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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 '날'에 베이다
작가 : 셰리프a
작품등록일 : 2016.10.26

서른을 코 앞에 둔 은동명은 수십억의 빛과 출구없는 사랑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고있다.
어느날 백장미에게 속아 술에 취한채 국화랑과 원나잇스탠드를 하게 된다. 비록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국화랑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은동명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남자 정의와 정의의 범법행위를 뒤쫒고 있는 국화랑 그리고 그들의 삶속에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은동명, 그들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의 평화롭던 어느 날 저녁, 몇 방의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연애 소설을 쓰는 남자 1
작성일 : 16-10-31 07:34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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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개인 교습을 부탁드립니다. 터무니없는 부탁을 드리는 만큼 가능한 한 충분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제겐 절실한 문제라서... 꼭 좀 들어주세요.”

 

 하도 어의가 없는 요청인지라 동명은 그만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소설을 쓰는 작법이라든지 기교 등을 배우고 싶다면 어디든 문화센터만 가더라도 그녀보다 백배는 더 훌륭한 선생들이 즐비해 있을 터였다.

 혹은 좀 더 심도 있는 문학을 추구하고 있다면 유명 소설가들의 온라인 강좌를 듣거나 평소 존경하던 작가의 문하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그러나 화랑이 그녀에게 배우고자 하는 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종류다.

 

 동명이 부업 삼아 쓰는 소설은 좋게 말하자면 성인들을 위한 소설로 혹자는 소프트 포르노라고 빈정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가 그녀에게 교습을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베드 씬을 쓰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글에서 감명을 받았다는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동명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라곤 이것이 혹시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괴롭힘 방식인가 하는 의구심뿐이었다.

 더욱이 놀랍게도 화랑은 자신을 로맨스 소설 작가라고 고백했다.

 이미 필명을 따로 쓰고 있는 어느 정도 인지도까지 갖춘 기성작가라는 데 동명은 아연실색했다.

 화랑은 시무룩한 어조로 현재 자신이 글을 쓰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고 고백했다.

 동명이 그의 필명을 묻자 그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 저었다.

 

 “동명씨의 대답을 듣기 전까진 모든 걸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제 독자들은 저를 여자로 알고 있어요. 제가 직접 나서서 제 성별을 밝히거나 거짓 정보를 올린적은 없지만 이미 다들 그렇게 믿고 계시니 이제와 밝혀 봤다 제가 독자들을 속인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그 쪽에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동명은 어처구니없는 일자리 제의를 은근슬쩍 물리치려 했다. 하지만 화랑은 끈질겼다.

 안 그래도 그가 내내 고민해 오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사람을 백방으로 찾던 중에, 뜻밖에도 마주친 구명줄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은동명이란 사실이 그로서도 믿기지 않았다.

 동명에게는 진실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화랑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단히 성공한 로맨스 소설가다. 초대박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소설만도 벌써 3편 이상 되는.

 그는 아주 감성적이고 치밀한 묘사와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캐릭터 하나하나의 감정선을 긴박하게 이끌어나가는 걸로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로맨스 소설가 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전 소설들이 대단한 성공을 거둘수록 독자들의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져 가기 마련이다. 실지로 그에게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팬들은 그가 무얼 쓰던 간에 그저 좋아요, 훌륭해요 라고 그의 공식SNS와 블로그 등에 댓글을 달고 선물을 보내 왔다.

 뭐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183센치가 넘는 늠름한 사내가 초코 과자니 숨 막힐 듯한 장미향이 풍기는 목욕용 오일과 향수, 립스틱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가 신작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열렬한 팬들 사이에서 어떤 움직임이 생겨났다.

 시작은 이러했다.

 

 ‘저의 최애 작가님의 신작이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그저 제 개인적인 소원에 불과하지만 차기작에서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애정을 나누고 서로의 몸을 공유하는지를 보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쓴 댓글에 불과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댓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에는 거의 강력한 압력 단체의 형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급기야 출판사의 사장까지 직접 찾아와 사정하다시피 했다.

