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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번 생은 황제를 파업하고 동생이나 지키려 합니다.
작가 : 로쥬마리
작품등록일 : 2022.1.18

아름다운 명예의 제국 이스트의 황제, 아멜리아 프렌시스는 제국과 국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제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뼈를 갈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건 사랑하고 신뢰하던 기사단장인 동생과 가장 아끼던 후궁의 반란?!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멜리아. 언니를 존경하던 동생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켰을 리 없다며 동생을 회유하고 유혹했을 귀족들을 저주하며 눈을 감았건만, 다시 눈을 떠보니 황제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 절대 놓칠 수 없지! 아멜리아는 동생의 순수함을 지키고 이스트가 귀족들의 손에 놀아나는 꼴을 막기 위해 이번 생은 모든 걸 뒤집어 버리기로 한다. 그건 바로 동생을 황제로 세우고 자신이 기사단장이 되어 동생의 곁을 지키는 것! 동생에게 접근하는 시커먼 속내의 귀족들을 자신이 미리 쳐낼 수만 있다면 이스트와 동생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아멜리아. 그녀의 예상대로 이번에는 동생은 순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회귀하기 전과 달리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생겼다……? 쏟아지는 애정 공세와 함께 오로지 일만 알았던 ‘황제 아멜리아 프렌시스’가 놓쳤을 사랑의 시그널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한다! 다들 이번 생에서는 내가 좋다고? 혼란스러우니까 제발 이러지 마! 사랑스러운 동생을 위해서라면 위장 결혼, 격투, 주먹다짐은 기본에 오래된 제국의 법과 전통까지 뜯어고치는 저력을 보여주는 엄청난 언니, 아멜리아 프렌시스. 동생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는 무섭고 당차며 듬직한 공주이자 기사단장인 아멜리아의 제국과 동생을 지키기 위한 눈물 나는 고군분투!

 
그 이야기에서는 누구도
작성일 : 22-01-18 13:21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7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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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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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아는 바로 페르세우스로 향했다. 황후의 궁전. 그때의 요하임이 늘 지냈던 곳이자 지금 아멜리아의 어머니가 계시는 곳. 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멜리아는 엄청난 자제력으로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그때의 어머니는, 아멜리아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독살당하셨다. 지금으로부터 1년쯤 뒤, 아멜리아가 아버지께 국정 수행을 배우던 그 시점에 말이다. 어머니가 드신 거라고는 고작 초콜릿 하나였고, 독이 든 그 달콤한 초콜릿 하나가 다정하고 품위 넘치던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다. 물론 독살의 주범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어 범인을 찾을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 과거로 돌아오며 돌아가셨던 어머니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행복했다. 아멜리아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공주님께서 이른 시간부터 무슨 일이신가요?”

 

 

 

 온화한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반기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왈칵 쏟아져 내리려는 눈물을 삼켜냈다.

 

 

 

 “어머니, 제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어머나, 우리 공주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유난이람. 가까이 오세요.”

 

 

 

 드레스 자락이 사방으로 휘날려도 개의치 않고 전력으로 달려간 아멜리아가 어머니의 품에 안긴다. 은은한 꽃향기가 포근하게 감싸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요? 안색이 어두워 보기 좋지 않답니다.”

 

 “아, 그게…….”

 

 

 

 어머니를 다시 만나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지금 당장 닥친 문제는 그게 아니었지. 아멜리아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저 사실 드실 말씀이 있어요. 우선 차라도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지요. 차분하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 것 같으니 너무 뜨겁지 않게 부탁해요, 케이.”

 

 

 

 페르세우스를 총괄하는 지배인이자 황후의 전속 기사인 케이가 가볍게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다. 케이? 그러고 보니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 왜 케이가 페르세우스를 관리하지 않았지? 기사단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능력이 뛰어난 케이가 자신이 황제가 된 후 황궁에서 왜 보이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아멜리아는 일단 해결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라며 애써 생각을 떨쳐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산뜻한 페퍼민트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식은땀이 흘렀다. 사실 아멜리아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무서웠다.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온화하고 다정한 분이지만 공적인 문제로 넘어가면 베일 듯 날카롭고 냉정한 분이기에 아멜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어, 그게…… 황제의 자리를 엘라에게 넘겨주려고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역시나. 심기를 건드린 듯 온화한 어머니는 온데간데없고 시리도록 차가운 이스트의 황후, 로엘리 프렌시스가 아멜리아 앞에 앉아있었다. 어쩐지 망한 것 같다. 아멜리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제게 어울리는 일, 그런 일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께 통치를 배운 저희라면 누가 황제가 되든 이스트에게는 이로울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라는 저보다 더 총명하고 상냥한 아이니까 분명 주어진 일을 잘 해낼 거예요. 이미 아버지께도 제 마음을 말씀드렸고, 제 의지는 완강합니다.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어요.”

