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등록된 작품이 없습니다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번 생은 황제를 파업하고 동생이나 지키려 합니다.
작가 : 로쥬마리
작품등록일 : 2022.1.18

아름다운 명예의 제국 이스트의 황제, 아멜리아 프렌시스는 제국과 국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제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뼈를 갈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건 사랑하고 신뢰하던 기사단장인 동생과 가장 아끼던 후궁의 반란?!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멜리아. 언니를 존경하던 동생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켰을 리 없다며 동생을 회유하고 유혹했을 귀족들을 저주하며 눈을 감았건만, 다시 눈을 떠보니 황제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 절대 놓칠 수 없지! 아멜리아는 동생의 순수함을 지키고 이스트가 귀족들의 손에 놀아나는 꼴을 막기 위해 이번 생은 모든 걸 뒤집어 버리기로 한다. 그건 바로 동생을 황제로 세우고 자신이 기사단장이 되어 동생의 곁을 지키는 것! 동생에게 접근하는 시커먼 속내의 귀족들을 자신이 미리 쳐낼 수만 있다면 이스트와 동생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아멜리아. 그녀의 예상대로 이번에는 동생은 순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회귀하기 전과 달리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생겼다……? 쏟아지는 애정 공세와 함께 오로지 일만 알았던 ‘황제 아멜리아 프렌시스’가 놓쳤을 사랑의 시그널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한다! 다들 이번 생에서는 내가 좋다고? 혼란스러우니까 제발 이러지 마! 사랑스러운 동생을 위해서라면 위장 결혼, 격투, 주먹다짐은 기본에 오래된 제국의 법과 전통까지 뜯어고치는 저력을 보여주는 엄청난 언니, 아멜리아 프렌시스. 동생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는 무섭고 당차며 듬직한 공주이자 기사단장인 아멜리아의 제국과 동생을 지키기 위한 눈물 나는 고군분투!

 
어떤 선택이든 후회 없이
작성일 : 22-01-18 13:18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816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니, 언니.’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이런 종류인가? 일단 엘라의 귀엽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 안심이었지만 내가 어떤 시점으로 돌아왔는지 예상할 수가 없어 아멜리아는 눈을 뜨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이미 황제인 거 아니야? 아니면 처형식 몇 달 전이라든가.

 

 

 

 “언니! 이제 그만 일어나.”

 

 

 

 망설이던 아멜리아는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얀 침대, 회색 이불, 서류와 책이 빼곡하게 쌓인 책상, 벽에 붙은 가족사진.

 

 

 

 “여긴…… 내 방인데?”

 

 “그럼 언니가 언니 방에서 자지 어디서 자? 소피아가 수프 식는대. 얼른 이불 개고 주방으로 내려와!”

 

 

 

 엘라는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총총 계단을 내려간다. 그제야 아멜리아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방, 내 침대, 내 책상. 게다가 소피아라니? 소피아는 내가 황제로 즉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책상 위에 쌓인 서류는 황제즉위식이 있기 ‘무려’ 1년 전 통치에 대해 내가 공부하던 흔적들, 세상에! 아멜리아는 소리를 질렀다.

 

 

 

 “돌아왔어, 그것도 무려 1년 전으로!”

 

 

 

 찰랑거리며 어깨 위에서 흔들리는 단발머리. 황제로 즉위한 후에는 줄곧 기르다 못해 허리 위까지 내려오던 정도였으니 즉위식 1년 전이라는 시점이 대충 맞아 들어갔다. 노파심에 목을 만져봐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맹세하고 저주한 게 신에게 닿기는 했나 보다. 신이 소원을 다 들어주고 말이야. 설마 그 목소리가 신이었나? 만약 ‘1년 전’이라는 시점이 맞다면 여기는 황궁 안에서 공주들이 지내는 공간인 ‘바르고’일 것이다. 엘라와 나, 그리고 바르고의 관리인인 소피아가 함께 사는 아늑한 곳.

 

 그럼 1년 후에는 내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얘기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황궁에 잘 계실 거고, 5년 후에는 내가 엘라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아니! 정확히는 셰인의 손이겠지. 신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이유가 나 때문은 아닐 거라고,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셰인은 허영심과 욕심이 많았으니 엘라를 꼬드겨 국서가 되었다면 귀족들과 결탁해 재물을 끌어모으고 이스트의 재정을 먼지 하나까지 털어먹었을 것이다. 이스트는 결국 쇠퇴해 멸망하고 웨스트에 흡수까지 당했는데……. 이스트를 위해 나를 과거로 보내준 거겠지.

