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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29. 지휘자
작성일 : 22-01-05 11:23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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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산의 골짜기.

 이른 바, 변경.

 오두막 안에서 종류가 다른 산짐승 몇 마리로 만든 낡은 모피로 온몸을 덮은 이름갈이 작고 네모난 창밖을 보았다. 뜨거운 주전자를 든 그의 손등에 피가 말라 붙었다. 며칠 만에 재차 변경에 침입한 적들이 흘린 피다.

 이름갈이 더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힘을 쏟아 부운 사이, 변경 동쪽의 이방인 부족이 세력을 키웠다. 그들은 변경의 눈과 얼음을 노렸다. 이전에 지휘자가 붙잡은 포로가 이유를 실토했다.

 눈과 얼음을 귀하게 여기는 오랑캐에게 팔려고.

 지휘자는 부하에게 포로의 목을 베라 지시했다. 골짜기 아래로 포로의 머리가 진홍색 가느라단 길을 남기며 떨어졌다. 깊고 어두운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신을 내려다본 이름갈은 불길한 예감을 맞았다. 이제까지 마주한 적 없는 강력한 적이 손쉽게 협곡을 올라오지 않을까.

 그는 고요하게 빛나는 눈밭을 응시했다. 어릴 때 협곡을 지나던 예언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어머니에게 혼났던 일을 떠올렸다.

 

 *

 

 이 무렵 어느 하얀 밤, 얇은 비단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거센 눈보라도 붉은 드레스의 광채를 가리지 못 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과묵한 예언자.

 예언자를 박대하다가는 어떤 화를 입을지 몰랐다. 사람들은 그녀가 떠날 때까지 인상을 찌푸리며 기다려야했다. 젊은 여인은 세차게 눈발 날리는 협곡 마을을 배회하며 같은 구절을 되풀이하여 읊었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귀를 막았음에도 구절은 똑똑히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너의 운명은 강하거나 잘못됐다.’

 예언자는 그대로 협곡 너머로 떠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곳을 지나지 않았다.

 이름갈의 어머니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누구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대신 할 수 있는 한 자주, 자신이 아들에게 부여한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제 아무도, 어머니가 지어준 본명으로 이 아이를 부를 일 없을 테니.

 여러 밤을 지내면서 어린 지휘자는 변경을 대표하는 지휘자, 이름갈로 성장했다. 그는 그저 무리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을 뿐이다. 지금의 이름갈이 지휘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을과 무리의 이름을 물려받을만한 재목이라 여겨질 특징이 없었으니. 가령 특출 난 전사나 현명한 지략가의 기질, 그도 아니면 혈통 등등.

 그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지휘자 이름갈로 부르라 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남자는 이름 없는 철부지였으며, 지휘자에 걸맞은 명칭을 내걸어준 이들은 철부지가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이름갈은 무리의 기세를 드높이고 냉혹한 협곡에서 눈을 부릅뜨고 수도라는 먹이를 노려보며 기회를 살폈다. 마침내 그들은 승리했다. 피해 입은 약자들은 약탈자라며 이름갈을 원망했으나 현명한 관리인들의 교화책이 이내 효과를 거두었다. 하다못해 원래 그를 따르던 무리보다 훨씬 더 강성한 믿음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진짜 동족인 이냐시오는 그의 지휘자에게 진짜배기인 척 하는 변방인을 경계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수도를 정복한 그는 동족에게 분명히 맹세했다.

 “너희의 지휘자는 승리하는 일은 자신 있으나 전리품을 관리하는 일은 능력 밖이다. 게다가 협곡에는 항상 새로운 적들이 출몰한다. 그러므로 나 이름갈은 잠시 여기 머물다가 다시 변경으로 돌아간다. 너희가 우리 터전을 보전하라. 나는 너희를 위해 싸울지니.”

 그는 군대 일부를 데리고 협곡으로 돌아갔고 오래토록 수도에 들르지 않았다. 메시지만 가끔 보냈다. 변경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남모를 그리움에 젖을 때 외에는.

 ‘그런 맹서 따위 하지 말 것을. 사막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줄 알았더라면.’

 수도와 사막 일대를 정복하고 일 년이 안 되어 변경에서 이주한 무리들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일이 있다. 피부가 건조해지고 메마른 살갗에 서리가 피었다. 그 부위는 동상에 걸린 마냥 뜨거웠다. 긁어내면 굵은 소금 뿌리듯 떨어졌는데 살점이 떼지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서리 떨어진 자리에 이내 새로운 얼음 파편이 자랐다. 몸이 조열한 땅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개척지에 뿌리내리려는 몸부림인지.

