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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79. 괘씸죄
작성일 : 22-01-27 13:41     조회 : 197     추천 : 0     분량 : 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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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홍귀인의 양자로 은언군의 아들 구상군이 어떠하시옵니까?”

 

 밤. 성은 고민에 빠졌다. 영목과 단 둘만 있는 처소 안. 누가 어떤 머리에서 생각해 낸 것인지는 몰라도 이 상황은 성을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 성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성은 처소를 나와 유아가 있는 중궁전으로 향했다. 꽤나 다급해보였다.

 

 “중전.”

 “전하.”

 “운종가 식구들은 잘 만나고 왔소?”

 “예. 이제 금난전권에 대한 일도 조금은 해소가 된 듯 합니다.”

 “다 부인 덕이오. 당신이 아니었다면, 육의전 상인들을 설득하는 일도 어려웠겠지.”

 “만영고모님의 역할이 가장 컸지요.”

 “그 자는 따로 공을 치하할 것이오.”

 “헌데, 그 말씀을 하시러 오신 건 아닌 듯 싶고... 무슨 일이십니까? 용안이 어둡습니다.”

 

 성은 잠시 머뭇거렸다.

 

 “당신한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서.”

 “무엇입니까?”

 “홍귀인의 일이오.”

 

 유아는 소문이 사실로 돌아서자, 실망했다.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말해요.”

 “은언군이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이 커질 것 같소. 그렇게 되면, 아들을 보호하기가 어려워지겠지.”

 “그래서요?”

 “내 조카, 구상군이라도 구하려면, 그 아이를 내 양자로 입적해 보호하는 수밖엔 없소.”

 “양자요?”

 “싫다는 거 잘 알고 있소. 당신이나 나나 아직 젊고. 박귀인도 아직 있고.”

 “순전히 그것뿐입니까?”

 “응?”

 “페데르를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다 알게 되신 것이지요.”

 “부인...”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다만, 절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합니다. 전하의 후사를 낳지 못하는 죄인이 되었지만.”

 “왜 그런 말을 하시오. 아니오. 그런 것 아니오.”

 “양자. 들이시지요.”

 “미안하오.”

 “괜찮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이해하오.”

 

 아니. 당신은 날 이해하지 못해.

 

 ***

 

 “양자라니요?!”

 

 김구준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은 성이 양자를 들이는 일에 반대했다. 누구보다 박귀인의 아버지인, 이조판서 박철은 매우 발끈했다.

 

 “우리 귀인마마는 어쩌고요?”

 “다들 진정하시고.”

 “무슨 꿍꿍이인지부터 알아 내야합니다.”

 “홍영목, 그 놈이 분명 간계를 쓰는 겁니다.”

 

 구준은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이미 영목과의 거래가 끝난 문제였다.

 

 “영상께선 무슨 말씀이라도 해 보세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괜히 일 키우지 맙시다. 박귀인이 전하의 마음만 사로잡았다면, 벌써 회임을 몇 번이나 하고도 남았겠지. 한낱 상궁도 회임을 하는데, 귀인은 대체 뭘 한답니까?”

 

 그러자 이조판서 박철의 얼굴에 어둠이 내렸다.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대비께서도 실망이 오죽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박귀인이 편상궁을 지목하는 바람에, 대비전 식솔들이 모조리 없어져서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박철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게 대비께서 자중이라도 하셨으면, 그런 꼴은 안당하지요.”

 “이보세요, 이판! 말씀이 지나치네.”

 “박귀인의 품에서 왕자라도 생산하면, 그땐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오죽하면 양자를 들이겠다 허락하겠습니까? 옆에서 잘 좀 보좌하시란 말입니다.”

 

 구준이 자신의 편을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이렇게 밀고 나가는 것은, 미워도 때리고 싶어도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성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성은 호시탐탐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성희를 쳐내려고 했다. 구준은 그런 왕의 칼에서 성희를 지켜내고 싶었다.

 

 ***

 

 “이런...”

 

 우겸의 집. 우겸의 아내는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엔 거상 김만영이 서 있었다. 만영은 우겸의 아내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습니까, 마님.”

 “오랜만일세.”

