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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보이지 않는 존재들
작가 : 이야기
작품등록일 : 2021.12.26

한 방에 모여있는 사람들. 모두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들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사람들①
작성일 : 22-01-18 22:35     조회 : 240     추천 : 3     분량 : 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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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의식이 드나 보군."

 

 낯선 소리에 84번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이윽고 통증이 이어졌는지 84번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 허리야.."

 

 자신의 허리를 문지르던 84번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낯선 무리들이 84번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84번은 이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누구야. 너희."

 

 "누구긴. 반갑군 84번."

 

 무리 뒤에서 머리가 짧은 한 남자가 두 팔을 벌리며 84번을 반겼다. 그는 삐쩍 말랐는데 팔 근육만큼은 두꺼웠다. 84번은 그런 78번을 멍하니 바라봤다. 78번이 못내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야. 78번. 벌써 잊었나. 이거 서운한데."

 

 78번이 재차 말하자, 84번의 표정이 점차 달라졌다.

 

 "78번?"

 

 84번의 외침에 78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84번이 마침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구나!! 이야! 살아있었군!"

 

 84번은 반갑게 웃으며 78번에게 다가갔다. 환하게 웃은 78번은 84번을 안으며 말했다.

 

 "드디어 왔군. 올 줄 알았어. 돌아가지 못해서 연락을 못 하고 있었지."

 

 78번은 84번의 등을 토닥였다 84번이 외쳤다.

 

 "이야~! 그럼 내가!!"

 

 78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 산 거야. 축하해. 드디어 그 방을 탈출했군."

 

 "아하하하하하~!"

 

 84번의 호탕한 웃음에 2번과 20번, 54번도 차례차례 의식을 찾았다. 84번이 이들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우리 살았어! 살았다고. 그 방에서 벗어났어!! 아하하하하하!!"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군."

 

 2번은 떨어진 안경을 집었다. 안경은 충격 탓인지 조금 찌그러졌다. 54번이 주변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형, 누나들이 여기 있었어.."

 

 "꼬맹이도 드디어 왔네. 축하해."

 

 "대단해.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54번을 알아본 이들은 박수를 쳐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20번이 주변을 바라봤다.

 

 "7번은..."

 

 20번은 7번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7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20번은 차례차례 동료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7번의 행동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7번은 왜 그랬을까..'

 

 7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대로 고꾸라진 동료들의 모습이 아직도 20번의 눈 앞에 그려졌다. 특히 7번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 44번의 마지막 모습은 잊혀지지 않았다. 두려워하면서도, 원망과 체념이 한꺼번에 섞인 44번의 눈빛이 20번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20번은 눈을 꾹 감으며 당시의 모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괴로움은 점차 커져만 갔다. 일종의 공포였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44번의 눈빛은 더 커졌다. 두려움이라는 늪에 잠길 때 쯤 54번이 물었다.

 

 "형. 괜찮아?"

 

 20번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지?"

 

 "응! 멀쩡해 형아. 우리 살았어."

 

 살았다는 말에 20번의 마음은 무겁게 느껴졌다. 이미 바위 틈에 깔린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20번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다행이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야."

 

 20번의 말에 54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84번이 웃으며 말했다.

 

 "자. 78번. 여기는 어디야. 이제 우리 자유의 몸인가?"

 

 84번의 물음에 78번은 답하지 않았다. 78번의 표정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84번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뭐야. 78번. 왜 그래."

 

 78번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는.. 또 다른 방이야.."

 

 "뭐라고? 또 다른 방이라고?"

 

 84번이 놀라 묻자, 78번은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84번이 주위를 둘러보려고 하자, 그를 감싸던 무리들이 자리를 비켰다. 그러면서 가려졌던 공간이 드러났다.

 

 이곳은 이전에 있던 방과 같은 구조였다. '메시아'가 있었고, '오아시스'가 보였다. 다만 이전 방과 달리 직사각형 구조가 아닌 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선 아직 '메시아'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84번이 말했다.

 

 "빌어먹을. 목숨걸고 탈출했는데.."

 

 2번이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메시아와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라.."

 

 "처음부터 갇혀있었다는 의미지."

 

 7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다친 듯 7번의 이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7번의 등장에 20번은 소리 치며 달려갔다.

 

 "왜! 왜! 죽인 거야!"

 

 20번이 돌진하자, 7번은 빠르게 피했다. 그러면서 20번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20번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7번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 죽었어."

 

 "그래도 동료를 그렇게.. 죽이면 안 되잖아!!"

 

 20번이 다시 달려들지만, 7번은 잽싸게 피하며 20번의 다리를 걸었다. 20번은 또 넘어졌다. 20번은 분하다는 듯이 7번을 노려봤다.

