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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15. 뿔
작성일 : 22-01-03 13:53     조회 : 182     추천 : 0     분량 : 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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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사를 관리하는 덩치 큰 여인의 이름은 오든이다. 그녀는 전날 저녁 순모를 업고 집에 데려다 준 사람이다.

 오든에 따르면 가모네의 소 중 고기로 팔려가는 부류는 다 커서도 뿔이 없다. 뿔이 자라면 서로 각축을 벌이거나, 우리 틈에 뿔이 걸려 다칠 수 있어서 품질이 떨어진다. 그래서 송아지 적에 뿔이 자라지 못하도록 특별한 연고를 머리에 바른다. 연고는 연장자가 두꺼운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바른다. 소뿔의 생장점이랄 수 있는 부위를 녹일 정도로 독해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송아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뒷다리를 붙잡는 일은 젊은이의 몫이다.

 이튿날 아침 가모네 사람들과 함께 부피의 우시장으로 출발하기 전, 마르카는 작게나마 일을 돕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래서 맡은 게 송아지 뒷다리를 붙잡는 임무였다.

 “쇠질 하는 치라 그런가, 아귀힘이 장난 아니구먼! 내 아들놈은 다리 한쪽 못 잡고 걷어 채이기 일쑨데!”

 “거 너무 세게 잡지 마쇼, 애 다리 부러질라!”

 마르카는 어린 소의 뒷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양쪽 다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살짝 풀자 송아지가 도망치려 했다. 그는 도로 힘을 주었다. 어서 이 작업이 끝나길 바랐다.

 작업을 마치고 오든이 마르카에게 여물 먹이는 법을 가르쳤다. 방금까지 연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송아지가 혀를 내밀어 마르카의 손등을 핥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이 작업은 모두 꺼려한다. 빨리 끝내는 게 덜 고통스럽지.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우리 마을은 소를 돌보기 버거우면 밀을 키우고, 밀을 키우기 지루하면 소를 돌볼 수 있어. 선택하면 되지. 이거 싫다 저거 싫다 가타부타 구시렁거리는 꼴은 못 본다. 대장장이 청년, 그런데 어제 먹은 고기 어땠소?”

 마르카는 살면서 먹어본 고기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그녀에게 솔직히 대답했다.

 “그 고기는 말이야, 어디 가서 팔지도 않을 정도로 하찮은 품질이었다. 알아둬. 우리가 먹는 고기는 그 이상 필요 없다. 손님과 주인이 평등하게 하찮은 고기를 배불리 먹는 마을이다.”

 

 *

 

 그들은 시장에 끌고 갈 소 백 마리의 발굽에 짚신을 신겼다. 시장까지 가축의 발이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도착하기 위해서. 자갈이나 돌멩이 때문에 발이 다치기도 하는데, 가죽신이나 두꺼운 천은 소가 답답해한다. 밀짚이 발에 알맞고 유연하다.

 짚신장이 와사는 미리 소 발에 맞춰 밀짚을 엮어 충분한 신을 준비했다. 그는 이전 여정과 달리 경비병을 대동하지 않은 이번 길이 마음 편치 않았다. 최근 수도 로세트에서 모종의 전투에 집중하는 탓에 지방 경비에 신경을 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도나 괴물을 만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한 줄로 소의 대열을 맞추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옆에 사람들이 짐승을 이끌었다. 입구에서 조촐한 악단이 북과 나팔을 울렸다. 순모가 소박한 제단 앞에서 좋은 값에 소를 팔고 무사히 귀환하길 기원하는 무용을 보였다.

 두 해 연속 광우병이 돌아 손해가 더할 나위 없이 심했다. 올해는 병이 돌지 않았다. 엄선하여 모은 소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가는 장삿길이다.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큰 출발이다. 이번 거래가 잘 성사되면 가모네의 다수가 구상하는 마을로 개발할 수 있다. 저마다 비슷한 기대를 품으며 마을을 나섰다.

