행이 되었다면, 신경증으로 성질이 고약해졌을 테니까요. 그러니, 궁인들 사이에서 전하의 신경증 얘기가 나왔을 테고. 해서 소문은-”

 “전하께서 미쳤다?”

 “헌데, 다른 점이 있습니다.”

 “뭐가?”

 “그 양의원 말입니다.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아!... 네.”

 “방법이 없진 않겠지요?”

 “그러니. 애를 좀 써주세요. 시료 중이시니.”

 “그러죠.”

 

 하지만 우겸은 더 하고픈 이야기가 있는 듯 보였다.

 

 “또 뭐요?”

 “다른 소문은 어쩌죠?”

 “내 치마를 말합니까?”

 “그게 그렇게 되려나...?”

 

 우겸은 부채를 꺼내 살랑 부치다, 생각보다 찬바람에 움찔하고는 부채를 다시 접었다.

 

 “참, 아는 것이 많으십니다. 영상께선.”

 “해서, 정치를 안 하려는 것입니다. 한번 알고자하면 다 알아야 하는 성미라.”

 “허면, 그 정보를 제게도 좀 주시렵니까?”

 “그냥요?”

 “뭘 원하시는데요.”

 “김만영.”

 “허! 정말 노골적이시네요.”

 “두소마을에 뼈를 묻겠습니다. 일을 하도 맡기시니, 얼굴을 볼 수가 있나.”

 “돌아가신 부인께서 알면 퍽이나 좋아하시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겸은 3년 전, 조용히 부인을 떠나보냈었다. 마음은 만영에게 있었지만, 우겸의 부인은 미워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때문에 부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그는 부인의 3년 상을 다 치러냈다. 덕분에 만영과의 관계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했다.

 

 “곧 마무리 될 겁니다. 이젠 고모가 없어도 상단 운영엔 차질이 없으니까요.”

 “그럼, 됐습니다.”

 “입 싹 닦으실 겁니까?”

 “아!... 전하의 곁에 다른 여인이 있다 하더군요. 원래 있던 여인이라 하는 게 맞으려나?”

 “정말입니까?”

 “가마에 오르시지요. 곧 해가 뜨겠군요.”

 

 유아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우겸을 보고는 다시 가마로 향했다. 연실은 유아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요? 저 양반이 또 헛소리 하십니까?”

 “가자...”

 

 유아의 가마는 다시 궐로 들어갔다.

 

 ***

 

 페데르의 집. 페데르는 성이 자신을 거부하자 아예 궐을 나왔다. 그리고는 서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성의 상태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지, 자신의 일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제발...”

 

 ***

 

 “전하. 드시옵소서.”

 “그래.”

 

 성은 나인이 건네는 탕약을 순순히 받아 마셨다. 곁에는 봉수도 있었으나, 나인이 직접 성에게 탕약을 건네고 있었다. 봉수는 이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성은 흐뭇한 얼굴로 탕약을 받아 마셨다.

 

 “쓰지요?”

 

 나인이 달달한 간식을 성의 입에 넣어주었다.

 

 “전하께서도 역시나 사내였던거야.”

 

 실망한 궁녀들은 처소 밖에서 수군거렸다.

 

 “그러게. 중전마마뿐이라고 할 땐 언제고, 쟤가 뭐가 이쁘다고, 쳇!”

 “전하, 실망이야.”

 “나두.”

 

 그리고 어의 다섯이 우르르 몰려왔다.

 

 “전하. 어의들 들었나이다.”

 “들라하라.”

 

 성은 페데르 대신 어의들을 불러들였다. 어의들은 성을 진맥하고, 탕약도 어의들의 처방으로 올린 것이었다.

 

 “간밤에 잠자리는 어떠셨나이까?”

 “이 아이가 곁에서 지켜주어, 얼추 잠들었다.”

 “탕약은 전하의 몸에 있는 열을 빼내어, 열꽃이 이는 것을 잠재울 것이옵니다.”

 “그래. 좀 나아진 것 같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때, 유아가 대전 뜰에 도착해있었다.

 

 “페데르는 어딜 가고?”

 “출궁하라 하셨나이다.”

 “뭐라? 지금 누가 들어 있느냐?”

 “어의들이...”

 

 유아는 숨이 가빠왔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고하라.”

 “예?”

