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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13. 가모네
작성일 : 22-01-03 13:52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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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길을 벗어나니 들풀이 간간이 발에 밟혔다. 바위에 걸터앉은 로비스가 마르카에게 편지 두 장을 건네주었다. 소년이 어머니에게 받은 편지였다. 기지개 켜던 마르카가 그걸 받아들고 뚫어지게 보았다.

 “하나는 누주 말이고 하나는 수도어로 쓴 거야. 엄마는 늘 두 말을 함께 써서 줬어. 내용은 같은데 표현이 달라서 재밌다? 나 이래봬도 두 말쟁이야.”

 마르카는 마른침을 삼키고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얼마 안 가 알게 될 일 미리 알려줄게. 로비스, 나 글 잘 못 읽어. 대략 읽고 쓸 줄은 아는데 이렇게 글씨 가득한 건 잘 못 읽어. 이 중에 어느 게 우리말이고 주인 말인지 구분도 안 가.”

 소년은 얼굴이 빨개진 청년을 잠시 응시했다. 마르카가 고개 드니 눈이 마주쳤다. 로비스가 청년이 두 손에 든 편지를 가리켰다.

 “뒤집어졌잖아, 편지. 그러니까 못 알아보지. 돌려 봐. 그래야 읽혀.”

 마르카가 고개를 저으며 편지를 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발미는 곧잘 글도 익히던데. 어머니는 그래서 발미를 수도로 보냈을까?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리 없는 로비스가 큰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주었다.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아껴주는지 술술 드러내놓고 싶은 투로. 마르카는 문득 로비스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로비스가 같은 질문을 하면 스스로도 답하지 않으면 안 되니 일단 담아두기로 했다.

 

 *

 

 사나흘 내내 길만 걸으니 따분하다고 로비스가 칭얼거렸다. 마르카는 입 안에 대추야자를 두 개나 넣고 오물거리는 꼬마에게 소리쳤다.

 “좀 아껴 먹어!”

 그러게 왜 따라왔느냐고 면박 주기도 지겨웠다. 이 꼬맹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꼴좋다고 놀려대는 게 차라리 속 풀리겠지 싶었다. 마르카는 누주를 벗어난 적이 종종 있지만 로비스는 처음이었다.

 “소야! 소가 운다!”

 마르카도 멀리서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근방에 축사가 있는지 분뇨 냄새도 흘렀다. 마르카가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펴보았다. 지도에 군데군데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위치는 잘 찾을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으면 가모네에 도착해.”

 오래지 않아 돌담길 옆으로 이어진 밀밭이 나타났다. 바람결이 다 익은 곡식을 흔들었다. 한창 추수하느라 농부가 손을 바삐 놀렸다. 한 아름 밀짚 안은 꼬마 여자애가 이쪽을 보자 로비스가 손을 흔들었다. 여자애도 두 손을 흔들었다. 안고 있던 밀짚을 다 떨어뜨렸다. 소년은 여자아이가 혼나는 꼴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

 

 두 초보 여행자는 누주보다 조금 더 넓고 집이 많이 모인 마을에 도착했다.

 가모네. 지도가 가리키는 이곳 지명.

 마을의 집은 모두 돌로 벽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은 형태였다. 마른 풀 냄새가 연기처럼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주민들은 누주에서 온 젊고 어린 여행자를 기쁘게 맞이했다. 추수하기 전 자신들을 찾아와 괴롭혔던 아마미크 화적단을 소탕한 이웃이란 이유였다. 마당 한 가운데 너른 나무 탁자를 놓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웃고 떠들며 식사했다.

 마르카는 먼저 섬세한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마을을 굳게 봉쇄하여 주인의 군대를 기다리기만 했을 뿐, 그저 운이 좋았다고 일축했다. 그는 로비스가 혹여 무기 얘기를 꺼낼까 신경이 쓰였다. 글 잘 읽는 아이는 따뜻하고 향긋한 빵을 입에 욱여넣으며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자기를 어찌나 영특하게 여기나 자랑하는데 바빴다. 마르카가 로비스에게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날 거라고 다그쳤다. 로비스와 마르카의 바로 곁이자 상석에 앉은 가모네의 대표이자 노파, 순모가 웃으며 말했다.

 “누주 청년, 이 꼬마는 배탈 나도록 먹어도 되요. 자네들에게 합당한 식사 자리임을 우리 다시 강조합니다. 이곳이 올해 겪을 뻔한 불행을 누주가 대신 방파제가 돼 주어 막아주었으니까요. 우리 같은 농민을 절벽 끝까지 쫓아내서 절박하게 만드는 게 놈들 수법이지요. 굳이 찾아가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지만 거기로부터 온 손님이라면 감사를 마다하지 않겠어요.”

 새로운 단어를 들은 로비스가 노파에게 물었다.

 “방파제가 뭐에요?”

 “사막 지나서 쉼 없이 줄곧 물 밖에 안 보이는 곳이 있어요. 거길 바다라 하는데, 거 바닷가 마을에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란 놈을 막으려고 바위로 둑을 쌓는다고요. 그걸 방파제라 부르지요.”

 “파도가 어떤 놈인데요?”

