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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이름부터 완벽한 평범의 길을 걷던 김지혜, 빙의조차 평범한 백작영애에게 했다?
특징조차 없는 주근깨투성이 이 영애는 도대체 누군데요?
남들은 빙의하면 악녀도 되고, 부자도 되고, 성녀도 된다는데 나는 여기서도 흔한 사람 1 역할을 맡고 있다.

빙의한 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돈 많은 난봉꾼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풀리는 빙의의 실마리들.
난봉꾼은커녕 세상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미남 2명을 모두 꼬셔야 한다?!

썸의 여신, 베스의 훌륭한 조언은 어려워서 성질대로 했더니.

"사업에 관련된 계약만 해야하나요?
제 영혼이나 당신의 지능과 같은 것과는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나요?"

나사가 풀린 마법사와,

"다, 다음에 한 번 가가같,이 한 번 가보는게 어떨지 네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편이었어."

생각보다 더 쑥맥인 검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해야하는 빙의녀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거사 좀 치뤄보자 우리?
응? 100년을 기다렸잖아?"

빌런이 100년간 계획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온의 이야기.


#동생바보 #딸바보 #평범 #빙의 #멸망 #먼치킨 #흔녀의_2회차_삶 #힐링

 
2
작성일 : 22-01-16 12:42     조회 : 89     추천 : 0     분량 : 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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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의 문턱은 평민들에게만 높았고, 귀족 영애들이 신부수업을 받기 좋은 학과들의 정원은 충분했다.

 한국에서야 공부로 이름을 꽤 날렸던 나라지만 이 곳에서는 지구의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가정학과에 입학을 했고, 교양수업을 통해서 불타는 야망의 날개를 펼쳐보리라 다짐했다.

 

 멀지도 않은 아카데미였고, 통학할 예정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1달 가까이 아무런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던 루터가 방문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루터의 선택에 따라 이지모드와 하드모드가 결정되는지라 긴장한 상태로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루터 프란츠 소백작."

 "엘리온 챔버, 장난치지 말고 앉아."

 

 루터가 풀네임을 부를 때는 들어줘야한다.

 

 "안나, 차를 내와 주겠어?"

 

 이제 막 새해 첫 꽃이 피고 낮엔 가끔 포근함을 느끼기도 시작하는 시기였다.

 정원에 차린 티테이블 앞에 둘이 마주 앉아 차를 다 따를 때까지 우리는 아무말 없이 주위의 몽울몽울 올라오는 봉우리를 보거나, 티팟 안에서 피어오르는 찻잎을 봤다.

 

 "엘리, 진지하게 생각해봤어."

 "고마워.

 진지하게 받아들여줘서.

 쉽지 않았을텐데."

 "응, 정말 쉽지 않았고,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미안해. 솔직하지 않고는 널 설득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엘리. 나도 너를 애달프게 사랑한 적은 없어.

 하지만 알잖아.

 나중에 우리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니라 하더라도 좋은 동반자가...... 좋은 가족이 될 거라 생각했어.

 기억이 날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게 내겐 자연의 법칙 같은거였다고!"

 

 안다.

 99프로의 귀족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1프로의 돌연변이인 것을.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고독한 부적응자였던 내 모습에 왜인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루터, 나도 알아.

 널 한 번에 설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몇 년을 통해 느낀 건데 너에게 몇 주만에 이해하라고 할 생각도 없었어."

 "그래, 엘리.

 그리고 들었어, 아카데미 입학한다며."

 "응, 뭔가를 더 해보고 싶었어.

 너는 안 가?"

 "난 가문을 이어받아야지, 영지도 오가며 이제까지처럼 교육받을거야.

 그래서 말인데......"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제 모드 결정의 순간이다.

 

 "엘리, 이렇게 된 거 너도 아카데미를 핑계로, 나도 영지 관리며 교육이며 여러 핑계로 약혼식을 미루자.

 어차피 우리 데뷔탕트도 내년이잖아.

 너도 네 길을 찾아봐.

