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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초보 퇴마사 3
작성일 : 22-01-10 17:55     조회 : 175     추천 : 0     분량 : 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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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당연히 당혹스럽고 떨리겠지.

 

 이럴 땐 빠른 설명이 필요한 법이다. 욕실에서 반쯤 기절한 상태였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침대 위다.

 

 그것도 몸엔 기억에 없는 옷이 걸쳐져 있고.

 

 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상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강인한 인상을 풀풀 풍기는 얼굴, 강렬한 적갈색 눈동자가 에오에게 향했다.

 

 조금전 걱정 가득했던 모습은 어느새 싹 지운 채로, 최대한 담백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정신이 들어?”

 

 “히끅!”

 

 웬 딸꾹질.

 

 에오는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였는데, 어깨 위로 축축한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리고 있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는 손가락과 얼굴에 박힌 눈동자 속에선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너 .. 이.. 나... ... 도둑... 변.. 히꾹.”

 

 “뭐라고?”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분명 조금 전에 봤을 땐 혈색이 되돌아와 있었는데.

 

 어느새 핏기가 싹 가셔 버린 그녀의 모습에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됐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 파트너다. 게다가 온통 쓰레기, 무너지고 부서진 집들과 제멋대로 떠다니는 시커먼 영혼들 외에 사람이라곤 보이질 않았다.

 

 무려 1000년동안 이곳에서 썩어야 할 판국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곁에 있는 게 나았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녀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떨리고 있었다.

 

 “너, 너. 나한테 무슨 ... 짓을... 내가 왜 여깄.. 왜... 어?”

 

 거의 실신할 만큼 숨까지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를 쳐다보는 저 눈빛. 불신의 눈빛이 확실했다.

 

 보석처럼 보이던 에오의 눈동자는 뾰족한 화살이 되어 단단한 내 가슴팍에 팍, 꽂혔다.

 

 “옷은 왜 벗고 있어? 설마 진짜로. 설마... 히끅.”

 

 “오해 하지마. 아무 일도 없었어.”

 

 “오해는 무슨?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나쁜...”

 

 에오의 가슴이 급격히 오르내렸고 숨이 가쁜지 자꾸만 헉헉, 거렸다.

 

 진짜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

 

 ‘기절하면 인공호흡이 필수지.’

 

 상황은 심각했지만. 내 심장은 주책없이 쿵쿵 뛰고 있었다.

 

 젠장. 아무래도 조만간 정말로 그녀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확인해 보면 되잖아.”

 

 “뭘 확인하란 거야!”

 

 빽 소리를 내지른 그녀가 축축이 젖은 베개를 집어 던졌다.

 

 화를 내니까 더 예뻐 보인단 말이지.

 

 속마음을 감추며 팔을 뻗어 능숙한 솜씨로 날아오는 베개를 잡았다.

 

 “나 그렇게 이상한 놈 아니거든요?”

 

 손에 들린 베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 서둘러 상의를 껴입었다.

 

 “마음 진정되면 나와.”

 

 그 말을 끝으로 방문을 나섰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이번엔 베개가 아니라 돌이라도 날아와 그대로 머리통을 찍어 버릴 것만 같은 서늘한 느낌.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긴 후, 길게 숨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면, 그녀의 말대로 진짜 세상 치졸한 변태가 될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자고로 사람은 행동이 빨라야 하는 법이다. 괜히 질질 시간 끌면서 뭉그적거렸다간 될 일도 안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쯧. 그건 그렇고.

 

 에오는 귀접에 대해선 아무 기억도 없는 걸까? 표정으로 봐선 그것보단 웃통을 벗고 있는 내게 더 관심을 주는 것 같다.

 

 훗. 뭐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정도이긴 하다.

 

 흡혈귀였을 땐 눈빛 하나만으로 적의 숨통을 끊어 놓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의 힘과 마법이 사라져 버린 게 무척 아쉽다.

 

 밖은 이미 어두웠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심코 밖을 쳐다보다 주방으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조금 전 그놈.

 

 유난히 짙어 보이던 영혼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정중앙에 박혀 있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에오에게 뜨거운 차를 가져다주려던 찰나였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너 잘 만났다!

 

 적갈색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어두운 하늘, 세차게 퍼붓는 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분노의 사신이 된 나는 유리문을 확 열어젖히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탁!

 

 질척한 바닥에 발이 푹 박혔고, 쏟아지는 비에 금세 몸이 젖어 들었다.

 

 나름 신경 쓴 건데 저 망할 변태 영혼새끼 때문에 이미지 다 구기게 생겼다.

 

 더더욱 가만 놔둘 수 없는 건방진 녀석.

 

 게다가 내 동료가 된 에오를 건드리고 말았으니, 좋게 봐줘도 악마 새끼가 드글 거리는 지옥행이다.

 

 -쿠르르릉!

 

 천둥이 울부짖었다. 내 생각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늘도 날 돕고 있음이다.

 

 -스스슥!

 

 김빠지는 소리.

 

 뭐라는 거야 지금! 저걸 그냥 확!

 

 건방지게도 변태 영혼 새끼는 도망칠 기색 따윈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이 더더욱 나를 자극했다.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겨우 영혼 따위가 뻔뻔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니!

 

 아무리 죽은 영혼이라지만 이런 놈은 소멸해야 마땅하다.

 

 인간의 몸으로 지구에 내려온 건 지금이 처음이라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쓰레기 짓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흡혈귀 시절 겪었던 것과 비슷하리라 대충 결론지었다.

 

 명예도 없는 녀석은 그대로 저승, 아니 소멸이 정답이다.

 

 “넌 오늘 죽는다.”

