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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화이트 뱀파이어, 다크 뱀파이어
작가 : 스누피브라운
작품등록일 : 2022.1.9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화이트 뱀파이어, 그리고 이들을 배신자 취급하는 다크 뱀파이어...
극소수의 화이트 뱀파이어들이 인간 세계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과 달리,
대다수 다크 뱀파이어들은 어둠 속에서 쥐처럼 인간의 피를 훔치며 인간들로 포획당하거나 사살당하며 생존한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알 수 없는 개체로 진화되고...인류는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2화 - 습격
작성일 : 22-01-12 17:28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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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습격

 

  1.

 “얼굴은 여전히 창백한 것이 보기 좋네. 그래야 매력 뿜는 뱀파이어지 하하하.”

  나도일 반장은 보자마자 강천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한 소리했다. 800살 먹은 강천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불쾌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반장님. 대한민국에는 장유유서라는 아주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래, 말 잘했어 장유유서. 저기 창가 좀 봐봐. 우리 둘 얼굴이 어떻게 비치나.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 볼까? 그쪽은 뺀질이 초보사원, 나는 그 뺀질이 때문에 속 앓고 지내는 만년 과장님. 딱 그 필이지?”

  45살인 나 반장은 늘 이런 식으로 이죽거리며 800백 년간 25살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강천을 놀렸다. 나이 서열은 어디까지나 얼굴 액면가로 따지는 것이 자신의 집안 전통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친히 왕림해주신 건지요, 우리 포도청 관리님.”

  “어제 새벽에 변사체가 발견됐어. 젊은 여자야. 근데 말이지. 이 목에 구멍 두 개가 아주 시원하게 뚫려있더라고.”

  농담조로 나반장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강천은 팔짱을 끼고

 나반장과 정면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이 관록에 찬 베테랑 형사가 설마 대낮부터 사람을 놀리러 온 게 아니라면 수십 년 만에 뱀파이어에 의해 죽은 사람이 발견됐다는 소리이다.

  “이상하네요. 적어도 이 땅에서는 육이오 동란을 기점으로 다크 뱀파이어들은 모두 몰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있는 잔당들이 배를 타고 밀입국하기라도 했을까요?”

  나반장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장담했다. 다른 건 몰라도 대한민국의 다크 뱀파이어 검역 시스템은 완벽하다고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자기가 그 시스템을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자부심 어린 어조였다.

  “세상에 백 프로 완벽한 검역 체계라는 게 있나요?”

  “허허, 우리 유 도령께서는 능선 너머 대충 그어놓은 조선 시대 국경선을 생각하시나 본데. 일단 남한 북쪽은 뱀파이어 침투가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놈들의 밤눈이 아무리 적외선 탐지기 뺨친다 해도 남북 양쪽의 초병들 감시를 피할 순 없을 테고. 빠른 임진강 물살은 쥐약이잖아, 우리 흡혈 도령.”

  나 반장 말이 맞았다. 뱀파이어들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육지에서일 뿐. 빠른 물살에 휩싸이는 순간 다들 푹 젖은 미역처럼 흐느적거리는 신세가 된다.

  “이상한 일이네요.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수십 년 간 신분을 숨긴 다크 뱀파이어가 있어야 하겠죠?”

  나반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와이 낫?

  그렇지만 강천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자들이 숨어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보세요. 대한민국에서는 전쟁 이후 민간인이 사제 총기로 난사 사건을 벌인 적이 없지? 그렇다고 숨겨진 불법 총기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총이야 안 쓰고 장롱 깊이 숨겨놓는다고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지만 뱀파이어들이 피를 안 마시면 굶어죽어요. 그놈들이 생존해 있다면 희생자들이 발견되어야 정상 아닙니까?”

  나반장이 담배를 꺼내서 한대 물었다. 둘이 앉아 있는 곳은 흡연석이었다. 나반장이 꼴초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강천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제 보니 우리 흡혈 도령께서는 책으로만 통찰력을 얻으셨나 보네. 우리 강력반에도 그런 인간들이 꼭 한 둘씩은 매번 발령오지. 오로지 도서관에서 쌓은 지식으로만 수사하려는 친구들 말이야.”