 

 

 

 “아, 언니! 나 배고파!”

 

 

 

 아차! 우선 지금 당장 닥친 일부터 차근차근 해결하며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티를 내서는 안 되니까. 엘라는 순진하지만, 눈치가 꽤 빠른 편이니까 방심은 금물이다.

 

 

 

 “아멜리아 공주님, 일어나셨어요?”

 

 

 

 소피아, 다정한 소피아. 늘 바쁘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포근한 우리들의 천사이자 바르고의 총 관리인. 아멜리아는 소피아를 보자마자 이상한 티는 내지 말자며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소피아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소피아 냄새…… 이 포근하고 따스한 향이 너무 그리웠어요.”

 

 “어머, 공주님도 참. 갑자기 애가 되셨어. 나쁜 꿈이라도 꾸셨어요?”

 

 “깨우러 갔더니 잔뜩 인상 쓰고 자기는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나졌어. 이마에 그건 혹시 주름이야?”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는 엘라, 그런 엘라를 나무라는 소피아, 그들과 함께 웃고 있는 아멜리아. 수프는 여전히 따듯하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밝았으며 라일락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사랑스러운 순간, 소중한 시간. 셰인이 없었다면 아마 영원했을 텐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손에 힘이 들어간다. 쥐고 있던 스푼이 동그랗게 휘었다. 그걸 바라보는 소피아의 눈도 동그랗다.

 

 

 

 “공주님, 그 힘 좀!”

 

 

 

 아멜리아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아멜리아는 어릴 적부터 힘이 세고 성격이 불같아 늘 아버지께 혼이 나고는 했었다. 공주라는 이유로 질투하고 그를 따돌리며 무시하던 귀족의 자제들은 아멜리아 주먹 한 방에 코피를 쏟으며 돌아갔었고, 화가 많은 탓에 저런 성질머리에 황제가 될 수 있겠냐며 황실 교사들에게 무시당한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차라리 내가 기사단장이 되면 엘라보다 더 잘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을 정도니까. 어쨌든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빨리 계획을 세워야지. 아멜리아는 남은 수프를 그릇째 마셔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피아, 수프 진짜 맛있었어요! 스푼은 미안해요. 먼저 올라갈게요!”

 

 

 

 시간이 없었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면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단 일 초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당탕, 계단을 세 개씩 뛰어 올라가는 아멜리아를 보며 소피아와 엘라는 눈을 마주친 채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공주님은 일을 너무 좋아하셔서 탈이에요.”

 

 “분명 괴짜 황제가 될걸요? 노스에 일자리나 알아봐야겠어요. 이스트를 아예 떠나야 괴짜 통치 안 받고 살지.”

 

 “공주님!”

 

 “아, 농담이잖아요. 소피아는 너무 엄격해. 흑흑.”

 

 

 

 엘라가 우는 척을 해 보인다. 소피아는 못 살겠다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 아멜리아가 그토록 다시 찾고자 했었던 것들. 이제는 잃을 수 없다. 잃어서는 안 된다. 아멜리아는 창밖에 핀 라일락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저 라일락 향기가 사라지기 전에, 추운 계절이 다가오기 전에 모든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모두의 행복을, 이스트의 평화를 되찾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 아멜리아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자신이 황제가 되기 전부터 황제가 된 후까지 있었던 일을 요약해 적기 시작했다.

 

  황제즉위식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공부와 실습, 아버지께 국정을 배우는 것이 전부였고 교류하던 사람들도 극히 소수에 달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사건이라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황제즉위식을 반년 정도 남긴,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치러졌던 기사단원 선발 시험에서 엘라가 차석으로 합격한 일 정도려나. 시험 준비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했지만, 언니를 가까이에서 지켜줄 수만 있다면 기사단에 지원하겠다며 아멜리아가 황제가 된 후의 자신의 꿈을 찾던 귀여운 엘라의 당찬 모습이 생각난다.

