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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72. 이별한 그 날
작성일 : 22-01-27 13:39     조회 : 174     추천 : 0     분량 : 7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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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보함과 윤희의 대화 이후, 거짓말처럼 정훈세자의 삶엔 더 짙은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입궐한 세월이 벌써 10년인데, 아직도 전하를 모르십니까? 본디 욕심이 많은 분이십니다. 제 식구 죽여, 그 자리에 오를 만큼.”

 

 윤희가 보함을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제가 버틴다면, 세손은 어찌 됩니까?”

 “죽겠지요. 함께.”

 “허면 아버님은 저를 버리실 겁니까?”

 “그래야지요. 나도, 집안도, 살아야하니.”

 “제가 저하를 버린다면요?”

 “그건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린 세손이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면 됩니다.”

 

 윤희는 이를 악 물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 보함은 자신의 넓은 소매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병 하나를 꺼내 윤희의 책상 앞에 내려놓았다.

 

 “저 멀리 물 건너온 귀한 약입니다. 딱 두 방울이면 편히 잠들 수 있다지요. 영원히.”

 “아버님!”

 “저하를 위해서도 이것이 좋습니다. 살겠다고 버티면, 죽음이 저하를 더 깊이 당길 겁니다. 편히 보내드리세요.”

 

 그리고 보함은 윤희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

 

 윤희가 세손을 살려달라고 성희에게 간청한 다음 날 아침, 왕의 진노는 다행히 풀렸다. 그리고 정훈세자는 자리에 몸져 누워버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하.”

 

 윤희는 세상 가장 슬픈 짐을 안고 정훈세자의 곁에서 간호했다.

 

 “부인.”

 “정신이 드십니까? 어서, 어의를-”

 

 정훈세자는 윤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잠시 우리 둘이서만 얘기하세.”

 

 윤희는 처소의 궁인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게 했다. 정훈세자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윤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윤희는 그 눈빛이 뜨겁고 따가웠다. 죄를 지어 불지옥에 간다면, 그곳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심정이 딱 이런 심정일까 싶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어의를 불러 옥체를 살피셔야지요.”

 “부인.”

 “예. 저하.”

 “아무래도, 아바마마께서 날, 보위에 올릴 생각이 없으신가보네.”

 

 윤희는 숨이 턱 막혔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맞다고.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이젠 나도 등을 돌렸다고. 그러니... 차라리 어디 도망가서 죽은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살자고 하고 싶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대도 알잖은가.”

 “저하...”

 “그래. 그대는 세손을 지키게. 난, 그대를 지킬 테니.”

 

 윤희는 말문이 막혀 멍해졌다.

 

 ‘이 남자, 모두 알고 있는 것인가?’

 

 정훈세자는 윤희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 손을 잡은 것이, 당신을 이리 불행하게 할 줄은 몰랐는데...”

 “불행하지 않습니다. 이리 저하의 곁에 있지 않습니까?”

 

 정훈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인지 긍정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저 윤희의 손만을 바라보고 그 손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이젠, 예전처럼 회복하는 일도 쉽지가 않네. 각혈도 심해지고, 종기도 심해지니. 당분간은 내 곁에서 떨어져있는 것이 좋겠어. 혹여 옮을까 염려되니.”

 “아닙니다. 곁에-”

 “떨어져 있으시게. 사람들 보기에도 그게 좋으니.”

 

 이내 정훈세자는 윤희의 손을 놓았다. 정훈세자의 속엔 불구덩이가 끓어올라 심장이 녹는 것 같았다. 윤희는 심장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치 정훈세자의 의 심장을 녹이는 그 불구덩이가 옮겨 붙은 것처럼 아려왔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날, 녹아버렸다.

 

 “주상전하의 명입니다. 세자저하께오서는 옥체 보존을 위해 온양행궁으로 채비하여, 옥체를 추스르라는 어명이십니다.”

 

 다음 날, 정훈세자는 동궁전을 영영 떠나야 했다. 온양행궁으로 향한 지, 한 달째 되던 어느 날. 봄이 오고 있었다. 정훈세자는 간만에 따스한 햇볕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오직 따스한 볕과 공기만이 그를 감싸 안아주었다. 지금 그의 곁에서 수발을 드는 사람은 내관 둘과 궁녀 다섯이 전부였다. 동궁전의 그 많은 식솔들은 모두 왕의 명으로 동궁을 떠나지 못했다. 세자빈과 세손이 동궁전에 남아있다는 이유였다.