 

 두 여인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 우겸이 사랑채에서 나왔다.

 

 “왔는가?”

 “예, 영감.”

 “들어오게.”

 

 만영은 우겸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부인. 차 한 잔 부탁합니다.”

 “예. 서방님.”

 

 우겸 아내는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미묘한 공기의 흐름. 암투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안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만영은 우겸과 함께 사랑채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부엌으로 걸어가던 우겸의 아내는 멈칫했다. 오랜 시간 느껴온 감정.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마냥 웃으며 볼 수도 없는 상황은 그녀가 결혼을 한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어찌 집으로 부르셨습니까?”

 “내가 매번 자네 상단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아. 그리고 요즘 바빠.”

 “전하께서 양자를 들이신다고 하던데요.”

 “응.”

 “어쩌실 생각이시랍니까?”

 “구상군의 처가 형님이 구명겸인가 보더군.”

 “예?!”

 “은언군이 전하께 서신을 보냈다네.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래도 그렇지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중전께서도 대강은 아실 건데?”

 “사내들이란 참으로 배려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내가 뭘?”

 

 만영은 우겸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때, 우겸의 아내가 인기척을 했다.

 

 “서방님.”

 “어, 들어오세요.”

 

 우겸의 아내가 들어오자, 만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반을 받아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겸의 아내는 어색한 미소를 슬쩍 지어보이고는 차를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만영은 불편에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긴장이 되나?”

 “그럼, 안 됩니까?”

 “사람하곤.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요. 다른 여인과 사랑채에 함께 있는데, 부인께서 신경이 쓰이시겠지요.”

 “저 사람은 그렇지 않아.”

 “정말. 무심하기 그지없으십니다. 좀 변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차나 마시게.”

 “다음부터 오시기 힘드시면 연통하세요. 가마라도 보내드릴 터이니.”

 “그럼 좋고.”

 

 ***

 

 대비전. 성희는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혜빈도 가만히 있을 겁니다.”

 “글쎄요.”

 “지금도 아무 반응이 없잖습니까?”

 “홍귀인의 후사가 생기면 혜빈에게 나쁠 건 없지요.”

 “구명겸 그 자. 그 자 하나면 다 끝내겠다했다고요?”

 “예.”

 “그럴 순 없지.”

 “그럼요?”

 “이참에 홍영목 그 놈도 흔들어야겠습니다.”

 “거래가 있는데 어찌...”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습니다. 오라버니는 언제부터 그렇게 순진하셨습니까?”

 “이판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죠. 역시 오라버니십니다.”

 “박귀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서겠지요.”

 “은언군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분간은 내가 혜빈과 화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좋고요. 제발.”

 

 ***

 

 조정. 이조판서 박철을 중심으로 한 김씨 외척들은 성에게 상소문을 시작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전하! 서둘러 구명겸을 잡아들이소서!”

 “의금부에서 일부러 구명겸을 잡아들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나이다. 하루라도 빨리 근본을 뽑아 색출해야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온 나라가 구명겸의 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구명겸의 얼굴과 죄명을 적은 방이 나붙었다.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일등공신에는 운종가 사람들이 있었다. 백씨는 물론, 청씨, 신씨에 비단가게 호석이까지 오는 손님들에게 방을 나눠 주며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이 놈이 아주 죽일 놈이지. 중전마마한테 칼을 휘두르고, 주상전하까지 해하려 한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오.”

 “어머나!”

 “보면 꼭 관아에 고하시오. 꼭!”

 

 덕분에(?) 구명겸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벽과 벽을 오가며 숨어 지내야 했다. 집으로 가지도 못했다. 집안의 식솔들은 의금부로 죄다 끌려가 나오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김구준의 집이었다. 늦은 밤. 김구준의 집 담장을 넘는 검은 그림자. 그림자는 날쌘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드디어 구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감.”

 

 구준은 화들짝 놀랐다. 어둠속에서 구명겸의 모습이 보였다.

 

 “자네!...”

 “잘 지내셨습니까?”

 “고생이 많네.”

 “예. 많습니다.”

 “대비께서 얼마나 전전긍긍이신지 모르네.”

 “그러십니까?”