  나반장이 강천 앞에서 담배를 입에 꼬나 물때는 항상 저런 식으로 비꼴 때였다. 일반인들이라면 무척 기분이 상해야 마땅할 터. 허나 강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도일의 저런 태도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해 스스로를 적당히 속이며 허세 부리는 것임을 강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적당히 상대를 눌러줄 필요는 있었다. 물론 정중하고 우아한 매너는 절대적으로 유지하면서다.

 “아주 극소수의 다크 뱀파이어가 암흑 속 어디선가 생존해 있다면 반장님 가정이 백 프로 옳겠죠. 대신 적십자사 헌혈 창고가 무장 강도단에 여러 번 털렸겠죠.”

  나도일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당황했던 거다. 설마 저런 가정까지 할 줄이야. 헌혈된 혈액 도난사건이 최근 일 년 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자신의 입으로 먼저 알리고 싶었는데.

  더이상 비꼴 말을 찾지 못한 나반장이 할 말을 잃고 담배 연기만 뻐끔댔다. 니코틴 기체를 삼키는 대신 혀끝으로 뱉어내는 저런 짓은 진심으로 민망할 때 나오는 나도일의 버릇이다. 참으로 오랜 시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온 덕분에 강천은 몇 가지 사소한 행동이나 습관만으로도 의도나 감정을 읽어내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뼈대 있는 뱀파이어 사냥꾼 조상들을 둔 덕분에 나도일 역시 뱀파이어들, 특히 인간 친화적인 화이트 뱀파이어들의 특징을 어느 정도는 꿰고 있다. 그들이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 원래 인간이었을 때 능력치가 수십에서 수백배까지 올라간다는 것. 거기다 영생의 시간을 살기에 얻게 된 터무니없이 방대한 지식과 경험들은 말해 뭐하나 싶을 정도다.

  천생 인간 본위 적 사고방식을 갖고 태어난 나반장은 그래서 화이트 뱀파이어들이 몹시 못마땅했다.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 단지 뱀파이어에게 물린 뒤 1프로의 드문 확률로 화이트가 된 덕분에 저런 오만가지 특권을 다 누리며 살고 있지 않는가. 이래서 삶이란 운칠기삼이라 했던가.

  나도일의 그런 질투심 짙게 밴 콤플렉스를 알고 있기에 유강천은 그의 무례한 행동이나 말투에 대해서도 언제나 관대했다. 강천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리는 이 특별한 영생의 삶은 오로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언제나 인간들을 대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히 뱀파이어의 존재를 아는,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뱀파이어들을 죽이는 일에 특화된 피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취해해 한다는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겨두고 사는 강천이었다.

  그럼에도 강천은 나도일의 심술 맞은 의도를 은근 슬쩍 제압할 줄 아는 재주도 탁월했다. 번번히 그렇게 당하면서도 나반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저 자식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벼르기를 어언 십년 째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중에 창밖으로 리무진 한 대가 주차선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차체는 물론이고 창문마저 깔 맞춤한 듯 동일한 검정색이었다. 연예인이 찾아온 거다.

  아니나 다를까 교복 입은 두 여학생이 리무진 앞으로 쪼로록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쫓아다녔으면 차번호 판만 봐도 누가 탔는지 아는 건지 참으로 신기하다고 강천은 생각했다.

  그 순간 강천은 머릿속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2.

  처음에는 블랙아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새빨간 풍경이 펼쳐졌다. 거기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름 따위는 모른다. 그냥 다크 뱀파이어 중 한 명이었다. 얼굴은 강천만큼이나 잘 생겼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 이목을 끌 만큼 특별한 기운을 타고난 자였다. 그런 자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강천은 머릿속에서 일련의 기억들이 빠르게 재생되는 동영상처럼 순식간에 스치다 사라졌다.

  “안 돼!!!”

  강천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반장도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킨 뒤 밖으로 나갔다. 다만 강천과 달리 신중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였다. 화이트 뱀파이어 유강천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자는 태도였다.