 

 “볕이 참으로 좋구나.”

 

 정훈세자의 몸은 차도를 보이지 못했다. 더욱 심해졌다.

 

 “저하. 곧 설이 다가옵니다.”

 “해서, 까치가 유독 많았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까치들 우는 소리가 또렷하니, 귀한 손님이 오려나보다.”

 

 정훈세자는 여느 날처럼 서책을 읽었고, 산책을 했고, 식사를 했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매일같이 찾아오던 답답함도 없었고, 몸의 고통도 없었다. 몸도 가볍고, 편안하며 상쾌한 날이었다.

 

 “저하.”

 

 정훈세자는 잠결에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저하.”

 

 정훈세자는 그리웠던 목소리를 듣고 눈을 퍼뜩 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곁에 윤희가 앉아 있었다.

 

 “저하.”

 “부인. 여기까지 어인일로? 벌써 날이 샌 것인가?”

 “아닙니다. 이제 막 인초시(*새벽3~4시)를 지났사옵니다.”

 “내가 귀신을 본 것은 아니겠지?”

 “제가 살아있는데, 귀신이라니요.”

 

 정훈세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 참으로. 보고 싶었느니.”

 “신첩두요...”

 

 윤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하늘에 빌었다. 부디 이 분을 다음 생에도 만나게 해 달라고. 우리의 이야기를 그 생에서 마저 할 수 있게, 그리고 이 순간 이후 이 남자를 사랑으로 기억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미안하네. 내가 너무 들떴지. 당신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이해합니다.”

 “헌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저하를 만나 뵙고 싶어서요.”

 “그랬는가?”

 

 정훈세자는 환하게 웃었다.

 

 “옥체는 어떠십니까?”

 “뭐, 보다시피.”

 

 정훈세자는 많이 야위어있었다. 윤희는 그것이 더 가슴 아팠다.

 

 “오래 있지 못합니다. 해서... 전하고자 하는 바만 전하고 가겠습니다.”

 “무엇인가?”

 

 윤희는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 보함이 건넨 것이었다. 병을 내려놓는 윤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윤희는 이를 악 물었다.

 

 “편히 잠드실 수 있는 약이라 합니다.”

 

 정훈세자는 윤희가 건네는 이 약이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애써 웃으려 했던 입 꼬리가 당최 올라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웃는 모습으로 보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모르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맙네.”

 

 윤희는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독약을 받고 고맙다니.

 

 “가야겠습니다.”

 

 윤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희의 등 뒤로 정훈세자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 잊게. 그게 편할 걸세. 쉽진 않겠지만. 자네가 악역을 맡아야 할 거야. 세손을 지키려면.”

 

 윤희는 정훈세자의 곁을 떠났다. 이제 정훈세자의 곁에 남은 것은 편히 잠들게 해 줄 한 방울 뿐이었다.

 

 “마지막 타오른 불꽃이었던 게지.”

 

 정훈세자는 자조 섞인 웃음을 픽 남겼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

 

 늦은 밤. 성은 처소로 향하지 않았다. 그대로 말을 끌고 궐 밖으로 나갔다. 그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찾아가던, 비밀의 화원으로 내달렸다. 성의 곁을 따르는 것은 내관, 차봉수와 운검, 어수, 단 둘 뿐이었다. 성은 성큼성큼 걸어 오두막으로 들어가서는 대문을 쾅 닫았다. 봉수와 수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아~악~!!!!”

 

 주군의 괴로운 비명을 굳이 곁에서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를 따라 온 사람이 있었다. 화원의 위치를 아는 또 다른 사람. 유아였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아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유아는 말을 타고 성의 뒤를 따라 온 것이었다. 유아를 발견한 봉수와 수가 고개를 숙여 유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흑흑...”

 

 오두막 바깥까지 괴로운 성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모두 내 탓이다...”

 

 유아는 절망했다. 위로를 위해, 성의 곁으로 갈 수도 없었다.

 

 “으악~!! 아~악!!”

