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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작성일 : 22-01-27 13:42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7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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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빈의 처소. 윤희는 여전히 책을 쓰는 것에 몰두해 있었다.

 

 ‘영목의 아비 낙춘은 약간 미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 리가 있겠는가? 홍영목이 주상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그때부터, 친정엔 피바람이 불었다. 친 자식처럼 저를 이끌어준 집안사람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멸문지화였다.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는 인사가 아닌가. 은혜를 모르는 것이 정녕 인간인가!’

 

 윤희의 책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이 언젠가는 그녀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었다. 그렇게 믿었다.

 

 ***

 

 구준의 집. 퇴궐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영목이었다. 대문 앞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묵묵히 구준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도승지?”

 “좌상대감. 이제 퇴궐하십니까?”

 “자넨, 요즘 입궐도 안한다지?”

 “그럴 밖에요.”

 “우선 들어가지.”

 

 그렇게 두 사람은 구준의 사랑채에서 마주보게 되었다. 술 한 병에 세 가지의 안주. 그리고 두 개의 술잔. 술상을 사이에 두고 구준과 영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준은 영목의 잔에 그리고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술잔으로 떨어지는 술이 떨어지는 소리로 적막을 깼다.

 

 “자넨 받기만 하게. 요즘 술이 과하다면서.”

 “탈이 좀 나긴 했습니다.”

 “사람하곤.”

 “은언군을 그렇게까지 몰아가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넨 더 위험했을 거야.”

 

 두 사람은 서로의 약점을 숨기고, 서로의 패도 숨겨야 하는 중이었다.

 

 “대감. 저에게 이제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가?”

 

 아니었다. 그 순간 구준은 알고 영목은 모르는 사실이 대화 속으로 숨어버렸다. 구준은 알고 있었다. 성은 아직 영목을 총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해서, 이젠 전하의 안녕만을 바랄 뿐입니다. 다행히 대비마마와 혜빈마마께서도 화해 중이 시니까요.”

 

 아니었다. 홍영목, 그는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권력 맛을 본 이후로는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구준을 밟고서라도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가길 원했다. 그가 정말 괴로운 것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권력욕과 총애를 유아에게서 쉽게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혜빈께서 빚을 지셨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알잖나? 멀쩡하던 구상군이 왜 죽었겠어?”

 “구상군이,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까?”

 “군부인에게 얘기 듣지 못했나? 죽은 시신에게서 시커먼 물이 나왔다네.”

 “독살이란 말입니까? 혜빈께서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지.”

 “헌데, 대비껜 왜 빚을 지셨습니까?”

 “혜빈이 은밀히 일을 도모하고, 대비께서 화해의 손을 내미신 거지. 궐내에서 벌어진 일일세. 군부인이 구상군이 죽었음에도 궐을 나오지 않는 것이 뭐라 보나?”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대비께서 군부인의 입을 막으려 잡아두는 것이지. 중전은 영문을 모르고 그저 과부가 된 군부인을 돌본다고만 알고 있고.”

 

 영목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구상군을 홍미령의 양자로 들이자고 제안한 것이 윤희였다. 그런데 구상군을 죽였다? 단지 몇 십년 전에 죽은 후궁에게 복수를 하고자? 영목은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지만, 왠지 공기에 취해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영목은 눈을 부릅떴다.

 

 “헌데, 대감께선 왜 은언군을 죽이려 하셨습니까?”

 “내가? 그럴 리가. 대신들의 중론이 그러하지 않았나?”

 

 영목이 호탕하게 웃었다.

 

 “대감. 장사 하루 이틀 하십니까? 절 무시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구준도 피식 웃었다.

 

 “그 또한 혜빈의 뜻이었네. 대비께서 화해를 청하며, 혜빈께 부탁을 받았다더군. 혜빈의 친정이야, 자네가 싹 쓸어버렸잖아? 그렇다고 자네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겠지.”

 “그렇군요.”

 

 구준은 영목이 무언가 숨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의 미끼를 던지고자 했다.

 

 “헌데, 구상군을 양자로 들일 생각은 어찌했나? 참으로 기발하고 당돌한 생각이네.”

 “이래봬도 저도 왕가의 자손입니다. 그 정도는.”

 “그런가? 그래도 중전의 나이가 아직 창창한데.”

 “중전은 이제 회임을 할 수 없으니까요.”

