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보다 싸가지로 유명햇다.
"여어~ 여기서 보네.
이름은 많이 들었다.
올 신입 중에는 꽤 유명한 여학생이라며?"
"아, 네.
그렇습니까."
"어어~ 그래그래.
편하게 해.
너무 힘주면 다치니까.
생각보다 이쁘네?"
"음흠흠, 선배도 편하게 하시죠."
"그래, 이런 험한 세상에 있기엔 너무 곱구만. 하하.
너무 냉혹하게 하진 않도록 하지."
빠직. 이마에 힘줄 돋아나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화가 났다.
저 새끼는 내가 두들겨패고 말리라, 다짐을 했다.
절대 쉽게 보내지 않겠다.
지는 한이 있어도 어디 한군데 성치 않게 보내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세치혀였다.
전의를 불태우며 선 대련장에서 그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대검을 들고 나왔다.
"아이고, 그 귀여운 무기는 뭐야 후배님~?"
"응. 너 개 패듯 패 줄 몽둥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게슈의 얼굴이 굳었다.
"뭐?"
"내가 후배니까 먼저 간다."
그 말을 끝내고 나의 분노를 그에게 모두 쏟아낼 수 있었다.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대검은 느렸고, 파워도 약했으며, 심지어 휘두르는 자체가 본인에게 피로감을 쌓이게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64강까지는 무기 자체의 무게와 초식으로 같은 검끼리의 대결에서는 유리했을테지만, 나와는 그 공식이 성립하지 않았다.
살짝 살짝 피하면서 봉으로 계속적으로 그를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만 때리고 있었다.
중간 중간 뺨도 한대씩 때렸기에 경기장에는 빡, 짝, 빡, 빡, 짝이 박자에 맞춰 울려퍼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흥미로울 정도로 압도하는 경기가 이어졌기에 관중석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저 여검사는 누군가?"
"글쎄, 예선은 치른겐가?
왜 처음보지?"
내게도 들리는 관중들의 호기심을 뒤로 하고 나는 쌍둥이로 게슈의 구석구석을 몽둥이 찜질해주었다.
결국 제한시간을 앞두고 쓰러지기 직전인 그에게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더이상 가드를 올릴 힘조차 남지 않은 그의 오금과 명치를 연속으로 때려서 엎드려 절 자세를 만들며 속삭였다.
"야, 너한테 맞는 무기로 좀 줄여.
원래 거기가 작은 애들이 그렇게 큰 거에 집착한다며?"
한국에서 터득한 진리를 속삭여주자, 숨도 못쉬던 게슈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분노해봤자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을 것이다.
"화내는 거 보니 맞네~"
한가득 미소 지으며 후련한 발걸음으로 돌아서는데 관중석의 박수 소리가 커졌다.
과장된 인사를 올리는 나를 향한 휘파람 소리도 강해졌다.
"너무 멋있어......
몽둥이가 사실이라니.
역시 영혼을 계약할 걸......
싫다 해도 쥐어줄 걸......"
왠지 익숙한 중얼거림이 관중석 구석에서 맴돌고 있었다.
분노의 힘으로 이겼지만 벌써 32강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32강에서는 나름 강한 선배를 만났다.
정중한 대련 끝에 이겼지만, 어렵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 때부터 의아함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땀을 빼게 한 상대가 없다. 왜지?'
챔버가의 기사단조차 땀 한 방울 없이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리베론의 옷깃을 스치기 위해 노력하는 대련은 말할 것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16강이 확정된 지금까지 날카로운 공격을 구사하는 상대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마, 다양한 무기로 나를 훈련시켜준 리베론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생각하며 합리화를 했다.
16강의 상대는 로세인이었다.
"로세인! 드디어 검을 섞어보네.
최선을 다해볼게."
"엘리온, 살살해.
체리가 보고 있다고."
속삭이는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리...?
최대한 로세인이 멋지게 이겨야 하는건가?'
내 양심과 영웅심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내려졌다.
로세인과는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실력을 봐왔다.
처음에 조교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실력이 상당해서였다.
체리가 로세인의 무술실력때문에 실망할 정도라면 어차피 리베론을 버리고 로세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섰다.
"호호 로세인, 널 응원하지만 최선을 다할거야!
