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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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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31 09:27     조회 : 458     추천 : 0     분량 : 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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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내가 어른들의 돈 계산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배불뚝이는 이미 내 유방과 음부를 만졌고 그 사실은 돌이킬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돈 천만 원이 있는 건 돈 천만 원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문제는 내가 납득할 만한, 내가 그냥 그렇게 망가진 채로, 하지만 합의금 액수만큼의 위안을 받고 ‘똥 밟았다.’ 하며 살 수 있는 그 금액이 있는가였다. 난 수학책과 수학공책까지 펴들고 그 액수를 구하려 애썼다. 옆자리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던 초등학생이 날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다. 아가야, 너도 성추행당한 노숙자가 되면 누나를 이해할 거다. 그만 쳐다보고 마린이나 뽑아라.

 

 * * *

 나를 만들고 있었던 게 ‘나1 = f(x)’의 함수라면, 배불뚝이가 저지른 일은 ‘나1’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유방과 음부를 처음으로 만지게 할 기쁨을 가져갔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내 유방과 음부를 처음으로 만진 더럽고 추잡한 기분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슬픔을 주었다. 즉, 배불뚝이는 ‘나1’을 ‘나2 = f(x) - 배불뚝이로 인해 잃은 기쁨의 양 + 배불뚝이로 인해 얻은 슬픔의 양’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나1 – 나2’의 값을 ‘원’단위로 환산해 ‘나1’에게 배상한다면 ‘나2’를 배불뚝이를 만나기 전 상태의 ‘나1’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때 ‘나1 – 나2’는 몇 원인가?

 

 답: ‘나1 – 나2’는 무한대로 발산한다. 나1 – 나2 = ∞ infinity

 * * *

 

 이따위로 적고 혼자 껄껄대며 웃었다. 이따위 거나 적고 앉아있는 내가, 내 상황과 내 상처가 한심하고 싫었다. 그거였다. 내가 겪은 고통만큼, ‘나1 – 나2’만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1 – 나2’의 백만 배 정도의 고통을 배불뚝이 놈에게 주고 싶은 게 내 맘이지 ‘나1 – 나2’를 원 단위로 환산하는 함수 따윈 세상에 없는 거다. 네이버에 배불뚝이의 이름을 쳐봤다. 배불뚝이는 아직도 교수님 소리를 듣고 있었고 몇 달 뒤엔 서울에서 개인 전시회를 가지실 예정이었다. 배불뚝이는 ‘배불뚝이1’인데 나는 ‘나2’인 게 짜증나게 억울했다. 한글프로그램을 더블클릭하고 프로그램이 열리는 동안 네이버에 ‘성추행 합의서’를 검색했다. 피시방에서 살기 전엔 자판도 제대로 칠 줄 몰랐는데 어느새 컴퓨터가 익숙해졌다.

 

 * * *

 합의서

 

 1. 강하식(54세)은 2002년 5월 21일 안양의 금성 24시 불가마 찜질방에서 17세 김00의 유방과 음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음을 시인한다.

 2. 강하식은 현재의 대학교 교수직에서 사퇴하고 2002년 6월 18일로부터 5년간 국내와 해외의 다른 대학 교수직에 임용되지 않는다.

 3. 강하식은 2002년 6월 18일로부터 5년간 전시회 등 일체의 대외활동을 중단한다.

 4. 강하식은 김00에게 합의금 1000만 원을 지급한다.

 5. 강하식과 김00은 피의사건을 민·형사상 원만히 합의하였으므로 강하식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추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6. 단, 강하식이 위 2,3,4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시 이 합의서는 무효다.

 * * *

 

 배불뚝이의 이메일로 합의서를 보내는 건 쉬웠다. 배불뚝이네 대학 홈페이지에 친절하게도 이메일이 올라와 있었다. 이대로 합의를 안 하면 첨부된 합의서를 배불뚝이가 교수로 있는 대학의 전 직원과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온갖 포털사이트에도 올릴 거란 협박을 간단히 본문에 적었다. 전 직원과 학생들에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 같은 건 몰랐지만, 그건 뭐 중요하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기가 무섭게 ‘읽지않음’이 ‘읽음’으로 변했다. 이 새끼는 축구도 안보나. 곧 전화가 왔다. 그의 전화기는 이미 내 손에 있었다.