 나는 내 길을 바꿀 생각이 아직 없거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가서 찾아봤는데 별 것 없다 싶으면 우리 그냥 이제까지 생각했던 미래를 가자.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

 "....루터, 나 지금 너무 놀랐어.

 너 맞아?"

 "아 시끄러워.

 그래서 어쩔거야?"

 

 정말 감동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천둥 벌거숭이 같던 루터가 이렇게나 자랐다니.

 자존심에 '응. 나도 너 싫어. 꺼져.' 했을수도 있을텐데, 정말로 루터도 성인이 되려나 보다.

 이제 슬슬 기름이 돌기 시작하는 피부에도 여드름이 나고 그러겠지.

 

 "루터 네가 이렇게까지 관대한 제안을 해줄 줄은 몰랐어.

 너만 괜찮다면.

 정말 그래도 되겠어?

 그래도 우리의 사이때문에 다른 영애와 좋은 기회가 있어도 마음을 나누기 쉽지 않을텐데?"

 "그 땐 내가 너한테 파혼하자고 할테니 걱정말아.

 그 때 가서 좋은 남자 놓쳤다고 피눈물 흘리지나 말고."

 

 피식 웃으며 초봄 햇살이 부서지도록 웃는 루터의 모습이, 아무리 다시 봐도 설레지가 않았다.

 제 아무리 멋져도 내 눈엔 고딩인 것을 어찌하랴.

 그래도 그가 다정한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나의 자유로운 아카데미 라이프에 그가 대리석 길을 깔아준 것 또한 사실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카데미의 수업들을 신청하고 미리 가서 견학도 하고, 사교 모임이나 동아리 활동도 체크해 두었다.

 나에게는 터지는 꽃망울 같은 18세의 봄이 목도해 있었다.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해 사계절이 뚜렷한 자드밀 왕국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 예술의 나라로 유명했지만 강대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옆의 발손 제국의 거대한 크기에 밀려 제대로 기를 펴본 적도 없었고, 덕분에 대단한 기사를 보유 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당하지 않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발손이 서대륙과의 무역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동남쪽 구석에서 욕심없이 살아가는 자드밀까지 무력으로 굴복시킬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발손 제국의 수도가 서쪽에 있어 출병이 쉽지 않았고, 발손에게 밀린 소왕국들끼리 동쪽 해안을 따라 꽤나 단단한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길게 설명했지만 단순하게 동쪽에서 옹기종기 소꿉놀이하는 소왕국들의 놀이터는 자비롭게 놔둬줬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동시에 아카데미에 엄청난 인재들이 모일 일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금만 천재성을 보여도 발손 제국으로 유학을 가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 아카데미에 의문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검술 교수였다.

 엄청난 무위를 자랑하는데 자드밀 왕국에서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검술학부의 깜짝 인사로 초빙되었다.

 저 정도의 검술 실력이라면 제국 사람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저 실력에 제국이 아닌 이 곳에 온 걸로 봤을 때 평민 출신이 분명할 것이라고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물론 그런 가십들은 내 알 바 아니었지만 더 이상 비밀 훈련으로 안나와 기사단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탐탁치 않던 차였다.

 또 이제는 슬슬 기사단 종자들은 체술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어서 다른 수업을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레이디를 위험에서 구할 일격필살' 이라는 비장한 교양 수업을 신청하고 얼마나 설레었는지는 홈크 단장이 매우 잘 알 터다.

 

 "아가씨, 섭섭합니다. 기사단 모두 아가씨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말이죠."

 "단장, 나도 너무 아쉬워.

 하지만 알잖아? 나는 재능이 있다고?

 큰 물에서 큰 수업을 받아봐야하지 않겠어?"

 "아가씨 그게 말입니다.

 저희와만 훈련해보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왕국에서는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기사단입니다.

 아가씨의 실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말이에요.

 가서 남들과 대련할 때 저희랑 할 때만큼 풀파워를 쓰시면 안 됩니다."

 

 홈크 단장은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참 잘했다.

