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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천사의 심장 2
작성일 : 22-01-15 10:59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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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파로크가 커다란 손으로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냈지만, 별 소용 없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초토화 된 지구, 주위엔 온통 탁한 영혼들뿐인 이곳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살짝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진짜 앞으로 계속 함께할 파트너, 동료인지 의심스러웠다.

 

 겉보기엔 타락한 영혼을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본인이 타락해버릴 만큼 어딘가 모르게 허접해 보였다.

 

 미약하지만 열이 나는 것도 같았고, 자꾸만 몸을 떨고 있는 걸 보니 어딘가 아파도 단단히 아파 보였다.

 

 내 팔자야.

 

 내 몸 하나 지키는 것도 벅찬 데 이젠 그녀까지 챙겨야 할 판국이다.

 

 그래도 밉진 않았다.

 

 낮엔 알지 못했던 청순미를 물씬 풍기는 에오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가슴이 끓어 올랐다.

 

 하지만 내색할 순 없는 법.

 

 여전히 바깥에 선 채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물론.”

 

 에오의 대답은 짧았다.

 

 정말 알고 있는 건지 아닌지 분간하기 헷갈렸지만. 일단은 믿어주기로 했다.

 

 “이제 우리...”

 

 “우리 뭐?”

 

 갑자기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저렇게 놀라는 거야? 혹시 아직도 아픈 건가? 열이 나나 본데? 설마 또... 이런저런 걱정과 생각을 하며 그녀 주위를 살폈지만, 변질 영혼들은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다행이란 말을 내뱉으며.

 

 “왜 그렇게 놀래?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

 

 “비를 쫄딱 맞았더니 너무 추워서. 차라도 마시려고.”

 

 “아. 그런... 미안.”

 

 그녀의 말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릴 듯 말 듯 했다.

 

 

 몸을 움직여 열린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몸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셨다. 어차피 빗물에 난장판이 된 거실이니만큼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젖은 옷을 벗으려던 순간 에오가 말했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널 지키고 감독하기 위해서야.”

 

 스톱! 에오가 지금 뭐라는 거야?

 

 “뭐? 날 지키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정말로 난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런 무기도 없고, 겨우 부유령 따위에게 귀접을 당해 기절까지 한 사람이 뭘 한다고?

 

 그녀가 다시 대꾸했다.

 

 굳은 표정으로 보아 뭔가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무슨 말을 또 하려고. 사람 불길하게 시리.

 

 “말 그대로야. 내게 주어진 임무는 네가 힘들다고 징징거리거나 딴생각 품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널 제압하고 ... 가끔 저기 위에 있는 분한테 보고도 하고.”

 

 “어?”

 

 별 희한한 소릴 다 듣겠네. 내가 입을 쩍 벌린 채 눈을 끔벅였다.

 

 어이도 없고 황당하기도 하고. 짜증도 치밀고.

 

 날 지키고, 감독하고 제압에 보고까지?

 

 ‘자다가 꿈이라도 꾼 건가?’

 

 에오의 머리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귀접에 의한 충격으로 살짝 돌아 버렸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진지하다 못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흠.”

 

 비 맞고 불쌍한 거지처럼 서 있는 사람한테 저런 말을 내뱉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게 많은 그녀는.

 

 너무 ... 예뻤다. 황당한 소릴 늘어놓는 것조차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만큼.

 

 “...내말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사적인 감정 품지 말란 소리잖아.”

 

 그게 가능하겠니? 1000년이나 여기서 썩어야 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아무 일도 없길 바라냐구요...

 

 차라리 1000년동안 숨을 쉬지 말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쉬워 보였다.

 

 질끈 눈을 감았다.

 

 앞이 캄캄했다.

 

 -쏴아아!

 

 억수같이 퍼붓는 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그래, 와라! 어차피 타락 영혼들로 가득 찬 세상. 화끈하게 몽땅 쓸어버려라!

 

 “크음.”

 

 눈을 떴다. 축축이 젖은 적갈색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지껏 내가 찍은 여자는 아무리 버티고 저항해 봤자 결국 내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가슴이 뜨겁고 미칠 것 같아도 드러내 놓고 미친놈처럼 덤벼들 수는 없는 법. 가끔 나조차도 주체 못할 만큼 포악한 야수처럼 꺽꺽거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흡혈귀였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지금, 야수처럼 날뛰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피를 차갑게 식혔다.

 

 원래 미친 척 달려드는 상대는 별 매력이 없었다.

 

 철벽 치는 레이디 마음 훔치기는 내 주특기.

 

 흡혈귀 시절 맘만 먹으면 못 꼬신 여자들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그렇게 철벽치고 도도하게 굴어. 그래야 구미가 당기니까.’

 

 조금 전 발끈하던 내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다.

 

 무슨 일 있었어? 라고 할 만큼 표정이 무뚝뚝하게 변해 있었다.

 

 잠옷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걸 입고 유혹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 착한 매너남의 눈빛으로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할 말 다한 그녀는 멀뚱멀뚱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철벽은 치고는 있지만, 막상 내가 가까이 서 있자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쿵쿵.

 

 어럽쇼?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난 이미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아니 이렇게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데, 상대방 마음 하나 못 읽을까?

