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민은 자신의 발을 부여잡으며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인상을 구기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내 발 밟았냐?”
“응!”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자신 있게 대답했고 내 대답에 로민은 표정을 구기며 내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더니 흔적이 남은 신발을 가리켰다.
“너 사과 안 해?”
“내가 왜?”
짐짓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는 그를 바라보았고 로민은 내 태도에 더 열이 받는지 나에게 경고했다.
“네가 갑자기 와서 내 발 밟았잖아!”
“그게 왜?”
“하... 너 완전 돌았지? 지금 당장 사과 안 하면 내가 너 가만둘 것 같아?”
“아... 그러니까 지금 이런 사소한 거로 화내는 거야?”
“뭐?”
“나는 네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을 밟길래 그래도 되나 싶어서 나도 똑같이 한 건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
“아니? 나는 그게 인사 차원인가 했지! 아! 혹시 발이 아니라 등을 밟아야 되는 거야? 아니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야 하나? ”
내 말에 로민은 미친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로민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다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로민을 보며 떨고 있는 루디아를 바라보았다.
아까 로민에게 잡혔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속 로민을 보며 덜덜 떨고 있던 루디아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표정한 얼굴을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으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괜찮아? 많이 아팠지... 머리 어떡해.”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루디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내가 눈물을 보이자 당황해하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레이아... 언니는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하... 야! 다친 건 나라고!!!”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로민은 루디아의 말에 어이없어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루디아와 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그 공간에 둘만 있는 것처럼 서로 걱정해주기 바빴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로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걸음을 옮겨 내 어깨를 잡은 후 자신을 보게 했다.
그리고 손에 힘을 주어 내 어깨를 세게 잡았다.
로민에게 잡힌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저런 놈은 다른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놈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 아픈 신음을 내면 안됐다.
“야. 너 내가 우스워?”
“글쎄?”
“뭐?”
“난 오빠를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는데... 네가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자격지심 아니야?
“너....”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로민의 두 손은 부들부들 떨었고 나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옆에 있던 루디아는 로민이 아까보다 더 내 어깨를 힘주어 잡고 있는 모습에 놀라 울먹이며 그의 손을 내 어깨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그만해... 로민.”
하지만 루디아의 부탁에도 로민은 그 손을 치우지 않았고 루디아는 처음으로 로민에게 소리쳤다.
“그 손 치우라고!”
“너... 지금 나한테....”
루디아는 그전과는 볼 수 없는 눈으로 로민을 노려보았고 로민은 그런 루디아를 보며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루디아의 긴 머리카락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이 가려져 볼 수 없었지만, 처음으로 루디아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잠깐만... 내가 알던 여주 맞아?’
순간 나는 내가 소설 속 여주 성격을 착각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갑자기 사람의 영혼이 바뀐 건 아닌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아니면...
‘레이아 한에서만 그런 걸지도.’
“야! 그 손 안 치워?”
“싫어... 네가 먼저 레이아한테서 손 떼.”
“뭐?”
로민은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루디아를 바라보았고 루디아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로민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에 로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루디아의 손을 쳐냈다.
“와... 어이없네. 야! 너희 진짜 뭐 잘못 처먹기라도 한 거야?”
“제발... 레이아 아프게 하지마.”
“.....”
“네 동생이잖아.”
루디아는 울먹거리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고 로민은 코웃음을 쳤다.
“내 동생? 동생이 동생 같아야지. 저런 멍청한 애를?”
나는 로민 입에서 흘러나오는 멍청한 애라는 단어에 눈살을 저절로 찌푸렸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자식이....’
로민은 계속해서 빈정거리더니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는 루디아를 노려보며 속삭였다.
“그럼 네가 맞던가.”
그 말과 동시에 로민은 손을 높이 올렸고 난 그 모습을 보며 바로 루디아 앞에 섰고 그녀 앞에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언니, 때리지마!”
“레이아...”
“안 비켜?”
“싫어!”
“와... 너 완전 돌았구나.”
루디아는 갑자기 내가 앞에 서자 당황해하며 혹시 내가 로민에게 맞을까 봐 안절부절못했고 로민은 날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야. 난 날 거슬리게 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거든? 그리고 그런 사람한테는 어떻게 할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로민이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귀를 쫑긋 세워 주변 소리에 신경 썼고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난 속으로 미소를 짓고는 겉으로는 로민에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뭔데?”
“하... 뭐냐고? 지금부터 보여주면 되겠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로민은 한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때리려고 했고 그때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 나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로민은 순간 흠칫하며 뭐냐고 하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나는 로민에게 세상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어주었다.
“내 얼굴에 흠집 하나라도 나면 감당 할 수 있겠어? 이번엔 내가 아니라 네가 눈밖에 날텐테?”
“너...”
