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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아카데미의 망나니
작가 : 최현우
작품등록일 : 2022.1.19

파멸이 예정된 게임 속 망나니 왕자에게 빙의했다.
전직 사기꾼의 화술과 계략으로 살아남아라!

 
01. 생텀행 급행열차 -5-
작성일 : 22-01-19 23:31     조회 : 194     추천 : 0     분량 : 7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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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부러 정확한 발음으로 크게 천천히 외쳤다.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내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내가 학생수첩을 보며 떠올린 작전을 실행하려면 주변의 구경꾼들이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들어야 했다.

 

 “뭐, 뭐라고?”

 

 당연히 칼리 황녀는 당황했다.

 느닷없이 얼굴에 주스를 끼얹더니 되려 자신에게 호통을 치는 소년.

 나의 카리스마에 압도 되었다기보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 틈에 나는 얼른 주변을 살폈다.

 샬롯의 말에 의하면 내가 황녀에게 주스를 끼얹은 건 엘프 소녀를 꾀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말대로 내 근처에는 귀가 뾰족한 금발의 엘프 소녀가 서 있었다.

 엘프 소녀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몹시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날카롭게 째진 눈이 사나워 보이는 인상.

 과거 이런 눈매의 성격 더러운 여자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일이 많았던 나는 결코 엮이고 싶지 않은 인상의 소녀였다.

 하지만 지금 위기에 빠진 나의 유일한 돌파구는 그녀였다.

 나는 엘프 여자애를 가리치며 외쳤다.

 

 “보다시피 그녀는 엘프다. 그녀는 이 열차에 있는 다른 승객들처럼 생텀에 입학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앞선 사건으로 이미 구경꾼들의 시선은 사로잡았다.

 그들의 관심을 유지하려면 호기심을 자극해야 했다.

 나의 물음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물론 엘프 소녀 본인마저도 궁금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타기 시작한 나는 사기행각을 이어갔다.

 

 “바로 생텀이 자랑하는 평등과 자유의 원칙을 신용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자는 누구든 평등하게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텀의 이념을 믿고 그녀는 여기까지 왔다!”

 

 내 말에 엘프 소녀는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엘프 소녀의 반응을 무시하고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평등과 자유를 바라던 그녀의 소박한 꿈은 생텀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오직 순수한 인류만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파렴치하고 오만한 로마니아 제국의 황녀에 의해서!”

 

 구국의 원수라도 되는 양 격렬한 연설을 마친 나는 악의가 가득 담긴 삿대질을 칼리 황녀에게 내질렀다.

 황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 목에 겨눴던 칼까지 내리고 외쳤다.

 

 “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안 돼. 황녀님.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으니 이제 네가 뭐라고 말하든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라고.

 이제 칼리 황녀가 실제로 엘프를 차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벌써 내게 선동당한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마니아의 황녀가 저래도 되는 거야?”

 

 “타 종족에 대한 포용정책을 펼친다는 건 말뿐이었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명분이지만 반대로 전쟁을 막는 것도 명분이다.

 나의 선동으로 인해 칼리 황녀는 엘프를 차별하는 파렴치한이 된 상황.

 그에 비해 나는 국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불의와 맞서 싸운 평등과 자유의 투사.

 이런 상황에서 칼리가 내게 위해를 가한다면 이는 명백한 폭거로 보일 터였다.

 

 ‘보통 이렇게까지 선동하는 게 쉽진 않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거친 성인들이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일이 쉽게 풀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열차에 타고 있는 건 생텀에 입학하기 위해 여행 중인 어수룩한 10대 청소년들뿐.

 쉽게 흥분하고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10대들을 선동하는 건 베테랑 사기꾼인 내게는 케이크를 먹듯이 쉬운 일이었다.

 

 “...큭!”

 

 결국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란 걸 눈치챈 칼리 황녀는 검을 거두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비슷해 보이는 결말이었지만 그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한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가이우스 원로도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런 말도 없이 칼리 황녀를 뒤따랐다.

 이전의 상황에서 가이우스는 아무 이유 없이 황녀가 모욕당한 전쟁의 명분을 얻었다.

 이번 상황에서는 생텀의 법도를 어기고 폭거를 자행하려던 황녀를 막은 내게 전쟁을 막을 명분이 있었다.

 잠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데 내가 옹호해줬던 엘프 여자애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싸움에서 편을 들어 준 감사 인사라도 하려나 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감사 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너 뭐야? 왜 제멋대로 끼어들어?”

 

 엘프 소녀는 외모에 걸맞은 차가운 목소리로 퉁명스레 내게 따졌다.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아니라도 형식적 인사치레 정도는 기대하고 있던 나는 꽤 당황하고 말았다.

 

 “뭐?”

 

 “귀까지 먹었어? 왜 제멋대로 끼어들었냐니까?”

 

 물론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내 특성이 아니었다.

 

 “아니, 어이가 없네? 편을 들어줬으면 일단 고맙다고 말하는 게 우선 아냐?”

