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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쇼윈도 가족
작가 : 글묵
작품등록일 : 2022.1.12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욕망.
금지 된 사랑이 남긴 상처. 그 상처를 뛰어 넘어 다시 찾아 온 사랑.

 
11화. 소개팅
작성일 : 22-01-17 22:24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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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소개팅

 

 “제 처지 잘 아시잖아요. 누굴 만나 연애할 그런 처지가 아니라는 거."

 "자기 처지가 어때서, 이제 시작인데 인생 다 살았어?"

 "죄송합니다."

 "자기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소개하는 거니까. 꼭 나가 봐. “

 

 사실 소개팅에 나갈 마음이 없었다.

 감정노동에 시달렸던 터라,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기도 했고,

 또 상대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조건이 좋은 남자였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만 간다는 하늘대 출신에

 또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기업 정규직 사원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서 나올까.

 원래 소개라는 게 조금 과장된 면도 있긴 해도.

 그래도 그는 자신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상대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딱지 맞을까 겁이 났고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선배의 간곡한 부탁에 일단 소개팅에 나가 보기로 했다.

 

 소개팅 전날, 오이를 갈아서 팩을했다.

 

 “어디 선보러 가니?”

 

 한 살 위인 언니 수연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러는 거지.”

 “안 하던 짓 뭐?”

 “귀찮다고 너 팩 같은 거 잘 안 했잖아.”

 “내가 언제, 달걀 마시기도 했고, 또 우유 마사지도 했는데…….”

 “그래, 그래, 그런 거 제발 좀 하고 살아라. 그래야 여자지.”

 “요즘 세상에 여자 남자가 어디 있어.”

 “세상이 바뀌었다고 여자가 남자 돼? 그건 아니잖아. 여자는 어디까지나 외모가 갑이야.”

 “언니도 참…….”

 “회사 관뒀다고, 그렇게 막 퍼져 있으면 못 써.”

 “알았어. 괜히 잔소리야…….”

 

 넘겨짚었던 언니의 말에 넘어가, 소개팅은 그날 가족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다.

 

 “내 옷 빌려줄까?”

 “언니 옷을 내가 어떻게 입어.”

 “왜, 왜 못 입어?”

 “언니 옷은 다 그렇잖아.”

 “뭐가, 다 그래? 내가 얼마나 세련되게 옷을 입는데…….”

 “아무튼, 내 취향 아니야.”

 “너야말로 너무 고전적이야,”

 “고전적.”

 “…….”

 “고전적이 뭐 어떻다는 거야?”

 “그게, 뭐냐면…….”

 “…….”

 “한마디로 말해서……. 촌스럽다는 거지.”

 “촌스러워……. 내가?”

 

 촌스럽다는 언니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스타일 좀 신경 써.”

 “하…….”

 “젊은 애가 스타일이 그게 뭐야?”

 

 수정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런 스타일로 나갔다간 딱지 맞기 딱이다.”

 

 수정이 기분이 상해 거칠게 방문을 열어젖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꽝…….’

 

 “어머머, 쟤 충격받았어.”

 

 수연이 방으로 뒤따라 들어왔다.

 

 “충격받았어?”

 “그만해!”

 “충격받았네.”

 “내가 왜 그딴 말에 충격을 받아?”

 

 수정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제발 언니 말 좀 들어라.”

 “재미있어?”

 

 수정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나니까…….바른 소리도 해 주는 거야.”

 “그만하래도,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너는, 네 스타일대로 사는 거고, 나는 내 스타일대로 사는 거야. “

 “너……. 지금. 언니보고 너라고 했어?”

 “응.”

 “이게 감히 언니를…….”

 

 수연이 수정을 한 대 칠 기세로 다가섰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엄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너희 또 싸워?”

 “이 계집애가, 나보고 너라고 하잖아.”

 

 수연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너희 자매는 만나면 싸우니?”

 “죄송해요.”

 

 수정이 말했다.

 

 “사과는 언니한테, 해야지.”

 

 언니한테는 사과할 마음이 없었다.

 상처받은 사람은 본인인데, 언니에게 사과라니.