 “내가 왔으니, 고하라.”

 “예, 중전마마. 전하, 중전마마께오서 드셨나이다.”

 

 하지만 방 안에선 답이 없었다.

 

 “... 드시라하라.”

 

 한참을 뜸을 들이다, 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 문이 열리고, 유아가 들어갔을 땐 어의 다섯과 봉수 그리고 성의 바로 곁에 앉아있는 어린 나인이 있었다. 유아의 눈엔 이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전하.”

 “중전. 오셨소?”

 “예.”

 

 어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아의 눈치를 살피며 나갔다.

 

 “운검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장용영 훈련이 있어서.”

 “예.”

 

 유아는 자리에 앉았다. 봉수는 괜히 유아의 눈치를 봤다.

 

 “페데르는 어찌 물리셨나이까?”

 “유능한 어의들이 있지 않소.”

 “그렇습니까?”

 

 유아는 어린 나인을 보았다.

 

 “전하를 잘 보필해주시게.”

 “예. 주, 중전마마.”

 

 성은 헛기침을 했다. 유아는 성을 보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사람이 정녕 성이 맞는 가를 의심했다.

 

 “옥체는 어떠십니까?”

 “많이 나아졌소.”

 “보기엔 열흘 전과 다름이 없는데요.”

 “그런가? 우리가 얼굴을 마주한 지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그리 짧게 느껴지셨습니까?”

 “내가 방 안에만 있으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소.”

 “예.”

 

 유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체 강녕하다하시니, 옥새를 돌려드려야겠습니다.”

 “그리하시오.”

 

 그 말에 유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전하가 맞으십니까?”

 “뭐?”

 “내 앞에 있는 분이, 내 서방이 맞느냐 말입니다.”

 “무슨 말이오?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제가 뭘 하다 열흘 넘게 궐을 비웠는데요. 허면, 어찌 되었느냐, 어찌들 보고하더냐. 최소한 그 정도는 물었어야지요. 여인으로 나에게 흥미가 떨어졌다는 건 참고 넘어갈 수 있으나, 눈과 귀가 먼 왕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지금 투기를 하는 것이오?!”

 “뭘 들으셨습니까! 나라 살림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련히 잘 했겠지. 해서 내가 중전을 믿고 보내질 않았소?”

 “그렇군요. 허면 이만. 피곤해서.”

 

 유아는 모든 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더 화를 냈다간 정말 곁에 있는 어린 나인을 이기지 못해 질투하는 꼴이 될 터였다. 화를 억누르며 나오는 유아의 앞에 대전상궁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유아는 연실을 불렀다.

 

 “내 피곤하여 한치도 걷지 못하겠다. 가마를 가져와.”

 “예?”

 

 연실은 대전상궁을 보고는 눈치를 알아차렸다.

 

 “예, 중전마마.”

 

 그리고 유아는 대전상궁과 처소 뒤로 숨듯이 이동했다.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이런 보고는 없었잖습니까?”

 “송구하옵니다. 차마... 그리고 상세히 알아보는 중이었나이다.”

 “무엇을?”

 “본래 대전나인이긴 하오나, 저 아이 평소와 좀 달라서요.”

 “행동이?”

 “동선이 이상해서요.”

 “언제부터?”

 “마마께 대비마마의 입궐에 대해 고한 것이 있지요. 그날 이후부터입니다.”

 “대전엔 발길도 못하게 했다면서.”

 “예. 헌데, 그것이...”

 “노림수일 수도 있다?”

 

 대전상궁은 더는 말을 아꼈다. 아무리 그래도 왕대비가 아니겠는가.

 

 “상궁들을 시켜 알아보라 하겠습니다.

 “아니. 웃전을 속이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의 또래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요. 같은 또래의 나인들에게 감시하라 하세요. 셋이면 하나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예, 중전마마.”

 

 ***

 

 혜빈의 처소. 윤희는 성이 변했다는 소식에 걱정했다.

 

 “주상이 어찌... 총기가 흐려지고 있구나.”

 

 윤희는 자신의 책상 위의 종이를 보았다. 세자가 쓰고 간 시와 그림이었다.

 

 “더 늦기 전에 준비를 해야겠구나.”

 

 ***

 

 별궁. 성희는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었다. 앞엔 남사당패 놀이꾼 여섯이 얼굴을 바닥에 묻고 있었다.

