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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05 어젯밤 일은
작성일 : 22-01-23 00:53     조회 : 189     추천 : 0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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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감하군."

 

 

 

 

 이마를 짚으며 탄식을 터뜨리고 마는 유진을 바라만 보던 해나 역시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팔찌를 찾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당신이랑..."

 

 "처음부터 내게 살의가 없었단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버닝테일인 너의 말을 전부 믿을 순 없어. 그리고 너와 함께한다는 것부터가 내 신의를 져버리게 되는 거기도 하고."

 

 "난 버닝테일이 아니야."

 

 "그래?"

 

 

 

 

 첫날 그의 온몸에 넘쳐흐르던 경계심은 하룻밤 동안의 일로 본의아니게 사라져 버렸다지만 유진의 얼굴이 버닝테일을 부정하는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 버리고 만다.

 

 

 

 

 엄밀히 자신은 버닝테일이라 말 할 수 없었다.

 

 

 

 

 해나는 자신을 쏘아보는 유진의 시선을 당당하게 받아쳤지만 매서운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온몸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상위 포식자를 마주한 두려움. 해나는 그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버닝테일이 유진과 인간들의 협력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당신에게 내 개인사까지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 앞에서 거짓을 말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어."

 

 "겁먹은 그 모습까지 연기가 아니어야 할 거야."

 

 "속고만 살아왔어? 나라고 좋아서 당신 껌딱지나 하겠다는 줄 알아? 팔찌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당신을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와 몇마디만 나누고나면 다시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는 통에 원만한 대화조차 나눌 수가 없었다. 해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단편적인 지난 밤의 기억에 감추려해도 붉어지는 얼굴을 감출 수가 없다.

 

 

 

 

 

 유진 역시 다를 바 없기에 갑자기 마주한 어색한 공기에 괜한 헛기침을 해보이다 옷장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충 아무 셔츠나 손에 잡히는대로 꺼내든 유진이 팔을 찔러넣고 빠르게 단추를 채워나간다.

 

 

 

 

 

 "지금은 어차피 함께할 수도 없어. 들었겠지만 덕분에 약속 된 오전 일정들을 실례를 무릅쓰며 다 어겨버렸고 오후 일정만이라도 저들과 함께해야하니."

 

 "나도 바쁘신 분 옭아맬 생각은 없어. 혹시 후각이 어느정도 예민한 편이야?"

 

 "그건 왜 묻지?"

 

 

 

 

 검은 슬랙스를 꺼내든 유진이 묻자 해나는 상체를 가리고 있던 이불을 당겨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로 돌아 앉았다. 그가 나머지 옷을 챙겨 입는 동안 이불 속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잠시 달싹이기만 하던 입술을 어렵게 떼어낸다.

 

 

 

 

 "어제 일은 내 의지와 상관 없었어. 가끔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는 폭주를 하게 되는데 그땐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져. 당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죽지 않았지만 늘 폭주 뒤에는 가슴이 찢겨나간 채 간을 잃은 시체의 품에서 깨어났었어."

 

 "끔찍하군."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하고 경멸스러워. 괴물이지. 아주 끔찍한 괴물..."

 

 

 

 

 언제 가까이 곁까지 다가와 있었는지 머리를 쓰다듬는 예상치 못한 그의 손길에 당황한 해나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말없이 나란히 곁에 앉은 그가 그녀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다 얼굴이 보이도록 이불을 살짝 끌어 내린다.

 

 

 

 

 "네가 감당해야만 했던 순간들이 끔찍하다는 거야. 네 의지와는 상관없었다는 말과 지금까지 내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그 말도 믿어줄게."

 

 "갑자기 왜? 동정이라도 하는거야?"

 

 

 

 

 이불 위로 다시 얼굴이 드러난 해나가 오밀조밀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날카롭게 유진을 쏘아보았다. 어젯밤의 농밀한 시선과 다르게 순진한 양과 같은 동그란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유진이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하는거라고? 진짜? 아니 무슨 사람이 이렇게 직설적이야?"

 

 "바쁘기도 해. 최면같은건 아니겠고 페로몬인가?"

