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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는 1-44장까지 이어집니다.)

‘제 책이 빨리 출판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의 황제가 계십니다. 한 달 전쯤 일입니다. 황제께서는 친히 중국어로 편지를 쓴 후, 사신을 보내 저의 [돈키호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황제께서는 학교를 세워 스페인어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으며, [돈키호테]를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과 제가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키호테] II, ‘레모스 백작님께 올리는 헌사’ 중)

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수 백년을 뛰어넘는 것일까?

세르반테스의 펜을 움직여 [돈키호테]에 남겨진 한 영혼의 흔적!

400년 넘게 기다려왔고,

너무나 애절했기에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반도 남쪽의 한 마을로 이어진 무지개!

그 허구같은, 그러나 역사적 실체의 다리를 건너본다!

(본 이야기는 [돈키호테]라는 소설 속 한 귀절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작품 [돈키호테]는 물론, 당시 세계를 누볐던 스페인의 역사와 동시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조선, 중국, 일본, 필리핀, 마카오) 등의 역사를 통합할 수 있는 문학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15년 간의 자료 수집을 통해 내놓는 역사 이야기이자 소설로, 몇 가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1600년대 초 스페인과 조선 간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25. 안또니오 꼬레아 (Antonio Correa)
작성일 : 22-01-24 21:38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7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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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안또니오 꼬레아

 

 사절단은 로마에서 나폴리로 내려갔다가 다시 로마로 올라와 잠시 머문 후, 피렌체로 이동했다.

 

 로마 교황청의 늦어진 답변을 한 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고, 유럽에 와서, 특히 로마에까지 오면서 보고 경험한 많은것들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 번에는 루이스 신부의 주도로 이태리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다.

 

 통일된 스페인과는달리 이태리는 각 지역이 왕국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왕래는 자유로웠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를 비롯, 개별 나라를 방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국 간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관계에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래도 로마제국의 이름 하에 모두는 하나의 이태리라는 의식은 갖고 있었다. 로마 건국 후, 모두가 하나였던 로마제국을 자신들의 뿌리로 여기고, 언젠가는 과거의 제국을 재건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 목표 때문에, 오히려 서로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모순된 양상을 띤 것도 사실이다. 모두 자기 왕국, 자기 도시를 중심으로, 자기 방식대로 통일을 하자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피렌체에 도착하여 루이스 신부의 안내로 수도원에 짐을 풀었다. 사실 피렌체에 가자고 한 것은 석희였다. 어쩌면 나폴리로 갔던 것도 석희가 루이스 신부에게 요청함으로써 일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석희는 세르반테스와의 만남에서 이태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서양의 역사, 철학, 문학 등 각 방면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태리로부터시작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석희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에 온 김에 여러 지역을 간절히 가보고싶었다. 특히, 세르반테스가 젊었을 때, 방문했다는 도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아울러, 석희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으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조선보다, 아니 일본보다 훨씬 앞선 나라, 서양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이태리에 잠시 있지만, 그렇기에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더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여러 도시 중에 피렌치는 그야말로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단테의 [신곡]을 세르반테스는 거의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복카치오의 [데카메론]도 자신의 [돈키호테] 속에 깊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산따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데카메론]의 무대였고, 세르반테스도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이라고 했다. 흑사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선택한, 그 어떤 방법도 강력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 자체가 삶과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숙제라고 세르반테스는 말했었다.

 

 모든 선택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 하는, 절대 공포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행태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외부와 전혀 접촉을 하지 않기 위해 혼자 지내는 사람이나, 어차피 죽을 바에야 하고싶은 모든 것을 맘대로 하자는 사람이나, 양극단을 피하고 중도의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나, 그 선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 작품은 말한다고 했다.

 

 어쩌면 살려고 하는 그 어떤 행위도, 살고 죽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세르반테스는 해석하고 있었다.

 

 돈키호테의 끝없는 모험이나 운명을 바꾸는 자의적인 행동을 강조했던 세르반테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결론이라고 석희는 생각했었다.

 

 성당을 나오면서, 석희 자신이 처한 기구한 상황 역시,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자신이 조선을 떠나 일본에 가고, 유럽에 와서 세르반테스를 만나고, 이태리에 와서 이곳 저곳을 방문하는 것은, 예정된 운명이 아니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안또니오 꼬레아라는 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숙소인 수도원에 도착해, 1층의 회랑 그늘에서 잠시 쉬고있는 석희에게 안내원이 말했다.

 

 “네? 안또니오? 꼬레아?” 석희는 이름을 여러 번 되뇌었으나, 전혀 기억나는 이름이 아니었다.

 

 잠시 뒤 한 남자가 석희와 훈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는 조선에서 온 안도현입니다. 여기서는 안또니오 꼬레아라고 부릅니다.”

