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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18. 조정관 이냐시오
작성일 : 22-01-03 13:59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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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리아는 매일 불쾌한 기분으로 식사하는 게 지겨웠다. 그녀가 사는 저택의 식당 벽지에 유난히 파리가 많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더럽고 추한 농부의 일상과 행태가 묘사된 벽화가 넓은 방에 빈틈없이 둘러져 있다. 그림이란 걸 알면서도 진짜 파리 떼로 착각할 정도로 묘사가 생생했다.

 식당에서 네 가족이 화려한 양각이 새겨진 마호가니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했다. 상석에 앉은 갈색 머리 남자가 중지보다 긴 포크와 나이프로 새끼 돼지 통구이를 적당히 잘라냈다. 풍미 넘치는 육즙이 배어나오는 고기를 집어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렸다. 조정관이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는 그의 뒤에 치마를 들춰 엉덩이를 내민 아낙네가 심술궂게 웃고 있었다. 진짜 사람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림이다. 조정관의 맞은편에 글로리아가 하얀 천으로 입가를 살며시 닦고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이런 냄새나는 곳에서 식사해야 할까요?”

 이냐시오가 디저트로 나오는 무화과 파이를 입에 넣었다.

 “오늘도 요리에서 풍미가 가득하군.”

 “그림에서 참기 힘든 악취가 난다면 믿으시겠어요?”

 남자가 포크를 흔들며 답했다.

 “저들의 생활이 충분히 나아지면 다시 원래 식당으로 옮기리다.”

 “그런 날이 올까요? 저들은 늘 원래 먹던 대로 먹잖아요.”

 이냐시오가 낯을 굳혔다.

 “저들은 거짓 위에서 다투고 거짓을 위해 싸우는 짓을 그치지 않으니까.”

 부부 사이에 좌우로 앉아 있던 남매가 먹던 손을 멈추었다. 마침 하인들이 비운 접시를 치웠고, 복장이 더 고급스러운 하인이 티세트를 들고 나왔다. 손잡이에 금박 장식이 새겨져 있고 화려한 여신의 그림이 새겨진 티세트였다. 집사가 그의 주인들 앞에 찻잔을 놓고 알맞게 우린 차를 따랐다. 빈틈없는 동작으로. 차는 서서히 퍼지는 노을빛처럼 영롱했다. 이냐시오가 차향을 콧속에 살짝 머금은 뒤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 모금 입에 넣고 찻물의 온도가 혀의 온도와 비슷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목으로 넘겼다. 금세 이냐시오의 낯은 평온해졌으며 차를 마신 다른 가족들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럼 오늘도 공무를 거치고 오겠소.”

 이냐시오를 따라 수행원들이 식당을 나갔다. 나갈 때까지 시선을 찻잔에 두던 장녀 카멜라가 한 손을 가슴에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께서 언제 조정관을 그만두실까요?”

 싸움을 앞두고 벌벌 떠는 초년병처럼 막내가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글로리아가 벽 한 쪽을 감흥 없이 쳐다보았다.

 “우리의 지휘자께서 변경으로 부르는 날.”

 어머니의 말에 자매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막내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긴 너무 추워요. 너무 험해요.”

 

 *

 

 조정관이 집무실 겸 응접실로 이용하는 방은 넓었다. 수령이 천년은 됨직한 나무만큼이나 천장이 높았고, 벽에는 이냐시오가 사냥한 사슴 머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슴 머리와 뿔이 사방에 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서 몇 번이나 탄원을 하러 오는 한 노인이 조정관에게 하소연했다.

 “호수가 점점 말라 없어집니다. 어릴 적 생각하면 십분의 일이나 모래 속으로 흡수됐어요. 그마저도 에뮤 떼가 물가를 점령했습니다. 물을 마실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꼭 우릴 비웃는 모양새에요. 우리 힘으로 내쫓으려다 부상자만 늘어나니 큰일입니다.”

 짧은 백발의 노인이 이냐시오 앞에 허리 숙여 당부했다. 조정관 이냐시오가 그윽한 눈으로 보일 듯 말 듯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부터 전국의 수원지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요즘같이 득세하기 전에도 우리 군대는, 그 잘못 태어난 더러운 날짐승을 소탕하느라 총력을 다해왔습니다. 시일이 좀 걸릴 수 있지만요. 그럼에도 사더 마을은 늘 손꼽히는 순서로 염두에 두겠습니다.”

 노인은 미심쩍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일부러 과장되게 이냐시오의 손을 꼭 붙잡았다.

 “꼭 부탁드립니다. 사더의 호수는 모두의 수원지란 걸 잊지 않으시리라 믿어요.”

 이냐시오는 힘을 약간 들여 노인에게서 손을 뺐다.

 “그럼요.”

 그리고 제자리에서 부드럽게 몸을 돌며 사방에 내걸린 사슴머리박제들을 가리켰다.

 “우리가 변경에서 잡은 사슴들입니다. 아시겠지만 아름다우며 성가신 저 족속들이 변경의 터전을 일구는데 방해했죠. 저건 일부이고 더 많은 박제와 가죽과 고기를 소비했죠. 제 미적 기준에는 함부로 해치고 싶지 않은 동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뜻은 무리의 번영이라,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잡아들였습니다. 하물며 추한데다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 흉물 따위야 고민 없이 박멸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노인이 납득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이냐시오가 그를 불러세웠다.

 “돌아가시기 전에 미흡하나마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의 손짓에 맞춰 다른 방에서 남자가 자루 두 대를 어깨에 메고 조정관과 노인 사이에 자루를 내려놓았다. 자루 안에는 각각 감자와 검은 빵이 들어 있었다.

 “사더 무리 여러분이 이걸 주식으로 삼는다 들었습니다. 저는 비록 주인이 임명하신 조정관 신분이나 누구보다 여러분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시길 당부합니다. 많이 못 드려 송구합니다.”

 사더의 장로가 난감한 얼굴로 웃으며 두 자루를 양손으로 들어 보았다. 안간힘을 써도 끌고 가지 못할 무게였다. 물론 감자와 단단한 빵을 자주 먹긴 하지만 즐겨 먹는다고 할 수는 없는 식량이다. 그래도 필요했다.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곤란한 얼굴로 식량 포대를 어색하게 들어 보였다. 모두 그를 구경했다. 장로가 온힘을 다해 포대를 끌어당겼다. 바닥에 포대가 끌렸다. 조금 뒤에야 조정관이 옆에 있던 경비병에게 대신 들어주라고 명령했다.

 응접실을 막 나오기 전 장로가 뒤돌아보았다. 조정관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백 여 개의 사슴 머리만 윤기 나는 죽은 눈으로 노인을 바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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