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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25. 조정관과 다도원장
작성일 : 22-01-04 11:04     조회 : 183     추천 : 0     분량 : 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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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마는 혹시나 벗의 하나 남은 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르카를 체포하러온 군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르카를 구금하는 마차에 함께 타고 조정관의 저택까지 왔다. 오면서 감시꾼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빠르고 조용한 고향말투로 청년에게 말했다.

 “큰 기대는 안 하마.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다시는 너와 얘기 나누지 못 할 거야. 운이 따라준다면, 훗날 누군가 네 성공담을 노래하겠지. 촌구석 대장장이 청년이 마을의 권리를 찾기 위해 홀로 수도로 나서 당당히 목소리 내어 마침내 승리했더라고. 마르카, 어리석은 방문자, 혹여 그런 노래가 네 귀에 들리더라도 너마저 그 이야기를 온전히 믿으면 안 된다. 어쩌면 너의 역할은 네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막 위로 드러나게 하는 건지도 모르니까. 내가 수도에서 이만큼 성공할 수 있던 요인은 여럿 있겠지만, 누군가 내 역할을 대신하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일 거야.”

 “알겠어요, 에르마. 다른 요인은 뭐가 있죠?”

 “해묵은 유산은 존중하되 케케묵은 감정은 묻어버리는 방법이 있지. 너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인지는 아직은 모른단다. 아직은 몰라, 꼬맹아.”

 “에르마, 알겠어요. 하나는 알겠어요. 정말 운 좋게 제 의무를 다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겠죠.”

 “네 요구가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마.”

 “미안해요.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해요.”

 “케루비니가 노망이 든 게야. 안 그랬음 회의도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네 목을 바로 매달았을 거라고. 사랑하는 레아에게 비보를 안겨야 하다니.”

 비록 죄수호송용도이긴 해도 처음 마차를 타서 그런지 이동하는 내내 마르카는 멀미를 참아야했다.

 

 *

 

 주인은 미천한 자에게 성낼 때는 더욱 열변을 토한다는 속담이 있다. 비록 당장은 노여움을 인내한다 하더라도 차갑다 못해 뜨거운 얼음처럼 원한이 응어리 지기 마련이다. 조정관 이냐시오가 대장장이 마르카를 접견하기 전, 자기 속에 앙갚음이 해소되지 않은 응어리가 튕겨 다니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에 어떤 부랑자의 혀를 자른 덕분에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긴 했지만 말이다.

 조정관으로 부임하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이냐시오는, 가끔 그런 식으로 증오 비슷한 충동을 풀어주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상처 준다는 걸 깨달았다.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상처를 입혀도 무관한 대상을 찾는 건 그 나름의 소소한 유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휘자의 사명을 투철하게 이어받고자 노력했다. 족속을 가능하면 차별하지 않고 능력과 유용성을 따져가며 알맞은 지위에서 활약하도록 종용했고, 가난한 백성의 심정을 대변하는 조정관이 되고자 그들과 유사한 환경에서 밥을 먹겠다고 지휘자 이름갈에게 맹세했다.

 아비로서는 어떠한가?

 딸이 의사가 되겠다고 고집할 때 가급적 분노를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다면 그 업을 시작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딸의 고집이 오래 못가리라 의심하지 않았던 그는 나중에 실망해야 했다. 이냐시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불명예스러운 자신을 발견하느라 못 견뎌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딸의 뜻을 인정했고, 지휘자의 며느리로 출가시키려던 은연중에 세운 계획을 포기해야했다. 게다가 조정관의 아내이자 지휘자의 막내 동생 글로리아가 자식 편을 들어주기도 했고.

 “그 애는 제 어미 닮아서 부족함이 없다니까. 후대에 태어났으면 조정관을 뛰어넘을 애야.”

 만취한 이냐시오가 집사에게 주정부린 건 비밀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들 데르마마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일이다. 수줍은 성향을 고치고 교양을 쌓으려고 배우는 무용에 의외로 지나친 열성을 다한다는 게 우려스럽긴 하다만. 그러나 그의 가정문제는 이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하리라.

 어쨌든 로세트의 조정관은 여러 난관을 해결해야했는데, 갓 임명된 다도원장을 다루는 일 또한 무시 못 할 정도로 골치 아팠다.

 이냐시오와 같은 관리자나 고위층 일부는 에르마가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세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번은 그의 아내가 주변에서도 특히 주변에서 수도로 올라온 시골아낙네가 다도원장이 된 데에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으리라 숨기지 않고 발화했다.

 “그러니까요, 아무리 잡초 말린 물이 중요하다손 쳐도 특별히 막중한 업무를 맡는 건 아니잖아요. 대단한 격식이 필요한 음료도 아니던데. 그 여자가 일부러 없는 의식을 지어내는 게 틀림없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조정관님. 저만의 목소리는 아니니까.”

 이냐시오는 떠도는 소문을 모르지 않아서 아내의 의중을 피하지 않았다.

 “확실치 않은 뜬소문을 여기까지 가져오다니. 도청도설은 거리에서 증발시키고 말아 버리시오. 에르마가 다도원장으로 적합한 인물이라는데 동의한 위원들이 상당수요. 애당초 부원장에서 원장으로 승진한 게 놀랄 일도 아니고.”

 “그 때 부원장이 그 여자뿐이었어요? 모르지, 누구의 발을 씻어준 덕에 부원장이 됐는지…….”