 

 ‘권당 딱 한 번, 두어 페이지만 할애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국화 작가님.’

 

 그의 비밀을 유지해주며 그의 성공을 적극 도와주었던 이가 그토록 간곡하게 부탁하는 데에야 화랑도 거부할 재간이 없었다.

 그는 노력했다. 정말 열심히.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더군요. 기껏 써놓은 걸 보면 사랑하는 연인들 간의 행위가 아니라 마치 정해진 순서에 따라 마지못해 치러내는 일을 묘사한 것 마냥......,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싸늘함만 남겨져 있더군요.

 그저 서너 장에 불과할 뿐인데, 그것이 막히자 쓰고 있던 소설 전체가 그만 멈춰버렸어요. 두 달이나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동명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뜻이죠?”

 “그거요. 그 ...씬 말이에요. 그냥 본인의 경험에 살만 붙이면 되는데.......”

 

 하지만 얼핏 머릿속을 스쳐가는 일에 그녀는 말을 흐렸다.

 그녀가 언급했던 그의 경험 중 아마도 가장 최근의 경험은 동명 자신과의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멍청이.’

 

 화랑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슬쩍 볼을 붉히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런 쪽으론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정말? 이란 눈으로 그를 응시하자 화랑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뭐야... 은근 순진남이네. 하기야 그러니까 원 나이트 하자고 5성급 호텔로 가지. 생긴 건 영락없는 카사노바인데 속은 또 반전일세. 흠.......’

 

 뺨에 홍조를 깃들인 채 시선을 피하는 그가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나치게 닳고 닳은 사람들만 상대하나보니 그런 그의 태도가 더 신선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동명의 경계심의 두께가 얇아져 갔다.

 그래봤자 그가 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까? 그저 작은 푼돈에 지나지 않으리라.

 좀 안됐긴 하지만 동명 자신의 코가 이미 석 자라 그의 딱한 형편까지 보살펴 줄 여유란 없었다. 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제시한 보수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 정말이에요? 일주일에 두세 번, 한두 시간만 하는데 보수를 그렇게 준다고요?”

 “네. 그만큼 제게는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그 쪽은 그런 보수를 받으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가세요.”

 

 이 남자 실은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 아닐까? 아니면 돈 많은 집 안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났거나.

 그가 그녀에게 제시한 보수는 그녀가 아무리 새빠지게 글을 써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촬영장의 소품 담당 조수일보다 훨씬 더 높은.

 

 동명이 화랑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 지금 나한테 사기 치는 거지?’ 라는 의미를 담은 눈이다.

 화랑도 그녀의 눈빛에 담긴 의심을 읽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불로 지급하겠습니다.”

 “네?”

 “저를 도와주시는 보수를 선불로 드리겠다고요.”

 “말도 안돼요. 내가 돈만 받고 도망치면 어쩌려고요?”

 “할 수 없죠. 어쨌든 부탁드리고 있는 것도 저고, 아쉬운 사람도 제 쪽이니까요. 그런 위험은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열심히 일해서 힘들게 저축해둔 돈이거든요.”

 

 문득 동명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그가 무조건 그녀를 믿겠다고 말했더라면 네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믿니 마니 하느냐고 화를 내며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호의나 동정이 아닌 정당한 거래를 원하고 있음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괜한 콧대를 세우고 있긴 하지만 지금 그녀의 경제 상황이 그의 제의를 거절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까스로 시한을 넘기지 않고 원고를 넘겼음에도 밀린 원고료의 지불을 마냥 미루고 있는 출판사와는 거의 결별한 것과 다름없어 졌기도 했고.

 

 “제 걸 읽으셨다고 하셨죠? 어느 부분이 그렇게 감명 깊던가요?”

