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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십자밑에 고양이
작가 : ballonwolf
작품등록일 : 2022.1.9

인간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고양이가 된 한 아이가 인간성과 야성적인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

경건함을 중시하는 종교 국가에 떨어진 운석 '영혼돌'의 힘을 얻고 고양이가 된 고아. 레건은 붉은 십자국에서 전략자산으로서 대성당에 숨겨지고, 고양이로서의 욕망은 억압된다. 하지만 외부세력이 외부 만난 운명의 짝은 그를 유혹해 대성당 밖으로 탈출시킨다.
터져 나올 듯한 욕망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짐승의 육체를 가졌지만, 인간의 영혼을 가졌다고 믿는 고양이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답이라는 게 존재할까.

 
#3
작성일 : 22-01-14 12:31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8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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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미약하게 진동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레건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웬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창문에 열심히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레건은 소리를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거렸다.

 

 하지만 유리를 너머에 있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레건은 유리창에 귀를 댔고,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내 말 듣다가 어디로 가는 거야?”

 

 창가에서 뛰쳐나온 검푸른 고양이는 지극히 짐승 같은 말을 듣고야 말았다. 자기 몸집에 두 배만 한 서랍 속으로 숨어 들어가, 구애의 울음소리가 사라져 주길 기다렸다. 겉모습이 아무리 그래도 난 사람이었는데. 레건은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끔찍한 말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야성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옅어지자, 레건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진 주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방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댔을 애완 고양이들의 흔적을 쫓았고, 얼마 되지 않아 녀석들이 철창을 열고 나갔음을 알아냈다.

 

 부디 손님이 없는 방만을 들쑤셨길 바라며, 레건은 열린 철창을 빠져나갔다. 난장판을 만들려 작정한 녀석들을 신속하게 제압해야만 했었다.

 

 *

 

 신이 주신 예술이기에 그런 걸까. 언제나 감탄사를 끌어내는 아름다운 빛깔이, 붉은 양탄자에 비쳤다. 붉은 치마가 주변과 어울려진, 낯선 사람이 찬란한 빛을 향해 다가왔다. 정의 연합의 수장 곁을 맴돌던 주황색의 고양이가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의 연합의 수장이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였을 것이며, 대성당의 수고양이들에게는 진정한 손님일 것이다. 로제가 누워있는 암고양이의 곁을 떠나자, 이때다 싶어 튀어나온 수컷 둘이 득달같이 들러붙었고, 행복의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운명처럼 나타난 라이벌에게 그들의 행복이 위협받고 있음을 깨닫자. 환희는 비장한 괴성이 되었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들러붙어야 할까. 레건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자책하며 감정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실리적으로 판단하자고 스스로 속삭였건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저 끔찍한 구애를 함께 하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레건은 이성에 투철한 존재였고, 검푸른 고양이는 아무런 고민도 없었던 것처럼 다가갔다.

 

 “꺼져!”

 

 검푸른 고양이는 애완 고양이들의 위협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붉은 십자국의 수상과 아직 직접 보진 못한 암고양이, 정의 연합 수장의 시선을 모두 받고 말았다.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 친구가 서열이 낮은 것 같군요.”

 

 약간의 미소와 함께, 정의 연합의 수장은 레건을 가리키고 말했다. 곧 미소가 붉은 십자국의 수상에게 전달되다 못해 헛웃음을 터트릴 지경에 이르렀다.

 

 “맞아요. 고양이가 의외로 서열을 밝히죠. 개만은 하겠습니다만. 다 무리생활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검푸른 고양이는 근처에 숨어들어 이후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낮은 서열이라는 말에 상처를 받고서,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애완 고양이들이 본격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안녕?”

 

 “말로는 처음 만난 듯 인사하는데, 이미 출산계획이라도 짜놓은 것처럼 다가오네?”

 

 암고양이는 고양이의 말로 반문했다. 저들이 다음 작업을 걸기 시작할 때, 암고양이는 꼬리를 ㄴ자로 꺾으며 그들에게 관심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녀석들의 구애가 실패했을 때, 검푸른 고양이에게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본능적으로 생각해선, 더더욱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하며, 이곳에서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고자 했다.

 

 “언니는 먼저가. 얘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을 본 레건은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로제님, 얘가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네요?”

 

 정의 연합의 수장은 경악한 표정으로, 정의 연합의 수장에게 질문했다.

 

 “제가 아끼던 애완 고양이였는데, 마법을 걸어서 지금은 반려하는 동물 그 이상의 관계랍니다.”