 

 황제즉위식을 치르고 난 후에는 오랜 친구이자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던 메이프 가문의 막내 요하임을 국서로 책봉하고, 그에 반발하는 귀족들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자제들을 후궁으로 들였었다. 그러면서 셰인이 후궁으로 들어왔었지. 아멜리아는 셰인을 떠올리자 속이 거북해졌다. 먹은 수프가 다시 올라오는 느낌. 자신이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고 이런 미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국서의 자리에 요하임처럼 좋은 인재가 없고 귀족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제를 반드시 후궁으로 들여야 한다. 셰인과 거리를 둘 수는 있지만, 황제로서 국정을 수행해야 하는 아멜리아가 셰인과 엘라가 만나지 못하도록 늘 감시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멜리아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자신의 후궁인 셰인과 엘라가 만나는 것을 막을 것이며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또다시 죽기 전의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밀려왔다. 기사단장인 엘라와 황제인 아멜리아, 그리고 후궁인 셰인. 셰인을 후궁으로 들이지 않을 방법이 무엇일까? 아멜리아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렇다고 셰인이 원하던 대로 국서의 자리에 올려주기는 죽어도 싫다. 그 자리는 어렸을 때부터 요하임의 것이었고, 메이프 가문에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귀족 가문의 자작인데도 아직 요하임이 이렇다 할 일들에 나서지 않은 것일 테니.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부 뒤집어 버리면 좋을 텐데.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찢어버리려던 아멜리아가 순간 멈칫한다. 전부 뒤집어 버릴까? 그러면 되잖아! 누군가 들으면 미친 생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멜리아는 확신했다. 예전의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때와 정반대의 것을 선택하면 될 거라는 사실을. 물론 아멜리아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천천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싶지만, 황제즉위식까지는 겨우 1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고 아무리 총명한 엘라라고 해도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아멜리아가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받던 수업들과 공부하던 역사서들을 전부 습득하고 따라가기에는 벅찰 것이다. 똑똑한 엘라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움이 부족해 대신들에게 무시 받는다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당장 실행에 옮겨보자. 아멜리아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멜리아가 외출을 준비한 것은 그로부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옷장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검은색 드레스를 꺼내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아멜리아가 바르고를 나섰다. 이른 시간부터 어디를 가시냐는 소피아의 질문에 아멜리아는 웃으며 말한다.

 

 

 

 “파업 선언하려고요.”

 

 

 

 엘라도 소피아도 아멜리아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엘라의 표정이 어두웠다. 언니가 왜 평소에 싫어하던 칙칙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는지, 또각거리는 소리가 요란스럽다던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는지 의문이었다. 돌아오면 알려주지 않으려나. 언니는 내가 물어보는 건 뭐든지 이야기해주니까. 엘라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지워낸 채 소피아와 함께 한참 동안 멀어지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멜리아가 향한 곳은 명예로운 이스트의 황궁 안에서도 가장 높고 아름답다는 황제의 집무실 ‘카시오페이아’. 아멜리아가 5년이 넘는 시간을 살다시피 지냈던 가장 아끼는 장소이자 삶 그 자체인 곳이었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아멜리아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곧게 잘린 단발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멜리아는 성큼성큼 카시오페이아를 향해 걸어간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 어느 때보다 당차고 비장한 걸음이었다. 그것은 아멜리아에게 ‘이스트’의 제 18대 황제였던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걸음이었고, 불쌍하게 처형당한 ‘황제 아멜리아 프렌시스’를 위한 혼자만의 장례식이었으며 지금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바른 통치를 펼쳤던 황제였던 ‘황제’를 위해 올리는 감사 인사였다. 아멜리아는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앞으로 묵묵히 나아갔다. 비참했던 ‘그때의 아멜리아’와 ‘무너진 이스트’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굳은 표정으로, 아멜리아는 카시오페이아에 발을 들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메리? 이르게도 왔구나. 왜, 또 모르는 것이 생겼더냐. 밤이고 새벽이고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그 불같은 성정은 고치라고 했거늘.”

 

 

 

 ‘데니오 프렌시스’. 엘라와 아멜리아의 다정한 아버지이자 이스트의 17대 황제. 신분에 대한 제도를 폐지하고 귀족들에게 평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였으며 궁인을 고용하는 것에 있어 그 업무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바라보며 대우하는 등의 위대한 개혁을 이루어낸, 역사에 길이 남을 이스트의 황제. 자신의 애칭을 부르는 냉정하지만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파도가 넘실거리듯 자꾸만 넘치려는 감정을 꾹 눌러야만 했다.

 

 

 

 “폐하께 청이 있어 이른 시간부터 찾아뵙는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오, 메리. 그런 존칭은 어울리지 않는단다. 대신들도 없으니 지금은 차분하게 굴지 않아도 좋아. 네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저는 황제의 자리를 포기할 겁니다.”