 와사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보면 참, 우리 시장가는 길은 늘 무사하길 빌기만 하지 않나. 왜 당차게 겁 안내며 다녀오질 못할까.’

 그의 옆으로 누주에서 온 이방인 둘이 다가왔다. 그들은 와사가 짊어진 여분의 꾸러미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짚신 담당은 자기가 메고 다니는 방식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는 머쓱하며 뒤로 물러서는 청년과 소년을 한 번 돌아보고 혀를 찼다.

 “아이고, 성가셔. 외지 사람은 왜 달고 다니나.”

 로비스가 옆에 어슬렁거리는 소의 목을 어루만지며 걸어가고 있었다. 와사가 아이에게 소리쳤다.

 “얘야, 거 너무 정주지 마라! 나중 가서 못 보낸다 어쩐다 감상에 젖으려구?”

 외지에서 온 꼬맹이는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다. 가모네 사람들의 말투와 억양이 아이에게는 낯설어 똑바로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이나, 와사는 저 고장의 애들은 버릇없다고 욕했다. 불평은 짧았다. 그는 이번 길만 다니기로 했다. 그간 짚신도 많이 팔았고 보수도 곧 넉넉히 받을 테니 이번만 시장에 다녀오자. 소 발굽에 맞춘 짚신을 잔뜩 짊어진 남자는 우시장 가는 길마다 하던 다짐을 되풀이했다. 뿔 하나 솟아나지 않은 소 떼 데리고, 더 이상 위험한 길을 다닐 이유가 없다고.

 그리고 어떤 소를, 거대한 뿔과 덩치를 지닌 소를 떠올렸다. 한 때 아꼈으나 마을에서 쫓겨나 황야를 헤맬 소 한 마리를.

 짚신장이가 어릴 때 일이다.

 가모네 사람들은 그 소를 아시라고 이름 지었는데 뿔이 독수리 날개처럼 위용 있게 양쪽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한 때 아시는 도적과 지방을 지키는 군인들을 뿔로 무찌른 바 있다. 도적이야 그렇다 쳐도 군인까지 처리했으니 아시는 처형감이 되버렸다. 그러나 바윗덩어리 같은 근육과 벼락같은 뿔을 이기지 못했고, 대신 주민들이 아시를 마을 밖으로 내쫓아냈다. 실제로 고기의 품질을 위해 대부분 송아지의 뿔을 제거한 건 맞지만, 그 못지않게 직접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강한 뿔을 지닌 소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당대 주인이 경고했다. 가모네 주민 다수는 뿔이 크게 자라지 못 하도록 타협했다. 어린 와사를 비롯한 소수는 거세라며 반대했지만.

  아시는 스스로를 가모네 사람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일원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다른 짐승은 몰라도 이 친구만큼은 나름대로 이야기를 가지며 살아가면 좋겠다. 어린 와사는 당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 든 짚신장이가 되기 전까지는.

 그는 요즘 자기 마을에서 자라는 소가 마뜩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좋은 값에 나가는 소 위주로 오냐오냐 기르다보니, 그가 어릴 때 자랑스럽게 우러러보던 단단하고 우람한 소는 보기 힘들어졌다. 송아지 적에 뿔을 뿌리째 녹이는 일이 과연 얼마나 오래 이어졌나? 순모와 다른 장로들의 말만 듣고 송아지 뒷다리를 붙잡고 있긴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마을 재산 덕에 허름한 집을 수도에서 유행하는 석조주택으로 바꾸는 거야 찬성한다만.

 갑자기 누가 히죽거리며 와사의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름끼쳤다.

 “누가 그럽디다. 우리 장로랑 저기 장로랑 연애하던 사이라더라.”

 “뭐, 백 년 전 이야길 들었나보오?”