 

 배불뚝이는 특히 조항 2와 3에 큰 이의를 제기했다. 난 조항 2와 3이 가장 중요한데 그걸 못하겠으면 합의 따윈 없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거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가만히 당하고 있을 거 같아? 명예훼손죄야 그거. 그럼 니 이름이랑 학교 어디 다니는지도 다 공개돼, 이 등신아. 나 신문에도 아는 사람 많아. 너 대학도 못 가고 시집도 못 가, 이년아.” 예상했던 공격이었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같은 이유로 협박당하고 걱정하고 포기하는 것을 읽었다. 떨리는 손과 목소리를 억지로 잠재웠다. “그래 주시면 고맙지. 안 그래도 지금 서울 법대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데 교외활동이 별로 없어서 고민이었거든. 그 합의서 안양고 2학년 5반 김나린이가 썼다고 신문에 좀 내봐라, 이 씨발놈아.” 뻥을 치니까 얼굴부터 팔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전화여서 다행이었다.

 

 싸인을 하겠다는 배불뚝이의 말이 사람들의 함성 속에 묻혔다. 후반 종료 2분 전, 설기현이 동점 골을 넣었다. 진줄 알았는데. 연장전을 보며 자위와 자찬을 반복했다. 나2면 어때. 나2는 위대하다. 나2는 해냈다. 엄마도 칭찬을 해줬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이참에 법대에 가라고 부추겼으려나? 싫어. 난 사람이 없는 수학이 좋아. 안 그래도 졸라 우울한데 변호사 하면, 맨날 더럽거나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만 들으면, 맨날 뒈져버리고 싶을 것 같아. 그 기분 알잖아, 엄마. 어? 골든골이다.

 

 그는 역정을 냈다. 그런 놈은 콩밥을 먹여야지 돈 그까짓 거 받아서 뭐하냐고. 이런 일은 자기하고 상의를 해야지 왜 혼자 정했냐고. 사실 난 미성년자라 그의 동의가 있어야 합의가 성립하고 합의서에도 그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에게 말해주진 않았다. 은연중에 “아빠가 뭘 안다고.” 해버렸더니 기가 팍 죽은 그가 애꿎은 컵라면 용기를 구겨댔다. 몇 방울 남아있던 국물이 키보드와 모니터에 튄 건 그도 나도 모른 체했다. 자기가 방 한 칸 구할 능력이 있었으면 내가 이런 일 안 당했을 거라고 자책하던 그를 달래줘야 했다. 농담이란 듯이 애써 웃으며 “아빤 컴퓨터로 맞고도 못 치잖아.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 했다. “그래. 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그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입 주위로 난 수염의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천만 원을 받으면 그에게 면도기를 사줘야지, 생각했다가 천만 원을 받고 나선 까먹었다.

 