 

 

 

 사실은 결정하기까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멜리아는 긴장으로 자꾸 굳으려는 손을 살짝 쥐었다가 폈다.

 

 

 

 “정말 이스트에게 이로울 거라고…… 생각하나요? 엘라가 황제가 되는 것이?”

 

 “네. 주제넘은 판단이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엘리는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멜리아와 똑 닮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의 눈빛에 불안함과 미안함이 깃든다.

 

 

 

 “난 한 번도 엘라가 내 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부담스러울까 사랑을 아꼈고, 그 아이도 제게 부담이 될까 사랑받는 것을 마다했죠. 평행선 같은 관계였지만 저는 나름대로 행복했고, 그렇기에 엘라가 얼마나 상냥하고 영리한 아이인지 압니다. 또한 언제나 변함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멈춰있던 엘라와 제 사이에서 늘 균형을 잡아준 건 아멜리아였어요.”

 

 “어머니…….”

 

 “그러니 엘라의 승낙을 받아오세요. 저는 아멜리아의 성격을 잘 안답니다. 한 번 마음을 먹었다면 절대 바꾸지 않겠죠. 제 성격과 같아요.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말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엘라의 승낙과 황제 폐하의 승낙을 받으면 저도 아멜리아의 용기를 지지할게요. 나의 소중한 딸이니까. 저는 딸을 믿고 지원해야 할 어머니니까요.”

 

 

 

 뜻밖의 이야기에 아멜리아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로엘리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지금 말을 꺼내면 한없이 넓은 어머니의 다정함에 목놓아 울어버릴 것만 같다. 눈을 감고 감정을 꾹 눌러낸 아멜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엘라에게 가볼게요! 반드시 엘라의 승낙을,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다시 어머니께 찾아올게요. 어머니가 제 편이 되어주셔서 저는…… 너무 기뻐요. 진심으로 존경해요, 어머니!”

 

 

 

 쏟아내듯 말을 뱉어내고 도망치듯 페르세우스를 떠나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로엘리는 따듯한 눈빛으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달려가세요, 아멜리아. 로엘리의 작은 속삭임이 페퍼민트 향기와 함께 포근함을 담아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멜리아가 아버지와 어머니께 폭탄선언을 하고 있던 시간, 엘라는 바르고 앞을 서성이며 돌아오지 않는 아멜리아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바르고를 나선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오는 아멜리아의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도 너무나 지쳐 보여서 엘라는 한걸음에 아멜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언니! 대체 무슨 일이야. 아버지께 다녀온 거 아니었어?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멜리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엘라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찬성하더라도 가장 큰 난관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절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으려고 할 엘라를 설득하는 것. 너무도 당연하게 언니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수하고 다정한 엘라를 설득하려면 꽤 고생해야 할 텐데, 그러다 보면 너무 자신의 생각만 강요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멜리아는 조금 두려웠다. 설득의 대상이 아버지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엘라가 끝까지 반대한다면 아멜리아는 사랑하는 동생을 냉정하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걱정을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게 되었다.

 

 

 

 “그래, 언니가 말한 대로 할게. 언니는 내가 황제가 되길 바라는 거잖아?”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고 기사단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며 프렌시스 가문의 장녀로서 받을 제국에 대한 모든 권리는 전부 너에게 넘기고 싶다는 아멜리아의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고, 또 다음에는 만류하던 엘라는 아멜리아의 강한 설득 한 번에 너무나도 쉽게 이 엄청난 일을 수긍했다.

 

 

 

 “내가 언니 성격을 몰라? 무슨 생각인지는 전부 알 수 없어도 언니가 이미 마음먹은 거라면 내가 아무리 울고 황제가 되기 싫다고 떼써도 안 바꿀 거잖아. 일단 알았다고 해야지 뭐 어쩌겠어.”