 다들 아침훈련 겸 대련을 해줬고, 아가씨 체면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간신히 이긴 것처럼 노력해준거 모를 줄 알고?

 처음에 우락부락하다고 겁냈던 기사들이 귀여워지는 순간이었다.

 

 "단장, 그렇게만 연기를 한다면 금방 애인을 찾을 수 있을거야.

 거짓말이 상당하네.

 걱정마.

 이제까지 기초만 훈련하느라 풀파워 써본 적도 없는데 걱정도 태산이야."

 "......아가씨...?"

 

 홈크 단장의 혼신의 연기를 뒤로 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방으로 돌아왔다.

 

 "아가씨 이제 이 안나의 솜씨가 맘에 들지 않으시는 건가요?"

 "안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평생 안 하던 운동을 하시고, 덕분에 고운 피부와 머릿결이 관리도 안 돼요.

 장신구나 드레스도 시큰둥하시잖아요.

 제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관심이 사라진 것이지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안나의 눈물에 마음 고생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어린 나이부터 나와 소꿉놀이를 해주며 생을 함께 해왔던 그녀의 낙이 사라진 것인데, 그간 너무 무심했었다.

 

 "안나, 네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그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닌가요.

 이제 저와 별로 대화도 안 하시고, 이렇게 아카데미에 가버리시면..."

 "안나, 일단은 나는 고운 피부와 머릿결을 가진 적이 없잖아.

 그것부터 아니야."

 

 훌쩍이려던 안나의 어깨가 움찔했다.

 역시, 그녀도 빈말을 잘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카데미 가면 너의 도움이 훨씬 많이 필요할거야.

 거기선 사교모임이나 활동이 더욱 활발하거든.

 그러니 미리미리 유행도 봐두고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예약을 잡아줘."

 "그래요?"

 

 무섭다.

 안나는 고양이 탈을 쓴 호랑이가 분명했다.

 한낮에도 빛나는 그녀의 안광이 숨길 수 없는 증거였다.

 흐르지도 않았던 눈물을 닦아낸 안나는 이럴 시간이 없다며 대답도 듣지 않고 허둥지둥 나가버렸다.

 

 왠지 모르게 생기가 도는 그녀의 뒷모습에 살풋 웃음이 나왔다.

 내 살 길 찾기도 바쁜데 챙길 사람이 많아서 피곤했다가도, 이제야 이 곳도 엘리온이 사는 세상임이 와 닿았다.

 나의 허술한 순간순간이 그들과 엮여서 단단한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카데미에는 남녀 구분지어 기숙사도 있었다.

 수도에 타운하우스가 없는 귀족이나 성적이 좋은 평민들이 머물렀고, 그 안에서의 사교활동은 입학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입학식을 하기도 전에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 있었으니, 체리 아슬라였다.

 자드밀 옆 이드릭 왕국에서 온 남작영애였는데, 순수하고 엉뚱한 성격에 수수함도 매력이었지만 수수한 옷도 패션이 되는 옷빨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평을 듣는 기숙사의 스타였다.

 

 처음에는 소왕국의 남작영애의 소식 따위 관심없었으나, 입학식이 가까워질수록 베스 마일러와 비견할만한 인기를 누린다는 소식은 친구를 아끼는 내 신경을 거스를만했다.

 빛나는 금발과 1월의 바다같은 짙은 푸르름을 담은 눈동자, 우아한 화장과 완벽한 치장을 뽐내는 미녀의 정석 베스와는 다르게 체리 아슬라는 곱슬진 핑크빛 머리와 옅은 하늘색(아마도 흐리멍텅을 저렇게 표현하는게 분명하다) 눈동자, 허술한 예의범절과 엉뚱한 화술, 소박한 드레스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쭉 뻗은 몸매를 자랑했다.

 혹자는 상큼함이 가득한 시골 처녀같이 사랑스럽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베스와의 싸움이었을 뿐 나는 대결구도조차 만들수 없었다.

 베스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며, 있지도 않은 대결을 응원할 뿐.

