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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73. 한 뼘만 더
작성일 : 22-01-27 13:39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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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세자가 잠든 융릉으로 향하는 길. 성의 행차에 백성들이 모두 나와 그를 반겼다. 성은 정훈세자가 그러했듯이 백성과 눈을 마주했고, 미소를 건넸고, 때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뒤를 따르던 윤희가 잠잠해졌다. 윤희는 가마 안에서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전하! 부디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십시오!”

 “전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상감마마!”

 “상감마마 행차하시네~ 얼쑤~!”

 

 윤희는 바깥으로 들리는 백성들의 소리에 정훈세자가 떠올랐다. 성은 백성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마마! 만수무강하십시오!”

 “고맙구나.”

 “주상전하! 망극합니다!”

 “당장 해결해 주라 할 터이니, 염려 말라.”

 

 성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백성과 함께 융릉으로 향했다. 윤희는 가마의 창문을 살짝 열어 바깥을 살펴보았다. 저절로 손을 하늘로 뻗어 천세를 외치는 백성하며, 저마다 기쁘고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취타의 음악소리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고, 성에게 자신의 품에 있던 먹을 것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솨---아----’

 

 비가 내렸다. 소나기였다. 갑작스런 비에 말에 타고 있던 성은 비를 모두 맞을 판이었다. 백성들도 소나기로 인해 우왕좌왕 했다. 곁에 있던 영목은 서둘러 행차를 멈추었고, 금군들에게 임시 우산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때였다. 백성들이 어디에서 멍석과 우산을 구해서는 모두 금군들에게 건넸다. 백성들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성이 비를 무사히 피했을까를 살폈다. 성은 이를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빗소리가 참 좋구나.”

 “곧 그칠 것이옵니다.”

 “처마가 있구나. 잠시 피하자.”

 “예?”

 

 영목의 만류에도 성은 근처에 보이는 초가집의 처마 아래로 뛰어 들어갔다. 성의 움직임에 금군들이 우르르 성의 뒤를 따랐다. 백성들은 의아했지만, 이를 호쾌하게 받아들였다. 비를 피하다 졸지에 성의 곁에 서게 된 노복 하나가 능청스레 성에게 말을 걸었다.

 

 “나라님도 비에는 꼼짝 못하십니다?”

 “하하하! 그렇구만. 내가 추운 걸 못 견뎌.”

 “저기 양반님들은 다들 우산을 준비했나본데요?”

 

 노복의 말에 행차를 따르던 관리들을 보게 된 성은 웃음이 터졌다. 미리 준비를 해 온 관리들이 저마다 우산을 쓰고 성을 빤히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임금님이 여기 계시니까, 어쩔 줄을 모르네요.”

 “자네, 내가 두렵지 않나?”

 “두렵죠. 헌데, 임금님은 제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뭐라?”

 

 노복의 말이 도를 넘어서는 것 같자, 영목과 금군들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그러나 성은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곤 노복을 향해 웃어보였다. 보통 노비가 아니었다. 말에 가시도 있고, 숨은 의미도 있었다.

 

 “허~ 참! 그리 말하니 갑자기 두렵군. 내 오금이 저릴 만큼 두렵네. 좀 봐주게. 비가 그칠 때까지만.”

 “그러지요.”

 

 능청스레 말을 받아치는 노복을 보며 성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성이 웃자,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백성 모두가 웃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윤희의 가마에도 들려왔다.

 

 “하하하하하!”

 “이게 무슨-”

 

 윤희가 가마의 창문을 열어 보니, 성이 초가지붕 아래에서 백성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윤희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랜만이구나. 내 아들.”

 

 이 성이라는 아이는 웃음도 참 예쁜 아이였다.

 소나기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성은 처마 아래에서 우산을 쓴 백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뒷간에 빠져서는 허우적대는 꼴이 아주 우스웠지요.”

 “고놈 아주 고소하구나! 하하하하!”

 “눈은 시퍼래가지고는-”

 “눈이 시퍼래?”