그래도 이길까 말깐데 왜 엄살이야."
"하하하. 말은 고맙다.
나도 이 악물고 덤빌거다."
피식 웃으며 예를 차린 후 준비 자세를 잡았다.
나의 쌍둥이들이 나의 심장 박동에 함께 진동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이제야 진정한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마사지 퀸!
이겨라!"
"갈색 전사!
네게 건 돈이 크다구!"
카엘과 홈크만 응원하던 내 경기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다른 응원소리들이 크게 들려왔다.
이상한 별명들이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인지되고 응원받는다는 기분은 묘한 흥분을 안겨줬다.
"먼저 와."
"간다."
로세인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기에 바로 쌍둥이를 오픈하고 짓쳐들어갔다.
왼손잡이인 로세인의 공격 루트는 익숙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간결하게 찔러들어오는 검을 피해서 왼쪽으로 감아돌며 로세인의 허리를 가격했다.
눈치를 채고 로세인이 거리를 벌리느라 아깝게 비껴감과 동시에 발을 굴러 더 깊숙히 다가갔다.
로세인도 파워검사쪽에 가까워서 스피드에서는 나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검이 제 자리를 찾기 전에 오른팔로 검을 흘리며 왼쪽 둥이로 그의 목을 겨냥했다.
로세인은 몸을 젖혀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모든 무게중심이 무너진 후였다.
그 후는 조금 싱거웠다.
오른 둥이가 그의 빈 명치를 가격했고, 몸의 모든 중심을 무너져 옆으로 굴렀다.
하지만 파워검사답게 맷집이 대단했다.
타격이 상당할텐데도 비틀거리며 다시 거리를 벌려, 대결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우세한 듯 했지만 유효타에도 쓰러지지 않아 약간 초조함도 생겼다.
간장감이 높아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땀이 나지.
동시에 씨익 웃음이 났다.
제대로 된 대결 상대에 가슴이 뛰고, 설렜다.
나의 미소에 관중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녀야?
싸우면서 웃어...?"
"뭐야...
멋있어......"
"참한 영애 같더니 .....
사람이 인상만 보고는 모르는 거구먼."
"엄마, 저 누나 무서워. 흐잉."
다양한 이야기가 울려퍼졌지만 나는 몰랐다.
이렇게 나는 앞으로도 '마마(마사지 마녀)'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나만 모르는 슬픈 이야기의 시초였다.
자세를 잡은 로세인이 먼저 달려들어왔다.
찌르기 같아 보였지만 나는 저 검술을 안다.
아마 내가 피하는 방향으로 따라 들어와 나를 벨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오른둥이로 쳐서 방향을 틀고 왼둥이로 바로 찌르기 공격으로 들어갔다.
이제까지는 후려치지 권법만 사용했기에 살짝 당황한게 느껴졌다.
로세인은 몸을 틀고 뒤로 흘러간 검으로 내려 그었다.
아마 그대로 나를 밀어내서 거리를 벌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상당히 힘이 세다는 걸 몰랐다.
체력과 스피드를 위해 피하거나 흘려보낼뿐 막지 못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오른둥이로 그의 검을 버텨내고 흐트러진 그의 가슴을 왼둥이로 내려쳤다.
이미 많이 무너진 자세였기에 넘어졌지만, 같은 방법으로 두 번이나 명치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는 넘어진 상태로도 쉽사리 내가 승리를 얻지는 못하도록 다리 공격을 통해 거리를 벌렸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차라리 내 틈을 공략하기위해 한 초식에 온 힘을 쏟도록 유도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로세인은 아주 여우같은 구석이 있는 검사였고, 방어적인 전법을 구사하며 대결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결국은 시간초과로 그대로 종료됐고, 두 번 다운된 로세인의 패배로 마무리 됐다.
이기기는 했지만 아주 찝찝했다.
성격같아서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덤벼서 누군가 K.O 될 때까지 담판을 짓고 싶었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시간제한없이 끝까지 해봐."
"하하. 그건 패자가 해야할 멘트 아닌가?"
후련한 마음으로 그와 인사를 하고 돌아나왔고, 시원하지 못한 승패였지만 그래도 관중들은 즐거워했다.
얼떨떨하게 8강까지 올라왔고 그 안에 체리도 있었다.