 

 봄은 짧고, 여름이 바로 오리라 예견하는 듯한 따가운 햇살 아래 4월의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아주 짧고 간결한 식 뒤에 이어지는 신입생 대면식은 모든 학생들이 기대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대부분 눈치없이 대면식까지 참가한 교수님들의 면면에 돌아서야했다.

 

 "베스, 그 체리인가 오렌지인가 그 영애 봤어?"

 "응 봤는데, 왜 그렇게 유명한건지 모르겠던데?"

 "그렇지?? 나도 그렇더라.

 내가 사람 잘 보잖아 베스.

 걱정마, 걔 말년이 별로더라."

 

 역시 뜬금없는 불안을 가라앉히기엔 통계학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사주가 별로더라 관상이 별로더라, 같이 묘한 안도감을 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말년? 푸하하.

 엘리 넌 진짜.

 고맙다 정말!"

 

 입학식에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우리는 몰래 체리의 흉을 보며 채신머리없이 깔깔 웃었다.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던 체리의 인상은 그렇게 기억에서 멀어졌다.

 

 

 기다리던 첫 시작이었다.

 가정학부의 수업이 1개 교양 수업이 2개가 있는 아주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이미 가정교습으로 다 배운 의미없는 가정학부의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레이디를 위험에서 구할 일격필살' 수업의 시간이 돌아왔다.

 

 숨지 않고 체술을 훈련하고 익힐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신만 알리라.

 수업 시작 전 미리 몸을 풀고 있는데 반투명의 미디길이의 치마를 입은 영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체술 수업에 원피스를 입고 그 아래 바지를 받쳐입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너무 당황했다.

 도대체 저 복장으로 무슨 훈련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점은 곧 풀렸다.

 

 수업의 반 이상은 신체 구조, 급소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단 한대를 때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레이디끼리 수업을 듣고 짝을 지어 쎄쎄쎄하듯 서로 쿡 찔러보는 수업이었던 것이다.

 모든 희망과 기대가 무너진 나는 대 혼돈에 빠져있었다.

 

 '아니 저렇게 때려서야 뭐가 일격필살이라는 거지?'

 

 그렇기에 이론수업이 끝나고 실전 훈련에서야 나타난 아카데미 최고의 이슈남을 알아보지 못했다.

 실습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불만 가득한 얼굴로 들어온 그는 후광이 비치는 타입의 미남이었다.

 푸를 정도로 어두운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떡벌어진 어깨와 골격부터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외치는 장대한 기골, 신경질적인 첫인상 때문인지 약간은 우울해보이기까지 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고문을 당한다는 표정으로 들어온 교수는 자기소개도 짧았다.

 

 "리베론이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도록."

 

 역시 평민이 맞다며, 왜저렇게 건방지냐는 소리가 웅성거리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눈도 빛났다.

 

 '진짜 실력자구나!'

 

 그제야 그를 집중해서 바라보았고, 감탄해 마지않게 되었다.

 완벽한 베스의 취향이었다.

 저 골격과 건방짐이라면 베스는 신분도 신경쓰지 않고 뜨겁게 사랑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 너머의 우울함 때문에 나는 곧 생각을 접었다.

 

 우리 베스에게는 저런 우울남은 어울리지 않는다.

 완벽한 미녀 껍데기 안에 숨은 푼수같은 베스의 본모습을 마음껏 꺼내 보여줄 수 있는 남자가 역시 좋으리라.

 내 절친은 내가 지킨다, '내절내지'를 아로 새기며 수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업내용을 짝을 이뤄 실습을 하다보니 시범조가 필요했고, 학생은 홀수였다.

 본래의 수줍은(?)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말도 안되는 시시한 수업에 갈증을 느낀 나는 실습조에 열정적으로 지원을 했다.

 원피스 사이에서 바지를 입은 내가 당연히 먼저 간택되었고 어느새 나는 리베론 교수와 짝을 이뤘다.

 이제야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내 눈은 빛나고 코 평수는 넓어지고 있었다.