 “예. 바다처럼 새~ 파란 놈입니다. 헌데, 무슨 재주가 그런 재주가 있는지.”

 “아주 용하지요.”

 

 그리고 백성들에게서 최근 도성에 나타난 눈이 파란 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도성에 그런 사람이라면 페데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백성들이 페데르가 왕의 어의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성은 묵묵히 백성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재주가 어떠하기에?”

 “제가! 그 의원께 은혜를 입었지요.”

 

 멀리서 듣고 있던 여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곁에 있던 양반이 여자에게 호통을 쳤다.

 

 “어허! 어디 계집이.”

 “이보게. 말 삼가시게.”

 

 성은 호통을 치는 양반을 되게 혼냈다.

 

 “그 의원의 재주가 어떠하더냐?”

 

 여자는 양반을 흘끗 째려보고는 신나게 후일담을 전했다. 사연인 즉, 다리에 조그마한 종기가 있던 자리가 퉁퉁 부어올라 걷지도 못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 의원에게 갔다고 했다.

 

 “침을 신통하게 놓더냐?”

 “예! 고름 짜내고 뼈가 삭기 시작했다면서, 침도 놔주고. 머리 노랗고 눈 파란 놈이 그러니 더 신통하더라니 까요.”

 “도성에 그런 정도 하는 의원은 널렸다.”

 

 여자가 말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후일담이 쏟아져 나왔다.

 

 “그자 이름이 무엇이냐?”

 “페... 페 뭐더라?”

 “페더라!”

 “패더라? 그 놈 이름하고는.”

 

 성은 피식 웃었다.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습니다요.”

 “저기 상단 김행수 네서 얹혀산답니다.”

 “반촌에서는 그 이름이면 다들 절을 한답니다.”

 “키도 장대 같은 놈이, 힘은 또 어찌나 센지. 백정들이 자리 잃을까 똥줄 탄당깨요!”

 

 그렇게 수다를 한창 떨고 나니, 소나기는 물러갔다. 그리고 성은 다시 능행차를 이어갔다.

 

 “패더라. 패더라라...”

 

 영목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유명하네요.”

 “겸양이라곤 없는 녀석. 흠.”

 

 정훈세자의 능인, 융릉에 성은 처음 윤희와 함께 왔다. 윤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융릉에 오지 않았다. 능으로 다가가는 윤희의 걸음은 더뎠다. 성은 그 뒤를 따랐다. 능에 다다랐을 때, 윤희는 무릎을 꿇고 통곡을 시작했다. 주위의 궁인들은 서글픈 울음소리에 저마나 눈물을 훔치느라 분주했지만, 성은 울지 않았다. 가끔 홀로 찾아와 땅을 치며 통곡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은 건조한 눈으로 어머니, 윤희를 바라보았다.

 

 “저하!...”

 

 윤희는 그렇게 한참을 정훈세자의 능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잔치가 이어졌다. 성대한 잔칫상이 한 가득이었다. 대신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았고, 가장 상석에는 성이 아닌 윤희가 앉았다. 그러나 윤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착-!’

 

 박소리를 시작으로 무희들의 춤이 시작되었다. 무희들이 물러가고 그 무대 중앙에 성이 나타났다.

 

 “어마마마. 더욱 만수무강하소서.”

 

 성은 윤희에게 큰절을 올렸다. 윤희는 긴장한 듯 보였다. 마치 성의 눈빛에 굳어버린 듯. 그 다음차례는 대소신료들이었다. 점점 어둑해지는 시간. 저 들판너머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하늘이 붉어지고, 횃불이 행궁의 성에 하나 둘씩 켜졌다. 성은 갑옷을 입고 성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지휘를 시작했다. 드디어, 수가 성의 명으로 비밀리에 키웠던, 장용영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전술을 시작하라!”

