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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3부 - 20. 설파(舌破)
작성일 : 22-01-04 10:58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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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관 이냐시오가 수도의 귀족들을 초대해 점심을 먹었다. 빈민가를 묘사한 벽지로 둘러싸인 작은 식당도, 수많은 사슴뿔이 장식된 넓은 집무실도 아닌 화려한 홀에서. 한 쪽 벽에는 네 명의 연주자가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했다. 애기사슴을 통째로 구운 요리가 긴 테이블에 놓인 여러 음식 가운데 인기가 가장 많았다.

 이냐시오가 사슴 엉덩이를 나이프로 자르며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오기 전에 로세트를 무단 점령한 이방인 패거리가 있었잖소. 지휘자 이름갈의 이름 아래 우리가 쫓아냈던 괴상하게 생긴 무리 말이오. 그 종자들을 손쉽게 처리해버린 건 기억하시는지. 넙죽 엎드려 다시는 안 까분다고 맹세까지 했잖소. 허나 놈들이 퍼뜨린 씨는 계속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소. 에뮤라는 날지 못하는 새인데, 대신 다리가 튼튼하고 빠르며 깃털이 방패처럼 단단해 화살도 뚫을 수 없다는 군요. 수도 변방의 장로들이 에뮤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특히 사더의 호수에 자리 잡아 사람들을 위협하는데, 그 미물은 군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토벌하러 갔는데, 이런, 오히려 그놈들이야말로 진정한 군대나 다름없었소. 당시 제 옆에 바라크 장군도 계셨지요?”

 언급된 바라크는 사슴 쪽으로 포크를 내밀었지만 거리가 닿지 않아 입을 삐죽이던 참이었다. 정작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지휘한 건 그였다.

 “전술을 아는 짐승들이었소.”

 

 *

 

 아직 한 달이 채 안 되어 벌어진 일이다. 사더 호수는 닷새 동안 핏빛으로 물들었다. 바라크가 호숫가에 널브러진 부하들의 시체를 말에 타고 내려다보았다. 드넓은 호수의 반은 피로 번졌고 반은 피가 번지지 않았다. 맑은 구역은 키가 높은 새들이 차지했다. 장군은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과 격전을 치룬 종족, 에뮤는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한 먼저 덤비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런 전세였다. 그들은 방금 벌어진 전투는 별 일 아닌 양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시체에서 새나오는 피가 호수를 적셨고 목마른 새들이 그 물을 마셨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저 잔혹한 짐승이 행여 이쪽으로 덤빌까 벌벌 떨었다. 이냐시오가 흰색 말을 타고 장군 옆으로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하오. 율법을 제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소. 그나저나 처참하군. 이보시오, 바라크. 허나 좌절치 마시오. 우리는 이보다 뛰어난 적을 무찌른 역사가 있잖소. 하나 잘된 건, 이 짐승들이 사방팔방에서 난리 치는 바람에 골치 아픈 화적 무리가 자취를 감추었단 거요.”

 

 *

 

 바라크는 귀중한 전력을 한갓 짐승 따위에 낭비하는 게 못마땅했다. 이냐시오가 억지로 붙잡지만 않았더라면 장군은 진정한 전장인 변경으로 부대를 끌고 갔으리라. 겨울이 다가오기 전, 슬금슬금 변경을 넘으려는 진짜 적들을 처단하러. 지금은 비록 원하는 고기 한 점 마음껏 못 짚는 시늉을 하지만.

 “이 놈의 사슴은 매번 손이 닿질 않아. 이 봐, 다음에 나올 사슴은 내 쪽으로 두게. 허벅지 맛 좀 보는 게 소원이다 소원!”

 바라크의 명령을 받은 하인이 긴장한 얼굴로 상체를 굽혀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냐시오는 자기 저택이자 일터에서 큰소리치는 사람을 반겨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그 앞에 오리 엉덩이도 맛이 좋습니다.”

