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의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고?”
“다시 말 안 해. 난 카야가 아니야. 카야는 나의 어머니 이름. 나의 이름은 엘라야.”
카야의 눈빛은 확고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너무나 침착하고 단호해서 마치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난 11대륙 출신은 맞지만 1대륙에서 자란 1대륙의 백성이야. 그리고 연합군사대학으로 잠입했어.”
“허.”
기가 차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배신당한 기분이겠지. 알아. 그래서 몇 번이고 말하려고 했어. 하지만 넌…….”
카야는 뜸을 들였다.
“넌 절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하아.”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카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 볼 수 도 없었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화가 차 올라왔다.
“그만, 그만 해.”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이럴 것 같아서 말 못했지만 지금은 말해야 하고, 넌 들어야만 해.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을 테니까.”
“아니. 난 후회 안 해.”
“사람들이 왜 1대륙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사람들이 왜 밀고를 하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우리가 옳았기 때문이야. 증거 있냐고? 증거 있어.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린다면! 그런다면 알 수 있어!”
카야도 나의 완강한 태도에 화가 난 듯 말 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했다.
“난 마음 열 생각 없어. 믿을 생각은 더더욱.”
“제발!”
카야는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내 말 들어주면 안 돼?”
카야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마음이 아팠다.
그런 표정을 짓는 카야를 볼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흔들릴 것만 같아서…….
“네가 마음을 연다면 세상이 달라 보일거야. 내가 그런 말 한 적 있었지? 내가 보는 세계를 보게 해주겠다고.”
그 말에 카야의 눈을 바라보자 카야의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눈동자에 내 불안한 마음이 들킬 것 같아서 눈을 피했다.
‘방금 뭐였지?’
그리고 그 순간 언뜻 카야의 눈동자가 다르게 보였다.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떴을 때에는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던 터라 카야의 말을 다시 들었다.
“네 눈동자가 숲을 닮았다고 했던 말, 내가 리한의 검을 찾았던 것, 산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도 내가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야. 네 세상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있다면 내가 보는 세상은 달라.”
카야의 말이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제발 나를 믿어줘.”
카야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미안. 난 믿을 수 없어. 어제 말했던 것처럼 설령 너 일지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 순간부터 넌 적이야.”
나의 말에 이번에는 카야가 입을 다물었다.
“카야, 솔직히 말하면 나 지금 널 볼 자신이 없어. 너무 화가 나. 너만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마력을 썼을 지도 몰라. 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하지만 너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배려해줄게. 그냥 가.”
“주안…….”
“내 이름, 부르지 말아줘. 지금 당장 떠나.”
“아서도 함께 갈 거야.”
“?!”
카야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걔가 왜……? 어째서……?”
충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았다.
“됐어. 그냥 가. 제발 지금 당장 떠나줘.”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할게.”
“…….”
“미안했고, 고마웠어. 난 항상 너에게 진심이었고 넌 내게 태양이었어.”
카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지 밖으로 나갔다.
태양이라는 그 말이 우리의 처음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카야를 처음 보았을 때 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달은 밤을 밝히지만 태양 빛을 반사하기에 반드시 태양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는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게 떠나는 것이 카야의 마지막 모습이라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서.
또 카야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뿐인 친구 아서 마저도 잃게 된 것이 한 없이 절망적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소중했던 나의 친구가, 모든 마음을 다해 믿었던 사람이…… 나의 적이었고, 적이 되었다니…….
지금껏 나를 속여 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몽상에 불과했네.”
지난 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내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공허해졌다.
그 모든 시간들, 함께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무겁고 어두운 현실이 나를 덮쳐왔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 그렇지.”
그 와중에도 혹시나 카야가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에디를 찾아갔다.
“저, 리한이 곧 온다고 합니다! 이미 1대륙으로 먼저 향했던 군사들은……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연합군사대학 소속이다 보니 비보를 전하고 싶어 저에게 왔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전해주러 왔습니다.”
“그래? 안타깝지만……, 일단 바로 보고를 드려야겠다. 고마워.”
“네!”
에디는 빠르게 보고를 위해 나갔고 나 또한 나의 기지로 돌아갔다.
에디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지만 기지로 돌아왔을 때에는 한숨만 나왔다.
혼자 기지에 있어서 오히려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비는 어떻게 되었지?”
문득 가비에게는 이야기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가버린 카야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가비의 말이 떠올랐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자는 그 말이.