역시 여주다웠다.
무술 대회에서 여자 신입생이 2명이나 8강에 올라온 건 센세이셔널한 일이었고, 도박사들을 흥분시키는 일이었다.
체리와 나 중에 누가 먼저 떨어질 것인지 베팅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8강에서 만난 선배는 3학년 부학장 중 한 명인 마고였다.
검사로써의 실력도, 생활도 모범적이었고, 무엇보다 미모가 뛰어나 많은 팬층을 거느린 선배였다.
아마 저 차갑고 냉철한 검사로써의 매력에 질끈 묶은 불타는 붉은 머리가 더해져서일 것이다.
상당한 유명인이었지만, 서로 실력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시작 자세를 보고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됐다.
둘 다 속도의 무술을 추구했고 그랬기에 더 화려한 대결이 됐다.
첫 번째 맞댄 무기에서 무게감이나 파워는 내가 더 낫다는 점을 파악했다.
속도의 검술은 어설픈 파워검사는 속도로 찍어누를 수 있지만, 일정 경지를 넘어선 파워검사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양날의 검이었다.
몇 초식을 주고받고 나니 나의 속도는 그녀의 속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결국은 어느 순간에는 파워도 더해서 승부를 봐야하는 것이다.
내 머리는 맹렬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까 로세인을 겪어보니 실력이 있는 검사일수록 맷집도 상당했다.
몇 대 때리는 걸로 승패가 가늠되는 것은 이런 정중한 무술대회가 끝일 것이다.
결국 실전에서는 상대를 베어서 완전히 굴복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마고에게 리치도 밀렸다.
그런데 속도까지 밀린다면 답이 없었다.
나는 쌍둥이의 버튼을 눌러 칼날을 꺼냈다.
관중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전력을 다한게 아니었어?"
"여기~ 여기 저 마녀에게 걸겠소!"
"나도! 나도!
여기 내 돈부터 받아가시오!"
마고의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갔다.
분노의 빛이 어렸다.
"이제야 꺼내다니?
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제 비장의 한 수를 꺼내게 하신건 스승님 빼고 처음입니다, 선배님."
그녀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곧 성격따라 곧은 표정과 자세로 돌아왔다.
나도 준비 자세를 바꿨다.
지금부터는 쌍검술로 변환해야할 때였다.
이후 날아드는 그녀의 검은 피하지 않고 모조리 받아치고 반격했다.
파워의 차이 때문에 내가 막은 직후 아주 잠깐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리치의 변화도 생겼기 때문에 마고는 혼란스러워보였다.
그녀가 내 변화에 익숙해지기 전에 빨리 결판을 내야했다.
마고가 또 한번의 공격을 감행할 때 바로 왼둥이로 막아서 밀어냈다.
반동 때문에 잠시 멈춘사이 오른둥이가 그녀의 팔로 찔러 들어갔다.
이제까지 막아낸 팔을 곧바로 공격하는 쌍검사는 만난 적이 없을 것이라는 내 계산은 적중했다.
당황한 그녀는 공격하는 오른팔을 회수하는데 집중했다.
다른 곳이 멀쩡해도 오른팔이 다친다면 몰수패나 다름없어진다.
그 때 바로 붙어들어가서 방어가 느슨해진 그녀의 옆구리를 다리로 공격했다.
재빨리 반응해서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잠시 쓰러졌고, 그녀의 목 위로 내 오른 둥이가 빠르고 조용하게 내려앉을 정도의 틈은 생겼다.
"와아아아아아!"
"갈색 마녀!
네 덕에 오늘 나 집 샀다!"
"날 가져요 언니!"
생각보다 자잘하게 많이 얻어맞았고, 머리도 많이 써야했던 어려웠던 대결이었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자 마고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내가 평민인 걸 알고 있었을텐데, 선배라고 불러준 귀족은 네가 처음이었다.
중간에 칼날 꺼낼 때 무시해서 그런 줄 알고 폭주할 뻔 했잖아. 하아."
붉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는 그녀는 정말 멋졌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 뿐만이 아닌 듯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신분이 다 무슨 상관입니까.
멋진 대결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봐."
아카데미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오늘의 대결로 '마고x엘리 팬클럽'이 창립된 것을 알게 된 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