 “내 궁둥이가 더 기름지겠구먼, 무얼. 여하튼간에, 에뮤란 놈들 고약합디다. 우두머리 격인 놈을 죽이면 저절로 다음으로 강한 놈이 우두머리 역을 맡아요. 그놈이 죽으면 또 다른 놈이 저절로 우두머리가 되고. 베테랑 병사들도 한방에 나떨어지더구먼. 크기는 소만하고 빠르기는 말 달리는 속도와 같은데 식탐은 내 다섯 살 난 다섯째 아들만치 심하오. 번식력은 어찌나 강한지, 쇠망치로 내리쳐야 깨질 정도로 껍질 두꺼운 알을 한꺼번에 세 개씩 낳느라 어지간한 수단으론 어림없소.”

 부조정관이 손에 든 와인글라스를 두 바퀴 돌린 뒤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정관과 먼저 눈빛을 교환한 뒤 발언했다.

 “장군이란 분이 불리하다고만 하시니! 지휘자께서 변경을 지키러 가신 동안 걱정거리 늘리면 안 되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러잖아도 사더 호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불안한 소문이 일고 있습니다. 놈들이 호숫가의 물을 말려버리면 사더 마을이 아니라 수도 자체에 물이 들어오지 않아요. 또 다른 문제는, 변경에 보내고 새 떼 쫓으려 보낸 병력이 적지 않아서 변방의 치안이 허술해졌다는 겁니다. 도적무리가 마을을 습격하고 선량한 무리가 화적이 되어 이웃을 침략합니다. 이뿐입니까? 스스로 진정한 주인을 자처하는 이방민과 원주민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죠. 노을차를 재배하는 유일한 마을, 누주 역시 하마터면 잿밭이 될 뻔했지 뭡니까? 다른 차도 중요하지만 노을차는 특히 필요합니다. 변경 너머와는 다른 풍토에 우리가 적응하려면. 문제는 우리와 다른 이유로 그 차의 가치를 좇는 무리가 하나 둘 늘어난다는 거요. 노을차 만이 아니라 여러 가치를 갈기갈기 찢어 나눠먹으려는 놈들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이냐시오가 와인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누가 먼저 손을 들었으나 조정관이 먼저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지휘자께서 당신이 온몸으로 변경을 수호하시는 동안, 우리 각 분야의 조정관들이 확고한 체제를 구축하도록 명하신 게 아니겠소? 체계적인 율법과 명령. 핵심은 그 업입니다. 지금까지 방해 받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깊이 새기고 있죠.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체제를 구축해나갈 겁니다.”

 바라크가 일부러 소리 내어 와인을 들이켰다. 이냐시오가 장군을 흘겨보고 다시 연설을 계속했다.

 “주변 문제는 이렇게 정리하죠. 모래폭풍을 뚫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를 자랑하지만 날짐승도 들짐승도 아닌 기이한 종자들, 주인의 자리를 노리는 하찮은 족속들. 두 부류 모두 날지 못하는 무리입니다. 한 쪽은 무거운 몸뚱이와 퇴화된 날개 때문에, 다른 쪽은 모래구덩이에 파묻힌 채 수 세대를 살아와서. 이 세상이 날지 못하는 아둔한 새와 족속들로 메워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막중한 책임을 가져야 할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어느 새인가 4중주가 그쳐 있었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의 말에 수긍했다. 고개를 끄덕이든 눈을 감고 속으로만 인정하든.

 “여러분 못지않게 고뇌하던 저는 어느 날 이런 보고를 받았습니다. 누주를 공격하던 도적 떼가 마을에 입성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전멸했다, 라는. 풍문과 미신에 불과한 상세보고내용은 무시했습니다. 벼락이 내리쳐 쓸어버렸다느니 저들이 죽인 원혼의 저주를 받았다느니 따위. 그나마 눈여겨 볼만한 건 시체에 난 상처였습니다. 추측해보았죠. 누군가 금지된 무기를 사용했으리라. 순간 화가 났지만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허나 저는 조정관 대표이자 지휘자의 대리자로서,”

 이 대목에서 안색을 굳힌 관리인들이 적잖았으나 발언자는 그 모습을 모르는 체 했다.