 

 “내가 언제 편들어달라고 했어? 자세한 상황도 모르면서 느닷없이 끼어들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야?”

 

 그건 맞는 말이네.

 두 사람이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몰랐다.

 나는 그저 내가 빙의한 몸의 주인이 싸 놓은 똥을 치우는 데 급급했을 뿐.

 하지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양아치 특성이 아니었다.

 

 “엘프들은 전부 감사할 줄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네가 엘프 중에서도 특별히 배은망덕한 거냐?”

 

 “뭐? 배은망덕? 너희 나라에서는 제멋대로 끼어들어서 깽판 쳐도 고마워하나 보지? 하긴 너를 보면 네 나라도 정상은 아닐 것 같네.”

 

 뭐 이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엘프 여자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런 성격일 거라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겪으니 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얘도 쓸데없이 사방에 적을 만들고 다니는 타입이네.

 서로 돕고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에.

 

 ‘사실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긴 하지.’

 

 자칫하면 사소한 말다툼이 국가 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내가 그런 미래를 한번 겪기도 했고.

 오히려 왜 뜬금없이 끼어들었냐며 버럭 화를 내는 이 반응이 정상일 수도 있었다.

 

 “뭐야? 또 싸우는 거야?”

 

 “방금까지 엘프 편들지 않았어? 그런데 왜…?”

 

 나와 엘프 여자애가 언성을 높이자 주변의 구경꾼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또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편들어 준 상대에게 시비를 걸어 또 싸움을 시작하다니.

 이 무슨 어그로의 천재?

 함정 특성 두 개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으니 실로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그만하자. 너랑 싸워서 얻을 것도 없고.”

 

 나는 엘프 여자애와 말다툼을 벌여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조금 전에 황녀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았기 때문에 엘프와 다툼을 벌이면 황녀에게 씌웠던 프레임을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쓸 판이었다.

 굳이 이런 성격 더러운 여자애한테 감사 인사를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나는 말싸움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엘프 여자애는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작은 왕국 출신 주제에, 로마니아의 황녀에게 시비를 걸다니, 제정신이야?”

 

 나는 원래 안하무인의 망나니 몸에 빙의해서 그렇다고나 하지.

 얘는 왜 이렇게까지 나와 싸우고 싶어 하는 거야?

 왜 초면인 내게 이렇게까지 적개심을 뿜어내는 거지?

 

 ‘어라?’

 

 내가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는데 엘프 소녀의 머리 위에 작은 허상이 떠올랐다.

 그 허상을 보고 깜짝 놀라자 엘프 소녀는 자신을 보고 놀라는 줄 알고 내게 되물었다.

 

 “뭐야?”

 

 “너, 머리 위에…!”

 

 “내 머리 위에…. 뭐?”

 

 그 허상은 엘프 소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오른 허상에 집중했다.

 그것은 게임에서 중요한 이벤트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나린 스펠위버’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게임 클래시 킹즈에는 캐릭터 간의 호감도가 존재했다.

 이 호감도를 바탕으로 친목을 다지고 국가 간의 동맹을 맺거나 배신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호감도란 게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수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감도가 증가했다는 건 말 그대로 상대가 내게 호감을 느꼈다는 의미.

 나는 눈앞의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얘는 이런 사나운 표정과 적대적인 말투로 내게 고마워하는 거야?’

 

 나린 스펠위버.

 엘프의 국가인 엘도란 왕국의 공주.

 종족 특유의 뛰어난 마력 감응성으로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엘프 소녀.

 내가 게임에서 알 수 있던 나린에 대한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겉과 속이 다른 여자애라는 사실을 게임에서 알 방법은 없었다.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망정이지, 황녀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칼에 찔릴 뻔했잖아! 넌 보나 마나 칼 휘두르는 법도 모를 테지.”

 

 “어…”

 

 내 입에서는 다소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항상 타인의 감정을 상하기 위해 나불거리던 혓바닥도 지금은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로이가 가진 특성들도 지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건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린의 말투가 조금 거칠긴 해도 곰곰이 되뇌어보면 나를 걱정해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나는 쿨하게 그 사실을 모른 척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니까, 국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황녀에게 살해당할 위험까지 감수하며 편을 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내 특성은 내가 멋지게 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내 말에 나린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나린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녀가 정곡을 찔려서 부끄러워할 뿐이라는 걸 알았다.

 

 “...아무튼! 황녀와의 불필요한 논쟁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니, 하는 수 없이 보답은 해야 하겠지.”

 

 “아하.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든 내게 사례를 하고 싶은 거구나?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는데.”

 

 아 그만 좀 해!

 내 양아치 같은 특성은 나린이 숨긴 감정을 곧장 까발려서 그녀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린은 방금 전보다 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놀리는데도 호감도가 감소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싸움에서 편을 들어 준 일이 무척이나 고마웠던 모양이다.

 

 “그…”

 

 나린는 작게 다문 입술을 달싹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린을 몰랐을 때라면 그녀를 놀린 내게 화가 났다고 오해했을 테지만 지금은 알았다.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나린은 지금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짜내고 있었다.

