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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24. 재회
작성일 : 22-01-04 11:04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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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만에 아들을 끌어안는 걸까. 에르마의 가슴 속에서 놀람과 성남과 슬픔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그녀는 고향에서 온 두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가엾은 아이가 연락도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대장장이는 왜 소를 데리고 왔으며 조정관의 장녀하고 어쩌다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 하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울어대는 로비스를 안고 이렇게 외쳤다.

 “러비, 러비! 이리 오렴 내 아가!”

 다도원장이 카멜라에게 무한하고 조건 없는 감사를 표했다. 카멜라는 유모와 경호원과 함께 별도의 다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마르카는 카멜라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으나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저 사내 참 말주변 없네요. 그렇지요?”

 엠피오스가 아가씨에게 속삭였다. 봉고스는 두 여자가 왜 키득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

 

  에르마는 자택으로 옮겨 반가운 손님을 제대로 응대했다. 고향에서 온 두 손님에게 선명한 장미향이 은은히 풍기는 차를 권했다. 로비스와 마르카가 따뜻한 손길 같은 찻물을 한 모금 마시자, 한결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마르카가 설명할 틈도 없이 로비스가 두서없이 여행의 단편을 소회했다.

 에르마는 아들이 어떤 궁핍하기 짝이 없는 마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듣고 화를 감추지 않았다.

 “감히 우리 러비를? 아들아 잘했다. 손가락 따위 없어도 돼, 그런 년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려무나. 내 마음 같아선 목젖을 끄집어내서 도려 버리고 싶구나! 군대가 왜 있담? 그깟 새들 따위 잡지나 말고 그런 진짜 짐승새끼들이나 도륙해버리지 않고!”

 로비스는 존경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에르마를 올려다보며, 부족하게만 느꼈던 모성애를 한껏 충족시키려는 양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에르마의 집은 세련되고 넓은 단층 석조 주택이었다. 로비스는 여러 개의 방 가운데 침대가 가장 푹신한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 사이 에르마는 거실에서 친구의 아들과 마주 앉아 차와 다과를 나누었다. 간간이 옆방에서 아이가 코고는 소리를 들렸다.

 “장차 러비에게 물려줄 집이야. 내 과업을 이 정도로 끌어올리기까지 평탄치 않았어. 주변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무리 중에 나 정도로 지위를 향상시킨 사람은 손에 꼽을 거다. 심지어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은 이방인 여자가. 어머, 그렇게 놀라면 민망하잖니? 하기야 누주에서는 나와 같은 처지라면 어떻게든 연을 맺지. 부부 중 한 명이 전사하거나 병사하지 않는 한 일부러 인연을 끊지 않고.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뜻이 다르면 각자의 의지를 독립시켜주는 데 어렵지 않게 합의한단다.”

 마르카는 동그랗게 뜬 눈동자를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킷 안주머니에 간직해 온 편지를 꺼내 에르마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도? 케루비니는 누주에서 수도로 향하는 사람에게 늘 편지를 쥐어주지.”

 그녀가 편지를 받아 펼쳐 읽으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래, 발미가……. 우리는 그 아이를 의학교에 합격하고부터 졸업할 때까지 늘 눈여겨봤지. 발미라면 로세트에서 큰 몫을 맡고도 남았을 텐데.”

 그녀는 편지를 반으로 찢어 벽난로에 가져가 불태웠다. 자리로 돌아온 에르마에게 마르카가 말했다.

 “러비는 에르마의 편지를 모두 간직했어요. 공교롭게 프라소스에서 빠져나올 때 못 갖고 와서 내내 속상해했죠.”

 마르카는 여행하면서 지도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아예 품 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덕분에 발미가 낙서한 지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지도가 잘 있나 확인할 때마다 까닭 모르게 괜히 로비스에게 미안했다.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렇겠지. 하지만 나와 케루비니가 주고받는 편지는 정보이고, 나와 러비가 주고받는 편지는 그리움이니까. 남겨도 되는 소식이냐 아니냐는 그 차이에서 비롯되지. 그런 면에서 마르카, 내 사랑하는 벗 레아의 아들아, 너는 어떤 소식을 전하러 왔니?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소식이 아니길 바라는구나.”

 “미안합니다. 저는 단지 케루비니가 들러보라고 해서 왔을 뿐이에요. 반기지 않으신다면 오래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반기지 않으실 소식일거예요.”

 에르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때 이웃집 꼬마였던 대장장이가 수도에 온 진짜 목적을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 말이 없다가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스럽게도 너마저 내 벗만큼 사랑한다. 그러기에 직설하마. 편하게 쉬다 가렴. 그간 쟁탈의 지역으로만 여겼던 허접한 싸움터가 아닌 진짜 수도 로세트를 한껏 누리다 가란 말이야. 그리고 러비와 함께 누주로 돌아가렴.”

 “마냥 놀다만 갈 수는 없어요. 일이 있어요.”

 “무슨 일?”

 “그게…… 우리 마을, 노을차에 대해서 주인들에게 전할 얘기가 있습니다.”

 순간 마르카를 쳐다보는 에르마의 눈빛이 선득했다.

 “나 원, 기가 차네. 네가 책임져야 할 여정에 저 애를 데리고 와? 어떻게든 떼어놨어야지! 러비가 자기를 보호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음 마르카, 난 내 평생, 영원히, 널 용서하지 않았을 게다!”

 “러비는, 러비는 이 모험으로 훨씬 강해졌어요.”

 “오, 그러니? 하. 자주 못 봐도 난 쟤 엄마야. 맙소사. 내가 뭘 유추했을 것 같니? 내 입으로 꺼내고 싶지 않다. 저 애 눈빛, 표정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럴 만한 일이 있었겠지. 듣고 싶지 않아.”