 “수도와 변경과 마을들을 수호하고자 하는 욕심이 커서 집중에 집중을 했습니다. 만약 정말 금지된 무기가 있다면, 그걸로 우리를 위협하는 종자를 쓸어버리면 된다. 나아가 지휘자께 무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눈보라가 불어 닥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단 건 이제 알겠다. 그렇다면…….”

 원하는 요리가 나오지 않아 예민해진 바라크가 끼어들었다.

 “대리자께서 공상가이실 줄 몰랐소. 허황된 추리를 이리 장황히 나열하실 줄이야!”

 몇몇이 조소를 비쳤고, 이냐시오가 한쪽 눈가를 찡그렸지만 이번에는 아예 그를 본 척도 않았다.

 “그렇다면 눈보라를 피해 변경을 넘보는 적들을 무기로 처치하는 건 가능하지 않나? 너무 빠른 계산을 하는 게 아닌지, 스스로도 겁났습니다. 누주에 수하들을 보내고 얼마 안 있어 한 가지 소문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자기가 아마미크의 참모였다고 주장하는 떠돌이가 있다고. 믿을만한 소식은 아니나, 계속 자기 무용담을 떠들어대며 돈을 구걸하는 광대 노릇이나 하는 떠돌이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허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죠. 떠돌이는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얘기하나 아무도 진지하게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청중은 그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심심풀이 내지 화풀이로만 여기지요. 그럼에도 인기가 많아서 일부러 돈 내고 즐겨 듣는 청중이 끊이질 않는다는군요.”

 부조정관이 자기도 그 소문을 들었다고 거들었다. 이냐시오는 흡족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수소문 끝에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 자, 들여보내게.”

 조정관이 손짓하자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병사 셋이 남루한 차림을 한 남자를 끌고 왔다. 먼 한 때 음유시인이자 재담꾼이었다가 가까운 한 때 도적 무리의 일원이었던 라이너였다. 이제 그의 손은 수갑이 차인 채 뒤로 묶여 있었고, 제대로 걷지 못해 왼쪽 다리를 바닥에 끌었다. 입에는 굵은 밧줄로 된 재갈이 물려 있었다.

 조정관은 고문을 한 적은 없고 다리는 체포하기 전부터 저 상태였으니 오해말라고 좌중을 돌아보며 웃으며 일러두었다. 에그타르트를 먹던 재정 관리인이 성질을 냈다.

 “구역질나는군! 어디 이 귀한 식사 자리에 저런 거렁뱅이를 들여보낸단 말요?”

 “이 자가 무기의 존재여부를 판가름해줄 겁니다. 아, 좀 더 가까이 데려오게. 자네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떠들어대던 그 상황 좀 설파해주게. 허락하지.”

 옆에서 재갈을 풀어주어 겨우 턱을 움직인 라이너가 저 에그타르트를 먹여주면 들려주겠다고 당돌하게 말했다. 부조정관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놀랍군! 정확히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다니? 더구나 난생 처음 봤을 디저트까지 알고? 어디서 에그타르트라는 메뉴를 주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저 족속을 계몽시켜줄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되는군요.”

 이냐시오가 웃으면서 다시 잔을 비웠다.

 “아, 먼저 밝힐 게 있는데 이 친구 참 희한한 재능을 지녔소. 이 친구 손이나 입에 닿는 음식은 무엇이든 오물덩어리로 변한답니다. 본인 말로는 저주를 받은 것 같다는데 확실한 건 아니고 그런 정황이 있었다고 하죠. 저도 이 친구에 대한 얘기를 믿지 않았으나 혐오스러운 장면을 보고나서야 믿을만하겠구나 여겼답니다. 원치 않으신 분은 눈과 코를 가리시기 바랍니다. 그럼 보여주시게. 저번처럼 수갑까지 풀어주진 말고 바로 입에 넣어 봐.”