 그 때 누주 출신의 한 젊은 여인이 우려낸 차 한 잔을 마시니 서리가 녹았다. 이름갈은 차를 우린 여인 에르마를 수도에 정착시켰다. 그리고 공언하기를,

 “누주에서 노을차를 계속 재배하여 적당한 값에 파는 한 그대의 고향은 안전하리라.”

 라고 하였으니 이는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이름갈과 에르마에 관하여 함부로 기록하지 못한 여운도 있었으니.

 

 *

 

 이름갈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어 주전자를 들어 노을빛 차를 찻잔에 채웠다. 그러자 한 여인의 얼굴이 수면에 비쳤다. 지휘자는 놀랐는데, 현상 때문이 아니라 반가움 때문이었다. 사랑하지만 위험한 변경에는 차마 같이 오자 할 수 없어 수도에 머물라 당부한 여인.

 “에르마. 마침 그대를 그리워하던 참이에요.”

 둘은 찻잔의 수면으로 얼굴을 보았다. 다른 이의 거울을 마주하듯이. 에르마가 겉치레하지 않고 요점을 말했다.

 “러비가 로세트에 왔어요.”

 “로비스가? 무슨 연고로?”

 “날 보러 왔다네요. 그런데 그 애가 오면서 당신 꿈을 꾼 모양이에요. 이제는 아비를 찾네요.”

 “…… 겨울이 지나봐야 알겠어요.”

 “지휘자여, 하나 여쭈어도 좋을까요?”

 “물론이지요. 얼마 만에 대화인지.”

 “지휘자께서는 언제 처음 타인의 목숨을 앗아갔나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열 살 되기 전이었나 열 살 지나서였나. 그건 어찌 묻나요?”

 에르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숨을 고르고 두 번째 용건을 밝혔다.

 “제 소식통이 전하길 누주의 원로 케루비니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흘러가는 소식일 뿐입니다.”

 지휘자는 가만히 찻잔에 비친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수면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에르마가 다시 말했다.

 “부탁이 있어요.”

 “들어 줄게요.”

 “저는 이날 이때까지 지휘자 이름갈에게 요청을 드려본 일 없습니다. 제가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노력했지요. 지휘자께서도 저 에르마를 위해 수고하신 적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이지요. 괜한 수고를 하여 누를 끼친 적 없습니다. 그대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으니. 부탁이 무엇인가요? 소중하게 듣겠습니다.”

 “누주에서 나고 자란 대장장이 마르카를 만나주세요. 이건 제 능력 밖이라 도리어 이쪽이 누를 끼치네요.”

 사연을 들은 지휘자 이름갈은 그러잖아도 수도에서 에뮤를 섬멸하는 작전이 진행 중이라 보고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내막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청년이 만든 무기는 위력이 대단한가요?”

 “직접 목격하진 못했으나 도적떼 수십 명은 한 순간에 몰살시켰답니다. 마르카만이 그걸 만들고 다룰 수 있지요.”

 “그렇군요.”

 저편에서 찻잔을 내려다보던 에르마는 이름갈의 눈빛이 순간 번뜩이는 걸 잡아챘다.

 “쉬운 방향을 구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 철부지의 결행은 저도 계속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대장장이의 공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시면, 그 때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아니, 제 부탁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시고 지휘자의 재량대로 실행해주시기 간청합니다.”

 지휘자는 알았다. 오히려 에르마로서는 어려운 방향을 택했다는 걸. 이 사람은 이 기회를 고향에서 찾아온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구나. 냉엄한 전사는 유달리 순진한 모양이 되었다. 저절로 그런 모습이 되는 건지, 아니면 이 한 사람에게만은 혹한과 전투로 삶을 채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순진한 사람으로 변모하고 싶은 건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이름갈은 다도원장 에르마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다.

 “시기를 보아 로세트에 내 꽃을 보내겠소. 내 메시지를 전하겠소.”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은 편히 잘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그녀의 상이 사라졌다.

 지휘자는 에르마의 상이 사라진 찻잔을 줄곧 내려다보았다. 기다려보았지만 얼굴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 식은 노을차를 입가에 가져가며 생각했다.

 ‘그 친구가 여기서도 쓸모 있길 바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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