 “자네도 돌아다녀봐서 알겠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하네. 박귀인의 아비가 눈이 돌아서는... 내가 막을 재간이 없네, 그려. 미안허이.”

 “절 숨겨주십시오. 이곳에 있다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자넬 잡는 사람이 홍영목일세. 내 집이라도 못 들어올 인사가 아니야. 주상을 등에 업은 자가 아닌가?”

 “이 모든 것이 홍영목 때문입니까?”

 “자네가 중전을 제대로 죽이지 못한 것이 한 몫 했지.”

 “그때도 홍영목이 제 앞을 막았습니다. 괘씸한!...”

 “그 얘기는 들었나? 구상군이 주상의 양자가 되었네.”

 “예?! 양자라니요? 허면, 제 누이는요?”

 “졸지에 군부인이 된 것이지.”

 “허면, 제가 살 길이 열린 것입니까?”

 “아마도. 그러니 이만 고생하고 자수하시게. 자네 누이가 군부인에다가, 이젠 왕족 아닌가. 살 길이 있을 것일세. 나도 그만큼 돕겠네.”

 “믿어도 됩니까?”

 “그럼! 고생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쓰럽구먼.”

 

 늦은 밤의 설교에 구명겸은 순순히 금군들에게 잡혔다.

 

 “전하! 구명겸을 잡았나이다.”

 

 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째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더이다.”

 “참으로 간이 큰 자로고. 의금부판사가 하나도 빠짐없이 연루된 자들까지 모두 실토 받으라.”

 

 ***

 

 성희는 자신이 아끼는 청국 왕실의 차를 가지고 혜빈에게 향했다.

 

 “마마. 대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

 “뭐?”

 “어찌할까요?”

 “듭시라 해.”

 

 성희와 혜빈이 마주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잘 지내셨소, 혜빈?”

 “예. 그동안 격조해 송구합니다.”

 “뭘. 그럴 만 했지. 차나 한 잔 할까 하여 왔네만.”

 “예, 그러시지요.”

 

 성희는 기분이 꽤나 좋아보였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난 자네도 그런 줄 알고 왔는 걸?”

 “제가 왜요?”

 “임양제의 핏줄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 않은가?”

 “임양제라면... 은언군 말씀이십니까?”

 

 양제 임씨. 세자의 후궁 중에서 가장 높은 신분인 양제에 임명된 사람이었다. 정훈세자가 아꼈던 여인. 가장 편하다 했었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의 아들이 은언군이었다. 윤희는 임씨를 싫어했다. 은언군이 임씨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죽이고 싶다 매일 아침 주문을 외울 만큼 싫어했다. 그랬던 은언군이 이제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으니, 성희가 기분이 좋을 것이라 장담할 만 했다.

 

 “구상군이 주상의 양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주상도 알겠지. 이 일에 은언군은 희생이 되어야 함을. 그러니 구상군만은 살리려 애쓴 것 아니겠나?”

 “그렇군요...”

 

 성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내가 죽여주랴?”

 “무슨 험한 말씀을 하십니까?”

 “내 며느리가 그리 싫다는데, 시어머니인 내가 그것쯤은 해 줄 수도 있지. 화해의 선물도 할 겸.”

 “아니요. 구상군은 건들지 마십시오. 제발.”

 

 윤희에게 구상군은 또 하나의 돌파구였다. 혹여, 성희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다 성이라도 독살을 하게 된다면, 다음 보위를 이을 유일한 후사는 구상군이 된다. 그 구상군을 보위에 올린 사람은 윤희가 되고, 윤희는 그토록 꿈꾸던 정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흠... 아쉽군.”

 

 동상이몽. 성희는 윤희의 반응에 아쉬워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구상군을 그렇게 만들자 제안한 최초의 사람이 홍영목이 아닌, 홍윤희였음을 알아차렸다. 속으로 무릎을 탁 칠만큼 안타까운 뒷북이었다.

 

 ***

 

 “전하! 구상군은 구명겸과는 친족이옵니다. 전하의 양자가 된 구상군이 분명 역심을 품고 공모하였을 수 있나이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은언군이 구상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홍영목과 짜고 역모를 도모했다는 제보가 있었나이다.”