  강천이 코앞에 주차한 검정 리무진에 도착하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점에 나도일 반장은 주목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런 돌출된 능력을 보여주는 짓을 뱀파이어가 버젓이 했다. 즉 아주 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베테랑 형사인 나도일의 코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강천이 리무진 앞에 도착했을 때 여고생 한 명은 운전석에서 내린 매니저와 옥신각신 중이었다. 그 틈을 타고 또 다른 여고생이 뒷좌석 문을 슬며시 열고 안으로 올라탔다. 그 뒤를 따라서 올라타려고 할 때 매니저가 잽싸게 그의 몸을 막았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힘이 출중하다 해도 민간인을 상대로 함부로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동네방네 화이트 뱀파이어 존재를 알리는 꼴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 그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퍼트린다면 전 세계 수억에 달하는 질투 어린 안티들을 양산해 낼 것이다.

  그래서 일단 숨을 고른 뒤 유강천은 조용히 매니저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여고생 한 명이 차에 올라탔어요.”

  역시나 매니저는 크게 당황해서 몸을 돌리고 차에 올라타려 했다. 그의 허리를 움켜잡고 또 다른 여고생도 함께 올라타려 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천이 두 팔을 벌려 각각 두 사람의 목을 뒤에서 붙잡고 지그시 눌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목을 통해 올라가야 할 산소가 짧은 시간 동안 차단되며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의 몸을 옆으로 슬며시 밀치고 강천이 차에 올라탄 뒤 안에서 문을 잠그었다.

  운전석과는 차단된 뒷좌석에 아이돌 출신 스타 정민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정상이 아니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강천 보다 수 십 배는 더 그래 보였다. 그리고 헤 벌린 입 양 가장자리로 드러난 송곳니에서 빨간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의 무릎에는 목이 뚫린 채 빈사상태가 된 여고생이 옆으로 누워있었다.

  “너...언제 뱀파이어가 된 거냐?”

  “일주일 전에...”

  “누가 너를 물었어?”

  “누구냐 하면...헤헤...알려주기 싫은 걸?”

  정민이 갑자기 품에서 금장이 입혀진 표창을 뽑아서 강천의 가슴팍을 겨냥해 날렸다. 아주 빠르고 정확한 솜씨였다. 만약 강천이 정민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면 그대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떠올랐다.

  온 세상이 새빨간 구름으로 덮인 암흑의 도심 한 가운데. 거리 한 가운데에서 화이트 뱀파이어와 마주친 저 자가 저 날카로운 비수를 품 어디서 꺼내 어떤 식으로 날리는지 강천은 생생히 기억해 냈다.

  표창보다 더 빠르게 몸을 숙이고 앞으로 돌진한 강천이 정민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 순간 인사불성이 된 여고생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정민이 강천의 목을 뒤에서 잡아서 힘을 주었다. 하지만 숨을 끊어 놓기에는 강천의 목 근육이 지나칠 정도로 딱딱하게 변모했다.

  상대는 강천의 싸움 방식을 전혀 몰랐다. 반대로 강천은 정민이 어떤 식으로 공격하고 어떤 약점을 갖고 있는 지 죄다 기억해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겪어본 적도 없는 일을 기억하다니.

  강천이 손가락을 펴서 그의 하복부를 향해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인간이었을 때 수술 후 봉합한 자리가 모양 그대로 터져버렸다. 정민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바닥에 굴렀다. 강천이 피가 터져 나오는 상처 부위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막아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물었다.

  “네 목을 문 뱀파이어가 누구야?”

  “그게...일주일 전 역삼역 부근 클럽에 갔을 때...”

  갑자기 정민의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가 박혔다.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숨통이 끊겼다. 강천이 뒤돌아보니 여고생이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죽지 않고 뱀파이어가 된 것이다. 다크 뱀파이어가.

  강천이 말을 붙여보기도 전에 여고생은 차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다크들은 햇빛을 받자마자 새빨갛게 피부가 부어오르다가 타버린다. 그 여고생은 아무 것도 몰랐고 그래서 밖으로 무작정 뛰어나간 거다.

  강천은 차 밖으로 돌진했다. 여고생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리무진과 그 옆의 세단 한 대가 전부였다. 햇빛을 피할 곳은 오로지 차바퀴 사이뿐이었다.

  강천은 자세를 낮추고 리무진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 여고생이 차 바닥에 바짝 누워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한 팔로 가린 채. 그 팔에는 시뻘건 화상자국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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