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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89. 호랑이 굴
작성일 : 22-01-27 13:46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7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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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는 졸지에 역적 사건으로 어수선해진 궐을 안정시켜야했다. 그녀는 궐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중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 역적이 대비여도 말이다.

 

 “궁인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규율을 단단히 해. 그리고 대비전에 오고가는 이들은 반드시 보고해야한다. 역적의 누이이니.”

 “예. 중전마마.”

 

 유아는 불안해보였다. 연실은 유아에게 차를 건넸다.

 

 “마마. 따뜻한 차이옵니다. 천천히 드소서.”

 “아니야.”

 “드십시오. 마음을 가라앉히셔야지요.”

 

 유아는 연실의 말을 듣고 차를 마셨다. 연실은 유아가 찻잔의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지켜보았다. 찻잔의 바닥이 보일 때쯤, 유아는 연실에게 물었다.

 

 “김상궁은 사가에 잠시 다녀오는 게 어때?”

 “예?”

 “집에 다녀와.”

 

 유아의 눈치를 보아하니, 신씨를 통해 궐 밖에서 모은 정보를 가져오라는 뜻 같았다. 연실은 금방 알아차리고는 눈치를 보며 변명을 늘여놓았다.

 

 “마마께서도 참. 궐에 맛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꼭 제가 만든 약과를 드시겠다고 하시는지. 그럼,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응. 기다릴게.”

 

 그렇게 연실은 궐 밖으로 나갔다. 한편, 궐 밖으로 먼저 나간 이가 있었으니 운검, 어 수였다. 수는 기방인 영화관으로 향했고, 행수 홍련과 만났다.

 

 “알아보라는 건 알아봤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김구준이 온양에서 군사들을 잔뜩 키워놨어.”

 “그게 이상하다고. 화성 때문에 매일같이 두소마을 오갔던 양반이 언제 그 많은 군사를 키워? 정작 온양에 있었던 건 대비잖아.”

 “대비가 군대를 키웠다고? 그럼...?”

 “궐 안도 무사하지 않아.”

 

 수는 재빨리 일어나 자리를 뜨려했으나, 홍련은 수의 손목을 낚아챘다.

 

 “잠시만!”

 “왜?”

 “부엌어멈이 상다리 부러지게 밥 차리고 있어. 먹고 가.”

 “바빠.”

 “야! 먹고 가.”

 “너 지금 심각한 상황인 거 몰라?”

 “내가 너보다 더 모르겠냐? 먹고 가. 부엌어멈... 오래 못산대.”

 

 수는 뭔가 머리를 관통하는 화살을 맞은 듯 멍해졌다. 그러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련의 방을 들어오면서도 그는 주위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홍련의 방은 예전과는 달랐다. 홍련의 모습도 예전과는 달랐다. 그제야 주위의 모습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지금 이곳은 기방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아침부터 티격태격하던 기녀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기방 정리했어. 현판도 뗐는데, 못 봤어?”

 

 수는 그제야 자신이 바쁜 핑계로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을 소홀히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왜가 왜 나와? 그렇게 접자 노래를 부르더니, 좋아해야지.”

 “뭐야? 누가 협박이라도 했어?”

 “헛소리. 내가 그런 거 당할 사람이야? 애들은 다른 기방 차려줬어. 지쳐서 나도. 여기 수리 싹 해서,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너랑.”

 

 수는 더 마른 홍련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근데 왜 말랐어. 이제 장사도 안하고, 몸매관리도 필요 없는데.”

 

 홍련은 수의 손을 찰싹 내리쳤다.

 

 “너 기다리다 늙어서 그런다!”

 “참나. 그렇게 같이 살자고 할 땐 거절하더니, 이제와서?”

 “그래서 다 늙어빠진 나랑은 쫑이다?”

 “누가 뭐래?”

 

 그때 문을 열고 부엌어멈이 들어왔다.

 

 “그만 싸워! 이거나 좀 받아.”

 

 수는 벌떡 일어나 상을 방 안으로 들였다.

 

 “뭘 또 많이 차렸어? 뭐가 이쁘다고?”

 

 홍련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부엌어멈은 상 앞에 수를 끌여다 앉히고는 자신도 옆에 앉았다.

 

 “간만에 세 식구 밥 좀 먹어보려고 그런다 이년아.”

 

 세 식구라는 말에 홍련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부엌어멈은 팔뚝만한 굴비를 시원하게 툭툭 뜯어서는 수의 밥에 하나, 홍련의 밥에 하나를 올렸다. 동시에 덤덤한 말도 함께 올라갔다.