 

 “네? 조선인이라고요?”

 

 맞았다. 그는 서슴없이 조선말을 하는 조선인이었다. 석희는 대단히 놀랐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어떻게 이 멀리까지 조선 사람이 와있다는 것인지, 도대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로마에서 성빈의 그림을 본 이후, 피렌체에서 또 다른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인 사절단이 여기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숙소를 알아내고 단박에 달려왔습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언제 오셨어요? 그리고, 여기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믿기지 않는 상황 앞에서, 석희는 이것 저것을 다급하게 물었다.

 

 “저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와, 그러니까 1598년 3월 경, 나가사키에서 이태리 사람에게 노예로 팔렸고,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안또니오 까를레띠라는 이태리 사람이 저를 비롯해 4명을 나가사키에서 노예로 구입했습니다.

 

 1598년 7월, 그는 마카오에서 죽었는데, 그해 12월, 당시 25살이었던 그의 아들 프란체스꼬 까를레띠를 따라 인도의 고아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1601년 12월이었습니다.

 

 고아는 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먼저 아프리카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들려야 하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고아에서는 저 만 유럽으로 동행하기로 하고, 나머지 4명의 조선인들은 다른 서양인들에게 팔렸으니, 아마도 그들은 고아에 남았거나, 다시 마카오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와 다른 조선인들은 고아를 떠나기 전 세례를 받았는데, 저는 프란체스꼬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또니오라는 세례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이름 뿐 아니라, 세례 기념으로 아버지 안또니오 까를레띠가 품고 있던 목걸이 두 개를 저에게 걸어줬습니다.

 

 하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쓴 모습을 담은 목걸이 였습니다.

 

 저는 인도를 떠나 아프리카를 돌아 여러 번 목숨을 잃을 고비를 넘고 살아남았습니다.

 

 특히, 저희들이 포르투갈 선박을 타고 유럽으로오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함대의 폭격을 받아 배가 침몰하게되었습니다. 그때가 1602년 3월입니다.

 

 아프리카의 세인트 헬레나섬 부근에서 저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이젠 죽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무렵, 필사적으로 저를 구해주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배로 기어오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구했는데, 특히 노예인 경우는 배를 붙잡은 손을 쳐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의 손 만은 잡아줬습니다. 사실, 저를 살렸다기 보다는 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구한 것이 맞는 표현일 겁니다. 어쨌거나, 십자가가 저를 살린 겁니다.

 

 구조는 되었지만, 프란체스꼬와 저는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네덜란드 군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프란체스꼬는 자신이 빼앗긴 것들을 되찾기 위해 네덜란드의 젤란트로 가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타국에서 그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1605년까지 그곳에서 버텼지만, 소송은 원하는대로 결론을 내지 못했고, 프랑스 땅을 거쳐, 고생 끝에 프란체스꼬의 고향 피렌체에 오게 되었습니다.

 

 1598년 3월에 출발해서 1606년 7월에 도착했으니, 8년에 가까운 고된 여행, 아니 모험이었습니다.

 

 프란체스꼬는 아버지 안또니오와는 달리 상업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단지 여행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여행 내내 호기심을 갖고 일어난 일이나 자신이 본 것들을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저에게 조선에 대해서 여러 번 물었고, 저는 나름 아는대로 설명해줬습니다. 물론, 자신의 항해일지에 조선에 대한 이야기도기록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했고, 다음 항해에는 조선에 꼭 가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보다 7-8살 나이가 더 많은 프란체스꼬는 제가 이나라에 자리를 잡는데 도움을 줬으며, 언젠가 함께 조선에 같이 가자는 약속도 했습니다.”

 

 안또니오 꼬레아는 피렌체에 도착한 후, 약 10년간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으며, 그 과정에서 이곳의 여인을 만났다고 했다.

 

 한 때, 로마에 가서 살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 하고, 피렌체로 돌아왔다고 한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듯이, 안또니오 꼬레아에게는 피렌체의 여인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도 그 한 이유였다.

 

 그는 돌아온 즉시 결혼했다고 했다. 30대 중반을 넘어 이국 생황에 안정을 찾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졌는데, 일본인의 방문 소식을 듣고, 분명 조선인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거리를 지날 때 석희를 유심히 봤으며, 통역을 하는 석희가 조선 사람임을 감지했다고 했다.

 

 “조선에는 언제 돌아가실 건가요?”

 

 “아...... 글쎄요….”

 

 안또니오는 말을 하려다, 잠시 생각에 잠겼고, 다시 말을 이었다.