 부당한 엄마의 판결에 수정은 속이 상했다.

 엄마 말대로 자매는 마주치면 싸우기 일쑤였다.

 두 자매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다.

 언니 수연 이는 꾸미기를 좋아했고 유행에 민감하였다.

 반면, 수정은 유행보다는 실속, 편리함을 추구했다.

 수연은 청소년 시기부터 공부보다는 연애에 관심이 많았다.

 외모에 관심 없고, 공부만 하는 동생을 외계인 취급했다.

 

 “넌, 무슨 여자애가 외모에 신경을 안 쓰니?”

 “잠잘, 시간도 없는데, 무슨…….”

 “지금부터 피부에 신경 안 쓰면 너, 나중에 후회한다.”

 “난, 공부하기도 바빠요.”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해. 외모가 경쟁력인 거 몰라?”

 “정말 한심해서 더는 못 듣고 있겠다.”

 

 수정은 그런 언니가 한심했다.

 수연이 청소년 시기부터 연애에 관심을 두더니 고등학교 3학년 때, 덜컥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임신 8개월째였다.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던 그녀가 이상하게도 어느 날부터,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녔다.

 

 “옷이 그게 뭐야?”

 “옷이 뭐?”

 “언니 스타일 아니잖아.”

 “요즘, 이런 게, 유행이야.”

 “그러고 보니. 너 허리통이 좀 수상하다.”

 

 엄마가 매서운 시선으로 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연이 몸을 잔뜩 움츠리며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너?”

 “설마?”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 이리 좀 와 봐.”

 

 엄마가 수연의 배를 들추었다.

 수연의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있었고, 그 배를 감추느라 복대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엄마가 놀라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임신…….”

 “누가이랬어?”

 “…….”

 “어떻게 학생이 애를 가져!”

 

 수연이 말없이 울었다.

 엄마가 힘겹게 일어나 수연을 붙잡고 물었다.

 

 “어떤 놈이냐니까?”

 “…….”

 “왜 말을 안 해!”

 

 엄마가 수연의 등을 후려쳤다.

 

 “왜 때려?”

 수연이 악다구니를 쳤다.

 

 “이게 뭐 잘했다고 큰소리야?”

 “내가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

 “너 죽고 나 죽자.”

 

 엄마가 수연을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수정이 달려와 말렸다.

 

 “엄마 왜 이래?”

 “세상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애를 가져?”

 “어차피 일어난 일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수정이 엄마를 수연에게서 떼어 내고 수연을 부축하였다.

 

 “언니 괜찮아?”

 “아. 배 아파.”

 “병원.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쉬면 곧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병원 가 보는 게 낫지.”

 “괜찮아. 엄마나 좀 달래 줘.”

 

 수연이 뒤뚱뒤뚱 방으로 들어갔다.

 

 ***

 

 수연을 임신부로 만든 남자는,

 그녀보다 세 살 많은, 대학교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육군 현역이었다.

 그 남자는 휴가를 나와 수연과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게 덜컥 임신이 되었다.

 

 수연이 출산을 앞두고 고등학교를 자퇴 하였다.

 두 달 후가 출산인데, 겨울방학까지는 3개월이 남았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을 다섯 달 앞두고 자진 퇴학을 하였다.

 열 달을 다 채우고 나서 문제의 아기는 태어났다.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병영에서 아기 아빠가 연락을 받고, 아기를 보러 특별 휴가를 받아 병원에 찾아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아기 아빠가 된,

 스물두 살의 남자는 죄인처럼 양가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원하든 원치 않았던. 새 생명의 탄생으로 아기 아빠가 된 22살 청년은 전역을 하면 수연이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

 

 수정이 평소 아꼈던 오피스룩을 입고 소개팅 장소로 나갔다.

 떨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보는 소개팅.

 연애 경험도 없는 그녀에게 홍성호는 생애 첫 남자였다.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이윽고 도착한 커피숍.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남색 양복을 찾았다.

 창가에 남색 양복 차림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빨간색 체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선배가 알려줬던 용모의 남자로 보였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홍성호입니다.

 

 남색 양복의 남자가 그녀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으시죠.”

 “네.”