 

 “나 오래 못산대. 페데른가 뭔가. 걔가 주상전하 의원이람서? 요새 계속 체한 게 내려가질 않아서 그 의원 찾아갔더만. 네 이름도 알데? 주상전하 의원이라니까 실력도 좋을 거 아니야? 양놈이라 뭔가 다르긴 하던데, 그 의원이 그러더라. 몸에 돌덩이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 오래 못산다고.”

 

 홍련은 꿋꿋하게 굴비 한 조각이 올라간 밥을 푹 떠서 입으로 넣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지만, 꾸역꾸역 씹었다. 그래야 눈물이 덜 나올 것 같았다. 수는 그 말에 수저도 들지 못했다.

 

 “어여 먹어. 사람은 원래 때 되면 다 죽는 거야. 새삼스레. 팍팍 먹어.”

 

 수는 수저를 들었다. 그 무거운 언월도도 휘두르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수저의 무게가 세상 가장 무겁게 느껴졌다.

 

 “수야.”

 “응. 어멈.”

 “홍련이가 겨우 맘 잡았으니까, 그만하고 이년 델꼬 좀 살아줘라. 그만 싸우고.”

 “응?”

 “궐에 들어가니까, 어리고 이쁜 궁녀들이 널리고 널려서 눈에 차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홍련이가 누구냐? 조선팔도 얘 보겠다고 남정네들이 줄 서고 싸우고 그거 하루 이틀이었냐.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지. 저만하면 괜찮어.”

 “알아.”

 “그럼 됐어. 혼례고 뭐고, 정화수 떠놓고 같이 살아.”

 “어멈도 같이 살아.”

 “참내! 내가 왜 너랑 살아, 이놈아.”

 “여기 어멈 집이잖아. 그럼 난 어멈도 없이 살아?”

 “저년 시집살이 이제 지겨워. 니들이나 지지고 볶고 잘 살아.”

 

 홍련은 그 한 숟갈을 씹어 삼키지 못하고 사례가 들리고 말았다.

 

 “아이고! 천천히 먹지.”

 

 부엌어멈이 물을 가지러 나갔고, 수는 그 사이에 눈물을 흘리는 홍련의 손을 잡았다.

 

 “밥 하는 거 배워라. 나랑 살려면.”

 “시끄러, 콜록!”

 “네가 시집살이 해.”

 “알았어. 콜록! 콜록!”

 “사랑해.”

 “켁! 콜록! 콜록!... 미친...”

 

 ***

 

 김구준은 온양의 군사들을 밖으로 빼냈다. 제법 되는 규모였고,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도 금방 띄었다. 이 소식을 들은 채우겸은 의아해했다.

 

 “역모를 일으킨다는 사람이 대낮에 군대를 보여? 뭔가 이상하다.”

 

 우겸은 금방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심복을 시켜 구준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눈에 띄지 않게 단 둘이 만나자 하십니다.”

 “됐다.”

 “예?”

 “전해라. 죽을 각오는 하고 있노라고.”

 

 우겸은 구준의 답변에 더 의문을 품었고, 이내 확신했다.

 

 “자네... 어쩌다 그리되었는가?”

 

 그리고 군사들을 대기시키고는 영의정이 되어 한껏 기분을 느끼고 있는 박철을 찾았다.

 

 “어째 그 자리가 마음에 드시나보오?”

 “병판께서 지금 여기에 어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씀하시지요.”

 “역모. 그리고 그 지도. 어디서 나셨소?”

 “... 예?”

 “그 귀한 것을 어찌 얻으셨느냔 말이지.”

 

 박철은 우겸의 질문에 당황해했다.

 

 “그, 그것이...”

 “그럼 다르게 질문하면 답을 하려나? 김구준이 직접 건네주었소?”

 “!!!”

 

 우겸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친구가 일을 함께 도모할 사람을 잘못 골랐군. 고맙소.”

 

 그리고 당황한 박철을 두고 나가려던 찰나 우겸은 다시 뒤돌아 보았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충고할 것이 있소만.”

 “무, 무엇입니까?”

 “그 자리. 임시직이요.”

 “예?”

 

 우겸은 피식 웃고는 박철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임시라니...?”

 

 본인만 모르는 대리인 자리였다.

 

 성의 처소. 성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방을 빙빙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봉수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전하. 차라도 내어오라 할까요?”

 “됐다.”

 “책이라도?”

 “됐다.”

 “밖으로 산보라도?”

 “조용.”

 

 그때, 유아가 급히 달려왔다.

 

 “전하!”