 

 돌다리도 한 번 더 두드려보고 건넌다고 동명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화랑이 멋쩍은 듯 그녀의 원고 중 한 단락을 대충 설명했다. 동명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저기요, 두꺼운 모직 롱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본 적 있으세요?”

 “... 없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두꺼운 모직스커트, 그것도 발목까지 오는 긴 스커트를 입고도 섹시해 보일 수 있는 여자를 찾아보기란 거의 힘들지 않을까. 빅시 모델이라도 그건 좀 어려울 텐데.

 그럼에도 부러 그렇게 묘사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그녀의 글을 소비하는 이들을 향한 무모한 반발 때문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소설은 과도하고 적나라한 섹스신이 거의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에게 오히려 지지를 받고 있었다.

 남성 독자들은 여자들처럼 말이 되니 안 되니 하고 따지는 법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두툼한 스키복을 입은 한 줌 허리라고 써도 한 줌 허리에서 전해지는 성적 이미지만을 연상할 뿐, 스키복을 입었는데 어떻게 한 줌 허리가 가능하냐고 그녀를 닦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가 아닐까요? 금욕적인 옷차림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방어하듯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두꺼운 옷 사이로 보이는 미미한 노출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이런 순진한 남자를 봤나, 동명은 참 안됐다는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남자들이 주로 가는 커뮤니티 같은 데 들어가 본 적 있어요?”

 “몇 번 쯤요.”

 “한참 된 얘기긴 한데요. 누가 농담처럼 써놓은 거였는데 그에 공감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그 농담을 베스트로 만들었어요.”

 “무슨 내용이었는데요?”

 “미니스커트를 입고 날씬한 다리를 드러낸 어느 유명 여자 아이돌의 사진을 게재하고 질문을 한 거죠. 그녀의 새 다리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보면 젤 처음 무슨 생각이 나느냐?”

 “뭔가 저속한 상상들이었나요?”

 “아뇨. 차라리 그랬다면 쉽게 이해가 갔을 텐데......, 로우 킥 한 방이면 그대로 부러지겠군, 이란 생각이 든다더군요. 반면에 굵은 다리를 가진 여자를 보면 로우 킥 몇 방 맞아도 끄떡 없겠는데. 라고.”

 “......!”

 “남자들의 머릿속은 종잡을 수가 없어요. 음흉하면서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명료하거든요. 특히 인간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의 미묘한 마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정말 가슴이 두근거릴까, 다리 사이가 부풀 수 있나? 라고 의심하지 않죠.

 그저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때문에 대략적인 흐름이 중요할 뿐이에요. 그래서 스토리 보다는 캐릭터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편이 제일 효과가 좋아요.”

 

 화랑이 머리를 끄떡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여자들은 다르다는 거죠?”

 “대부분의 여성 독자들은 그저 읽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읽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그 글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녀들은 스토리 속의 상황과 인물에 감정이입하곤 해요. 그래서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을 쓸 때에는 무엇보다도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해요.

 “그렇군요.”

 “침실의 세세한 묘사, 몸에 스치는 이불과 상대방 살갗의 느낌, 향기, 온기, 촉감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를 바라죠. 마치 자신이 침대 위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어렵네요. 하지만 제가 쓴 침실 씬이 왜 그렇게 차갑게 보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부디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세 달 치 페이를 선불하시겠다면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동명의 요구에 화랑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아래위로 크게 끄떡였다.

 

 “다섯 달 치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이요.”

 “......!”

 

 화랑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동명은 에잇! 될 대로 돼라, 라는 심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현금으로 주세요. 직접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가스 불 앞에 서서 생선 조림에 양념국물을 끼얹고 있던 동명은 깜짝 놀라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가스 불을 약으로 조정한 다음 얼른 식당을 벗어나 거실로 나갔다. 때마침 정의가 큰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앗!”

 

 급하게 정지하는 바람에 균형을 잡지 못한 동명은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정의도 좀 놀랐는지 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그의 손에 닿기도 전에 그는 손을 내려 버렸고 동명은 급하게 벽을 짚고서야 간신히 넘어지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뭐야?”