 

 “엘라. 그렇지만 난 네 선택을 존중하고 싶어. 내가 황제를 아예 포기하는 이상 귀족들도 더 뭐라고 못하겠지만…… 아버지도 지금 당장은 반대하고 계시고, 대신들은 내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너를 얕잡아 보고 무시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황제를 쥐락펴락하려고 할지도 몰라.”

 

 “그런 건 언니가 걱정할 게 아니지 않아? 언니가 기사단에 들어갈 거라며. 언니가 날 지켜주면 되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어렵겠지만 나한테는 언니가 있어.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 상냥한 엘라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엘라가 일을 수락한다면 아멜리아에게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었으니. 아버지를 설득하고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다정한 요하임은 좋은 국서가 될 거고, 셰인은 후궁의 자리에 올라 엘라와 만나게 되겠지만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 황족이 없으니 요하임을 쳐내고 국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며, 혹시나 반란을 일으키려 아멜리아에게 접근해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멜리아가 순순히 셰인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면 이스트는 18대 황제 ‘엘라 프렌시스’의 통치 아래에서 영원토록 평화로울 것이다.

 

 

 

 “국서는 누구로 들일지, 후궁은 누가 좋을지 언니가 전부 꼼꼼하게 골라줄게. 국서로는 역시 메이프 가문의 요하임이…….”

 

 “그건 아니지!”

 

 

 

 어? 엘라의 단호한 외침에 아멜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요하임이 별로인가? 얼굴은 엄청나게 준수하고, 가문도 적당하고, 성격이야 얘기할 것도 없이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요하임이 국서로 제격일 텐데.

 

 

 

 “요하임이 별로야?”

 

 “별로인 게 아니라, 그건 내가 황제가 되는 거랑은 얘기가 다르지. 메이프 자작도 원하지 않을걸? 왜냐하면 요하임은 언니를…… 에휴, 됐어. 눈치 없는 언니한테 내가 뭘 얘기하겠어.”

 

 “요하임은 나를…… 뭐, 친구로 생각한다고? 친한 친구랑 가족이 된다는 게 좀 불편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래도 국혼이라는 게 뭐야. 메이프 가문에서도 요하임이 당연히 국서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있을걸? 어차피 정략혼인데 황제가 너랑 나, 둘 중에 누가 되든 그게 뭔가 중요해.”

 

 

 

 엘라는 역시 요하임의 마음은 죽을 때까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뭘 모른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아멜리아는 답답할 뿐이었다.

 

 

 

 “어쨌든. 아버지께는 나도 잘 말씀드릴게. 그런데, 언니.”

 

 “응? 왜 그래?”

 

 “기사단 시험에 합격할 자신은 있어? 한 번도 검 잡아본 적 없잖아.”

 

 

 

 ……그렇네? 아멜리아의 멍한 표정에 엘라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도 생각 안 하고 기사단 시험 합격을 목표로 삼았어? 바보. 엘라의 웃음소리가 아멜리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넘치는 힘과 자신을 무시하던 귀족 자제들 혼내주던 주먹밖에 없는데 어쩌지. 엘라가 기사단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에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버렸다며 아멜리아는 낙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 수업을 받느라 매일 서고에 처박혀 공부만 하던 자신과 다르게 엘라는 어렸을 때부터 검이면 검, 활이면 활. 내로라하는 귀족 자제들도 실력으로 이길 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났으니까. 그에 반해 아멜리아는…… 기술보다 무식하게 힘만 센 부류에 속했다.

 

 

 

 “내가 언니한테 검술을 알려줄게. 언니는 나한테 언니가 아버지께 배웠던 것들을 알려줘. 그러면 되겠지? 서로가 잘하는 것을 나누자. 언니는 기본적으로 힘도 좋고 체력도 좋아서 금방 배울 거야.”

 

 “정말 그럴까?”

 

 

 

 그래! 죽기도 했었는데 뭐가 무서워. 안 되도 되게 해야지. 손에 굳은살이 박히고 무릎이 깨져도 한 번 마음을 먹었다면 기필코 해내야지. 아멜리아는 웃으며 엘라의 손을 잡았다.