 “구상군을 폐하소서.”

 “당장 은언군과 도승지 홍영목을 조사하셔야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

 

 영목은 분노했다. 구준은 그 이후 영목을 피했다.

 

 “김구주-운!!!!”

 

 구명겸은 의금부 옥사에서 자백했다.

 

 “내가 중전을 죽이려 했소. 다시는 주상의 핏줄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구상군을 위함이었소!”

 

 이조판서 박철을 비롯한 세력들은 멈추지 않았다.

 

 “은언군이 몰랐다 할 수 없나이다! 은언군을 사사하소서.”

 

 그렇게 5일이 지난 때였다.

 

 “서방님, 서방님!!”

 

 구상군의 상태가 심각했다. 며칠 전부터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뒹굴더니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식은땀을 흘리다 못해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전하. 구상군이 숨을 거두었나이다.”

 “뭐라?!”

 

 대신들은 구상군의 죽음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다.

 

 “전하! 은언군을 벌하소서!”

 “괘씸한지고!”

 

 성은 대신들을 며칠 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아에게 속상함을 토로했다.

 

 “여론이 그러하니, 무리하지는 마소서. 구상군이 안타깝게 죽어버렸으니. 이제 저들도 잠잠해 질 것이옵니다. 다만, 은언군의 문제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으니 유배정도로 하심이 어떠십니까?”

 “유배라니요. 가뜩이나 구상군이 죽은 이후로, 아우가 죽 한 숟갈 뜨는 것도 힘들어 한다는데.”

 “식솔들을 미리 강화로 보내 이사하면 되잖습니까?”

 “아! 그거 좋은 생각이오.”

 

 ***

 

 “구명겸.”

 “대비마마!”

 

 의금부 옥사. 늦은 밤, 구명겸을 찾아온 성희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수고했네.”

 “예? 이제 나갈 수 있는 것이옵니까?”

 “그럴 리가.”

 “마마!”

 “잘 했네. 일이 틀어져서 말이야. 구상군이 그만 죽어버렸지 뭔가?”

 “그럼...”

 “자네의 식솔은 내가 잘 보살펴주겠네. 귀한 희생. 잊지 않음세.”

 “마마! 마마!!”

 “주상이 자넬 죽이지 않더라도, 내가 자넬 죽였을 거야. 뭘 해도 자네의 죽음은 이미 결정 되었다네.”

 “어째서! 내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그러게.”

 

 다음 날. 구명겸은 모든 사건을 일으킨 주범으로 사형대에 올랐다. 버림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이 무엇인 들 못하겠는 가만은, 이상하리만큼 세상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려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마저도.

 

 “감히, 주상전하와 중전마마를 시해하려 한 생각부터가 참으로 괘씸하도다. 또한, 조정과 나라의 기강을 기만하여 중죄를 짓고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한 것 또한 죄가 크도다. 반성하는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가장 무거운 벌로 죄를 대신하라! 죄인, 구명겸을 능지처참에 처한다!”

 “난 죄가 없소! 난 대비에게 충성한 죄 밖에 없단 말이오!!”

 

 성희는 예쁜 비단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괘씸한지고. 사내 녀석이 저리도 줏대가 없어서야.”

 

 그렇게 구명겸의 죽음으로 사건의 진짜 뿌리는 다시 저 깊은 뿌리 속으로 묻혔다.

 

 “전하! 은언군도 벌하소서.”

 “이보세요, 영상!”

 

 구준은 멈추지 않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불안해 지는 것은 영목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압박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만히 방관중인 혜빈, 윤희였다.

 

 “마마. 이게 다 마마께서 제안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요?”

 “지금 은언군이 사사되기라도 하면, 홍가의 기반도 위태롭습니다. 저를 공격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게요.”

 

 대답만 하는 앵무새를 앉혀놓고 대화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턱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에 대화를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영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희를 내려다보았다.

 

 “이래서 여인과는 일을 도모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뭐라?”

 “정훈세자께서 승하하신 지도 수십 년입니다. 아직도 투기라니요.”

 “네 이놈! 감히 나를 기만해?”

 “설마... 이걸 노렸던 겁니까?”

 “나라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지.”