 

 성의 절규를 뒤로하고 유아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비틀비틀 거리며 걷는 모습이 위태로워 봉수와 수가 부축을 하려했지만, 유아는 거부했다. 비틀비틀.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봉수와 수는 유아가 참으로 가여웠다. 수는 유아가 걸어간 자리에 짙은 자국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유아는 벌써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고, 수가 달빛에 의지해 겨우 손을 뻗어 유아의 발자국 흔적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 상선...”

 

 수는 화들짝 놀라 봉수를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 피가...”

 “뭐?”

 

 수와 봉수는 말에 거의 업힌 채로 떠나는 유아를 쳐다보았다. 멀리서보니 유아의 얼굴은 혈색이라고는 없었다. 궐로 돌아온 유아는 말에 실려 왔다. 말도 없이 뛰쳐나간 유아가 걱정된 연실이 전전긍긍하다 유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새하얀 말의 옆구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마마. 마마!”

 

 유아의 다리 사이로 흐르는 피였다.

 

 “마마!!”

 

 정신을 잃어야만 버틸 수 있는 여자와 엉킨 운명을 홀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절망이 가득한 밤이었다.

 

 다음 날, 융릉으로 향할 준비가 끝난 성은 뒤에 놓인 연을 바라보았다. 윤희가 탈 가마였다. 떠날 시간이 지났음에도 윤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선.”

 “예, 전하.”

 “혜빈께서 어디쯤 오셨는가 알아보아라.”

 “예.”

 

 성의 명에 봉수는 곁의 재빠른 내관을 시켜 윤희가 오는 길을 파악하러 보냈다.

 그 시각, 윤희는 아직도 처소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채비는 끝났으나, 차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곁에 있던 상궁은 전전긍긍이었다.

 

 “마마. 어서 가심이 어떠하시옵니까? 아니면, 소인이 옥체 미령하시다 연통을 할까요?”

 “...”

 “마마... 주상전하께서 노기가 장난 아니실 것이옵니다.”

 

 순식간에 달려온 내관이 윤희의 처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나인에게 물었다.

 

 “혜빈마마께선 아직도 채비가 끝나지 않으셨느냐?”

 “예.”

 “무슨 준비를. 너희들은 어찌 했기에 시간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해? 지금 전하께서 한 식경(*30분)도 더 기다리고 계시질 않느냐?”

 “송구합니다. 소인들은 채비를 제 시간에 끝마쳤사온데, 마마께오서 도통 나오질 않으시니...”

 “나오질 않으신다니?”

 “소인들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옥체가 미령하신 것은 아니냐?”

 “일찍 기침하시어 미음도 한 그릇 뚝딱 하신걸요.”

 “어허. 이를 어쩐다?”

 

 내관은 윤희의 처소를 떠나 다시 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봉수에게 사실을 고했다.

 

 “전하.”

 “어디시라더냐?”

 “아직...”

 “뭐?”

 “아무래도 오늘은 전하 홀로 납시는 것이 어떠하신지?”

 “내가 갈 것이다.”

 “전하.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님, 혜빈마마를 끌고서라도 모셔와.”

 “전하!...”

 “내가 모시랴?”

 “소, 소인이 하겠습니다. 소인이 뫼시고 오겠습니다.”

 

 봉수는 성의 진노로 자신이 직접 윤희의 처소로 향했다. 윤희의 처소로 향하는 봉수의 뒤로 사방이 꽉 막힌 크고 화려한 가마가 뒤따르고 있었다.

 

 “혜빈마마. 소인 상선이옵니다.”

 “...”

 “혜빈마마. 전하께오서 서둘러 뫼시고 오라는 어명이십니다. 혹, 옥체 미령하신지요?”

 

 윤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봉수는 허락도 없이 처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송구하옵니다, 혜빈마마. 주상전하께오서 지체하신지가 벌써 한 식경이 넘어가는지라.”

 “내가 꼭 가야겠는가?”

 “마마. 주상전하의 성정은 누구보다도 마마께오서 잘 아시지 않으시옵니까?”

 “자네가 잘 돌려 말해주게. 난 못하겠으니.”

 “끌고서라도 뫼셔 오라는 어명이십니다.”

 “뭐라?”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인의 짧은 식견으로는 마마께오서 이번 행차에 납시셔야, 넘치는 피를 조금이라도 멈출 수 있다 사료되옵니다.”