 

 하늘로 불화살 수백, 수천 개가 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성의 친위부대. 이 모든 훈련은 구준, 우겸, 영목 또 그의 목숨을 노리던 혹은 그의 덕을 보려던 모든 대신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들의 일사 분란한 모습이 계속될수록 친위부대의 위엄이 점점 그들을 조여 왔다. 성은 경고를 한 것이었다. 이제 결코, 힘없이 좌지우지되던 어린 세손은 없다는 의미였다. 성은 어두워진 하늘에 솟아오른 신기전이 폭죽처럼 터지는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행궁에서 보내는 하룻밤. 보름달이 매우 크게 떠 밤도 낮처럼 환했다. 성은 술병을 들고 궁 밖을 나왔다. 이미 한 병을 말끔히 해치우고 새 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성은 정훈세자가 묻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곁엔 운검도 없이 성은 홀로 능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

 

 괴로움의 한숨이었다.

 

 “아버지. 저 괴롭습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딱 세자자리까지만 할 걸. 왕이 뭐라고.”

 

 성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헌데, 제가 괴로운 것이 대체 뭘까요? 여인 때문일까요 아님, 비밀 때문일까요?”

 

 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어깨가 점차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흐느끼고 울기 시작했다.

 

 “흑... 흑...”

 

 달빛 밝은 날 밤, 성은 홀로 넓은 능 곁에 앉아 울었다.

 

 “절 왜 속인 걸까요? 아버지도 이렇게 외로웠습니까? 왜 사랑한다면서 날 속인 걸까요? 대체 왜? 난... 그 사람만은 믿었는데... 하...”

 

 홀로 있는 성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친구 영목이었다.

 

 “만약, 제가 그 사람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 어쩌죠? 날 속인 게 이게 다가 아니라면, 어쩌죠?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은데. 미칠지도 모르는데. 사랑이라는 걸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첫 연정이 뭐라고... 계집 따위...”

 

 영목은 그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이 하는 말은 모두 듣지 않았다. 망가진 주군의 모습도 눈에 담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역사엔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친구만 있을 뿐.

 

 “그 계집애가요. 저 여덟 살 때, 절 찾아왔었답니다. 저 위로하겠다고요. 그리고 저 열 살 때는 책방에서 처음 봤거든요? 하... 무슨 계집애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참나! 그래서 말을 좀 걸었는데, 책을 봐도, 세수를 해도, 계속 그 계집만 보이는 거예요. 그러다가 단오 날 그네 타는 거 한 번 보고 싶다는 핑계로 가려했는데, 못 만났어요. 영영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망할 책방만 아니었어도. 다신 안 볼 수 있었는데...”

 

 성은 말을 하다말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하... 얘기하니까, 더 보고 싶다... 망할...”

 

 성은 술을 연거푸 마셔댔다. 묵묵히 지켜보던 영목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성큼성큼 성에게로 걸어갔다.

 

 “혼자 먹으면 맛이 있냐?”

 

 성은 영목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뭐?”

 “아, 주상즈은하~ 혼자 자시면 술이 꿀맛입니까?”

 “치!... 꺼져.”

 “으이차! 나도 한 모금 먹자!”

 

 영목은 능에 인사를 건네고는 성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 술병을 빼앗았다.

 

 “어허!”

 “원래 술은, 나눠먹어야 맛이 있는 법이다.”

 

 영목은 술병을 나발로 들이켜 한 모금 시원하게 마셨다.

 

 “캬~! 좋다!”

 “너, 금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우리 주군의 금군대장일 때고.”

 “지금은?”

 “지금은, 이 성의 벗이고.”

 “핑계는.”

 

 성은 영목에게서 다시 술병을 빼앗아 한 모금 마셨다.

 

 “나날이 괴로운 일이 잦아진다. 성아.”

 “하... 그러게.”

 “이유가 있을 거야. 그냥 그럴 분은 아니잖아?”

 

 성은 영목의 말에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럴까?”

 “그럼. 중전마마가 어떤 분인데.”

 “내 마누라를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와중에 팔불출.”

 “너, 수상해. 새 장가도 안 든다는 거 보니, 너 혹시?”

 “어이! 술 취했다, 너.”

 “말 돌리지 말고. 어명이다. 당장 말해.”

 “뭘? 내가 그런- 차마 왕인데 욕은 못하겠다. 헛소리 나오는 것 보니, 멀쩡하네.”