 그 고행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보답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잠시 시간 좀 내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감사 인사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얼마나 힘을 짜냈는지 나린은 작게 심호흡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동시에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나린에게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나린이 칼리 황녀와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자초지종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싸움의 원인을 해결하면 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린은 작게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나는 자국의 업무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야. 타국의 왕자와 사사로이 교류할 생각은 없어.”

 

 고맙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협조할 생각은 없는 건가?

 실제로 엘프는 게임 내에서도 자만심으로 가득 찬 오만한 종족이어서 타 종족에게 협조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감사 인사를 건네기 위해 안간힘을 짜내는 나린은 엘프치고 특이한 편에 속했다.

 본인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나.

 나린에게 이야기를 듣는 계획을 포기한 내가 머릿속으로 다른 계획을 세우려는데 그녀가 슬쩍 말을 이었다.

 

 “커피와 홍차 중에 더 좋아하는 음료가 뭐야?”

 

 “왜?”

 

 “이 허술한 열차의 허접한 식당칸이 제공할 수 있는 음료는 고작 그 둘이 전부인 것 같던데.”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나린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설마 사주려고? 아니, 됐어! 나도 돈 있거든! 그냥 이야기만 들려주면 돼.”

 

 나와 함께 식당칸으로 향한 나린은 기어코 내게 커피를 사주었다.

 얘 정말 솔직하지 못하네.

 커피도 홍차도 둘 다 선호하지 않는 내게는 부담스러운 친절이었지만 나린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내게 커피를 사준 나린은 사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았다는 안도감에 한결 후련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듣고 싶다던 이야기가 뭐야?”

 

 나린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홍차 한 모금을 넘기며 물었다.

 

 “아, 그래. 로마니아의 황녀와는 왜 싸우기 시작한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그 녀석이 느닷없이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고!”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마자 나린은 마치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께 이르는 초등학생처럼 서러움과 억울함 가득한 말투로 내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도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나린은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나는 매너 있게 못 본 체하고 싶었지만 내 양아치같은 특성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 표정을 보니 엄청 억울했었나 보네. 황녀가 느닷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고?”

 

 “그래. 완전히 막돼먹은 여자야.”

 

 나린은 황녀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기에 나는 나린을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황녀가 먼저 화를 냈다고?”

 

 나린은 입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했다.

 초등학생이냐?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화를 낼 리는 없다.

 이 일의 진상을 좀 더 알아야 했다.

 나는 좀 더 나긋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 특성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야, 그게 말이 되냐? 뭔가 사소한 이유라도 있었으니까 화를 냈겠지. 오해가 있었던가. 아무런 이유 없이 화를 냈다면, 장차 로마니아 제국을 책임져야 할 황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뜻이잖아?”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난 오히려 칭찬까지 해줬다고.”

 

 “칭찬을 해줬다고?”

 

 “그래. 머리에 그 황금색 장식이 예쁘다고 말해줬다고.”

 

 거짓말.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도 힘겨워하는 나린이 그렇게 솔직하게 남을 칭찬했을 리가 없었다.

 

 “나린. 정확히 황녀에게 뭐라고 말했냐?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말해 봐.”

 

 “정말로 별 이야기 안 했어. 엘도란의 전통 장신구에는 못 미치지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곱게 자란 아가씨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했단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흩어졌던 퍼즐 조각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내가 알아낸 사실을 나린에게도 알려주기로 했다.

 

 “황녀가 화낼 만하네.”

 

 “뭐? 어째서?”

 

 “나린. 너는 칭찬하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칼리 황녀에게는 결투 신청이나 다름없었을 걸.”

 

 “어, 어째서? 아름답다고 했는데?”

 

 “칼리 황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여자애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지. 다른 영애들이 드레스를 입고 홍차에 대한 예절을 배울 때 갑옷을 입고 전장에서 검을 휘둘렀으니까. 로마니아 제국은 그만큼 개인의 무력을 중시하는 국가거든. 황녀는 자신을 한 사람의 레이디가 아니라 당당한 전사라고 여기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런 표현은 전사에게는 굉장한 모욕이지.”

 

 내 말에 나린은 너무 놀라서 잠시 표정 관리도 하지 못했다.

 

 “제국의 예법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자기 잘못을 이제야 깨달은 나린은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말투는 건방졌지만 나린의 표정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그녀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나린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물었다.

 

 “칼리 황녀가 화해하고 싶어?”

 

 “뭐?”

 

 나린은 내가 불가능한 일에 해결책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놀라서 나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 황녀와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잖아? 칭찬으로 말을 걸어서 친해지고 싶었던 거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타국의 사람들과 사사로이 교류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을 텐데?”

 

 전형적인 솔직하지 못해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네.

 나는 대답 대신 가만히 나린을 쳐다보았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린은 자기주장을 반박할 만한 변명거리를 스스로 떠올렸다.

 

 “...하지만 이유 없이 반목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지. 뭘 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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