 병사가 본부대로 작고 동그란 에그타르트를 죄수의 입에 갖다 댔다. 평생 손대본 적 없는 달콤한 향이 가득한 파이를 자기 입에 넣고 싶은 유혹을 애써 뿌리치며. 그러나 곧, 병사의 손에 들려 있던 타르트가 악취를 풍기는 질퍽한 물체로 변했다. 병사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물컹한 덩어리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윽고 자기가 실언을 한 죄를 지었다고 깨달은 병사가 긴장하여 특별한 계급무리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도 자기와 다를 바 없이 욕을 내뱉었다. 개중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막고 헛구역질 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명령을 내린 이냐시오도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눈을 감고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는 감옥에서 라이너에게 음식을 먹이려다 한 번 이 현상을 본 적 있던 터였음에도. 병사는 자기의 죄를 들키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수도 로세트의 도로와 건물을 관리하는 이가 숨 쉬지 않고 단박에 할말을 내뱉었다.

 “사실이었군. 무엇이든 오물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저주를 받은 게.”

 허기를 못 견딘 라이너가 소리쳤다.

 “지랄들 하시는군, 오물을 먹이니 오물이 나오지! 배고프니까 얼른 저거라도 줘!”

 들어올 때만해도 다리를 절뚝거리던 라이너가 잽싸게 식탁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사슴 구이의 남은 부위에 입을 갖다 댔다. 그것과 더불어 그의 입에 닿은 음식은 식탁 위에서 모두 단번에 부패해버렸다. 평범한 부패가 아니라 변이에 가까운 부패였다. 보통 음식이 썩으면 생기는 현상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라이너를 붙잡아 무릎을 꿇렸다. 이냐시오의 뒤에서 대기하던 집사가 하인들을 불러 테이블을 치웠다. 조정관은 잔뜩 취기 오른 목소리로 흥분을 표했다.

 “여러분, 이게 로세트 밖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입니다. 극히 일부만 목격하고 있는 거예요! 수도가 풍요로운 정원이라면 외부는 작은 사막입니다. 지휘자께서는 걱정하십니다. 변방과 수도의 경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퍼져나가고, 정원이 있던 자리에 이, 이 죄 많은 자들이 초래한 벌들로 가득 차버리는…….”

 부조정관이 손으로 옷에 남은 냄새를 털며 물었다.

 “이냐시오 조정관, 그래서 계획이 뭐란 말이요? 뭘 하고 싶단 말인가요? 그 얘길 듣고 싶소.”

 이냐시오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시궁창 같은 주둥이로 오물덩어리를 씹어대는 죄인에게 물었다.

 “분명 네놈들을 전멸시킨 건 저주도, 재해도 아닌 인간이 만든 무기가 확실하다고?”

 입 안에 든 걸 삼킨 라이너가 말했다.

 “그래, 우릴 파괴한 그 파편은 무쇠였다. 처음엔 금방 녹는 우박인 줄 알았지만 분명 검은 무쇠였어. 왜, 여기 관리인이란 작자들은 그것만 신경이 쓰이나 보지? 무기를 원하나? 역시 너희라고 다를 거 없어. 잘 차려입은 야만인에 지나지 않아. 걱정 마셔. 너희들을 멸망시키는 건 그런 쇳덩이가 아냐. 네놈들을 파멸하기 위한 주문은 내가 얼마든지 외우고 다니니 그 중 하나라도 이뤄지면, 그 때 파멸할 테니 기대하시지.”

 “알겠네. 계속 듣다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화술을 지녔군. 내가 네 같잖은 무용담을 차츰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야. 이제 네 쓰임새는 다했다. 꺼져. 조금 남은 흥 마저 깨질라.”

 그를 붙잡고 있던 병사가 입에 재갈을 채우고 밖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냐시오가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잠깐 여기 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집사에게 물었다.