 

 일단 경고 멘트를 날렸다.

 

 벌린 입안으로 빗물이 새어들었다. 차가운 쇠막대 맛이 입속에 퍼졌다.

 

 -푹!

 

 굵은 빗줄기가 내 눈을 푹 찔렀다.

 

 손으로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스윽, 닦아냈다.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스르륵.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한 건지 놈이 뒤로 조금 물러났다.

 

 뒤돌아서 잽싸게 튀어도 부족할 판국에.

 

 놈이 살짝 간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씩.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에오를 만나기 직전 이미 몇 차례 주위에 널려있던 부유령들을 처리한 적이 있다는 걸 놈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다른 구역에 있다 왔냐, 너?”

 

 영혼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지만. 내 머릿속으론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파고든다고 해야 하나.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헷갈리긴 했지만, 어쨌든 난 놈의 감정과 생각과 내게 전달하려는 의지 같은 걸 읽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엔 이렇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내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런 능력은 미리 알려 줬어야지. 이 빙신, 하... 내가 참자, 그냥.”

 

 다윗의 별을 의식해 얼른 입을 꾹 다물었다.

 

 눈동자가 다시 변태 영혼에게로 향했다.

 

 -저 여자는 내 거야. 그러니까 꺼져. 그리고 까불면 혼난다? 난 이 구역 짱이야. 도전 하지마. 건방진 인간아.

 

 -헐

 

 떨어지는 빗물 사이로 뿌옇게 흐려 보이던 부유령의 과거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물 덕에 얼룩진 화면처럼 시야가 선명하지가 않았고, 쉴 새 없이 빗물이 눈 안으로 흘러 들어가서 연신 눈을 깜박여야만 했다.

 

 “잘 안 보이잖아.”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번개 같은 속도로 놈이 살아온 인생이 내 머릿속을 관통했다.

 

 이럴 거면 왜 뿌연 화면 같은 것을 보여주고 난리인지.

 

 구닥다리 시스템은 얼른 고치라고 중얼거리고 나서 머릿속 영상에 집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중하고 있는 척, 진지한 척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난 놈이 어떻게 살아왔건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소멸행인데, 그걸 알아봤자 뭘 하게.

 

 이제 막 퇴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참이었는데, 안 봐도 내 미래가 훤했다.

 

 고난과 고통스런 날들의 연속이리라.

 

 쓰나미급 개빡침을 뒤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 온 이상, 그리고 미녀 동료를 얻은 이상 임전무퇴 정신으로 밀고 나가련다.

 

 -쩝.

 

 육신을 가지고 있던 놈의 생을 완전히 알아버리자, 더더욱 살기가 끓어올랐다.

 

 놈의 생은 엉망진창이었다. 완전 질적으로 나쁜 새끼.

 

 학대, 추행, 도둑질, 강도질까지. 그렇게 계속 악행을 저지르며 교도소를 들락거리던 중 몸 곳곳에 암이 퍼져 생을 끝마친 녀석.

 

 시커먼 옷을 둘러 입은 저승사자라고 하는 양반이 휘두른 철퇴에 얻어맞기 싫어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지금에 이른 놈이다.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 그렇게 살고 싶냐?”

 

 어차피 내겐 자비나 사랑 따윈 없었다. 게다가 악행을 저지르다 죽은 놈이었으니, 더더욱 놈을 소멸해야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했다.

 

 “내 동료를 건드리기까지 했지. 이 망할 놈!”

 

 영혼들을 보는 눈이나 퇴마술, 귀접현상 같은 건 원래 내 안에 없던 지식이었지만, 좀 전부터 저절로 스르륵, 마법처럼 눈앞이 트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내게 부여할 능력이 있으면 좀 퍼뜩퍼뜩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염병, 하늘에 있는 놈들이나 땅에서 기는 것들이나 게으르고 모자란 놈 투성이다.

 

 “넌 소멸 행이야. 질문 있어? 없음 말고.”

 

 한마디 더 지껄여 준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빗물로 범벅이 된 입술이 움직였다.

 

 “우주천신마제압소멸부!”

 

 절로 떠오르는 말들을 내뱉자 허공에 누런 부적이 드러났다.

 

 이리저리 구불거리는 붉은 글자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놈을 향해 날아갔다.

 

 -쇄애액! 퍽!

 

 변태 부유령의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꾸아악!

 

 갑자기 괴물 소리를?

 

 지지리 궁상, 상황 파악 느려터진 놈은 부적이 채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스르륵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개폼잡더니 벌써 갔어?”

 

 불타오르던 노란 부적도 금세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쏴아!

 

 -쿠르르릉!

 

 너무 어이없고 싱겁게 끝나버린 탓에 잠시 멍하니 앞쪽을 보고 서 있었다.

 

 잠들지 않은 인간을 강제로 덮칠 정도면 다른 놈들과 달리, 처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진짜 갔네..”

 

 세차게 퍼붓는 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형편없는 인간 육체이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됐다.

 

 나 이러다 저체온증 걸리는 거 아니야?

 

 재수 없게 시리 첫날부터 꼴까닥 하고 숨이라도 끊어지면.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겨운 건 참아도 자존심 구겨지는 건 절대 못 참는 나다.

 

 그렇게 별 볼일을 끝낸 난.

 

 내게 달려드는 또 다른 부유령들이 없나 살피며 잠시 기다렸다.

 

 여전히 퍼붓는 비과 천둥소리.

 

 그게 다였다.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옷이 몽땅 빗물에 젖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벅 소리를 내는 바짓단도 무거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염병.”

 

 이런 개고생을 하루이틀도 아니고 1000년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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