 내 주근깨 마저 빛을 내뿜을 지경이었다.

 

 '교수님이라면 내 풀파워 따위 애기 손짓 같겠지?'

 

 지금까지의 훈련의 성과를 펼쳐볼 때가 왔다.

 교수의 가벼운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하면 되는 동작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는 느른한 눈빛으로 그는 내 뒤로 돌아갔고 목을 감기 위해 왼팔을 내밀었다.

 나는 왼팔로 그의 팔을 저지하고, 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쪽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공격했다.

 순간 리베론 교수의 몸이 수축하며 오른손으로 내 팔꿈치를 막으며 나를 밀어냈고,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2미터 정도 밀렸다.

 그는 저지된 왼팔을 주무르며 날 쳐다봤고, 그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무심하고 우울하던 눈빛이 반짝,하며 날 보고 씨익 웃을 때 나는 멜로눈깔의 정의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다들 보았겠지?

 이게 일격필살이다.

 다들 그렇게 깔짝거릴거면 차라리 그냥 잡혀가.

 납치범을 더 화나게 하는 것보단 몸값을 내는게 훨씬 나을거다."

 

 수업의 목표와 의미를 첫 날부터 지워버린 리베론은 나를 불러냈다.

 

 "엘리온이라고 했나? 수업 끝나고 남도록 하지."

 

 나를 뚫어보듯 쳐다보는 그의 야성적인 눈빛에 살짝 설레버린 나는 금사빠가 분명했다.

 

 

 "교수님, 엘리온 챔버입니다."

 "신입이군?"

 "네, 그렇습니다."

 "그럼 말이 되지. 훈련을 받은적이 있나?"

 "저희 기사단 아침 훈련을 몇 달 따라한 정도입니다."

 

 그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이채조차 흥미로운 미모였다.

 

 "몇 달이라고?

 그래.

 어쨌든 이 수업이 영애의 수준에는 안 맞는 거 알고 있지?

 수업을 상급으로 옮기는 게 어때?

 이 수업은 최고학점 처리를 해줄테니."

 "그렇게도 되나요?"

 "그 정도 권한은 받고 온거야. 이 학교."

 

 이것이 성인 남자의 여유구나.

 여유의 섹시란 이런 것이었어!

 심장이 뛰었고 얼굴이 눈치없이 달아오르려고 했다.

 

 "여튼 영애는 이쪽에 소질이 있군.

 배워보는 것도 좋을거야.

 자드밀 왕국은 보수적이지만 발손 제국 쪽에서는 성별과 상관없이 활약하는 여기사들도 많거든."

 

 제국의 여유란 이런 것이구나!

 제국의 미남이란 이런 것이었어!

 나의 사춘기 호르몬 때문에 뇌가 고장나 버린 현장이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시간표를 다시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가서 다시 재등록하면 되나요?

 아, 교수님이 저를 학점 처리 해주셔야하나요?

 옷은 뭘 입어야 하나요?

 교수님의 취향은 어떻게 되죠?"

 

 ...실은 나는 잘생긴 남자면 다 내 취향이라는 걸, 그 날 알았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두 번째 수업을 들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수업의 이름은 '마법의 역사와 이해 1'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예전에는 마법사가 꽤 많았다고 들었다.

 마법에 의지하는 것들이 많아 과학이나 기타 다른 기술들이 발전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100여년 전부터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인간들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기존 마법사들도 마력을 읽거나 운용할 수 없는 현상이 늘어갔다.

 대륙간 합동으로 조사단을 꾸려 탐험대를 설립하기도 하였으나 성과는 없었고, 모두들 마법이 과거의 유물이 되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쓸모없어 보이는 이 수업에 왜 들어왔느냐!

 그것은 또 다른 화제의 인물인 키셀을 위해서였다.

 마법사가 씨가 말라가는 이 시기에 백년만에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 났다고 전해지는 그였다.