마음이 착잡했지만 이렇게 있어야 있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모든 원흉이 바로 리한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니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몰려왔다.
“반드시 끝내버리겠어.”
***
10년 전, 어렸던 나는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기도 했고 항상 예민하여서 무엇도 즐겁지 않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 어디에서 리한이 나타나 다시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망쳐 놓을지,
아니, 그 뿐 아니라 나의 목숨을 위협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때문에 키브스타를 떠나 내성으로 이동하여 살게 되었으나 나는 친구들과 유달리 다른 곳에 동 떨어진 사람과 같이 느껴졌다.
‘저 애들은 몰라.’
마음도 삐뚤어져만 갔고, 언제 리한이 다시 올지 모르기에 항상 밖에 나가서 입구 쪽 향해 앉아서 하루종일 리한이 오나 안 오나 바라보곤 했다.
“주안.”
“?”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아서는 마치 따스한 햇살 같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도 눈이 부시고 그 애의 뒤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참 밝다.’
“안녕? 오랜만이야.”
키브스타를 떠난 후 정말 오랜만에 만난 아서였지만 반가워할 힘도, 마음도 없었다.
“이야기하기가 싫구나?”
보통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떠났지만 아서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귀찮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난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데 넌 아니야?”
나는 아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날 많이 놀랐지? 나 네 걱정 엄청 많이 했어. 난 아침 일찍 신전에 가서 나중에 알게 되었거든.”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서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가장 먼저 네가 신전에 없어서 많이 놀랐어. 그리고 우리 마을에 갔을 때 너무 놀랐거든? 근데 다음으로 그 모습을 본 너는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그 말에 그 날의 일이 떠오르는 지,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많이 놀랐지. 네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지 난 상상조차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너와 함께 할게. 혼자보단 내가 함께 있는 것이 좀 더 좋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바라본 아서는 나를 바라보며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싫어. 가.”
내 마음과 다르게 말은 다르게 나갔다.
“정말 싫은 거 맞아?”
아서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정곡을 찌르는 말,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그 아이가 신기해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아서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진심이 뭔지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밀어내지 않아도 돼.”
아서의 진심을 담은 말에 나는 점점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내가 매일 올게. 나랑 같이 있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동안 아서는 대답도 해주지 않는 나의 곁을 지켜주었다.
때로는 심심한 지 혼자 내 옆에서 놀기도 했고,
언젠가는 책을 읽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간식도 챙겨 와서 내 몫까지 나누어 주었다.
물론 먹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한 달을 꽉 채운 다음 날, 아서는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왜 안 온 거야? 거짓말쟁이.’
항상 오겠다던 그 말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
어제 아서가 콜록 거리던 것이 불현 듯 떠올랐다.
‘설마 아픈가?’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따라 가본 적이 있던 아서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가까웠던 거리가 그날따라 왜 그리도 멀게 느껴졌던지.
숨이 차올라 턱턱 막혀올 때 아서의 집이 보였고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 소리에 안에서 소리가 났고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누구세요?”
아서의 어머니는 문을 열며 말씀하셨고 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안녕하세요? 저 아서 친구 주안이에요.”
문을 열고 얼굴을 보시던 아서의 어머니는 아서와 닮은 미소를 보이시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주안이었구나~ 오랜만이네. 아서 만나러 왔니?”
“어…….”
사실 나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대답을 못하자 빙긋 웃으시더니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뛰어왔니? 땀이 맺혔네. 얼른 들어와서 시원한 거라도 마시고 가렴~”
나는 민망하게 따라 들어갔고 아서의 어머니는 시원한 차를 내주시며 식탁으로 안내했다.
“아서가 감기가 걸려서 치유를 받고 잠들었거든. 곧 일어날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주렴.”
“네.”
역시나 예상대로 아파서 나오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과 걱정에 찻잔을 만지작거리자,
“아서가 빨리 치유사님한테 가야 한다고 어찌나 떼를 쓰던지~ 주안이랑 만나야 한다고 얼른 가자고 했는데 아줌마가 늦게 준비해서 늦어졌어.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미안해~”
아서의 어머니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에 나는 아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눈물이 핑 돌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희 둘은 참 좋은 친구가 되겠구나.”
“네! 아서는 저한테 둘도 없는 친구에요.”
그 이후로 내 곁에는 늘 아서가 있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슬플 때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아플 때에도.
그런 나의 친구가 내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