 “네 이놈!”

 “소인이 저하께오서 탄생하실 때부터 쭉 모셔온 지가 벌써 스무 해이옵니다. 궐 안팎으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다 봐온 제가, 내관이라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산 세월이 그러하옵니다. 허나, 마마께오서 조금이라도 전하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전하의 뜻대로 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내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소인이야, 범 등에 탄 쥐새끼 아니겠습니까. 뜻대로 하소서. 소인은 그저, 주상전하를 위한 충정뿐입니다.”

 “가지 않을 것이다.”

 “밖에 있느냐? 혜빈마마를 뫼시거라. 주상전하께오서 기다리시니.”

 “뭐라?!”

 “밖에 큰 가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편히 가시라는 주상전하의 황은이옵니다.”

 

 봉수의 부름에 밖에서 덩치 좋은 내관들이 우르르 처소 안으로 들어와 윤희를 번쩍 들었다.

 

 “놔! 놔라! 네 이놈! 네 이노옴!”

 

 윤희는 그대로 마당에 대기하고 있던 큰 가마에 던져지듯 올라탔다.

 

 “열지 못할까?! 열어!”

 

 윤희가 탄 가마는 성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봉수의 뒤를 따르던 내관이 급히 성에게 먼저 달려갔다.

 

 “전하. 혜빈마마께오서 오고 있사옵니다.”

 “알았다. 출발하자.”

 

 성은 말에 올라탔다. 봉수를 대신해 내관이 소리쳤다.

 

 “풍악을 울려라~!”

 

 챙! 하는 풍악 시작소리가 울리고, 크고 풍성한 음악소리에 윤희의 고함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그녀의 절규가 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럼에도 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니, 당신은 꼭 봐야합니다. 꼭.’

 

 성은 궐을 떠났고, 유아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어의가 유아의 상태를 살폈다.

 

 “이 꼴을 하고 설마, 나가신 겁니까?”

 “왜 그러나?”

 “아이고... 하반신을 못 쓸 뻔했습니다.”

 “하... 내가 못 살아.”

 

 연실은 지끈거리는 두통에 이마를 짚었다. 어의는 한참을 치료에 매달렸다. 하루 반나절을 앓던 유아는 안정을 되찾았다.

 

 “하열은 멈췄습니다. 맥도 그나마 돌아왔고요. 절대로 움직이게 하지 마십시오. 찬바람은 더욱 안 됩니다. 방을 더 따뜻하게 데우십시오.”

 “알겠네. 너희들은 어서 천들을 불태워라. 단 한 조각도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예, 마마님!”

 

 연실의 명령에 나인들이 피에 흥건한 천들과 옷가지를 모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조심스레 쪼르르 달려 나온 나인들은 아궁이로 가져가 모두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비밀스런 행적을 몰래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대비전의 지밀상궁, 편상궁이었다.

 

 “피?”

 

 성희는 편상궁의 말에 놀란 듯 물었다.

 

 “피 묻은 옷가지를 불태웠다? 이른 아침부터?”

 “예. 그리고 또, 중전의 말을 아침부터 씻기는 것을 보았는데, 말안장에 피가 잔뜩 묻은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말을 타고 나갔다? 그 꼴을 하고? 그리고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는 건데...”

 “무슨 습격이라도 받은 것일까요?”

 “주상은 저녁 늦게 나갔다가 아침 일찍 돌아왔다지?”

 “예.”

 “집안이 가지가지 하는군. 가마에 끌려간 시어머니에, 새벽부터 피 흘리는 며느리에. 이젠, 미쳐 날뛰는 주상만 남은건가?”

 

 성희는 시익 미소를 지었다.

 

 “혜빈의 꼴을 내가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들 왕위에 올랐다고 기세등등하더니, 꼴이 좋구나. 그러게 내가 조용히 엎드려 살라고 경고 했을 때 알아들어야지. 하여간, 노친네들이 똥고집으로 말년이 재수가 없다니까?”

 “그러게요. 마마 말씀이면 자다가도 떡이라도 먹을 텐데 말입니다.”

 “아부는. 아~ 기분 좋구나. 간만에 궐이 조용할 테니, 산보나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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