 마탑에서 데려가고 싶어했으나, 그는 실력도 없고 아저씨 냄새나는 마탑에 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실력도 없고 냄새나는 아저씨들은 '성질머리조차 마법사'라며 찬양하기 시작했으나, 실력이 없는 것은 사실인지라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아카데미를 택한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도서관 때문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었다.

 제대로 된 스승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대륙에서 그는 기록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발손 제국의 아카데미가 더 많은 도서량과 마법사를 보유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곳에 진학했다가는 무력으로라도 발목이 잡힐 것은 뻔한 전개였다.

 그런 이유로 키셀은 도서량은 비슷하지만 마법사를 붙잡아 둘 힘이 없는 자드밀의 아카데미를 선택했다.

 

 나는 두 세계를 통틀어서 마법사는 해리 포터 밖에 모르는 머글이었기 때문에 키셀이 궁금했다.

 물론 그가 참 사랑스러운 미남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의 외모도 너무나 궁금했다.

 외모에 밑줄과 별표가 쳐져있다는 건 비밀.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누가 키셀인지 알 수 있었다.

 

 백금인지 은인지 구분이 어려울정도로 찬란한 그의 머리, 울창한 숲을 연상하는 그의 녹색 눈, 산림 속에서 은색 구름을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약간은 고집스러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앉아있는 그는 냉미남의 정석이었다.

 비율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마른듯한 체격이 예민하고 까칠하게 보이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완벽한 내 타입이었다.

 그는 산림의 신이었고, 그의 주위는 모두 심해의 생물체였다.

 

 방금 리블롱에게 뛴 내 심장이 조깅이었다면, 지금은 전력질주를 하고있었다.

 잠깐만... 리베롱인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군.

 

 오늘 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저 냉미남을 얼마나 찬양하고 덕질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 세계에 와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첫날부터 3과목을 들은 나는 약간은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누님~"

 

 멀리서 카엘이 발랄하고 건강하게 익은 얼굴로 뛰어왔다.

 아직은 10살밖에 되지 않은 카엘은 또래의 아이보다는 크고 착한 편이었다.

 8살이나 차이나는 내 동생은 정말 귀여운 아이였으며, 나를 잘 따랐다.

 

 "으이구,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구.

  천천히 와."

 "누님, 아카데미 잘 다녀왔어?"

 "그래그래.

 오랜만인거 같다."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는 꼬맹이 카엘은 마치 꼬리를 맹렬하게 흔드는 새끼 골든리트리버 같았다.

 아마 나보다는 좀 더 금발에 가까운 머리카락 때문일 것이다.

 

 "요새 가정교사 선생님이 새로 왔잖아.

 그 분은 좀 무서워.

 수학도 배우기 시작했다?

 누나도 수학 배웠어?

 나는 제국어도 배웠는데 발음이 좀 어려워."

 

 흥분해서 중구난방으로 본인의 근황을 뱉어내는 카엘을 보며 나는 마냥 머리를 쓰다듬었다.

 꼼지락거리는 갓난애기때부터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동생보다는 아들에 더 가까운 마음이었다.

 

 "그랬구나.

 잘하고 있다, 카엘.

 그 말을 해주려고 이렇게 달려온거야?"

 "아, 맞다!

 아빠가 누나 오면 같이 저녁 먹자고 했어!"

 

 천성이 느긋한건지 부모님이 카엘에게 무른건지, 카엘은 귀족다움은 아직 하나도 습득하지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부모님이 엘리를 키울때는 꽤나 많은 것을 바랐었다.

 아마 여기서도 첫째 때의 과도한 기대가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키우고서야 아나보다.

 그렇게 카엘은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랐고, 엘리가 살짝 억울한 것을 빼고는 모두가 행복했다.

 

 "그래?

 카엘도 같이 먹을까?

 누나 얼른 옷갈아입고 내려갈게."

 "응! 아빠한테 말할게!"

 "그래. 안 넘어지게 조심하구.

 아빠한테 다른 얘기보다 누나 얘기 먼저 전해야해!"