 

 "언제부터 동료였지? 너도 그들을 구하러가지 않았잖아. 잊지마. 그들이 죽어서 너도 살 수 있었던 거야."

 

 "그..그렇지..않아."

 

 20번의 말에 7번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있는 사람들도 과연 떳떳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미지의 방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했어. 정신차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게 사람들을 구하려고 있는 게 아니야. 살려고 있는 거지. 죽으면 끝이야."

 

 7번의 말에 주변의 공기가 다소 무거워졌다. 어느 누구도 7번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7번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살린 거야. 고맙게 생각해."

 

 "그건 살린 게 아니야!!"

 

 7번의 말에 20번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2번이 나섰다.

 

 "진정해. 7번의 말도 일리가 있어."

 

 "뭐.. 뭐라고?"

 

 20번이 입술을 꾹 물었다. 84번이 말을 이었다.

 

 "어이. 애송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죽으면 끝이라고. 살아있으면 된 거야."

 

 "다들 미X 거 아냐? 7번은 동료를 죽였어. 동료를!"

 

 20번이 주변을 바라봤다. 하지만 주변에선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20번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다들 7번의 생각과 일치하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아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에 20번이 고개를 돌렸다. 작지만, 몸이 탄탄한 남성이었다. 코가 큰 남성이었는데 그는 20번을 보더니 껄껄 웃었다.

 

 "나는 37번이네. 자네 몇 번인가."

 

 "20번인데요..당신은.."

 

 20번이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자, 37번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하하하. 20번. 그래. 모처럼 이곳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오다니. 흥미로워. 동료들을 챙기다니 말이야."

 

 37번은 20번을 한 번 바라봤다. 20번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37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소개하지. 그리고 나서 하던 얘기들 나눠보자고."

 

 37번의 제안에 20번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더 설명을 해봐도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20번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번을 본 37번이 방긋 웃었다. 그가 움직이자, 2번, 7번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7번이라고 했지? 우선 치료부터 하지. 78번 약 좀 가져오고."

 

 37번의 말에 78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못마땅하게 바라본 84번이 37번에게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우두머리인가 보지? 어때 나랑 한 판 붙는 게?"

 

 84번이 자신의 가슴을 한 차례 치며 말했다. 37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지금은 말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무슨 말이야?"

 

 84번의 말에 37번은 답하지 않고 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물었다.

 

 "99번은 아직도 있던가?"

 

 "할아버지를 아세요?"

 

 37번이 고개를 끄덕이자, 54번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메시아가 갑작스럽게 꺼진 얘기들, 그리고 99번이 이곳에 오지 못한 이유를 말했다. 37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랬군.. 그렇게 남다니.. 대단하군. 나 같으면 절대 못하지."

 

 37번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나저나 메시아가 꺼지다니.. 보통 일이 아니군.."

 

 "이곳에서도 메시아가 꺼진 적이 있었어요?"

 

 20번의 물음에 37번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내가 있을 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어쨌든,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군. 일단 나를 따라오게. 이곳을 안내하지."

 

 이들은 곧 37번 주위로 갔다. 37번은 이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들처럼 '도전하는 자'들은 저 위에서 떨어지지."

 

 37번 손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빛을 모조리 삼킨 것 같았다. 54번이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나도 보이지 않아."

 

 37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곳을 빤히 보던 2번이 물었다.

 

 "가만.. 우리가 떨어졌다면 바위는?"

 

 2번이 안경을 고쳐 쓴 뒤, 다시 위를 찬찬히 바라봤다. 역시나 2번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37번이 말했다.

 

 "바위는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지. 여기 7번은 산산조각이 된 바위에 부딪힌거 같고."

 

 7번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지?"

 

 "하하하하.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미지의 방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말이야. 떨어질 때 바위가 부서지는 걸 본 이들이 한 두명이 아냐. 나도 봤으니까."

 

 2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부서졌다고? 그러면 파편은? 파편이 바닥에 남아야 하는데."

 

 2번이 바닥을 둘러봤지만, 바위 파편은 남아있지 않았다. 37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위 어딘가에 장벽이 있는 걸로 보여. 파편은 떨어지지 않지만, 사람만 떨어지는 거지. 그것도 안전하게. 의식이 없는 채로. 말이야."

 

 37번의 설명에 84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 돼? 사람만 떨어진다는 게?"

 

 37번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치는 않지. 다시 올라갈 수 없으니 확인할 방법도 없고. 그저 추정만 할 뿐이지. 하지만 방을 한 번 빠져 나오니까 알겠더군."

 

 "그게 뭔데."

 

 "이 방을 누군가가 설계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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