 천만 원은 우리 둘만의 안식처를 다시 구해주었다. 그와 나만 들어올 수 있는 사방이 꼭 막힌 공간. 내 맘대로 샤워를 하고, 누워서 잠을 자고, 불을 켜고 끄고, 돈을 한 달에 한 번만 내면 되는 대여섯 평의 소중함은 잃어본 사람만 안다. 그와 천 냥 가게에 가서 싸구려 주중잡물을 사면서도 엄마 생각을 잠깐 잊었을 정도로 좋았다. 산 날부터 코팅이 벗겨지는 프라이팬에 백 그램에 829원짜리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며, 그는 이제 자기를 믿고 이 집에서 고3 끝날 때까지 편히 공부하라고 했고, 난 그와 입씨름하긴 싫어 ‘그 말을 믿느니 하수구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겠다.’는 머릿속으로만 내뱉었다. 그는 공장에 취직했고, 난 그 공장일이 삭고 곯은 그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젊은이 열을 데려다 놓으면 아홉은 그 날로 도망가는 일인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날의 일을 설명하자면 십 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가닥을 잡기 힘든 부분이 많다. 2002년 9월 29일이었다. 미리 부가 설명을 하자면, 엄마 기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와 나는 엄마 기일을 특별히 챙기지 않았다. 엄마 없이 맞은 첫 9월 29일은 추석 바로 다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난 추석 때도 못 해먹은 전을 부쳤다. 김치전이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없으니 가장 중요한 재료인 엄마 김치가 없었다. 대신 엄마가 이맘때면 자주 만들어주던 배추 전에 도전했다. 엄마 옆에서 보던 기억을 더듬어 밀가루 반죽을 되직하니 만들었고 배추 줄기 부분을 칼 뒤꿈치로 통통 두들겨 반죽을 묻히고 구웠더니 프라이팬에 붙어 새카맣게 탔다. 기름을 안 둘렀기 때문이었다. 기름을 두르고 구워내니 노릇하니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다. 배추 한 통을 다 부쳤더니 기름 냄새를 하도 맡아 속이 니글거렸고 전은 손도 대기 싫었다. 결국 그 혼자 다 먹었다. “우리 나린이가 만들어 주니까 억수로 맛있네. 니는 못하는 게 머꼬?” 하며 먹었지만 난 맛이 없었다는 걸 확실히 안다. 간장도 없이 소금 한 톨 안 넣은 배추와 밀가루만 먹었으니까. 그게 내가 차린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상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설 연휴 때보다 추석 즈음부터 개천절까지가 더 춥게 느껴졌던 건 엄마의 입김이 작용해서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때도 그날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엄마 기일보다도 부산 아시아게임 개막식의 영향이 더 컸다. 월드컵을 배불뚝이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시안게임이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그러기엔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있었다.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없었으며 난 고2였고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고2 2학기 내신은 중요하다고 담임을 비롯한 모든 선생들이 하도 으름장을 놓아 일요일이었던 그날도 ‘교과서 영어 본문을 외우는 날’로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었다. 물론 내가 그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매일 공부를 했으면 전교 석차가 30등은 올랐겠지만, 난 못 지킬 공부 계획이라도 적어두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다. 그는 나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는 핑계를 대고 밖에서 공장일 하는 사람들과 한잔하며 개막식을 보러 나갔다.

 

 공부만 시작하면 출출해지는 배를 잡고 밖에 나왔는데 마침 남북한 선수들이 공동입장하고 있었다. 슈퍼 옆 가전제품 가게 앞에 서서 뭔지 모를 그 가슴 뭉클함을 지나가던 다른 이들과 교감했다. 바나나 향 나는 왕방울 빵 덩어리들을 주루룩 입에 부어 넣고 목 막힘을 즐겼다. 우유를 마실까 캔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부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랜만에 바다를 한번 보고 싶었지만, 뭐 안 봐도 상관없었다. 이왕 가는 김에 엄마가 신혼여행으로 가봤었어야 한다며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포항에도 가보고, 태어나서 한 번도 못 가본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도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 주머니에 있는 지갑엔 내 전 재산 육만 이천삼백 원이 있었다. 팔도를 다 돌진 못해도 부산은 갔다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수원으로 가면 될 걸 미련하게 고속터미널역에 가버렸다. 도착하고 깨달았기에 오랜만에 서울 땅을 밟아본 거라고, 일부러 그런 척 나를 속였다. “부산 가는 제일 싼 표 주세요.” 했더니 5분 뒤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자그마한 종이쪼가리가 내 손에 쥐어졌다. 부산 가는 거 쉽네. 진작 갈 걸. 열리지도 않는 창문인 걸 알면서도 창밖을 보며 코에 들어오는 서울, 경기, 충청, 경상의 바람이 제각기 다르다고 생각했다. 휴게소에선 통감자도 사 먹으며 기분을 냈다.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엄마가 감자가 싼 여름에 자주 만들어줬었는데, 버터는 비싸다고 안 사고 마가린도 아깝다고 티스푼으로 반 숟갈만 넣었다. 엄마 죽고는 한 번도 못 먹어보다가 오랜만에 먹으니 맛이 좋았다. 엄마가 해주던 대로 소금을 솔솔 뿌리고 설탕을 쿡 찍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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