 

 “꼭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자금을 마련하여, 가족들과 함께 긴 여행을 할 준비를 할 것입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조선에 갈 생각이기 때문이고, 자금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양으로 돌아가더라도 일본이 아닌 조선으로 직접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저의 이 계획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난 여기에 정착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가족도 만들었으니….

 

 전 벌써 작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노력만 한다면 그 대가가 확실히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사업의 환경이라는 게 조선과는 달라, 상업적 계약 개념이 확실하고, 그 계약의 내용을 지키고,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를 합니다.

 

 상호 간의 계약은 법적으로 인정되며,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조선처럼 신분제도에 얽매어 있지도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곳입니다.

 

 내가 외국인이라고 특별한 차별은 없고, 오히려 여기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많아, 장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목돈을 만들어 조선에 가고 싶습니다.

 

 자금을 조선으로 가져가는 것은 물론, 이곳의 거래 체계를 조선에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세계를 무대로 무역을 하는 것처럼, 조선도 그렇게 되도록 힘을 쓰고 싶습니다.

 

 조선이 하루라도 빨리 문을 열고, 세계와 호흡한다면, 다시는 일본에 치욕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제가 돈을 모을 수 만 있다면, 이태리의 각 분야 많은 기술자들을 데리고 가, 조선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안또니오 꼬레아, 아니 조선인 안도현은 이미 피렌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의 행동과 의상은 이곳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성격은 쾌활하고 시원시원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성격인지, 현지에 빨리 적응한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조선을 나와 외국인과 오랫동안 접하고, 유럽 생활도 길어졌으니, 어쩌면 조선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석희는 생각했다. 아니, 그게 거대한 환경 변화 속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안도현은 인도를 봤고,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유럽에 들어왔다. 네덜란드 땅을 밟았고, 프랑스의 파리를 가로질러 여러 지방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태리로 넘어와 북부의 주요도시를 거쳐, 피렌체라는 큰 도시에서 10년을 머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으니, 그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꿈이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잠시 석희는 조선을 생각했고, 안도현의 꿈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그의 경험이 조선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석희 자신이 해야할 역할에 대해서도 잠시 되짚어봤다.

 

 “꼭 뜻을 이루세요. 저도 언젠가는 조선에 돌아갈 겁니다.

 

 로마에서 저는 빈센떼 권, 즉 성빈 형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역시 조선으로 들어가 기독교를 전파하기로 저와 약속했답니다.

 

 적어도 우리 셋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 공통의 아픔을 안고, 이렇게 유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센떼 권이 기독교를 통해 조선을 교화시키려는 꿈과 제가 유럽의 과학기술과 학문을 조선에 알려 잠자는 조선을 깨워, 세계와 나란히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꿈,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기서 배운 상업과 기술,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자본을 갖고, 조선의 부를 높이고 나라의 부흥에 기여하겠다는 꿈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꼭 그렇게 합시다. 우리 꼭 조선에서 다시 만납시다.”

 

 안도현과 석희는 서로 깊은 포옹을 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늘 석희를 동행하며 지켜보는 훈의 눈에서도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록 조선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로부터 들은 조선, 그리고 석희와 도현으로부터 들은 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훈의 머리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동안 넓은 세계를 보면서 느꼈던 조선에 대한 생각, 자신들의 처지, 그리고 이국에서의 설움, 앞으로의 미래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세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고, 격한 감정으로 실컷 눈물을 흘렸다.

 

 한편, 이국 땅이지만, 슬픈 현실을 이겨내고,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용기를 내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긴 여행이 남으셨으니, 이것을 몸에 지니고 가십시오. 신께서 저를 지켜 주셨듯이, 당신을 지켜주실 겁니다.”

 

 도현은 자신이 걸고있던 목걸이를 석희의 목에 걸어줬다.

 

 “감사합니다….” 석희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리, 조선에서 꼭 다시 만납시다. 그리고….” 어느새 눈물을 보이는 도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석희도 도현도, 훈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맞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일행은 피렌체에서 베니스로 갔다가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후, 곧바로 리보르노로 가서 배를 타고 제노바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로마에 약 2개월을 머문 것을 비롯, 이태리에는 약 5개월을 보낸 셈이었다.

 

 이태리 일정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안또니오 꼬레아, 즉 도현을 만난 일이었으며, 권성빈, 즉 비센떼 권이 중국을 통해 조선으로 간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유럽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었다.

 

 한편, 석희 개인적으로는 세르반테스가 이야기했던그 도시들을 갈 수 있었다는 점도 의미있었다. 세르반테스가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과 작품 속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상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 방문하는 곳들이지만, 그야말로 석희는 이곳저곳을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작가의 말
 

 안또니오 꼬레아(안토니오 코레아)는 (자료에 의거한) 유럽(피렌체, 로만 등)에 처음 나타난 조선인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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