 “최근엔 대비와 마주하셨다고요? 두 분이 언제 그렇게 다정하셨는지.”

 “아니라니까!”

 “구상군은 왜 죽은 겁니까?”

 “병으로 죽었잖소.”

 “멀쩡히 사냥까지 다녀온 사람이 병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대의 망상이 심해졌군. 잠시 쉬는 것이 어떻겠소?”

 “역시... 그랬군.”

 

 영목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윤희는 그 기운에 약간 움찔했다. 어딘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표정. 영목은 그 비밀을 캐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보 후퇴를 선택했다. 윤희를 압박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그녀의 둘째아들, 인선군이었다.

 

 “어머니.”

 

 인선군의 안달 난 표정을 보아하니, 똑같은 말이 반복됨이 예상되었다. 윤희는 시선을 피하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정작 와서 이야기해야 할 사람은 자신을 찾지도 않았다.

 

 “그만하세요.”

 “은언군은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상군이 죽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요.”

 “내가 뭘 어찌하겠습니까? 주상이 알아서 하시겠지요.”

 “전하께서도 곤란한 상황이질 않습니까? 저들이 작정을 하고 밀고 들어오잖습니까?”

 “그런 이야기라면, 도승지에게 가세요. 난 모릅니다.”

 “어머니!”

 “너도 이 어미가 구상군을 죽였다 보느냐?! 내가 투기로 그 부자를 죽이려 든다 그렇게 믿어?”

 “어머니...”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했던가. 윤희의 발끈하는 반응이 그랬다. 은언군은 어찌되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행동에 실망했다.

 

 “쉬십시오.”

 

 윤희는 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다 들춰진 기분이었다. 정훈세자가 그 후궁을 품에 안았던 그때. 자신이 겪었던 굴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져 화가 났다.

 

 “나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하지 않았단 말이다.”

 

 후궁은 윤희의 강제 아닌 강제 같은 제안으로 정훈세자 몰래 궐을 떠났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것인지 정훈세자는 귀신같이 그 후궁을 찾았고, 결국 그 품에서 아들 둘이 태어났다. 심지어 은언군은 자신의 둘째아들의 출산 날짜에서 고작 일주일 늦게 태어났다. 비참함, 배신감, 분노는 몇 십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은언군은 선대왕들의 보살핌으로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윤희는 궐을 빠져나갔고, 볕도 잘 들어오지 않는 소나무 숲을 걸었다. 인적 하나 찾기 어려운 곳에 작은 봉분이 있었다. 비석도 없는 이곳이 한때는 세자의 사랑을 받았던 후궁의 무덤이라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받은 빚은 잊지 않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윤희는 소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바람을 느꼈다.

 

 ‘솨아-’

 

 볕에 데워진 바람은 이상하리만큼, 윤희의 곁으로 다가올 때쯤 식어버렸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윤희의 곁을 빙 돌아 날아갔다. 윤희는 그제야 오랜 시간 품어온 복수를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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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 너는 어디에 있는가 2022 / 1 / 27 188 0 5311   
84 84. 피 묻은 적삼이여(2) 2022 / 1 / 27 189 0 5514   
83 83. 피 묻은 적삼이여(1) 2022 / 1 / 27 186 0 6858   
82 82. 추락에도 날개는 있다 2022 / 1 / 27 182 0 7682   
81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2022 / 1 / 27 186 0 7442   
80 80. 당신의 그 사람 2022 / 1 / 27 172 0 5712   
79 79. 괘씸죄 2022 / 1 / 27 198 0 8520   
78 78. 적과 아군 그 사이 2022 / 1 / 27 194 0 6977   
77 77. 두 얼굴의 왕 2022 / 1 / 27 189 0 6712   
76 76. 지킴의 무게에 대하여 2022 / 1 / 27 183 0 6566   
75 75. 젊은 날의 슬픔 2022 / 1 / 27 181 0 9694   
74 74.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2022 / 1 / 27 181 0 11072   
73 73. 한 뼘만 더 2022 / 1 / 27 182 0 9327   
72 72. 이별한 그 날 2022 / 1 / 27 174 0 7058   
71 71. 신의 장난인가 2022 / 1 / 27 184 0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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