 “참, 새 새끼사슴은 다 됐나? 식사가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잖나.”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내오겠다고 대답했다.

 “좋아. 깨끗한 포크와 나이프도 새로이 내오게.”

 명령이 끝나자마자 하인들이 더러운 식기를 치우고 번쩍이는 새 도구를 조정관들 앞에 내놓았다. 식욕이 싹 사라진 한 관리인이 배가 너무 불러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냐시오가 조금만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이 자 이름을 뭐라 부른댔지?”

 병사가 라이너라 부른다고 대답했다.

 “라이너. 라이너를 식탁에 가까이 붙이게. 아니, 내 오른편으로 옮겨주겠나? 알다시피 난 오른손잡이이지 않나. 그래, 그쪽이 편하군. 이제 재갈을 풀어주고, 그래 풀어줘. 이 자의 머리를 식탁에 올려놓게.”

 그의 요구대로 병사들이 돼지머리 통구이라도 되는 양 라이너의 머리를 식탁 위에 붙이듯 올려놓았다. 두 손으로 죄수의 목과 몸통을 단단히 눌렀다. 라이너가 몸부림쳐도 큰 부담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이냐시오가 집사가 끼고 있던 흰 면장갑을 달라고 하고 자기 양 손에 썼다. 그리고 주먹으로 라이너의 머리를 내리쳤다. 망치로 쇠못을 박듯이 강렬하게. 다음으로 눈이 살짝 풀린 라이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힘에 따라 병사들도 몸이 맥없이 끌렸다. 사람들은 집무실에만 있고 입만 살았다고 평가받는 이냐시오가 이렇게 힘이 셀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연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집사와 이냐시오의 술버릇을 아는 바라크 뿐이었다.”

 조정관은 구경꾼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라이너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머지 한 병사가 이냐시오의 눈짓을 보고 재빠르게 달려와 그를 도왔다. 라이너가 발악하면서 입을 다물려다가 병사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발악하는 틈에 라이너의 혀가 입 밖으로 살짝 나왔는데 이냐시오가 손으로 혀끝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왼손에 들고 있던 포크로 라이너의 혀 바깥쪽을 찍어 내렸다. 포크가 깊이 박혀버려 혀가 테이블에 고정됐다. 누가 뭐랄 새도 없이, 저택의 주인이자 회의의 주도자이며 지휘자의 대리인 이냐시오가 오른손으로 쥔 나이프로 라이너의 혀를 잘랐다. 톱으로 멜론을 썰듯이.

 “아직 살아있는 부위라 그런지 시간이 걸리는군.”

 충혈된 눈으로 자기를 노려보는 라이너를 내려다보며 이냐시오가 말했다.

 “아무도 라이너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듣기만 하면 까닭 없이 불쾌하다던데, 왜 그런지 알겠군. 자네야말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겠지. 그러니 가증스런 반란죄를 누가 믿겠나 싶어 하염없이 떠들어댄 게야. 그런 인간의 혀가 과연 필요할까?”

 그는 계속 손을 놀렸고, 좌중은 침과 피와 살점이 뒤섞인 붉은 비명을 들었다.

 라이너는 혀가 분리되는 걸 체감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이냐시오가 피로 얼룩진 장갑을 벗어 집사에게 건넸다. 집사는 직급이 낮은 하인에게 장갑을 넘기며 잘린 혓바닥을 버리라 지시했다. 그리고 혼절한 라이너에게 시선을 둔 채 와인을 연거푸 들이키는 주인에게 물었다.

 “마무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면 죽이지 마. 이 자가 지녔던 모든 걸 그대로 돌려주고 살려 보내. 언젠가 이 절름발이의 소식이 궁금할 때, 혀 잘린 반란분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묻고 싶을 때가 올 거야. 그 때 직접 장본인으로부터 얘길 들으면 좋겠군. 죄가 있던 자리는 아물었는지.”

 

 
작가의 말
 

 3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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