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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멸망하는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
작가 : 해디타
작품등록일 : 2022.1.15

“그러면, 어쨌다는 거지?”

기가 찬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고의 흐름을 끊는듯한 소리에 번쩍 눈이 뜨였다.
눈을 뜨고 처음 마주친 건,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던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누, 누구세요?”

당황함에 제 위에 놓인 천조각을 부여잡고 벌떡 일어나 몸을 물렸다.

“누구냐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쓰러지고,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게 누구냐고 묻나?”

냉랭한 말투에 이제 막 일어난 머리에 피가 돌았다. 눈을 껌뻑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천천히 반추해본다.

.
.
.
세계구급 순장에 저항하는 성녀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1 끝과 시작
작성일 : 22-01-15 06:43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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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은 그저 어둠이었다.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웠다. 분명히 잠들어 있는 데도 계속 졸음이 쏟아져,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영원히 자고 싶었다.

 깊고, 깊은 강물 속으로 의식이 한없이 잠겨가는 듯한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는 감각은 어찌 보면 자유로워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대로 몸을 맡기면, 모든 것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그런 자신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다.

 귓가의 노이즈가 들린다. 누군가 부르는 듯한 음성.

 싫은데.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그러나 이미 깨어버린 의식은 다시 부상한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추락은 어느샌가 몸이 둥실 뜨는 부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몸이 떠오름과 함께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그러자, 갑자기 미친 듯한 한기가 찾아왔다.

 콜록, 콜록.

 몸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의 한기와 함께 역함이 올라왔다. 애타게 산소를 구하며 아까까지 자신을 편안함으로 이끌어가던 강물을 토해낸다. 토해낸 강물은 노을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위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아, 저 아이를 도와주려므나.”

 “네.”

 

 다정한 손길이 등을 쓸었다. 그 온기에 남은 한기를 토해내었다. 간신히 호흡이 돌아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 따뜻하고 폭신한 느낌이 몸을 감쌌다. 저도 모르게 감사의 인사가 나갔다.

 

 “고,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여자는 생긋 웃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포를 잔뜩 잡아당겨 두르자 떨림이 좀 진정되었다. 그제야 주변을 좀 둘러볼 정신이 들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기둥과 그 기둥을 타고 올라간 꽃 넝쿨. 한 치의 더러움도 허락하지 않을 듯 새하얀 바닥 위에 붉은 융단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두 인영.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 위에 위엄있는 모습의 여성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그녀를 보좌하듯 전반적으로 색이 옅은 여성이 이쪽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자신이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느냐?”

 

 대체 뭐지?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데도, 절로 입이 열렸다.

 

 “미나예요.”

 “이름을 기억하는 걸 보니 다행히 자아는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군.”

 

 잘 들어라.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죽었다.”

 

 

 생전 처음 보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죽음을 선고받는 미나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부정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자신을 갑작스럽게 감싸는 불빛과 충격이었으니까.

 

 “교통사고였군요.”

 

 미나가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너희 세계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더구나.”

 

 냉랭하고 고압적인 여성과 다르게 그 곁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여성의 표정에선 자신을 향한 연민이 엿보였다.

 

 “그래, 알고 있으니 이야기는 쉽겠군.”

 

 ―만약 네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어찌하겠느냐?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삶이 즐거웠냐고, 행복하냐고 묻는다고 하면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기를 바란 적은 더더욱 없었다. 잠들 듯 의식이 옅어지던 때라면 몰라도, 맑은 정신으로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기엔 솔직히 겁이 났다. 상대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짓눌리려 하는 정신을 다잡고 상대에게 물었다.

 

 “……조건이, 있나요?”

 

 상대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가 펴졌다.

 

 “호오. 상황 파악이 빠른 아이로구나.”

 

 좋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옥좌에 앉아있던 인물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이 닿은 곳에서 물결에 비친 듯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성부터 아담한 마을까지.

 

 “네가 갈 곳은 내 힘이 미치는 세계이며,”

 

 딱, 손가락을 튕기자 거울에 비친 듯한 풍경이 붉게 물들었다. 붉게 타오르며 부서지는 풍경 너머로 비명이 울려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 내가 멸망시킬 세계이지.”

 

 미나는 아연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다잡아야만 했다. 멸망시킬 세계에 굳이 자신을 보내겠다니. 정말 제게 왜 이러세요? 하고 입을 떼고 싶은 것을 참으며 제 앞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가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먼저 네가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겠군.”

 

 자칭 ‘신’은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들어가게 될 몸은 나의 아이, 노아의 몸이 될 것이다.”

 

 신이 손을 내밀자 그 옆에 선 은발의 여성이 자신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이 아이에게 한 번 기회를 주었다만, 내 분노만 사는 결과만 낳고 말았지.”

 “리트라님.”

 “가만있거라, 아이야. 내가 맘을 돌리기 전에.”

 

 신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입은 굳게 닫힌 채 여성의 얼굴엔 수심이 깃들었다. 슬퍼 보이는 표정은 무언가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를 섬긴다고 하는 그 신전에서 이 아이를 내게 제물로 바쳤다. 고작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입술을 한껏 비틀어올린 신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려줬지. 세계가 모두 잠겨버릴 정도의 비를.”