 마르카는 차마 그녀를 볼 낯이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는 길은 편할 것이다. 나를 모시는 하인이 여럿이고, 그들은 내가 모시라는 이들도 나에게 대하듯 대접할 거야. 그나저나 얘, 너는 네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무리 생각은 안하니?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고 나 혼자 판단했다고 하면, 뭐, 그걸로 끝날 것 같아? 너 모르지? 이 세월 너처럼 권리를 요구한답시고 찾아와서 호되게 당한 족속이 어디 한 둘 인줄 알아?”

 마르카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근심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남겨야 한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어요. 어머니와 케루비니는 말이죠. 제 기억에는…….”

 “아니, 넌 네 마을에서 스스로만 용감하다고 착각한 거야. 그렇다고 모든 무리의 동의를 구할 용기까지 나진 않았던 거고. 그러니까 아무 지원도 못 받고 고생해가며 온 거지. 레아와 케루비니? 내 기억에 누주에서 그들만큼 관대한 이웃은 못 봤어.”

 마르카는 수치심인지 적의감인지 구분하기 힘든 감정이 솟구치는 걸 애써 억눌렀다.

 “차라리 나한테 맡기렴. 적어도 내 방식을 살펴 봐. 난 진심으로 저들을, 새로운 주인으로 자리 잡은 이름갈을 존경한다. 저들은 누주의 찻잎을 존중해. 노을차를 필요로 하고.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면 존중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야, 사람들. 저 사람들에게 내가 전파하는 건 단순히 노을차의 효능이니 마시는 방법이니 따위가 아니란다. 은근슬쩍 혹은 드러내놓고 누주의 가치와 역사까지 더불어 가르치지. 누주의 언어를 한 마디, 한 문장 넣을 때마다 얼마나 살 떨리는 지 짐작이나 가겠니? 별거 아닌 지식이지만 우리 무리를 주인의 영역으로 깊숙이 편입시키는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냔 말이야. 저들은 결코 멍청하지 않기에 자기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잘 알아. 용인해주는 거란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내용은 필요하며 존중해줄 가치가 충분하거든. 노을차와 관련된 세세한 하나까지 다 기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기거든. 아직까지는. 다른 대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누주의 특산물은 지금 주인과 공존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누주의 의식을 저들의 의식 속에서 키울 것이야. 러비도 그런 교사가 되도록 가르칠 거고. 이만하면 이해하렴, 마르카. 발미는 충분히 납득했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르카는 듣다보니 자신의 다짐과 다짐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한없이 가볍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세운 정의는 만용에 지나지 않고, 길지 않은 모험이었으나 폐부를 깊이 찌르는 얼마간의 경험이 거대한 검이 아니라 한 시간도 안 걸려 만드는 호미에 지나지 않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작은 촌구석에서 온 대장장이 앞에서 과일향이 나는 초콜릿을 입에 넣고 의기양양하게 미소 띠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도 로세트의 하나 뿐인 다도원장이다.

 말주변 없는 청년은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당당히 일렀습니다. 우리는 노을차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가격에, 원할 경우에만 거래하겠다고요.”

 “그만해라, 그만해. 메아리로 들어봐야 네 목소리가 얼마나 기어드는지 알겠니?”

 “기어들어가도, 그만할 수는 없어요. 다만 이 뜻은 마을을 대표하지 않으나 마을을 아끼는 한 청년의 의견이에요. 별 효용 없어도, 그렇다는 건 알아주세요.”

 “뭐라고?”

 “그러니까, 우리 마을은, 그러니까 누주는 세금이나 다름없는 모양새로 찻잎을 팔지 않겠다고요.”

 “얘, 그 얘기를 정말 할 셈이니? 그럼 내가 아니라 단 한 명에게 고해야 한다. 바로 우리의 지휘자이시지. 그런데 그 분은 이곳에 안 계셔. 하지만 그 분이 어디 계시는지 아는 사람은 또 따로 있고. 어쩌나? 내 보기에 넌 네 결의를 드러낼 모든 단계를 맞닥뜨리기에는 아직 모자라 보인다.”

 에르마가 테이블의 초콜릿 접시를 마르카 쪽으로 가까이 밀었다.

 “어서 먹어둬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하니.”

 마르카가 네모난 초콜릿을 집어 한 입 깨물었다. 그리고 불쑥 무언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감정이 솟아올랐다. 사실 발미가 죽고 나서, 당장은 아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어떤 흐름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그 때 마르카는 혼자 짊을 짊어지겠다며 고집을 피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정직하게 말해도 좋다면, 대장장이는 자기 행위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은 없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믿고 싶은 믿음을 움켜쥐고 출발한 여정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사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요구를 하러 온 것이니, 결국 실천하지 못했다 해서 비웃을 이 없을 터. 로비스는 기대한 바를 이루었고, 자신도 고생은 했으나 보람이 아주 없지 않은 노정을 거쳤으니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대장장이는 오래 고민할 겨를도 없이 에르마의 뜻을 따르겠다고 납득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는 아래와 같이 의견을 정리했으리라.

 “옳아요, 에르마. 저는 관광만 하겠습니다. 여행의 보상이라 생각하고 실컷 누리다 누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마르카가 입을 열기 바로 전, 밖에서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 주시겠소, 다도원장? 안에 소도둑이 침입했단 신고를 받았소! 행여 위태로운 처지라면 안전한 곳에 숨어 게시오! 우리가 잘 해결할 테니 걱정 마시고!”

 에르마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가정부를 불렀다.

 “로비스가 깨거든 산책하러 다녀온다고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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