 “함부로 마음에 담고 그러지 마. 누가 뭐래도 내 여자야.”

 “참나. 아까 욕하고 그럴 땐 언제고. 내가 다 일러줄 거야, 내가.”

 “무, 뭐? 뭐? 내가 무, 뭐 어쨌는데? 엿들었냐?”

 “엿듣기는. 목소리가 좀 크냐?”

 “조용히 해.”

 “너, 나한테 잘 해. 내 말 한마디면, 넌 평생 바가지야.”

 “내가 언제 못했냐?”

 “에이! 술 혼자 다 먹고!”

 “내 술이야, 인마!”

 “술 좀 작작 먹어. 어째 해가 갈수록 술이 더느냐?”

 “내 맘이야!”

 “네 맘대로 해야 하는 판국이냐, 지금?”

 

 영목의 말에 성이 멈칫했다. 뭔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원래 좋은 말은 쓰디 쓴 거야.”

 “추워! 들어가.”

 “시원하고 좋구만.”

 

 성과 영목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탈탈 털었다.

 

 “자. 이제 친구 말고 주군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까, 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무슨 일 생겼어?”

 “성소용 일을 조사하다가 찾은 것이 있습니다.”

 

 영목은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성에게 건넸다.

 

 “성소용이 전하께 전하려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성은 서찰을 꺼내 읽어보았다. 달빛이 밝아 글씨가 잘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해서, 중전마마의 일도 은밀히 조사해보라 지시했습니다. 도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새로운 소식이 올 겁니다.”

 “대비가 성소용을 죽였을 확률은?”

 “거의.”

 “내 후사를 영영- 그럼?”

 “어쩌면, 중전마마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실체가 조금씩 드러날 조짐이었다. 성은 다시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 같았다. 또 무엇이 그를 힘겹게 할지 피하고 싶어졌다.

 다음 날. 도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성과 일행들이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말을 탄 금군이 마구 달려오고 있었다.

 

 “대장.”

 “새로운 것이 있었느냐?”

 

 영목의 말에 금군은 품에서 서찰을 꺼내 건넸다. 영목은 서찰을 꺼내 읽었고, 말을 이끌고 성의 곁으로 갔다.

 

 “전하.”

 “확인해봤느냐?”

 “여기.”

 

 영목은 서찰을 성에게 건넸다. 의금부판사가 직접 쓴 것이었다.

 

 ‘전하. 전하의 어명에 은밀히 성소용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성소용이 독살 된 모양새가 죽은 강위부원군 김청원의 죽음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사옵니다. 헌데, 강위부원군은 본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알려졌으니 이상할 따름이었나이다.

 해서, 다시금 조사하다보니, 부원군의 죽음에 대비전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을 접했나이다. 그리하여 추론한 결과, 성소용도, 부원군께서도 연관된 사람이 나오더이다. 바로 중전마마이시옵니다. 바라옵건대, 더 분명한 증좌와 확언을 위해서는 중전마마와의 알현이 불가피하온데, 소신이 어찌 감히 중전마마와 독대하겠나이까? 이는 주상전하께오서 직접 사건의 진상을 들으시는 것이 어떠하올지, 감히 간청 드리나이다.’

 

 “행차를 멈출까요?”

 “아니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송구하옵니다.”

 “서찰은 불태우고, 의금부판사에게 당장 박귀인과 처소 궁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 하라. 또, 중궁전과 대비전을 모두 막고 오가는 자가 없게 하라.”

 

 성은 품에서 명패를 꺼내 금군에게 건넸다.

 

 “어명이다. 즉각 시행하라.”

 

 금군은 명패를 받아들고 즉시 말을 달렸다.

 

 “전하. 박귀인은 어찌하여 잡아들이시옵니까?”

 “박귀인은 안타깝지만, 미끼다.”

 

 ***

 

 “마마! 마마아!!!!”

 

 박귀인은 의금부 나장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대비전으로 달려왔다.

 

 “마마!!!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냐?”