 

 저도 모르게 숨이 막히는 기분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그대로 짓눌릴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물이 가득 차올라 잠겨가는 느낌에 허덕일 때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압박감이 사라져 미나는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을 콜록거리고 있으면 어느샌가 성큼 다가온 노아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추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원인이 된 신, 리트라는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리트라를 쏘아보았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왜 화풀이를 자신에게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이 더 컸다. 자신이 누굴 제물로 바칠 성미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저쪽 세계에서도 이런 일을 당할 정도로 남을 해하고 산 일도 없었다. 그런데 왜―.

 

 “왜, 내가 네게 화를 내는 것이 가당치 않으냐?”

 

 고요한 목소리였다. 생각이 읽힌 듯한 말에 미나는 조금 움찔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그제야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인간의 가증함에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인내했다고 생각하느냐? 지상에 현현하여 나의 권능을 드러내도 그뿐이었다. 나의 아이들을 수없이 보내고, 보내도 결국엔 처참하게 망가뜨려 내게로 돌려보냈다. 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느냐?”

 

 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나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와 섰다.

 

 “이는 마지막 기회이니라. 이 아이가 사정하여 얻은 마지막 기회.”

 “……리트라님.”

 

 손을 저어 제 곁에 선 이의 말을 막은 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끝을 맞이한 너라면 새로이 얻은 기회에 불만은 없겠지. 다른 세계의 존재라면 혹여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여 불렀느니.”

 

 붉은 시선이 곧게 자신을 향한다.

 

 “나와, 계약을 하자꾸나.”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던가.

 모든 게 꿈 같았다.

 그러나 제 발치까지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이라던가, 사락거리는 옷자락의 감각은 무서울 정도로 선명했다. 더듬어봐도 자신이 아닌 몸. 낯선 공간. 짐작 가는 것은 정신을 잃기 전 신이라 불리는 존재와 나눈 계약이었다.

 계약에 따르면 자신이 빙의한 몸은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의 성녀 ‘노아.’

 신전에서 탈출해, 이 세계를 구할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기회였다.

 ‘그야, 세계가 멸망해 버리면 혼자 살아남을 도리도 없고.’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모르는 세계에 관심이나 애정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다만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녀를 움직였다. 한 번 경험해 본 죽음은 역시 고통스러웠고, 무서웠다. 이전 세계에 딱히 미련은 없다 할지라도 굳이 죽음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계를 만드는 것도, 멸망시키는 것도 자기 멋대로. 신이란 참 속 편한 존재라고, 성녀의 몸에서 다소 불경한 생각도 해보았다. 당장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신은 예정된 멸망을 당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건 내 몫의 일인 모양이니까.’

 입맛이 썼다. 간신히 죽음에서 깨어나고 나니 다음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세계구급 순장을 당하게 생긴 것이다. 삶이란 어찌 이리도 기구한지. 하긴, 순장 이전에 제물로 바쳐지게 된 상황부터 해결해야 했다.

 자, 이제 어쩐담.

 ‘성녀 노아’가 된 미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똑똑.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아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이곳의 무녀 중의 하나겠지. 노아를 연기하는 미나는 눈을 내리깔고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 놓인 음식은 검소했다. 검은 빵과 야채 건더기 몇 개가 들어있는 묽은 수프가 다였다.

 막 수저를 뜨려는 순간, 음식을 두고 물러나던 무녀가 잠시 멈칫한 채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성녀 노아님.”

 

 노아라 불린 여성이 고개를 들자 무녀는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희생하시는 노아님의 마음, 저희도 잊지 않겠습니다. 대신관님께서도 노아님의 희생을 기리실 예정이십니다.”

 

 죽고 나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미나는 그리 생각했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철컥. 문을 닫고 나간 무녀가 방의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감금이네. 미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희생이라고 해놓고 자발적인 희생을 하게 둘 생각은 없었나 보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곁에 서 있던 처연해보이는 인상의 여성을 떠올리며 미나는 작게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렇게 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런 세계와 같이 멸망하지도 않을 거야!

 

 각오를 다지며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주를 우려한 것인지 방금 잠긴 문 이외에는 작은 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침대와 식탁. 마치 죄수라도 되는 것처럼 수저만이 있는 식사. 탈출을 위한 실마리가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좁은 방 안에서, 미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똑똑.

 

 “노아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방안이 잠잠하자, 조금은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주무십니까? 들어가겠습니다.”

 

 철컥, 하고 잠금쇠를 풀고 들어선 무녀는 이내 방안의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그도 그럴 것이 방 안에는 붉은 액체를 토한 성녀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성녀의 곁에는 먹다 남은 빵과 엎어진 스프가―.

 

 흡, 문득 한 가지를 깨달은 무녀는 비명을 지르던 입을 막았다.

 가져온 음식이 문제였다면,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컸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 자신의 비명을 들은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책임을 추궁당하기 전에 도망치리라 생각하며, 무녀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쿨럭, 쿨럭.”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려 잽싸게 도망친 것은 좋았는데, 입안의 비린 맛이 영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러 접시를 깨트려 손을 베어 피를 삼키고, 다시금 토하는 임기응변을 벌인 탓이었다.

 

 ‘그래도 도망칠 수 있었으니 남는 장사지.’

 

 옷을 찢어 적당히 손의 상처를 감싼채, 어두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미로같은 복도를 헤메는 동안 단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그나마 추적자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 하나였다.

 

 그 때였다.

 

 “……거기, 누군가 계십니까?”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발을 멈췄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해디타입니다.

 오랜 시간 고민해오던 이야기를. 이번에야말로 완결지어보려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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