 

 암고양이가 깊은 생각 속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레건을 바라보았다. 더러운 욕망에 이끌렸던 검푸른 고양이는, 죄악을 피해 시선을 내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하늘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검은 개 인형이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인형과 그때 보았던 인형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레건이 자신의 마음을 인형에 밀어 넣었다. 검은 물체는 이제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 깨달았으며, 변화한 존재처럼 보였다. 동시에 과거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어둠이 하늘을 지배하자, 야행성인 고양이들이 울부짖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들과, 짐승의 울음소리는 기어오르는 공포와 심연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레건은 그 깊은 곳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지만, 차마 애완고양이들에게 적절한 폭력을 행사해 야성적인 행동을 중지시키려는 시도를 하진 못했다. 아직도 검은 개 인형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 야성의 울음 앞에서 부서지려는 담을 다시 쌓아나갔다. 비록 잠자리를 걷어차며 본능이 다시 틈 사이로 새어 나가려 했지만, 지금까지는 검푸른 고양이의 강철같은 의지에 깊은 흠집을 내진 못했다. 아직 기회가 있었고, 대응할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사실 아무런 기회도 방법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자니?”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존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난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이 되도록 훈련받았어.”

 

 가능한 많은 짜증을 말에 담아서, 암고양이에게 전달했다.

 

 “그러겠지. 날 생각하면서 말이야?”

 

 암고양이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수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커지는 순간이었다.

 

 “수컷들 사이에서 헛경쟁 질을 했을 텐데, 이렇게나 쉽게 날 만났으니. 내가 널 미치게 하는 건 일도 아니지.”

 

 “착각이 너무 거한 거 아니야?”

 

 암고양이가 유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네가 뭘 해도 관심이 없다는 듯 레건이 하품을 내질러도,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봐도, 넌 이상해. 평범한 고양이처럼 나한테 넘어오질 않아.”

 

 “훈련받았다고 했잖아.”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철벽을 치진 못해. 여기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도 훈련을 받았겠지만, 날 찾는 울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지.”

 

 “이봐, 내 어떤 강한 부정도 긍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강한 긍정은 부정으로 받아들여지겠지? 그래, 완벽한 추리야 이렇게 미친 고양이는 처음 봤어!”

 

 암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씨익 웃었다.

 

 “그게 인간의 언어에서 쓰이는 표현인 거, 알고 있지? 일반적인 고양이가 그런 걸 알리는 없으니까. 넌 아마 마법과 관련된 존재일 거야. 자의로 엮이든, 타의로 엮였든.

 

 “어…. 네가 말하는 마법 같은 건 잘 모르겠는데.”

 

 레건은 사랑에 빠진 고양이의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놀라움의 표정이 묻어나왔다. 사람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고양이에게 매력을 느꼈으며, 이미 사랑의 감정을 품고 표정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일단 감정이 이성의 영역에 들어서자, 레건은 자신의 부족한 조절력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뻔히 사랑한다는 표정을 지어도, 정작 다가오면 아닌 척. 전형적인 인간의 행동이야.”

 

 이 정도면 모든 비밀이 들통났다고 봐도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검푸른 고양이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만난 거겠지만, 레건이 그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러, 암고양이의 목덜미를 양 앞발로 붙잡고 넘어트렸다. 녀석을 완전히 덮치며, 가슴 털에 코를 박았다. 결코 자신이 특별한 고양이가 아님을 몸소 증명하기 위해, 결국 욕망에 굴복하는 존재임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가르릉 소리를 내며 미친 행위를 기꺼이 시작했다.

 

 상대방이 미친 고양이가 된 레건을 경멸하며, 귀를 물거나 어떻게든 뿌리째길 바랐건만. 암고양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머리를 들이밀며, 레건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은빛 표식이 검푸른 고양이의 이마에 흐릿하게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영혼이 이어지는 듯한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레건은, 상대방이 스스로 입술을 거둘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도 인간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고양이와 함께하고 싶어. 그래서 네가 마음에 드는 거야.”

 

 암고양이는 잠시 레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두 고양이의 위치가 어느 순간 바뀌어, 레건이 암고양이에게 덮쳐진 모양새가 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밤이 깊어져 갈 때, 레건은 상대방이 떠나는 것을 얼어붙은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하늘에는 별이 빛났다. 암고양이의 그림자가 별빛을 받으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성인들의 별이, 그들을 징벌하기보다는 축복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별이 한 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원을 그렸고, 뒤틀려가는 꿈속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오후의 햇살이 레건을 맞이하며 지금이 한 시 즈음임을 일러 주었다.