 “전하께서 절 잡아들이라 하셨습니다. 전 죄가 없다고요! 절 왜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무슨 이유로?”

 “제가 소용을 죽였다합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주상의 명이라고?”

 

 박귀인이 도망한 뒤를 따라 의금부 나장들이 우르르 대비전으로 모여들었다.

 

 “귀인마마! 명을 받으소서!”

 “마마~아!!”

 

 박귀인은 울상이었다. 성희의 치맛자락을 잡고 애원했다. 그리고 의금부판사가 대비전으로 들어왔다.

 

 “대비마마. 주상전하의 명을 수행해야 하옵니다. 죄인을 인도하겠나이다.”

 “죄인이라니?! 전하의 승은을 입을 귀인을!”

 “어명입니다. 전하의 용종을 가진 후궁을 죽인 혐의입니다.”

 

 박귀인은 악다구니로 버텼다. 절대 성희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을 기세였다.

 

 “난 죄가 없다고! 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전하께 오라고 하라니까? 분명 잘못 들은 것이다!”

 

 성희는 골똘히 생각했다. 오싹한 느낌이 다가왔다. 그리고 박귀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치맛자락을 당겨 빼냈다.

 

 “마마!”

 “어명이라지 않느냐. 별일 없겠지.”

 “마마아!!”

 

 의금부판사는 나장들에게 손짓해 박귀인을 끌고나갔다.

 

 “놔! 이거 놔! 마마! 전 억울해요! 마마!!”

 

 박귀인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 성희는 편상궁에게 손짓했다.

 

 “예, 마마.”

 “잘 처리 했겠지?”

 “그럼요.”

 

 ***

 

 중궁전. 유아는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페데르와 김만영, 백씨와 청씨, 신씨 모두가 유아를 찾아왔다. 연실은 유아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어째 다들 오셨습니까? 별일 아닙니다.”

 

 유아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새하얗게 뜬 얼굴을 보고 청씨가 혀를 찼다.

 

 “어째 다 들통 나는 거짓말하는 버릇은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질 않네.”

 

 백씨가 청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재...”

 “신씨가 연실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지요. 뭐, 물론 세상 가장 높은 그 분은 아직도 모르시겠지만.”

 

 백씨는 유아의 상황을 모르는 성이 미웠다. 페데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유아의 손목의 맥을 짚었다.

 

 “조금씩 안정이 되고 있습니다.”

 “고마워.”

 

 만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의전 상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협박에 왈패들을 보내서 난린데, 이건 또 무슨 난립니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으니.”

 “금난전권 말이에요?”

 “말도 마세요. 채우겸 영감 집에도 상인들 협박에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다행히 전하를 따라 행차 길에 오르셨으니 그나마 잠시 조용하겠네요.”

 “곧 잠잠해 질 겁니다.”

 “그렇겠지요. 전하께선 점점 더 일을 벌이시겠지요.”

 

 만영은 유아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유아는 차마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데 운종가 사람들이 유아를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연실도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차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서로 눈치를 주며 순서를 미루다가 결국 백씨가 입을 열었다.

 

 “저기... 마마?”

 “예. 스승님.”

 “수장께서 알아보라 하신 것이 있는데... 마마께선 미리 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요?”

 “예. 아무래도 혜빈께서 융릉에 가셨다면, 전하께선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많이 괴로우실 겁니다.”

 “혜빈, 이요?”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훈세자께선 병사가 아니라 독살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엔 혜빈이 있습니다. 정훈세자를 모시던 내관을 만나 직접 들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혜빈... !!! 직접?”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허나, 마지막으로 다녀가셨다 합니다.”

 

 만영이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보였다.

 

 “이걸 구해 달라 하시더군요.”

 “독약입니까?”

 “예. 잠이든 듯 편안히 죽는 맹독입니다.”

 “이걸 왜?”

 “글쎄요.”

 “설마, 이미 드린 겁니까?”

 “예. 하나 가지고 계실 겁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본인이 드시기야 하겠습니까? 증거지요. 사건의 증거.”