 

 "다시 어제와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와줄 수 있겠어?"

 

 "올 수야 있겠지만..."

 

 

 

 

 어제와 같은 페로몬에 노출된 채 이성을 잃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런 유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해나는 처연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부탁해. 당신이 아닌 인간들 사이에서 폭주라도 한다면 그땐... 원치 않는 누군가에게 안기는 것도 모자라 그를 죽이기까지 하겠지."

 

 "어차피 나도 원하는 상대는 아니잖아. 내 생각도 해줘야하지 않나."

 

 "뭐라구?!"

 

 

 

 

 발끈하며 고개를 들고 두 눈을 치켜뜨자 멋쩍게 웃으며 유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솔직하게 의중을 드러내는 건 해나의 앞에서 자중해야겠단 생각을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해나가 급히 셔츠 소매를 접어올린 그의 팔목을 붙들었다.

 

 

 

 

 "적어도 당신은 죽진 않으니까..."

 

 "비만 맞지마. 어디에 있든 찾아낼테니."

 

 

 

 

 방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에 유진이 해나의 손을 떼어내곤 멀어져 갔다. 그가 떠난 그와의 체취로 가득한 침실 안에 덩그라니 남겨진 해나가 다시금 붉어지는 얼굴에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한다.

 

 

 

 

 "이젠 하다하다 뱀파이어까지 건드리다니... 정해윤이 알면 까무러칠게 분명한데 어쩌지."

 

 

 

 

 당장 찾지 못 한 팔찌도 문제였지만 언제까지고 해윤을 속인 채 그를 피해다닐 수도 없었다.

 

 

 

 

 유독 어릴 적부터 자신을 아픈 손가락마냥 여기던 그였다. 마치 오빠라도 되는 양 자신보다 작았던 체구를 가졌던 시절부터 과잉보호를 일삼았던 해윤을 어찌 따돌려야 하는지 터져나오는 한 숨만 연신 토해내던 때였다.

 

 

 

 

 어디선가 울려대는 진동소리에 해나의 귀가 쫑긋 거린다. 침실 안에 있는 욕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옮기던 해나가 찢겨진 채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블라우스 위로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발견했다. 금이 선명하게 가 있는 액정 위로 혈육이라고 쓰인 두글자에 괜히 가슴이 철렁인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까지 와있네... 아니 사람 옷을 찢어 놓으면 난 뭐 어떡하라고. 이 아저씬 성질이 얼마나 급하길래 진짜..."

 

 

 

 

 수습 불가인 블라우스를 손에 쥐고서 다시 침실로 돌아 온 해나가 부재중으로 바뀐 액정을 확인하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몰라 전원까지 꺼버리고 유진의 옷장을 연 그녀가 검은 티셔츠와 재킷을 꺼내 든 채 벽면의 거울을 향해 돌아선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왕자님."

 

 

 

 

 대충 자신의 몸에 대어보고는 나쁘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해나가 티셔츠에 얼굴을 밀어넣었다.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길이감 있는 티셔츠 위에 재킷까지 걸친 해나가 빠르게 시선으로 실내를 훑으며 구석에 떨어진져 있던 바지를 찾아냈다. 다행히 상태가 온전한 바지에 감사함을 느끼며 서둘러 입은 그녀가 아빠 신발과도 같은 구두와 운동화들 사이에서 스니커즈를 골라 신고는 끈을 최대한으로 조였다.

 

 

 

 

 제법 치밀한 성격이기도 한 해윤이기에 GPS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과 같은 일에 대한 대비를 해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오랜시간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들을 총동원해 나타날 것이다.

 

 

 

 

 "왕자를 만났단 걸 들키면 절대 안되지."

 

 

 

 

 그의 거처를 벗어나 호텔을 나선 해나가 그의 체취를 지우기 위해 대낮의 수많은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거처로 쓰시는 객실을 한차례 옮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다시 전해 듣기론 또 옮기실 예정이라 하던데 혹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태진과 독대 중이던 유진이 난감함을 지우지 못 한 채 눈썹을 꿈틀거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의식을 잃다시피 잠이 들었고 오랜 시간 깨어날 수 없었다. 지독한 밤이었단 생각에 눈 앞의 태진도 잊고서 실소를 터뜨릴 뻔한 유진이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하고만다.