 

 정의가 다소 사나운 투로 말했다.

 

 ‘밖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괜한 불똥이 자신에게 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 동명은 얼른 몸을 바로하고 벽에 바짝 붙어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정의는 언짢은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입 속으로 짧게 혀를 차더니 방으로 곧장 걸어갔다. 어느새 왔는지 정의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강세황이 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동명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5 시 56분.

 최소 7시는 돼야 퇴근하던 평소보다 훨씬 이른 귀가였다. 그녀는 저녁 준비를 서두르기 위해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조심성 없기는. 쯧!”

 

 강세황은 양복을 벗으며 입안으로 중얼거리는 정의의 혼잣말을 못들은 척했다.

 그의 밑에서 일한 이후로 그의 좌우명은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으로 바뀐 지 오래다.

 특히 은동명과 관련한 것에서는 눈 닫고 귀를 막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실지로 몇 해 전, 경박한 녀석 하나가 은동명을 정의의 작은 애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사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예도 있었고.

 정의와 은동명의 사이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은동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를 향한 차갑고 사나운 말투와 건조한 행동들. 그럼에도 그녀가 그가 쳐 놓은 바운더리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치밀하게 관리하는 그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강세황으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은동명이 단순히 그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녀보다 몇 십 배의 빚을 진 자들에게도 그는 무미건조하다고 할 만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강세황은 정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로 생각을 멈췄다.

 

 “그 의사 건의 진행 상황은?”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자는 원금과 함께 상환해도 좋다고 했더니 아주 놀란 표정이던 걸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조건일 테니까요. ”

 “장인 쪽은?”

 “웬만한 중소기업은 저리가라 할 만큼 재력가입니다. 곳곳에 숨겨 둔 재산이 적지 않고요. 용케 자손은 딸 둘 뿐이었습니다. 가족 관계도 원만한 편입니다. 의사 장모가 또 치맛바람이 아주 대단한 모양인지 딸과 손자들을 치마폭에 싸고도는 타입이라더군요.”

 “잘 됐군. 물에 빠진 딸을 외면하지는 못할 테니 예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어.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빈틈없이 해.”

 “예. 빠짝 조이겠습니다.”

 

 그는 강세황이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속옷 한 장 만 남기고 옷을 훌훌 벗어던지더니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강세황 역시 익숙한 태도로 방금 전 그가 벗어 놓은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접어 세탁용 통에 집어넣었다. 얇은 니트를 입기 위해 정의가 팔을 들자 강세황은 그의 배 부근을 재빨리 훔쳐보았다.

 넓은 어깨에 비해 얇은 허리와 단단한 복근은 볼 때마다 부러운 것이었지만 그가 시선을 빼앗긴 것은 다름 아닌 정의의 배 정중앙에 각인 된 톱니바퀴 같은 상흔이다.

 당시에는 내장이 흘러내릴 정도의 큰 상처와 엄청난 출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그를 좀비라고 부르는 놈들도 간혹 있었지만 강세황에게는 그것조차 모시는 분의 눈부신 전적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더욱이 누구도 믿지 않는 정의가 자신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나신에 가까운 모습이 될 때 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만큼 정의가 강세황을 신임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신을 방어할 무기를 숨길 수 있는 의복을 벗는데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것은 상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까.

 특히 누군가를 믿는 일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이 세계에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강세황이 정의를 쳐다보자 그가 눈짓을 했다.

 강세황이 문을 3분의 1쯤 열자, 문 앞에는 은동명이 서있다. 강세황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죠?”

 “손님이 오셔서.”

 “손님? 누구라고 하던가요?”

 “그건 저도 잘... 얼굴 보면 안다고 말을 안 하셔서.”

 

 강세황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본 동명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꺼지라고 해!”

 

 강세황의 뒤에서 나타난 정의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동명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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