 “거 과장은. 그저 얼마 전 돌아다니던 풍문이오. 하여간 시장가는 길에 외지인 데리고 가는 건 드물잖소. 용병도 아닌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용병 따위도 필요 없어야 이치에 맞지, 원. 자력으로 가야지요, 자력으로. 순모가 힘줘 펼치는 뜻이 그러하잖소. 용병도 못 믿어, 주인이란 작자들도 못 믿어, 화적떼는 더구나……. 가모네 대대로 내려오는 잘 싸우는 비법 따위 어디 없나?”

 와사는 다시 앞니에 욕을 걸려고 했지만 낌새가 서늘해 입을 다물었다.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의 장년 여자가 두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말본새로는 어디 가서 안 지겠구먼? 싸우는 방법은 차차 우리로부터 정합시다.”

 두 사내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든은 다시 소와 사람들을 점검하며 지나다녔다.

 

 *

 

 마을을 떠난 지 얼마나 됐을까. 걸을수록 땅에 약간이나마 수분기가 밟혔다. 높이 자라지 않은 풀이 눈에 띄었다. 사막보다 거친 초원이라 부르는 게 어울리는 땅.

 바닥에 엎드린 소에 기대어 앉은 마르카가 하늘을 향해 지도를 펼쳐 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별이 반짝이는 밤, 촛불에 의지해서.

 어릴 적에 그는 동갑내기 형제 발미와 바닥에 엎드려 배를 깔고 지도를 펼쳐 보곤 했다. 미지의 지명을 가리켜 서로 으스스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지어냈다. 마침 밖에서 사막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쇠톱이 흔들리는 듯싶은 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담요를 뒤집어 써 몸을 가렸다.

 ‘누주는 사막과 숲 사이에 있는 마을이구나.’

 마르카가 누주와 이 근방의 세세한 지도를 즐겨 봤다면, 발미는 누주가 점만큼 작게 표기된 세계 지도를 탐독하다시피 더듬었다. 마르카는 형제의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지도에 고개를 파묻은 발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기다란 쇠수레를 만들자. 우리 마을 모든 무리랑 가축이랑 집이 다 들어갈 만치 길고 큰 수레. 지붕도 쇠로 덮어서 무서운 악령도 들짐승도 도적 떼도 함부로 못 덤비게 튼튼하게. 속도도 아주 빨라. 바위든 나무든 다 부수고 거침없이 달리지.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하루, 아냐 밤하늘도 봐야하니까 이틀이면 도착해. 소리도 우렁차, 천둥처럼.”

 “도대체 뭘 떠올리는 거야? 난 상상이 안 가. 세상에 그런 수레 끌 노새도 있냐?”

 “야, 동물이 끄는 게 아냐. 수레가 저절로 가는 거야.”

 마르카가 고개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미가 일어난 김에 책상에서 연필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마르카는 투덜대며 연필을 갖고 와 도로 형제 옆에 나란히 엎드렸다.

 “셋 셀 때까지 형이라고 안 부르면 네 말 안 들어. 하나아…….”

 “형, 고마워.”

 마르카는 동생이 지도에 여러 수레가 붙어 있는 긴 형태를 그리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꼭 검은 지네 같다고 말했다. 발미는 우리가 현실로서 같이 만들면 용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형태로 보일 거라고 호언했다. 그리고 수레 맨 앞 칸에 동그라미 네 개를 그렸다.

 “우리 가족은 특별히 맨 앞에 타는 거야.”

 “좋은데, 왜 네 개야? 세 개 아니고?”

 “바보야, 아빠도 우리랑 같은 수레에 타야지.”

 그쯤, 로비스가 눈을 부비며 다가와 마르카 옆에 바짝 붙었다. 로비스는 여행하면서 늘 허리춤에 단검을 찬 채로 잠에 빠졌다. 마르카가 잘 때만이라도 허리에서 단검을 빼야 자기 편하다고 했지만 로비스는 모험가 기분을 내고 싶다며 고집 부렸다. 대장장이는 투박한 손으로 꼬마의 작은 어깨를 감쌌다. 지도를 가방에 넣고 촛불을 껐다. 별들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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