 "으으응~"

 

 이미 저 멀리 뛰어가는 카엘을 보며 따뜻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 얼굴 보면 일 하러 또 나가게 된다는 가장의 미소구나.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내려가자 이미 아빠가 앉아계셨다.

 

 "아빠! 카엘은요?"

 "오늘은 너와 할 말이 있어서 나중에 다같이 먹자고 보냈단다."

 

 늦은 나이에도 아빠라도 부르는 나를 아빠는 제지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8살까지는 고명딸로 자란 나를 워낙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넘치도록 받았던 사랑의 기억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가족들을 피했다.

 그들이 엘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서 그 자리를 뺏어버린 내가 너무 죄스러웠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내 눈치를 보는 집안 분위기를 느꼈다.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던 부모님이 결국 눈물까지 보이자, 받는 만큼 보답하자고 열었던 마음이 여기까지 왔다.

 

 "무슨 일 있나요..?"

 

 루터의 일이 머리를 스쳐서, 심장이 콩닥거렸다.

 제발 모르시길.

 

 "엘리, 적극적으로 챙겨주지 못했지만 아카데미 입학을 축하한다.

 첫날은 어땠니?"

 "아...... 정신없었어요."

 "그렇구나.

 엘리...... 내가 너를 가장 안전하고 소중하고 편한 삶을 걷게 하려고 강압적으로 키웠지?

 네게 뭔가를 하라고만 했지 뭘 원하냐고 물은적은 없는 것 같구나.

 미안하다."

 

 갑자기 눈도 못마주치며 고해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은 울컥했다.

 

 "아빠 마음은 알아요."

 "그래. 네가 아카데미에 가겠다고 했을 때, 우리가 탐탁치 않아했던 것도 네가 미워서가 아니야.

 이제 네가 훌쩍 커버리는 것 같아서.

 이제 우리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가려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무섭고 걱정도 됐단다.

 넌 언제나 나의 어린 딸 엘리잖니."

 

 먹고 있던 전채 요리가 목에 탁 걸리는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먹지 못하고 포크로 시늉만 내고 있는데 아빠도 아마 그랬었나보다.

 줄어들지 않는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 부녀는 말없이 포크만 휘두르다 물을 마시다가 했다.

 

 "아빠 고마워요.

 저도 혼자 뭔가를 시작한다는게 무서워요.

 그래도 용기를 내본거에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서요."

 "그래그래.

 이런 딸을 내 욕심으로 너무 집안에만 놔뒀구나.

 그래서 기사단 훈련도 나갔던 거니?"

 

 이번에 다른 이유로 음식이 목에 탁 걸렸다.

 

 ".... 알고 계셨어요?"

 "엘리, 나는 생각보다 능력있는 가주란다."

 "아.. 죄송해요.

 먼저 가서 허락받았어야 하는 건 아는데요.

 그냥 간단하게 구경만 하고, 간식을 드리려다가.

 그냥 아침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횡설수설하다가 말끝을 흐리자 백작이 픽 웃었다.

 

 "괜찮아. 홈크에게 들었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다더구나.

 홈크는 너에게 검도 잡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하던데."

 "안 돼요.

 저는 도구를 쓰면 제 팔이 고장나요."

 "그렇구나.

 검은 이미 잡아본거니?

 그리고 아카데미에선 뭘 배웠니?"

 "아 검은 안 잡아봤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 첫 날이었는데 '레이디를 위험에서 구할 일격필살'이라는 수업을 들었거든요.

 체술을 이용한 호신술 수업인 줄 알고 갔는데 다들 원피스를 입고 온거에요!

 세상에! 다들 무슨 생각인걸까요?

 너무 놀랐잖아요.

 제가 그래서 시범조로 교수님이랑 시범을 보였는데요...."

 

 꼭 어린 날의 엘리처럼 아빠에게 하루를 종알거리며 자랑도 했다가, 흉도 봤다가 했다.

 아빠의 다정한 칭찬 속에서 애정이 느껴져서 왠지 간질간질했고, 행복했다.

 덕분에 덕질계획을 세우고자했던 오늘 밤의 계획은 무기한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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