로민은 내가 직접 그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이 당황해했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 로민. 그렇게 더 화를 내 ’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로민을 보았고 내 예상에 맞게 로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다가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눈을 희번득 뜨며 나에게 말했다.
“네가 이런다고 내가 못 때릴 것 같아?”
“......”
“내가 다르게 얘기하면 끝날 일이야.”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로민은 다시 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나는 눈 한번 끔뻑이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그때였다.
“로민!”
한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 것은.
순간적으로 로민은 시간이 멈춘 듯 들어 올렸던 손을 허공에 멈추었고 고개를 조심스레 돌려 상대방을 바라보더니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헬리나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로민을 보고 있었고 그녀를 뒤따라오던 엘은 나를 향해 몰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엘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고 남몰래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로민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나 때리지 말라고.”
나의 목소리에 로민은 고개를 돌려 흔들리는 눈으로 날 보았고 나는 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분명 내가 기회를 줬는데... 눈치도 못채고.”
“......”
“멍청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로. 민.”
“너....”
“로민.”
헬리나는 분노 섞인 어조로 로민을 불렀고 로민은 놀라 그녀에게 횡설수설 말하기 시작했다.
“어... 어머니! 제 말 좀 들어봐요. 쟤가 먼저 절 때렸다고요!”
“뭐? 그게 정말이니? 레이아.”
로민의 말에 헬리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나는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를 직시한 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글쎄요? 전 때린 적이 없어요.”
“뭐? 너 나 때렸잖아!”
“때렸다니... 오빠. 내가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 있겠어?”
나는 짐짓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로민을 보았고 로민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크게 소리치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네가 다가와서 내 발 밟았잖아!!! 야! 네가 말해봐!”
로민은 씩씩거리며 갑자기 고용인을 가리켰고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았다.
“오빠. 오빠가 쟤를 때렸는데 과연 사실대로 말할까? 오빠 눈치 보고 거짓을 고하면 어떡해?”
“야!”
“그만.”
헬리나는 우리 둘의 싸움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애들처럼 굴 거니? 그만 못해!”
헬리나의 언성에 로민은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날 보며 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니?”
“보신 거와 같이 오빠가 제 얼굴을 때리려고 했어요. 전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말이죠. 오히려 제가 오빠를 때려야 했는데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니?”
“오늘 오빠가 제 심기를 건드렸어요.”
“로민이?”
“네. 제 것을 건드렸더라고요.”
“네 것을?”
“네. 제가 얼마 전에 사 온 노예 아시죠? 그걸 건드렸더라고요.”
“노예라면...”
헬리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기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기억나는구나.”
“오빠는 제 허락 없이 제 것을 건드렸고 전 제 것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오빠를 찾아갔는데... 글쎄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제 얼굴을 때리려고 하더라고요.”
“...”
"하... 자신의 감정하나 숨기지 못하고 바로 손을 올린 다라... 그건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방식이 아니죠.”
“... ”
“안 그런가요?”
“그렇지.”
“그리고 제가 사온 노예. 아버지께서 제 생일 때 저보고 사고 싶은 거 사라고 주신 돈으로 사 온 아이예요. 그럼 아버지 선물이나 마찬가지죠. 그걸 로민이 건드렸으니... 어멋! 감히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걸 건드린 거네요?”
나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입으로 가렸고 로민은 사색이 된 표정을 지으며 헬리나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로민이 저렇게 덜덜 떠는 이유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드보엔 아르첸스.
아르첸스 공작의 말은 법도이자, 그의 말을 어길 시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헬리나는 로민을 쳐다보았고 그녀의 싸늘한 눈동자에 그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로민.”
“네...”
“당장 내 방으로 따라와.”
"어....어머니.”
“그리고...”
헬리나는 로민에게 시선을 거두고 루디아를 쳐다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넌 뭐 하고 있었던 거니?”
“저... 저는.”
헬리나의 시선이 루디아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당황해하며 고개를 숙였고 난 그녀의 앞을 막으며 헬리나에게 말했다.
“로민이 절 때리려고 했던 거 언니가 막아줬어요. 안 그랬으면 지금쯤 제 얼굴에 멍이 들었겠죠.”
헬리나는 내 말에 눈썹을 치켜 올렸고 아까 엘이 자신에게 전했던 말을 상기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너희들은 방으로 돌아...”
“어머니! 왜 쟤는 벌 안 주시는 거예요! 저 밟았잖아요! 그리고 쟤는 저한테...”
“로민!”
“.....”
"누가 어른이 말하는데 끼어들라고 했어? 아주 짧은 사이에 기본예절 교육을 까먹은 거니? 지금 내게 계속 실망을 안겨주는구나.”
헬리나는 분노 섞인 어조로 로민을 다그쳤고 로민은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그런 로민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옮겼고 그는 축 늘어진 채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