 “소문이 사실인가?”

 “아시잖습니까?”

 “나야 소문으로만 들었지.”

 

 능구렁이.

 

 “제가 대감을 찾아온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말하게.”

 “제 누이가 죽은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홍빈이? 원래도 몸이 약하지 않았나?”

 “아주 많이 좋아졌었지요. 갑자기 세상을 떠날 만큼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의심스러운가?”

 

 영목은 그때 주먹을 꽉 쥐었다.

 

 “김유아.”

 

 적의 적은 동지이니.

 

 “하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지. 요즘 규장각의 인사도 중전이 천거를 한다지?”

 

 총애를 잃은 자의 발버둥이었다.

 

 “은언군의 식솔이 미리 강화로 터전도 마련했다는데, 그게 중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합니다.”

 “배갯머리송사로군.”

 “제가 주상전하를 찾았을 때, 중궁이 직접 그 말을 한 적도 있었지요.”

 “저런. 주상의 총기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 요녀 때문이었군.”

 

 요망한 여자. 권력에서 밀려난 못난 사내들의 머릿속엔 피해망상이 가득했다. 그들의 동맹결성. 마녀사냥의 시작이었다.

 

 ***

 

 성은 영목을 불렀다. 벌써 며칠을 불렀다. 그래서 수도 영목에게 보냈었다. 다행히 영목은 멀쩡히 성의 곁으로 돌아왔다.

 

 “구명겸의 유서를 조사해. 그 유서에 나온 관련자들은 모조리 조사해야한다.”

 “예, 전하.”

 

 그러나 영목은 물러나지 않았다. 성은 굵은 눈썹을 들썩였다.

 

 “왜?”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엇이냐?”

 “들어오시게.”

 

 영목의 부름에 문이 열렸고, 문 뒤에서 구상군의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복차림으로 아주 초연한 모습이었다.

 

 “군부인이 아니냐?”

 “전하!... 흑...”

 

 군부인은 성이 자신을 부르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구상군의 일은 참으로 안타깝다.”

 “전하! 군마마께선 독살되었나이다. 범인을 잡아주소서!”

 “뭐라? 독살?”

 “대비마마께오서 차마 끔찍하여 전하께는 아뢰지 말라 하시어 숨겼으나, 며칠 전 제 꿈에 돌아가신 제 지아비가 꿈에 나와, 억울한 죽음을 풀어 달라 청하시더이다.”

 “어찌 독살이라 확신하느냐?”

 

 영목이 대신 답했다. 그 사이 군부인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손끝이 검게 변한 것은 물론, 코와 귀, 입 모든 구멍에서 시커먼 핏물이 흘러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하옵니다.”

 

 성에게 그것은 트라우마였다. 정훈세자의 죽음과 유사한 모습. 성은 다시 떠오르는 끔찍함에 눈을 질끈 감고는 애써 이겨내려 노력했다. 누구보다 절친한 벗인 영목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건드린 것이었다.

 

 “범인은 분명, 궐 안에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또?”

 “홍빈마마의 죽음도 유사하옵니다. 같은 독이옵니다.”

 “뭐라?”

 

 영목은 또 다른 사람을 불렀다. 이번엔 어의였다.

 

 “죽여주시옵소서!”

 

 어의는 들어오자마자 엎드려 죄를 고했다.

 

 “너는 무엇이냐?”

 “홍빈마마의 몸에서 나온 독과 구상군마마의 몸에서 나온 독이 같사옵니다.”

 “두 사람을 차례로 죽였단 말이냐?”

 

 영목은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로 성에게 말했다.

 

 “분명 한 사람이옵니다. 홍빈마마와 구상군마마에게 원한을 산 사람의 소행이옵니다.”

 “짐작하는 사람이 있느냐?”

 

 영목은 머뭇거렸다. 아니, 머뭇거리는 척 했다.

 

 “말하라.”

 

 성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끝내 영목의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중전마마이시옵니다.”

 “!!! 홍영목. 말을 삼가라.”

 “전하!”

 “그 입 다물라!!”

 

 성의 눈에 불길이 타오르는 듯 보였다. 영목도 그 다음은 차마 대들 수 없었다.

 

 “다 물러가라.”

 

 하지만 영목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도승지. 과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가?”

 “떳떳하심을 보이셔야 하옵니다. 중궁전을 조사할 수 있게 해주소서.”