 

 유아의 목소리에 성은 걸음을 멈췄다.

 

 “중전?”

 

 문이 열리고 유아가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부인. 무슨 일입니까?”

 “주위를- 아니, 저와 어딜 함께 가셔야겠습니다.”“응? 어딜-”

 

 유아는 성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겨 급히 걸음을 옮겼다. 성은 유아에게 끌려가면서도 내심 기뻤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궁인들이 뒤를 따르기가 버거워졌다. 유아가 노리는 것이 이것임을 알아차린 성은 오히려 유아를 앞질러 유아를 이끌고 달려버렸다. 이내 후원 한 켠에 숨은 두 사람. 겨우 숨을 돌린 유아가 성에게 말했다.

 

 “이거 보세요.”

 

 유아는 궐 밖으로 나가 연실이 가져온 서신을 보였다.

 

 “스승님께서 조사하신 내용입니다.”

 

 성은 서신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역시나, 대비를 살리기 위해 한 짓이군.”

 “본인의 목숨을 걸어 대비를 살리고 홀로 죽을 각오를 한 듯싶습니다. 채우겸영감을 통해서라도 설득해야합니다.”

 “허나... 그렇게 한다 한들, 대비의 역모를 어찌하겠소?”

 “예?”

 “그는 나의 안위마저도 지키려 하는 것이오. 폐모. 그것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과거의 오명을 내가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결심한 것이오.”

 “해서, 그냥 두실 겁니까?”

 “방법이 없소.”

 “전하!”

 “대비의 악행은 두고두고 벌해야하는 일이나, 그래도 대비오. 성리학의 나라에서 부모를 벌하는 자식은 없소.”

 “허면... 죽어야한단 말입니까?”

 “조언을 구해야겠군.”

 

 성을 자리를 뜨려했고, 유아는 성의 손을 잡았다. 곧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내 아이를... 우리 아이를 셋이나 데려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벌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셋이라니?”

 

 성은 몰랐다. 그녀의 유산이 몇 번 인지를.

 

 “감히 용종을 해하고, 다신... 내가 당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수모를 겪게 한 그 악마를 벌할 수 없나요? 난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아픈데?”

 

 유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미안하오.”

 

 유아는 그 말에 성의 손을 놓았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내가 김구준영감을 설득하죠. 내가 그 악마를 벌할 겁니다.”

 “부인!”

 “언제까지! 대체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합니까? 당신의 곁에서 난 언제까지 이렇게 아픔을 참고 견디며 웃어야합니까? 당신은 언제 나에게 어깨를 내어줄 생각인거죠?”

 

 성은 유아의 말에 멈칫했다.

 

 “나, 당신 앞에 서 있는, 이런 화려한 것들로 치장하고 있는 나는, 죽은 시체나 나름 없어요.”

 

 유아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성은 홀로 남겨진 채 마음을 추슬렀다. 구준의 대리 역모사건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거짓 역모였다. 그럼에도 막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었고, 구준은 이를 잘 알았다. 자신이 잡혀갈 날을 고르던 구준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성이었다.

 

 “저-”

 “쉿!”

 

 구준과 성은 단 둘이 독대했다. 서로 마주보고 있지도 못하고, 강가만 바라보며 강가에 비친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적진에 홀로 오실만큼 무예실력에 자신하십니까?”

 “물론. 난 정훈세자의 아들이니까.”

 “제 군대는 훈련이 잘 되어있는걸요.”

 “그대는 아니지 않나? 책만 읽는 서생인걸.”

 “장비보단 제갈량이지요.”

 “비유가 과하군.”

 “뭘 내어주시려 오셨습니까?”

 “스승의 목숨.”

 “겁박이십니까?”

 “청국에 살 집과 자리 잡을 것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거기로 가시지요.”

 “전하-”

 “제가 오늘 중전에게 아주 호되게 원망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좋은 남편이 되지는 못하는 성정인가 봅니다.”

 “왜요? 또 뭘 서운하게 하셨습니까?”

 “그 여인의 상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어요. 내가 보지 않으려했겠지. 그러니 오랜 상처가 곯아 터져버렸지 뭡니까?”

 “중전께서도 아시게 되신 겁니까?”

 “조만간 나처럼 불쑥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나처럼 똑같이 스승님을 살리겠다하겠지만, 내 아내는 대신해 죽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건...”

 “요즘 들어 내 선택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태어나보니 세자의 소생이지만 왕이 되지 않겠다 선택할 수도 있던 그때의 선택이, 어쩌면 가장 못난 선택이 아닐까?”

 “그랬다면, 죽었겠지요.”