 

 

 

 

 지난 밤을 일부 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와 달리 유진은 귓가를 간질이며 속삭이던 그녀의 목소리부터 온 몸에 닿아 미끄러지던 매끈하고 부드러웠던 온기들까지 모두 고스란히 남겨져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와의 잠자리가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기에 그녀와의 시간들이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익숙한듯 낯설게 자신의 정신을 옭아매던 그 께름칙한 느낌은 과거 직접 몸으로 겪었던 경험의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는 것과 각혈을 할만큼 치명적으로 목숨을 갉아먹던 독들이 증발이라도 된 듯 하룻밤 사이에 중독 증세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염려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군요. 첫날부터."

 

 "먼길을 오시느라 고단하시겠지만 지금 저희 입장이 왕자님께 배려를 해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충분한 배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식은 지난 밤으로 충분하니 이제 저도 보답을 해야겠죠."

 

 

 

 

 반나절을 허무하게 허비하고 말았으니 이것저것 인사치레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이미 이동 중에 공유 받을 자료는 모두 훑어보았고 태진을 찾은 것은 단지 그들에게 한걸음 더욱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이 차는 향이 독특하여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진정효과가 있어 즐겨 마시는 차입니다. 왕자님의 기호에 맞는다면 가시는 길에 내어드리겠습니다."

 

 "지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원하신다면."

 

 

 

 

 태진의 호출에 작은 종이 백을 들고 들어오는 비서관이 유진의 곁에서 멈추어 섰다. 두 손에 들린 종이 백을 내미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유진이 태진에게 빙긋 웃어보였다.

 

 

 

 

 "그럼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유진의 얼굴에 미소가 스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차갑게 굳어가는 만큼 빠르게 비서관의 팔목을 낚아 챈 그가 손아귀에 쥐여져 있는 것에 힘을 주어 끊어낸 뒤 반대편 손으로 그의 인중을 가격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의 뒤로 넘실거리는 꼬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어느새 단정한 비서관이 아닌 구미호가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놈을 엎어치듯 당겨 바닥으로 내리 꽂은 유진이 그의 목을 움켜 쥐고서 차갑게 시선을 내리 깔았다.

 

 

 

 

 "호텔은 찾은 것도 네 놈이었나? 같은 독을 쓴 것 같은데."

 

 

 

 

 대답대신 으르렁거리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그의 인중에 다시 주먹을 내리 꽂은 유진이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좋아. 오히려 내가 원하는 건 비협조적인 탓에 죄값을 더욱 달게 받게되는 그림이니까. 이 악무는 게 좋을 거야."

 

 

 

 

 다른 한 쪽의 손목과 나머지 발목들도 차례로 끊어 놓은 유진이 손에 묻은 핏물을 그의 셔츠자락에 닦아내곤 태진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뒤로 하얗게 눈을 까집어 뜬 채 거품을 물고서 쓰러져 있는 전 비서관의 해괴하고 끔찍한 모습이 보이자 절로 인상이 써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만다.

 

 

 

 

 "배신감은 아직 미뤄두는 게 좋을 겁니다."

 

 

 

 

 태진을 부축해 소파 위로 그의 몸을 앉힌 유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위로랄 것도 없었다. 이미 태진 역시도 짐작하고 있었을 상황이었기에.

 

 

 

 

 "앞으로 이 독초와 같은 향을 품은 자들은 모두 버닝테일로 간주하고 이 곳을 나가도 되겠습니까?"

 

 "사살명령을 바라는 것처럼 들리는 군요."

 

 "죽이지 않는다면 죽는 건 우리가 되겠죠. 그들은 이미 우리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대변인의 부인이 그 다음일텐데요."

 

 

 

 

 이죽거리는 말투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태진은 유진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나약해질 권리도 없는 위치에 서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망설일 틈도 자신에겐 주어지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말았다.

 

 

 

 

 "우리도 그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고. 그들을 향한 선전포고를 날려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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