 

 

 

 “내일 같이 아버지께 가자. 너도 동의한다는 걸 얘기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좋아. 마음먹은 김에 아침 일찍 다녀오자.”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어. 엘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내 불편했던 구두를 벗어 던진 아멜리아도 그제야 방으로 향했다. 드레스를 벗지도 않고 침대에 뛰어드니 피곤이 몰려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벌써 지치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여기서 만족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아멜리아는 소피아에게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검과 활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되면 되게 해보자. 아멜리아의 기사단 합격 특훈과 엘라의 황제 족집게 과외는 이제 막 출발선을 넘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아멜리아는 꿈을 꾸었다. 나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황궁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아멜리아가 죽은 후의 이스트였을 그곳. 황폐해진 황궁은 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카시오페이아의 화려한 장식들은 전부 도둑이라고 맞은 듯 볼품없이 뜯겨 있었다. 아멜리아와 시선을 공유한 이름 모를 누군가는 그 안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듯 잔해로 뒤덮인 바닥을 맨손으로 헤집는다. 이 사람도 무너진 황궁에서 뭐라도 건지려는 도둑일까? 깨진 유리와 투박한 돌에 살이 쓸릴 때마다 아멜리아는 마치 자신의 손을 다치는 것처럼 아팠다. 드디어 무언가를 찾은 듯 손에 소중하게 쥔 ‘그’는 카시오페이아를 나서 밖으로 달린다.

 

 붉은 횃불이 황궁을 둥글게 감싼다. 당황한 그는 몸을 숨기려는 듯 바르고로 향한다. 항상 포근하던 바르고의 내부는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싸늘했다. 그는 2층으로 올라가 옷장 안에 숨는다. 아멜리아의 옷장이었다. 드레스들은 모두 그대로였고, 방도 먼지가 조금 앉았을 뿐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쌓인 서류와 드레스들은 아멜리아가 황제가 되며 바르고를 떠날 때 두고 간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것이 그때의 이스트라면 웨스트에게 제국의 주권을 빼앗기기 직전의 상황일 것이다. 엘라는 어디에 있을까. 무사히 도망쳤을까? 웨스트와 사우스는 애초에 이스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는 건 어려웠을 것이고, 노스에게 연락이 닿았다면 아멜리아와 각별했던 노스의 황제가 엘라를 보호해줬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셰인의 계략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고 아멜리아에 대해 잘 알던 사람들은 모두 엘라가 황제가 되고 싶은 욕심에 독단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아멜리아를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을 것이 뻔하기에 엘라를 증오하거나 도움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아멜리아는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도 엘라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아멜리아와 꿈속에서 시선을 공유하고 있는 ‘그’가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지만 그도 이스트의 반란군일지 웨스트의 적군일지 모르는 무리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아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멜리아는 답답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는 옷장 밖으로 발을 옮겼다. 그가 안심하며 바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화살이 가슴팍에 날아든다.

 

 그는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치명상은 피했지만, 갑옷을 입은 기사단에 의해 붙잡히고 말았다. 갑옷의 형태로 보아 웨스트의 기사단이 확실했다. 우악스럽게 잡아 누르는 힘에 그는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쥐고 있던 것을 놓쳤다. 아멜리아는 반짝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것을 보았다. 황후였던 어머니, 로엘리의 유품이자 아멜리아의 보물이었던 루비 목걸이였다. 그것을 주운 웨스트의 기사들이 그를 두고 뭐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고, 그의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시선을 공유해주던 그가 정신을 잃으며 아멜리아의 시야도 암흑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아멜리아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가 화살을 맞은 오른쪽 어깨가 조금 따가운 기분이었다. 아멜리아는 외투를 걸치고 침대를 벗어나 창문을 열었다. 라일락 향기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답답한 속을 조금은 풀어주는 듯했다. 셰인이 국서가 되었다면 귀족들과 함께 이스트의 재정을 자신들의 금고처럼 사용했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웨스트에게 넘어간다는 것도 지금으로 돌아오기 전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나 볼품없이 황폐해졌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나의 낙원이자 우리의 낙원이었고, 모두의 천국이었던 명예의 제국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엘라가 셰인을 사랑한다면, 또 재정은 어려워도 아버지와 나의 통치를 곁에서 지켜본 엘라라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이스트를 잘 이끌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 없이도 잘 살았을 거라는 생각은 전부 아멜리아의 착각이었다. 그곳에서는 정말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멜리아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렸다. 한 편으로는 궁금했다. 꿈속의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는 잡힌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웨스트에게 지배당한 후에 이스트의 국민들과 엘라는 어떻게 됐을까. 혼란스러운 아멜리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맑은 밤하늘에 무수한 별이 쏟아지듯 아름답게 빛났다. 유난히 길고 눈부시며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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