 

 앞발을 내밀어 기지개를 켜고, 주변을 산책하며 근처 미술품과 방들이 주는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들을 지나 꽤 구석진 방에 들어서자, 울부짖던 애완 고양이들이 우리에 갇힌 것이 보였다. 중요한 손님이 떠날 때까지, 시끄러운 고양이들은 대성당의 중심부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늘 위에 떠다니는 느낌을 전하도록 설계되어, 하늘색 배경에 구름이 그려진 방에 들어섰다,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은 충분히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감흥을 주었고, 방의 출구와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레건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만약 밤을 배경으로, 옅어진 구름과 별이 빛났다면 더 아름다운 곳이었을 텐데. 오늘의 꿈속 별이 움직였듯이. 운명이 이렇게까지 잔혹해질 수 있음을 말해줬을 텐데.

 

 검푸른 고양이 기준으로 출구 쪽에서 암고양이가 들어왔다.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반색하며, 암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가워. 어제 일 이후로는 방안에서 온종일 머무를 줄 알았는데, 여기 나와 있네? 덕분에 난 돌아다니는 널 찾느라 고생 좀 했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랄 만도 했지만, 검푸른 고양이는 상대방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털을 쭈뼛 세웠다. 이미 녀석의 냄새를 맡았었고, 감상자의 심연을 자극하는 이런 예술작품을 즐길 지성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줄 준비를 마쳤다.

 

 “음…. 그래…. 나 덕분에 건물 구경 좀 했겠네….”

 

 말투에는 두려움이 퍼져있어서, 레건이 구름이 가득 찬 하늘의 방을 예술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주장과 그 근거가 담겨 있었다.

 

 “그건 됐고, 어제 일을 로제한테 아직 말하진 않았거든? 그래서 널 지금 어떻게 구워삶을까 고민 중이야.”

 

 구워삶으시던, 볶아 끓이시던. 레건은 겁에 질린 듯 구름과 하늘의 방에서 벗어났다. 자연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존재로 자신을 격하시키며, 스스로 욕망의 끝까지 몰았다.

 

 “네가 날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네가 말한 대로 구워삶든, 절벽에서 떨어뜨리든, 이 높은 구름 위로 날 띄워버리든. 난 그저 욕망에 충실해, 가능하면 너와 사랑의 끝자락까지 나를 몰아붙여서….”

 

 뒤늦게, 레건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직시하고 말았다. 그 죄악에 압도당해, 더 이상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본인 유전자를 저 멀리 퍼트리겠다? 알았어. 어제와 오늘의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로제를, 아…. 넌 이름으로 하면 모르겠지. 정의 연합의 수장을 찾아와 봐.”

 

 고양이의 말로 전해진 요구 사항은 레건을 매우 곤혹스럽게 했다. 레건은 일단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뒤돌았다. 그리고서야 고민의 흔적을 얼굴에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고, 고민은 계속되었으며, 풀리지 않는 굴레에 갇혀있던 레건은 단 하나의 결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 혼자 풀기는 어려운 문제이니,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이 상황까지 만든 장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테니까.

 

 레건은 적당한 때를 잡아 수상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레 구석에 놓인 방석에 앉은 검푸른 고양이는 수상이 들어오자 특이한 야옹 소리를 냈다. 이내 수상이 레건을 들어 올리고 매우 으슥한 통로를 지나 비밀스러운 방으로 들어섰다.

 

 “회담 시간이 코앞이다. 레건, 요점만 말해야 해.”

 

 “요점만 말하느라 한세월이 지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발각당했습니다.”

 

 의외로 핵심은 간결했다. 수상이 세세한 설명을 요구해서 문제였지. 레건은 세부적인 사항을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보고했다. 암고양이를 속이려 한 행동을 설명할 때는 부끄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당장이라도 책임을 물을 듯한 수상의 표정이 더 큰 문제로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에 걸린 고양이 한 마리가 비밀을 캐냈다고? 네가 부주의해서 새어 나온 게 아니고?”

 

 “책임을 피할 순 없겠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직 정의 연합의 수장은 이 사실을 모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녀석이 아직 비밀을 알려주진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비밀 유지의 조건으로, 내일 자기 방으로 찾아오라 요구하면서요.”

 

 검푸른 고양이는 아래를 보고 한숨과 하품 사이에 있을 무언가를 내쉰 뒤, 말을 이어갔다.

 

 “사람의 방식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고양이다 보니, 사람의 방식대로 뇌물 같은 걸 주는 방법도 통할 겁니다. 어찌 되었든 적당히 환심을 사고, 요구 사항을 조금 들어보며 협상을 시작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겠지. 근데 심상치 않은 기류가 들면 어쩌지?”

 

 검푸른 고양이는 불편한 시선으로 수상을 바라보았다. 아마 수상은, 의혹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요구하는 것으로 느꼈던 것 같았다.