 “미쳤구나.”

 “제 입 밖에 나온 말이 곧 궐에 퍼질 것이옵니다. 소문이 더는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떳떳하시다면 중궁전을 제가 조사함이 옳습니다.”

 “네 누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은 나 또한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누구보다 중전이 가장 슬퍼했느니라. 너만큼. 그런데, 중전이 미령이를 죽여? 게다가 구상군까지- 네가 정녕 미친 것이냐? 중전이 뭘 했다고 네가 감히! 그건 나를 능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영목은 바닥에 엎드렸다.

 

 “전하를 향한 충정밖에는 없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이제 그것뿐입니다. 진심을 알아주시길 바라옵니다.”

 

 성은 다시 두통이 밀려왔다. 얼굴에 열이 쏠리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물러가라.”

 

 영목이 자리를 뜨고, 성은 봉수를 불렀다.

 

 “전하. 용안이...”

 “페데르.”

 “예!”

 

 성은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았을 뿐더러, 두소 신도시 마을을 개발하는데 미친 듯이 집중하느라 기운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그 사이 일이 벌어졌다.

 

 “시작하라!”

 

 성이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는 사이, 영목이 금군들을 동원해 중궁전을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아는 성의 곁에서 간호를 하느라 이 이야기를 뒤늦게 듣게 되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중전마마께서 처소에 계시지도 않는데 수색이라니요?”

 “비켜라! 감히 누구 앞을 막느냐?”

 

 중궁전은 금군들의 수색에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어찌 감히 중전마마의 방을 뒤질 수 있단 말입니까?!”

 

 궁녀들은 유아가 머무는 방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네 이년! 하는 짓이 수상하구나. 이년들을 모두 끌고 가 조사하라!”

 

 영목은 중궁전의 나인들을 모조리 잡아가버렸다. 그리고는 고문을 시작했다.

 

 “아악!!!! 아아악!!!!!!!”

 “중전이 무엇을 전하라고 시키더냐? 자백하면 살려줄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매우 쳐라!”

 “악!!!! 아악!!!!! 아-악!!!!!”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 목숨이 중하다면 당장 자백해!”

 “난 몰라악!!!!!!”

 

 유아는 나인들의 고문 소식에 영목을 찾아왔다. 아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중전마마.”

 “도승지. 죽고 싶은 것이냐?”

 “이 모든 것이 중전마마를 소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쫘악-!’

 

 유아는 영목의 뺨을 갈겼다. 영목의 목 고개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쏠렸다. 그 순간 영목의 눈빛에 살기가 느껴졌다. 유아의 눈빛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영목을 노려보았다.

 

 “네가 감히. 나를 기만해? 내가 홍빈을 죽였다? 권력욕에 온갖 술수를 쓰다, 아우까지 희생시킨 못난 놈 주제에. 발악을 하는 구나.”

 “입! 조심하셔야 합니다. 마마께선 지금 결코 유리하지 않으십니다. 전하의 총애가 언제까지 되겠습니까?”

 “내가 한낱 계집질로 전하의 곁에 있다 보느냐? 사내의 오만이고 착각이야.”

 

 영목은 유아에게 바투 다가가 속삭였다.

 

 “네 년이야 말로, 착각하는구나. 넌 주상을 몰라.”

 

 유아도 기세에 지지 않았다.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일 뿐이야. 예전처럼 나비나 부르고, 청산이나 찾아가지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더 버티면, 내가 널 죽일 거야.”

 “그래보던지.”

 

 영목은 중궁전뿐만 아니라, 대비전은 물론, 윤희의 처소도 건드렸다. 겉핥기와 다름없는 수색이었지만, 이 또한 윤희에게는 타격이 있었다. 그리고 성이 페데르의 간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전. 어찌 안색이 좋지 않소?”

 “아닙니다. 좀 괜찮으십니까?”

 “한결 괜찮아졌소.”

 “다행입니다.”

 

 다행이지 않았다. 유아는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실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나서서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고하려 할 때, 봉수가 나섰다.

 

 “전하. 이제 옥체 보전하신 상황에 드릴 말씀은 아니옵니다만, 사안이 급한지라. 지금 중궁전이 쑥대밭이 되었나이다. 아니, 궐 안이 쑥대밭이옵니다.”

 “뭐라? 어째서?”

 

 유아는 봉수의 말에 결심했다. 이젠 참지 않으리라.