 “명예를 실추시키는 발언은 삼가기 바라오.”

 “누구의 명예? 그 여자? 아니면 위원들? 아, 알겠어요. 지휘자의 명예라면 누구보다 내가 가장 걱정한다는 걸 알아주세요.”

 “그만, 그만. 로세트의 명예 말이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내 오라버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으니.”

 “지휘자께 내 충성심이 가닿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하오. 그나저나 그 분이 요즘에는 통 꽃을 보내지 않으시네.”

 “구구절절 간섭할 필요 없이 조정관이 잘 하겠거니 믿으시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이냐시오에게 수도를 일임한다고 공식적으로 신뢰를 표하셨으니. 어머, 당신 울어요?”

 “여보, 그 한 마디 덕분에 마음이 환희로 충만하였소. 한동안 삶이 얼마나 공허했던지. 여하튼 에르마가 다도원에서 체계적인 교육방식을 확립한 덕분에 젊은이들은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은 젊은이들은 존중하는 법도 배우고 있잖소. 부다도원장의 명예는 거저 얻은 게 아니란 말이오.”

 다만 이냐시오는 에르마가 다도원장이 된 과정은 눈감으려고 하면 눈감을 수 있으나, 점차 그녀가 행사하는 프로그램에 다소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을차를 정식으로 마시는 법을 배우면서 누주의 문화와 전설 따위도 가르치는 건 용납하기 어려웠다. 주의를 주긴 했지만 다도원을 둘러싼 후원자들과 다른 무리의 엘리트들이 조용히 반발했다. 이냐시오는 누주와 상관없는 무리들이 나서는 바람에 당황하면서도 한 편으로 두려웠다. 그들이 다도원을 발판으로 수도에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노을차를 비롯하여 로세트의 진정한 주인에게 필요한 토종 문화와 고유의 식생활 등을 이름갈의 손으로 일구고자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아예 싹이 자라지 않거나, 얼추 비슷한 형태로 찻잎이 자라고 어떤 무리의 생활을 베끼긴 하더라도 아무런 효능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저들의 도움이 없이는 이름갈도 오래 수도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려야했다.

 ‘고작 찻잎일 뿐이야.’

 그렇게 위안 삼지만, 그는 사소한 흔들림이 큰 여파를 불러일으킬지나 않을까 노심했다. 이냐시오는 근심을 자기만 간직하기로 했다. 적당한 기회를 노리는 게 최선이므로.

 

 *

 

 에르마는 감옥이 아니라 조정관의 집무실로 안내받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긴장을 아주 놓을 수 없으나, 그래도 당장 변고가 생기지는 않겠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조정관은 조정관대로 다도원장이 함께 올 줄은 몰랐다.

 “접빈용 마차를 함부로 내어주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귀한 가모네의 소를 한낱 비렁뱅이가 데리고 다니니 수상히 여겨 신고가 들어왔답니다. 호송용 마차를 태우기도 아깝다 생각했어요. 허나 다도원장의 지인이실 줄이야. 에르마께서 보증하신다면 큰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기 어렵지요. 세부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세간에 조정관이 불공정하다는 평이 돌 수 있는데, 공정은 곧 신뢰 아니겠습니까? 이 친구는 안심하고 잠시 맡겨주세요.”

 “이냐시오 조정관께서 공정과 신뢰를 으뜸으로 삼으시는 성품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헌데, 어휴, 이 촌뜨기가 예의를 알 턱이 없어 제가 동행했는데 불청객이라 여기지 마셨으면. 조정관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이 아이의 부족한 수도어를 제가 매끄럽게 통역하고 싶습니다. 요청을 받아주시겠는지요.”

 조정관은 자기 집무실에 와서 위압감을 전혀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다도원장에게 공손히 답했다.

 “누주의 말하는 방식이라면 저도 익숙합니다. 수도 사람이라 해서 변방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리란 오해는 거두시기 바랍니다. 분명 조금 뒤에 이 청년이 다도원장께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고할 겁니다. 전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시고 댁에서 기다리시지요. 아니면 별채에서 제 부인과 담소를 나누어도 좋고요. 아직 차를 얼마나 우려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제가 우려해야 할 상황이란 사모님께서 차를 적절한 시간 얼마나 우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겠군요.”

 이냐시오는 이 말장난이 마음에 들었다.

 “재치 있습니다. 다음번에 제가 활용하고 싶군요. 그래요, 저와 이 청년의 대담은 지금 같은 분위기로 유지하리다.”

 마르카는 빈손으로 에르마 옆에 멀뚱히 서서 둘의 대화를 들으며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보호자에게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는데 눈빛은 성대의 울림만큼 떨리지는 않아 보였다. 조정관의 저택에 오면서 에르마가 마르카에게 충고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어쩜 이리 마음이 놓이는지요. 로세트의 평안은 조정관님이 닦아 놓으셨다는 걸 다시 깨우칩니다. 사실 중요한 교육을 진행해야 해서 이만 다도원에 가볼까 합니다. 부디 이 겁쟁이를 잘 얼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제가 누주와 수도의 차이를 직접 타일러주지요. 무식자도 수도에만 오면 현명해지잖아요?”

 에르마는 이냐시오와 예의를 차려 인사를 하고 마르카는 쳐다보지 않은 채 집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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