 

 성은 피식 웃었다.

 

 “송구합니다. 스승의 자격이 되지 못해서.”

 “아시면, 제 뜻에 따라주세요.”

 “전하.”

 “모두가 살 길을 찾자는 겁니다.”

 “...”

 “내가 시작일 겁니다. 이제 문지방이 닳도록 찾는 이들로 문선성시 일 테니.”

 

 성은 걸음을 옮겨 구준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구준은 성의 등 뒤에서 말했다.

 

 “스스로 배신자가 되려 합니다. 저도, 저를 평생 원망하던 아우가 있어서요.”

 

 성은 구준을 돌아보았다. 구준은 결국 선택했다. 밤 하늘아래 더욱 시커멓게 보이는 강물이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곳과 같아보였다. 성은 답을 하지 않고 다시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

 

 한동안 조용하던 혜빈의 처소에 문이 열리고, 홍윤희가 처소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아버지의 영의정 소식에 기분이 좋아진 박귀인의 처소였다.

 

 “혜빈마마!”

 “단장을 하고 있었느냐?”

 “아, 아닙니다.”

 

 박귀인은 서둘러 자리를 옮겨 앉았다. 상석에 앉은 윤희는 박귀인을 훑어보았다.

 

 “이젠 너 뿐이로구나.”

 “예?”

 “주상의 용종을 얻을 이가.”

 “아... 송구하옵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없지. 다만, 그러려면 용종에게 해가 되는 것은 금해야지.”

 “예?”

 “궐에 있어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쯤은 알고 있겠지? 아비가 영의정까지 하면, 그 정도는 앉아서 천리길 아니겠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대비는 역적이야. 주상이 보위에 오른 그 순간부터 아니, 그 전부터 주상을 죽이려 안달이지. 그것이 역적이지 무엇이겠어? 그러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만 만나.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내 처소로 와서 글부터 배우자구나. 용종의 어미라면 응당 글 정도는 읽고 써야, 아이가 보고 배우지.”

 “예? 제가 아이를 키울 수 있습니까? 제 곁에 둘 수 있습니까?”

 “그럼. 되다마다.”

 “허나, 중전마마께는...”

 “투기는 금물이니라. 염려 마.”

 

 윤희는 박귀인에게 다른 희망을 품었다. 이젠 그녀가 홍윤희의 재물이 될 차례였다.

 

 ***

 

 늦은 밤. 페데르는 유아의 처소에 들렀다. 유아의 맥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뭘 드셨습니까?”

 

 연실이 오늘 유아가 먹은 음식을 모두 읊었으나, 페데르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유아는 답하지 않았고, 연실이 대신 답했다.

 

 “얼굴색을 보면 모르겠어? 전하와 또 싸웠지.”

 “왜요?”

 “백선생한테서 받은 서신을 들고 전하를 만나러 가셨다가 저러고 오셨어. 이유를 알면 나도 이렇게 답답하진 않지. 그러니까 마마, 말씀을 좀 해보세요. 대체 뭘로 또 싸우셨어요?”

 

 유아는 답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유~ 답답해라.”

 

 페데르는 유아의 손을 내려놓았다.

 

 “한번 망가진 심신을 회복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마마께서 잘 지켜봐주셔야합니다.”

 “알다마다. 어련히 안 그럴까.”

 

 페데르는 유아에게 말했다.

 

 “중전마마. 저와 간만에 달밤 산보 어떠십니까?”

 

 유아는 페데르의 말에 눈을 떴다.

 

 “싫으세요?”

 

 유아는 페데르의 제안을 받아 후원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오직 단 둘이서 후원을 거닐었다.

 

 “마음이 복잡하실 땐, 이렇게 천천히 산보를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유아가 끄덕였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유아가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페데르.”

 “예.”

 “있잖아... 나...”

 “말씀하세요.”

 “나 정말...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거야?”

 

 유아의 말에 페데르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정말? 무슨 수를 써서도?”

 

 페데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유아의 얼굴엔 우울함이 가득했다.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을, 전하께 화풀이해버렸어. 내 탓인데.”

 “마마의 탓이 아닙니다.”

 “조심했어야 했어. 경계하고, 또 조심하고.”

 “마마의 잘못이 아니에요. 나빠지려 마음먹은 사람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쁜 사람이 벌을 받지 않아. 아니, 받을 수가 없어. 그게 너무 화가 나.”

 “그래서 우울하셨군요.”

 “응. 어쩌지?”

 “언젠가 벌을 받을 겁니다. 하늘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 멀리,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한 사람.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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