 

 

 

 일순간 데니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온화하던 미소가 자취를 감춘다. 뭐라고 했니, 아멜리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듯 데니오는 다시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아멜리아는 지금 자신의 말이 그 모든 파장을 같이 감당해야 할 아버지에게 엄청난 불효라는 것도, 이스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만 이미 결심한 이상 멈출 수 없었다.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멜리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니?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아요,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고 싶어요’라는 것도 아니고 ‘황제의 자리를 포기한다.’라고? 엊그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즉위식 준비를 하던 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제 청은 무엇이든 들어주신다면서요, 아버지. 저는 황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 자리는 엘라에게 더 어울려요.”

 

 “엘라를 각별하게 아끼는 마음은 이해한다만, 이스트는 대대로 가문의 장녀가 황제의 자리를 계승 받아왔어. 지금 네가 하는 선택은 이스트의 오랜 전통을 깨려는 것이고, 그것은 너와 엘라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다시 돌아가서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구나.”

 

 “아버지.”

 

 

 

 아멜리아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데니오는 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멜리아는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한 번 선택한 것을 포기하는 걸 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멈추지 않을 거고, 저를 뭐라고 비난해도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다.”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이건 절대로 엘라를 위한 방법이 아니란다, 메리.”

 

 “아니요, 아버지가 잘못 생각하셨어요. 엘라를 위해서 하는 선택이 아니에요. 저와 이스트를 위한 선택입니다. 저는 성격이 불같고 급해서 제국을 통치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아요. 얌전하고 차분한 엘라는 분명 저보다 더 잘 해낼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는 이미 법이라는 틀로 백성들을 가두던 고리타분한 이스트의 오랜 전통을 개혁해내셨잖아요. 그런 아버지께서 어떻게 전통에 따라 늘 해오던 대로 장녀인 제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 부탁을 거절하실 수 있어요?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아멜리아. 네가 이러면…… 어머니가 많이 속상해하실 거다. 어머니께는 말씀드렸니?”

 

 “어머니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아버지, 설마 지금…… 지금 엘라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거예요?”

 

 

 

 데니오는 말을 아꼈다. 아멜리아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늘 존경스럽던 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인 건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후궁의 딸이라고 해도 결국 아버지의 딸인데, 황후의 딸이 아니라고 황제가 되길 포기해야 한다니! 이럴 거면 처음부터 후궁을 들이지 말든가, 귀족들과의 친목 탓에 후궁들을 얻어야 한다면 그 자식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든가! 뭔가 대책을 세우고 일을 저질렀어야 하는 게 맞지 않아?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아버지는 엘라를 무척이나 아끼는데도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아주 당연한 듯이 뱉는다는 사실이었다. 정작 그 손에 처형을 당했으면서도, 그런 미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엘라를 아끼는 내가 있는데도. 어떻게 아버지가! 아멜리아의 표정이 굳는다. 아멜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와 귀족들의 반대라면 상관없어요. 제 능력이 황제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다는 걸 보여주면 될 일이에요. 제가 황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프렌시스 가문의 차녀인 엘라에게 돌아가겠죠. 제가 막무가내라는 건 잘 알아요. 갑작스러워서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는 제게 엘라가 저와 친자매가 아니라는 이유는, 후궁의 딸이라는 이유만은 얘기하셨으면 안 돼요. 제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부디 엘라가 조금이라도 빨리 황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버지 말씀처럼 어머니께도 제 결심을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잠깐! 잠깐 기다리렴, 아멜리아. 장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네게도 엄청난 타격이 될 거다. 혼인은 물론 네가 하려는 모든 일에 걸림돌이 되고야 말 거야.”

 

 “괜찮아요. 남의 눈치 안 보고 성과랑 능력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일을 할 거라.”

 

 

 

 아멜리아는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결연한 다짐이 보이는 표정은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고 약간의 장난기마저 서려 있는 듯 보였다. 아멜리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저는 기사단에 지원할 거예요, 아버지.”

 

 

 

 기사단에 지원해 오로지 제 능력으로 합격해서 반드시 엘라를 지킬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든 엘라는 내 동생이고, 저는 엘라를 사랑하니까.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아멜리아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울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래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라면 어쩌겠는가. 어려워도 부딪혀야겠지. 두려움은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하는 건 처형 당했던 그때 한 번으로 족하니까. 아멜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히,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새롭게 펼쳐질,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을 자신의 미래를 향해서.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그 이야기에서는 누구도 2022 / 1 / 18 270 0 7733   
2 어떤 선택이든 후회 없이 2022 / 1 / 18 316 0 8165   
1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2022 / 1 / 18 451 0 583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