 “차 뭐 하시겠어요?”

 “커피 마실게요.”

 “네. 차 주문하고 올게요.”

 

 조금 있으니 그가 커피를 가지고 왔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잤어요.”

 

 그가 황소같이 선한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왜요?”

 “긴장돼서요.”

 “남자분도 긴장하나요?”

 “그럼요!”

 “…….”

 “어떤 분일까 상상을 해 봤어요.”

 “실망했어요?”

 “아뇨!”

 “하…….다행이다.”

 “커피 식어요. 커피 드세요.”

 “네.”

 “홈쇼핑회사에 근무하셨다고요.”

 “네.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어요.”

 “인선이 누나한테서 수정 씨에 대해서 대충 들었어요.”

 “뭘요?”

 “아주 야무지고 좋은 분이라고 했어요.”

 “선배님께서 과장 광고를 했네요.”

 “과장 광고 아닌 것 같은데요. 저녁, 같이 먹을까요?”

 “저녁을요?”

 “네.”

 

 둘은 파스타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소개팅이 참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그런지 전혀 어색하지가 않네요.”

 

 성호의 말에 수정이 멋쩍게 웃었다.

 

 “수정 씨는 어때요?”

 “저도 뭐…….”

 

 수정이 수줍게 웃었다.

 

 “파스타는 입에 맞아요?”

 “네. 맛있네요.”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집이 어디예요?”

 

 성호가 물었다.

 

 “구의동요.”

 “구의동이면 우리 집이랑 아주 가깝네요.”

 “네.”

 “모셔다드릴게요.”

 “혼자 가면 되는데요.”

 “제가 싫으세요.”

 “그게 아니라”

 “제가 싫지 않다면 제 차 타고 가세요.”

 “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수정은 성호의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성호는 수정이 마음에 들어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었다.

 수정 또한 성호가 마음에 들었다.

 

 “26살이라고 했어요?”

 

 성호가 물었다.

 

 “네.”

 “저랑 동갑이네요.”

 “네.”

 “혈액형은 뭐에요?”

 “A형이에요.”

 “어머, 저도 A형인데, 혈액형까지 같네요.”

 

 성호가 신기한 듯 웃었다.

 

 ***

 

 “매일 아침, 모닝커피같이 마실래요?”

 

 만난 지 한 달 만에 성호가 수정에게 프러포즈하였다.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두르세요?"

 

 수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실은 엄마가 몸이 많이 안 좋아요.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해요.”

 

 역시 하자가 있었어. 그래, 이런 1등급 남자가 5등급 여자를 좋아 할 리가 없지.

 그런 것도 모르고……. 수정은 기분이 나빴다.

 

 “결혼이 급해서 아무나 하고 결혼하려고 했어요?”

 

 수정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순간 성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무슨?”

 “그렇잖아요. 엄마가 아파서 결혼하자는데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요?”

 수정이 평소 모습과 달리 과격하게 성호를 몰아붙였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수정 씨가 마음에 안 들면 절대 결혼하자는 말 안 했어요.”

 “…….”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평생 반려자를 마트에서 물건 사듯 쉽게 결정을 하겠어요. 안 그래요?”

 “…….”

 

 수정은 조용히 성호의 말을 경청하였다.

 

 “수정 씨”

 “네.”

 “그럼 결혼은 없던 일로 하고 우리 그냥 계속 만나요. 난 수정 씨가 좋아요. 사랑한다고요.”

 “나도 뭐 그쪽이 싫지는 않아요.”

 

 성호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오늘 제가 했던 말 안 들은 거로 해요. 미안해요.”

 

 성호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다.

 

 “우리 결혼해요.”

 “…….”

 

 수정의 뜻밖의 말에 성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 난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결혼 좀 빨리하는 게 그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그쪽이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을 때 결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수정 씨!”

 

 성호는 수정을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정말 잘할게요. 정말 좋은 남편이 될게요.”

 “알았어요. 숨 막혀요. 그만 좀 놓고 말해요.”

 

 성호는 얼른 수정을 포옹에서 풀었다.

 시한부였던 홍성호 엄마는 그로부터 10년을 더 살다가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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