 

 “홍영목이 중궁전 나인들을 모조리 잡아다 고문하고 있습니다. 홍빈과 구상군을 제가 죽이라 사주했다고 그리 자백하라 한다 합니다.”

 “뭐라?! 도승지를 들라하라!”

 “전하. 구상군이 갑작스레 죽지 않았다면, 홍영목은 구상군을 전하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겁니다.”

 “에이~. 영목은 그런 큰일을 도모할 사람은 못 됩니다.”

 “예전엔 그랬겠죠. 전하의 벗이었을 때. 하지만 그 사람은 이제 권력을 먹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지를 맛보았으니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요. 그러니 중전인 저마저 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아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전했다.

 

 “그림자가 오랜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송구하오나,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성은 서신을 꺼내 읽었다. 그림자. 김구준이 보낸 서신이었다.

 

 ‘홍영목이 신을 찾아와 겁박을 하더이다. 그동안 대비의 악행을 자신이 알면서도 덮었다는 듯 말하더군요. 영목은 구상군을 통해 진짜 왕족이 되려는 것 같습니다. 허나, 그가 죽으며 일이 틀어져버렸지요. 듣자하니, 청국의 사신을 이용해 전하에게 후계자 책봉을 재촉해 달라며 뇌물도 썼다 합니다. 영목을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종묘사직을 어찌 어지럽힐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손을 잡는 시늉을 할 것이니, 신호만 주시옵소서. 알아서 대처하겠나이다.’

 

 영목이 모르는 또 한 가지가 있었다. 구준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힘을 주고받은 관계였다. 성의 그림자. 세상엔 둘도 없는 대립관계였지만, 두 사람은 서신을 통해 그림자 정치를 하고 있었다.

 

 “도승지에게 휴식이 필요하겠군. 상선은 어서 도승지를 들라 해.”

 

 영목은 계속해서 중궁전의 나인들을 고문했고, 봉수의 부름에 하던 일을 멈추고 성의 앞에 섰다. 성은 멀쩡한 모습으로 영목을 맞이했다.

 

 “얘기는 들었다. 이제 그만 하라.”

 “전하. 아직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그만하라!”

 

 성은 더 화가 났지만, 유아의 신신당부로 겨우 마음을 차분히 다잡았다.

 

 “영목아. 넌 마음고생이 많았어. 그래도 아직 벗인데 왕이랍시고 내가 널 신경쓰지 못했다.”

 “전하...”

 “나비야~ 하던 네 곡조도 그립고. 청산 유람하면서 마음도 추스르고 그럼 좋잖아.”

 “전하.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잠시, 마음 추스르고 와.”

 “전하!”

 “넌 안정이 필요해. 그렇게 해.”

 “싫습니다! 제가 어떻게. 어떻게 전하의 곁을 떠납니까? 제가 아님, 전하의 곁을 누가 보필합니까? 제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전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목아.”

 “아니요. 안 합니다! 전 계속 조사를-”

 “탄핵상소가 산더미인데, 왜 숨겼어?”

 

 영목은 움찔했다. 그동안 그의 강압적인 태도로 젊은 대신들이 영목의 탄핵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었다. 하지만, 영목은 도승지라는 지위를 이용해 그 상소를 모두 숨겼다.

 

 “영 쉬라는 게 아니야. 마음만 추스르고 있어. 여기 정리는 내가 할 테니.”

 “... 왜요? 여인이 그리 좋습니까? 좋아 미칠 것 같습니까? 전하! 성아! 정신 차려! 총기를 잃었어. 계집 하나로 너도 여느 사내와 다름없이 여인의 치마폭에 눈이 멀고 있다고!”

 “뭐라? 벗이라 해주었더니, 감히 내 이름을 불러?”

 

 성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영목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마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앞에 둔 사냥개마냥 광기어린 표정이었다.

 

 “역모를 꿈꾼 것이 사실이었구나. 홍영목. 밖에 삼정승은 들라!”

 

 문이 열리고, 삼정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인 채우겸은 혀를 끌끌 찼다. 구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 들었겠지.”

 “예. 전하.”

 “홍영목을 파직한다.”

 “저언하-!!!!!”

 

 영목은 무릎을 꿇었다. 절망. 지금의 영목이 그러했다. 권력에 미쳐가던 영목에게 브레이크를 건 것은 성이 아니라, 구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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