 “파도라……. 맹렬한 기세로 이는 물결이라면 떠올릴 수 있을지. 너무 오래전에 가봐서 제대로 밝혀 말하기 어렵군요. 파도를 막아준 방파제가 누주입니다. 이 말은 밝혀 말하지요.”

 로비스는 엄마를 만나면 바다와 파도와 방파제를 배웠다고, 그런 세상도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도 자네들이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픈 손님 맞는 일만큼 골치 아픈 노동도 없거든.”

 누군가 농을 지껄였고 다들 동조하며 크게 웃었다. 마르카도 사람들을 따라 박수 치며 웃다가, 순모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분들도 내일 로세트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용무로 가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식탁에서 가장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한 사람이 지체 없이 답했다.

 “정확히 알고 싶다면, 우리는 수도 근처에 있는 부피라는 마을로 가오. 매해 부피에선 육지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열리지. 몇 번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 갔는데 오랜만에 우시장 돈 좀 쓸어 모으려고.”

 “우시장이면, 소를 사고파는 시장 말씀이세요?”

 “음, 가모네는 밀농사로 먹고 살지만 정말 가치 있는 품목은 소라오. 우리 밀만 먹은 소는 달착지근한 육즙에 씹기 좋은 육질로 평이 아주 좋아요. 밀이 좋아서 소가 많이 태어나는 바람에 즐겁죠, 즐거운데, 우리야 농사에 필요한 소면 충분합죠. 우린 밥통이 작으니까 소고기도 이만하면 포만감 높지.”

 마르카와 로비스는 식탁이 흔들릴 정도로 쌓인 접시를 힐끔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견고하고 세련된 마을로 변화시킬 거요. 그래서 차곡차곡 재산을 모으고 있지. 소와 밀은 잘 키우지만 돌을 쌓고 깎는 근로나, 정교한 예술 작품을 빚는 업은 젬병이거든. 당당한 고용주가 되어 전문가들을 부리려면 재산이 많아야 하잖소?”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의견이 오갔다. 어떤 이는 변화를 원치 않았고, 한 소녀는 지금 마을의 질감과 냄새 그대로 안고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굳이 외래인 앞에서 속마음을 굳이 꺼내 소란을 일으키느냐 핀잔주는 사람도 있었다.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린 마르카가 조심스럽게 순모에게 물었다.

 “로세트에서 마음대로 값을 매기진 않나요?”

 다시 이전의 걸걸한 남자가 술 때문에 얼굴이 벌게진 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가며 한바탕 연설을 퍼부었다.

 “염병할 수도 놈들! 당연히 제멋대로 값을 매기고 가져가죠! 다행히 가까운 조상님들이 싸워준 덕에 고기와 밀은 안 건드리기로 했습디다. 대신 그 해 수확량이 늘면 그만큼 세금을 떼 가긴 하는데, 여느 작당 놈들 보단 점잖지요 뭐. 그리고 누주 청년. 우리는 로세트라 하면 대꾸도 하기 싫소. 가모네에서는 수도를 그냥 수도라 부르오. 이름만 자기 식으로 그 때 그 때 바꿔서 헷갈리니까 이 마을은 그냥 수도로 통칭해요. 수도든 로세트든 예전 이름이든, 어느 패거리든지 눌러앉고 싶은 동네에 지나지 않잖아요?”

 “어떻게 싸우셨나요? 가모네의 가까운 조상님들께서.”

 이번에는 순모가 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자기가 설명하겠다고 일렀다.

 “느긋한 식사도 좋지만 이튿날 일정을 준비해야 하니 간단히 줄여도 좋겠지요? 불행히도 수도는 대대로 우리 소와 밀을 탐냈답니다. 하나만 내어도 고달픈데 피와 살을 다 내놓으란 격이지요. 고민 끝에 수도가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품질로 바치기로 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을 접어두고 다소 게으른 방식으로 양식(糧食)을 기른 거지요. 대단한 수단은 아닙니다. 마는, 가모네의 후손으로서 제 몸 괴롭히는 계책이었다고요. 실지로 모든 기준에 꼭 들어맞는 소와 밀을 헐값에 -어떤 주인들은 아무 대가도 주지 않았는데- 내놓는 일은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세월로나 이치에 지나치게 벗어난 방식이었지. 역으로 가모네는 늘 주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깨닫고 있단 반증이기도 해요. 만족시키는 법만큼이나 실망시키는 법도 잘 알지요.”

 가모네의 대표 장로는 지방이 골고루 자리 잡은 부드러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하찮은 객기로 벌이는 짓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해주는데 적잖은 희생이 있었다오. 제대로 길러내라고 고문도 상당히 당했고……. 죽임도…….”

 평소보다 오래 이야기를 이끈 순모가 얕게 하품하고 눈을 부볐다.

 “겨우겨우 수도에서 가모네의 밀과 소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얻어냈소. 다시 제대로 전통에 따라 농사를 지으려는데 아뿔싸, 고유의 방식도 잊어버리고 일꾼들은 불구자 천지였지. 끊긴 맥 도로 잇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오.”

 순모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마르카는 그녀가 중얼대는 혼잣말을 들었다.

 “수도에 놀러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마는 행여나 다른 목적이 있다면 염두에 두시길…….”

 떨어져 앉아 있던 한 덩치 큰 여자가 노파의 자리로 다가왔다. 그녀는 순모를 업고 여러 초가집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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