 

 그녀는 교과서적인 말투로 주절주절 말을 끝마쳤지만, 지금 머리와 가슴은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연애 한 번 못해 본 티가 팍팍 묻어나는 귀여운 레이디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심하고 겁 많고 무작정 철벽부터 치고 보는 레이디에게 먹힐 만한 젠틀한 미소.

 

 그나저나 이제 큰일 나셨거든요?

 

 쯧. 저런, 나한테 걸린 이상...

 

 시간 문제였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언젠간 폭발하게 되어있다.

 

 이럴 땐 그냥 모른 척. 그리고 여자한텐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어주며 아무렇지 않게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 봐줄게. 이쁜아.’

 

 또 한 번 손으로 빗물에 젖은 얼굴을 쓰윽 닦아냈다.

 

 물이 뚝뚝 흐르는 모습은 잘만하면 미남 이미지를 더더욱 극대화 시킬 수가 있는 법.

 

 내가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갑자기 밖에서 쩍! 소리가 났다.

 

 단순히 하늘을 찢어발기는 천둥소리가 아닌,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만큼 충격적인 소음이었다.

 

 “꺄악!”

 

 한차례 인상을 찌푸리던 나와는 달리 갑자기 에오가 비명을 내질렀다.

 

 커다랗게 벌어진 눈동자 속엔 공포가 스며들었다.

 

 한껏 벌어진 그녀의 입술이 또 나를 자극한다.

 

 대환장이다.

 

 지구가 통째로 갈라진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 알게 뭐람. 어차피 이곳에 별 흥미도 없다.

 

 -후다닥!

 

 내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그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명 지르면서 뛰어드는 레이디를 거부하는 등신 같은 놈이 어딨을까.

 

 얼떨결에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래, 그래. 내 품에 팍 안겨버려.

 

 그때, 그녀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빗물 때문에 발이 미끄러진 탓이었다.

 

 “꺄약!”

 

 끊이지 않고 내지르는 그녀의 비명 소리에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하지만 뭐 이정도 쯤은 참을 만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거칠게 흩날리다 등 뒤로 가라앉기도 전에 잽싸게 몸을 날렸다.

 

 다행히도 바닥에 넘어지려는 에오를 재빨리 안아 들 수가 있었다.

 

 그녀의 살 냄새가 풍겼다.

 

 양팔엔 폭신폭신 말캉말캉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켁켁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지만, 다행히 내 목뼈가 부러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쿠르릉, 쾅!

 

 -쩍!

 

 또다시 울리는 천둥소리. 고목 부러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래, 그래. 다 부러지고 부서져라.

 

 이번엔 방금 전보다 더 크고 충격이 강한 것 같았다. 바닥이 다 울릴 정도였으니까.

 

 그러자 그녀가 더더욱 세게 내 목을 끌어안았다.

 

 “켁! 이것 좀. 숨이... 컥 ... 막혀서. 힘 좀... 빼봐.”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그녀가 팔에서 힘을 조금 뺐다.

 

 그러더니 천천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가 내게 와 박혔다.

 

 “꺄악!”

 

 다시금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고, 화들짝 놀라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놔, 놔줘!”

 

 안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싫다면?”

 

 “......?”

 

 기절할 듯 놀라는 그녀의 모습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농담입니다. 긴장 풀어.”

 

 그러나 이곳에 그녀를 놔줄 수는 없었다. 바닥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빗물 때문에 또다시 발이 미끄러질 염려가 있었다.

 

 사실 그것보단.

 

 좀 더 오래 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 때문이긴 했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칙칙한 벽을 쳐다봤다.

 

 내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녀가 발버둥을 멈췄다.

 

 여기 순진함 추가요.

 

 그녀는 참으로 이것저것 다양함을 갖춘 동료였다.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닥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저렇게 큰 천둥소리는 나도 처음이야.”

 

 “.......”

 

 에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두 손을 꼼지락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놀래서. 천둥이 무서운 건 아닌데, 그냥 갑자기 막.”

 

 “쉿!”

 

 내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에오가 눈을 깜박였다.

 

 저건 분명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도하고 까칠하게 굴더니, 알고 보니 완전 소심 순수 겁쟁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내 마음이 느긋해졌다.

 

 여유까지 느껴질 정도.

 

 천둥소리가 유난스레 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애처럼 꽥꽥 소리를 내지르며 대책 없이 이 넓은 가슴팍에 안겨버리다니.

 

 내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자 에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오마이 갓.

 

 이번엔 정말 인공호흡 해버릴 거다.

 

 내가 빤히 응시하고 있자 그녀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붉고 도톰한 입술은 앙다물고 있었고, 아래로 내려뜨린 주먹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조그마한 주먹으로 뭘 하려고 그러실까...

 

 당혹스러워하며 불안스레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스며들었다.

 

 아름다운 얼음 호수를 연상시키는 눈이다.

 

 떨리는 심장, 거칠어지는 숨소리,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피와 너무 아찔해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만큼 설레는 감정 따위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임을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난 모르는 척, 조금 둔한 녀석 같은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괜히 그녀를 자극해 봤자 내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조하다 못해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에오가 걱정스러웠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녀를 향해 말했다.

 

 “으. 너무 춥다. 옷을 갈아입어야겠어.”

 

 말을 내뱉으며 옷장 문을 열었다.

 

 눈은 앞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무진장 신경 쓰였다.

 

 대충 아무 옷이나 집어 들었다.

 

 청바지와 셔츠 하나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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