 

 “로제의 고양이가 널 유혹한다며.”

 

 “차라리 유혹에 넘어가 사랑에 빠지지, 중요한 비밀이 밀고되고 싶진 않습니다. 유감이지만, 무리한 요구 사항을 내놓거나 회유를 거부한다면 제 손으로 죽인 다음, 사고사로 위장해야겠지요. 이 비밀이 로제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서요.”

 

 “그래,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구나.”

 

 긍정적인 반응에서, 신임이 묻어나왔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암고양이에게 정체가 드러났다는 사실에 기반해서, 둘이 사랑에 빠진 게 아니냐는 의혹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널 한 번 믿어보겠다. 그만큼 너도 날 믿어줬으면 좋겠지만.”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다는 내면의 속삭임이 검푸른 고양이에게 퍼져나갔다.

 

 *

 

 “만나서 영광입니다. 대성당의 주인이자, 붉은 십자국의 원수. 아니 수상님.”

 

 “반갑습니다. 로제님. 일단 회담 시간을 지체시킨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수상은 속물적이고도 교양 없는 로제를 향한 경멸감을 품었지만, 일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공식적인 관습을 지키려고 애썼다.

 

 “어둠의 안개를 헤쳐오시는 게 순탄치는 않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어둠의 안개를 헤쳐 올 정도로 중대한 사안을 가지고 왔으며, 힘들게 여기까지 온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붉은 십자국의 수상에게 진실된 미소가 번졌다.

 

 “저희는 딱히 드릴 제안이나 안건이 없습니다. 우린 어둠의 안개로 만든 천연, 그 이상의 방벽 아래 고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립이라는 변화의 폭풍 속에서조차 우리의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고, 계속 지켜나가겠지요”

 

 “이해합니다. 붉은 십자국은 강대국인 황국이 근처에 있는지라 영혼의 돌을 가진 이들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았겠지요. 이러면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죠.”

 

 수상은 잠시 긴장에 절인 목을 축였다. 뼈있는 본론과 요구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영혼돌의 소유자들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무언가인 어둠의 안개가 주변에 있었고, 우린 어찌어찌 어둠의 안개를 주변 기류와 바람을 조작하는 기계들로 통제하려 했습니다. 결국 국토 대부분을 도넛 모양으로 감싸는 데 성공했지요. 이는 많은 서적과 기사들에 회자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분명히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겁니다.”

 

 불꽃처럼 따사로웠던 로제의 말투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물론 사실입니다. 거의 모든 전력을 어둠의 안개를 유지하는 데 사용했고, 안개를 만드는 데에 노동력과 지식을 제공한 군인과 기술자들이 안갯속에서 미쳐가기도 했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습니다. 대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위협할 수 없는 철옹성의 요새가 완성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많은 국력이 그곳에 치우쳐졌죠. 결국 가난해진 국가는 국민의 원망을 사게 됐습니다.”

 

 수상은 빛이 반사되지 못하는 물의 표면을 바라보다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정의 연합의 수장인 로제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제가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처럼, 무역선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교역하며 함께 더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어떨까요?”

 

 “이런 점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어둠의 안개에 균열이 생긴다면 황국이 먼저 들어올 텐데요.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영혼들을 가진 저와 제 동료들이 번영을 이어나가게 지켜드릴 겁니다. 균열이 남쪽이나 동쪽 일어나야 가능한 일이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제의 제안은 제법 이치에 맞고, 설득력도 충분했다. 그러나, 정의 연합의 영향력 속에서 감내해야 할 희생을 금세 읽어내지 못한다면, 붉은 십자국의 수상은 이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격 없는 수상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붉은 십자국은 곧 중립국 지위를 잃고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저희는 이런 사항에 대해 언제나 일관된 견해를 내놓을 것이라 여러 번 말해드린 것 같습니다. 로제님, 붉은 십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붉은 십자국이 황국에 대항하는 전진기지가 되는 거대한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괜히 붉은 십자국이 자체의 힘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도, 강대국의 방패가 되지 않겠다는 맥락에서 나왔다. 물론 약소국이 강대국의 요구 사항 사이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일까지 선택을 바꾸실 기회를 드리죠.”

 

 로제는 장미처럼 타오르는 불꽃을 만들었고, 키웠으며, 태웠다. 끝내 대리석 바닥에 던져진 불꽃이 굉음을 내며 타오르다 사그라들었다. 용납될 수가 없는 외교적 결례가 벌어지고, 협상은 파국을 맞았다. 그러나 영혼돌에서 나오는 힘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시기에, 로제는 어떤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을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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