 

 “그렇게만 퍼트리면 된다. 주상의 행보가 연산군과 광해군을 섞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이제 종묘사직은 끝이라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한다.”

 “허, 허나... 이런 내용을 했다간...”

 “염려 마. 내가 누구냐. 이 나라 왕대비니라. 없는 얘기를 하랴?”

 

 성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저잣거리엔 남사당패들이 모여 탈춤을 선보였다. 주제는 왕이었다.

 

 “이리오너라~ 내 그동안 중전의 치마속이 가장 따스한 줄 알았거늘. 네 속이 더 따스하구나.”

 “이런! 이보게! 정신 차리고 내 말 좀 들어보게.”

 “뭐라고? 안 들려! 썩 물러가라!”

 “서방님~ 제 치마 속으로 오시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물러가라!”

 

 사람들은 그들의 우스꽝스런 행동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 얼굴이 없는 탈이 나타났다.

 

 “양반놈들은 고고하게 책이나 보고 앉았고, 상인 놈들은 돈 벌이하느라 정신이 팔렸네 그려! 왕만 믿다가 나만 죽게 생겼구나! 나 좀 살자.”

 

 얼굴 없는 탈은 모두에게 밀려났다. 특히 왕은 얼굴 없는 탈을 멀리 밀어냈다.

 

 “이놈들! 내가 혼자 죽을 성 싶으냐?!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어찌 살겠느냐?! 나도 그 잘난 얼굴 한 번 들고 다녀보자!”

 

 얼굴 없는 탈은 호롱박을 꺼내고는 양반, 상인, 모두에게 투척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탈이 쓰러졌다.

 

 “새로운 세상이야! 미친 왕이 없으니,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

 

 “뭐라?!”

 

 성은 탈춤극 소식을 들었다.

 

 “모두 잡아들이라!”

 

 그러나 그 앞을 유아가 막아섰다.

 

 “무슨 죄입니까?”

 “중전!”

 “눈과 귀가 멀어버린 왕. 계집의 치마폭에서 백성을 버린 왕.”

 “뭐라?”

 “그게 전하의 세상입니까? 그런 것이라면, 내가 꿈꾸던 세상은 사라졌습니다.”

 

 유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아오소서...”

 

 유아는 저고리의 옷고름을 칼로 베어버렸다. 잘린 옷고름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성은 잘린 옷고름을 보고 경악했다.

 

 “부인!!”

 

 이혼. 이별을 뜻했다. 그만큼 유아는 절실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아가 있었던 곳엔 잘린 옷고름만 남았다. 이를 지켜본 나인은 겁에 질렸다. 봉수와 수는 유아를 잡으러 뛰쳐나갔다.

 

 “마마! 중전마마!”

 

 성은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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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아낌없이 빼앗는 것 2022 / 1 / 27 174 0 7977   
87 87. 노래가 없어 2022 / 1 / 27 182 0 7182   
86 86. 옥좌를 노리는 여인 2022 / 1 / 27 182 0 6369   
85 85. 너는 어디에 있는가 2022 / 1 / 27 188 0 5311   
84 84. 피 묻은 적삼이여(2) 2022 / 1 / 27 189 0 5514   
83 83. 피 묻은 적삼이여(1) 2022 / 1 / 27 186 0 6858   
82 82. 추락에도 날개는 있다 2022 / 1 / 27 182 0 7682   
81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2022 / 1 / 27 186 0 7442   
80 80. 당신의 그 사람 2022 / 1 / 27 172 0 5712   
79 79. 괘씸죄 2022 / 1 / 27 198 0 8520   
78 78. 적과 아군 그 사이 2022 / 1 / 27 194 0 6977   
77 77. 두 얼굴의 왕 2022 / 1 / 27 189 0 6712   
76 76. 지킴의 무게에 대하여 2022 / 1 / 27 183 0 6566   
75 75. 젊은 날의 슬픔 2022 / 1 / 27 181 0 9694   
74 74.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2022 / 1 / 27 182 0 11072   
73 73. 한 뼘만 더 2022 / 1 / 27 182 0 9327   
72 72. 이별한 그 날 2022 / 1 / 27 174 0 7058   
71 71. 신의 장난인가 2022 / 1 / 27 184 0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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