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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만가
작가 : 브로컬리
작품등록일 : 2016.10.29

여순반란 사건으로부터 5.18에 이르기까지현대사에 묻힌 전라남도지역의 사람들의 이야기

 
만가03
작성일 : 16-10-29 22:53     조회 : 338     추천 : 1     분량 :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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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년 광복

 

 8월 15일, 아침부터 초조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혜진의 동생 혜숙이 태어난 것이다. 이웃에서 두어 명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출산을 도와주고 있었다. 머잖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금줄 안에서 “딸이요!”란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면 형석이라 부르려 했는데...”

 

 작명했었던 이름을 포기해야 했다. 그의 떨떠름한 표정에 아들이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젠 아들을 더 기대하기도 어렵겠네...’

 

 자신의 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부인의 나이가 만만치 않다. 두 아들과 혜진이 사이에 자식이 이미 둘 정도 있었으나 모두 뱃속에서 유산되었다. 형석이는 그때부터 네 번째 못지은 이름이었고, 이번에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했다.

 

 “인자 고거이 우리 손주 이름이 되어야제...”

 

 하고 체념하려던 찰나, 순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정오 라디오를 들으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정오를 기하여 중대 발표가 있다 하여 경청하려고 라디오가 있는 최첨식의 집에 모여 들었다. 천황의 방송이 시작되었고,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모두들 최첨식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에.. 히로히토 천황이... 거 뭐시냐, 아따 긍께... 저 좌우지간에 무슨 폭탄이 터져서 재난이 어쩌고 허는데, 신민은 잘 받들라고? 대체 이게...”

 “어따, 어르신도 모르믄 누가 안다요?”

 

 평소보다 잡음은 더했고, 일반인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황족어를 썼으며, 내용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불쾌한 문서였다. 해방이나 자유는 나오지도 않았으며,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대들 신민은 짐의 뜻을 받들라.”라는 말로 끝났으니, 우리 없어도 너희들은 말 잘 듣고 있으란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순사들은 그 해 9월 초순까지 계속 칼을 차고 다녔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해방이 되었다고 너무 들뜨진 말란 식이었다.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명의로 된 삐라가 여기저기 비행기로 뿌려진 내용에도 경거망동하지 말란 소리였다.

 

 “참... 웃을 때 못 웃게 허는 건 또 뭐여?”

 “이랄 때나 맘놓고 웃어보제, 니기럴...”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아이들만 광복이라고 하루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닐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일본이 물러가고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마을에는 간만에 여기저기서 잔칫상을 벌여 취할 때까지 마시면서 다들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했다. 아직 배불리 먹지도 못했는데 빼앗긴 밥상 꼴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바람은 어서 빨리 친일파 몰아내고 빼앗긴 땅 찾아내는 것이었으나, 소원대로 되질 못하고 자꾸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8월 6일과 8일에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하고, 8일에 다시 소련이 전쟁에 참가한다는 발표를 하자, 일본은 14일에 항복을 선언했다. 비록 항복은 선언되었더라도 우리나라에 산재되어 있는 무장된 일본군 세력들을 해제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승전국이 아닌 비애였다. 일본이 졌다고 우리가 이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목줄을 죄고 있던 일본이 한 발 물러났을 뿐이었지, 우리는 바닥에 쓰러진 그대로였다.

 

 러일전쟁을 근거로 소련이 먼저 한반도에 진격하자, 미국에서는 수도권이 포함된 지역만이라도 통치하기 위해 소련에 분할점령을 제안했고, 38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포고령 내용으로만 보면 소련은 해방군이었으나, 미국은 점령군으로 이 땅에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천황과 일본국 정부의 명령과 이를 돕기 위해 그리고 일본 대본영의 명령과 이를 돕기 위해 조인된 항복문서 내용에 따라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독립이나 자립, 민주주의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미군정기이다. 미군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친일파를 중용했다. 친일 군경들만큼 잘된 조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통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비민주적인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미군의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소련의 개입도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순 없을 만큼 갈팡질팡이었다.

 

 “미군 포고령 보믄, 영어써야 허고, 일제 재산 보호하라 글고, 명령을 위반하면 죽인다고 되았단디요...”

 

 잔뜩 볼멘 소리로 성균이 아버지에게 말을 전했다.

 

 “쏘련 말이 맞을 지도 몰라요 해방이 중요허제, 어찌 또 친일파들을 군경으로 복직시켜 또 작도리를 한다요? 워메...”

 

 성균은 한숨을 쉬었으나, 아버지는 자식의 한숨소리가 듣기 싫어,

 

 “젊은 놈이 한숨은 무슨... 세상 혼탁할 때도 군자는 굴하지 않고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법이야, 이번에 성균관에서 대학을 세웠다니, 대학에 진학해서 학업을 정진하도록 힘써보거라!”

 

 “이런 시상에 공부혀서 참말로 덕을 베풀며 살 수 있을랑가 싶네요.”

 

 공부하라는 말로 에두르긴 했어도 역시 자식의 생각과 다르진 않았다. 나라가 암울했다. 이런 세상에 자식에게 출세하라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공부하는 게 잘못된 건 아녀,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 했는디, 몸을 바르게 세우는 게 아니라 정신을 바르게 세우는 입신(立神)이어야 하고,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라 밝음을 알리는 양명(揚明)이 되어야 할 것이야!”

 

 조선 시대부터 출세라고는 정치판에 드는 일 말고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출세와 정치를 동일하게 여길 정도였지만 성균은 그게 싫었다. 조용한 성격으로 영락없는 교사 체질이었다. 성균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균관 대학으로 진학했으나, 서울 생활에서 얻은 폐렴 때문에 요양도 할 겸 잠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산 윤윤기(1900~1950)를 만나 그의 교육철학에 감명을 받아 보성의 양정원에 들어가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양정원 운영이 어렵게 되고, 학산이 정치적으로 바빠져 얼마 못가 폐교하게 되자, 성균은 함께 교사를 하던 여수 친구의 고향 집에 들어가 야학을 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원래 부산이 고향이었으나, 여수항 부근에서 인부 몇 명을 데리고 공장을 자그마하게 차려서 운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럭저럭 공장도 경영하고 포목점도 운영하며 괜찮게 살고 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여동생 허금선이 공부가 부족해서 야학에 온 게 아니었고, 그의 오라버니가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여동생을 끌어들인 게 아니었다. 여수로 데려오기 전부터 목적은 따로 있었고, 성균이 온 첫날부터 여동생은 마음이 설레었으며, 성균 역시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혼인은 성사 되었다. 어수선한 세상인지라 사돈 간에 왕래도 별로 못하고 혼인식에 맞춰서 인사만 드리러 갔을 뿐이었고, 다른 식구들은 여순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가업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여순반란 사건은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전라지역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성균과 그의 처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동네를 떠났지만 이미 어둠의 그림자가 그들을 따라왔다.

 

 “저그 저 최씨 집안 장남이 여수서 왔다고?”

 “허! 거시기 야학도 해브렀다든만?”

 

 따지고 보면 전혀 잘못한 게 없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부부에 대한 소문을 악화시켜갔다.

 

 “야학해서 노동자들을 선동시켜서 반탁이랑, 거시기 그런 거 했다고?”

 “성균이 그 놈 똑똑헌 줄 알았더니만 순 악질이구마이...”

 

 봉철은 그들의 말을 듣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일해주고 밥이나 먹으면 그냥 다 된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일은 혼자 다 하고 밥 먹을 때면 동생을 데려와 함께 먹는 게 다였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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