 

 운종가 식구들이 돌아가고, 유아는 홀로 후원 연못을 거닐었다. 쓸쓸함이 걸음마다 녹아내렸다. 평소라면 풍성한 몸매를 자랑하는 나무들도 보고, 저마다 예쁨을 뽐내는 꽃들에게도 미소를 건네며 걸을 테지만, 오늘의 유아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저 누렇게 질린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마마.”

 

 연실은 걱정스런 얼굴로 유아의 곁을 지켰다. 궁에 들어와 더욱 불어난 몸이 무릎을 짓눌렀고, 40대에 접어든 젊은 나이임에도 벌써 걸음이 버거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감기 들까, 더우면 더위 먹지 않을까, 염려하고 아끼며 키운 딸과 같은 존재였다.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던 주인이 이번엔 어둠을 극복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이 염려를 타개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왕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왕께서는 그림자 하나 비추지 않으니 큰일이었다.

 

 “마마. 날이 차옵니다.”

 

 유아는 찬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왠지 답답함이 이 찬 공기에 조금은 식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가득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세 차례. 찬 공기를 너무 마신 탓인지, 약간 어질했다.

 

 “아직 옥체가 다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처소로 가시지요.”

 “조금만. 조금만 더 걷고.”

 “마마...”

 “그동안 바깥 공기 마신지가 언젠지 모르겠어. 운종가를 쏘다니던 내가 이 답답한 궁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어? 바깥공기 들이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여기잖아.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딱 한 뼘만... 더 다가가면, 그 사람이 부서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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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 당신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2022 / 1 / 27 195 0 17832   
99 99. 모든 시작이 그 여인이었다 2022 / 1 / 27 200 0 11276   
98 98. 마지막 장의 비밀 2022 / 1 / 27 191 0 8483   
97 97. 기도 2022 / 1 / 27 184 0 10115   
96 96. 날 잊길 바라오 2022 / 1 / 27 177 0 7565   
95 95. 살아갈 이유 2022 / 1 / 27 188 0 7120   
94 94. 왕의 눈과 귀를 막으라 2022 / 1 / 27 185 0 8497   
93 93. 시간을 잃다 2022 / 1 / 27 185 0 6152   
92 92. 원인 모를 고통 2022 / 1 / 27 180 0 8766   
91 91. 시호꽃의 꽃말은... 2022 / 1 / 27 193 0 9874   
90 90. 죽기 위한 도전 2022 / 1 / 27 186 0 6534   
89 89. 호랑이 굴 2022 / 1 / 27 200 0 7405   
88 88. 아낌없이 빼앗는 것 2022 / 1 / 27 175 0 7977   
87 87. 노래가 없어 2022 / 1 / 27 182 0 7182   
86 86. 옥좌를 노리는 여인 2022 / 1 / 27 182 0 6369   
85 85. 너는 어디에 있는가 2022 / 1 / 27 189 0 5311   
84 84. 피 묻은 적삼이여(2) 2022 / 1 / 27 189 0 5514   
83 83. 피 묻은 적삼이여(1) 2022 / 1 / 27 186 0 6858   
82 82. 추락에도 날개는 있다 2022 / 1 / 27 183 0 7682   
81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2022 / 1 / 27 187 0 7442   
80 80. 당신의 그 사람 2022 / 1 / 27 173 0 5712   
79 79. 괘씸죄 2022 / 1 / 27 198 0 8520   
78 78. 적과 아군 그 사이 2022 / 1 / 27 194 0 6977   
77 77. 두 얼굴의 왕 2022 / 1 / 27 189 0 6712   
76 76. 지킴의 무게에 대하여 2022 / 1 / 27 184 0 6566   
75 75. 젊은 날의 슬픔 2022 / 1 / 27 181 0 9694   
74 74.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2022 / 1 / 27 182 0 11072   
73 73. 한 뼘만 더 2022 / 1 / 27 183 0 9327   
72 72. 이별한 그 날 2022 / 1 / 27 175 0 7058   
71 71. 신의 장난인가 2022 / 1 / 27 185 0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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