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림자의 무게
유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새 결심한대로 율에게 법정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유나는 꼭 백 살이 된 노인 같았다. 유나는 스스로 괜찮을 거라고 다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매일 아침 괜찮을 것임을 되뇌어야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유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유나와 율은 용케 텅 빈 법정을 찾아내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유나는 지금 증인석에 율은 방청석에 앉아있다. 유나는 이제 팔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고 다리는 목발을 짚으면 거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율은 들어온 문을 힐끔거리며 유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여길 왜 오자고 한 거야?”
율은 당장이라도 저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올 것 같았다. 물론 평소 같으면 이 정도의 모험은 언제든 환영이었지만 법정이라는 곳이 왠지 율을 작게 만들었다. 게다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리도 성치 않은 유나를 데리고 달릴 수도 없는 일이아닌가. 하지만 유나는 이런 율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율의 물음에도 별 설명 없이 증인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율에게 증인석에 앉아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유나는 절뚝거리며 방청석으로 향했다.
“뭐 하냐 너?”
율은 유나가 시키는 대로 증인석에 앉으면서도 유나가 재판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걱정했다.
유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거기 말이야. 그 자리! 나 이제 곧 거기 앉아야 하니까 실은 오늘 연습 온 거야.”
율은 유나의 말에 증인석이라고 써진 팻말을 만지작거렸다. 그사이 유나는 속마음을 토로했다. 그동안 몹시 무섭고 외로웠단다. 어쨌거나 스무 살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려줘 영상이 터진 후로는 두 살배기가 된 것처럼 엄마를 찾게 되었단다. 남들이 있건 말 건 두 살 때처럼 슬프면 슬픈 대로 목 놓아 울고 싶었단다. “그러지 그랬어.”
유나가 안 되었으면서도 그동안 섭섭함을 감출 길이 없던 율은 너무나 간단히 그렇게 말해버렸다. 유나는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그러더니 아프다고 말하면 더 아파질까봐 말을 못했단다. 그런데 그렇게 꼭꼭 아픔을 가슴 속에 묻어두니까 마음이 곯더란다. 그런데 그런 심정으로 이제 조금 있으면 자신의 슬픔이 왜 온당하고 정당한지 증명해야 해서 사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란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율, 너도 자신 때문에 그런 일들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단다.
유나는 뜬금없이 율에게 자백할 말이 있다고 했다. 유나의 말에 율의 눈이 커졌다. 율은 성폭행에 이어 혹시라도 유나에게 숨겨둔 애라도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입에 담을 수도 없어 유나가 입을 열기만을 바랐다.
유나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손은영 기자가 널 찾았을 때 말이야. 사실은 네가 나대신 그 짐을 짊어줬으면 했어. 미안.”
유나는 자신의 아픔만 바라보느라 잠깐이지만 자기대신 똥물을 뒤집어 쓴 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똥물을 쓴 채 학교에, 경기장에, 집에, 혼자 내버려둬서 정말 미안했단다.
율은 유나를 바라보며 손끝으로 앉은 자리만 매만졌다. 자기가 유나에게 가졌던 생각이 왠지 부끄러워서이기도 했고 그 전에 유나에게 쏟아냈던 말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망측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유나에게 들었던 서운한 감정과 알 수 없는 화들이 뭉쳐 율로서도 유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링에서도 학교에서도 도대체 알려주지 않는다.
증인석은 그동안 수만의 사람들이 앉은 듯 매끄러웠다. 의자에 편안함이나 온기도 전혀 없었다. 율은 유나에게 제일 필요한 게 안락함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했다.
말을 마친 유나는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법정에서 그러고 있는 유나를 보고 있자니 율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그러게. 너 아주 못됐어!”
유나는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여전히 발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율이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근데 나도 너 못지않으니까 우리 다시 친구하자!”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앞에 율의 까무잡잡한 손이 보였다. 운동과 편의점의 노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손이었다. 유나의 하얀 손이 율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푹푹 찌는 날씨, 유나는 2회 공판기일을 앞두고 엄마 아빠에게 외식을 제안했다. 모두에게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벌써 며칠째 아빠와 유나는 증인석에 앉아 있을 순간을 미리 시뮬레이션 하고 있었고 엄마도 저점 2회 기일을 앞두고 입으로는 희망을 외쳤지만 낯빛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오근찬은 유나의 제안이 기쁜 듯 이런 날은 냉면이 제격이라며 평양냉면을 잘 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유나는 속으로 아주 매운 떡볶이나 쫄면이 먹고 싶었지만 얼음이 동동 들어간 냉면 국물도 나름 해안이 되겠다 싶어 아빠의 뜻을 따랐다.
상가 지하에 자리 잡은 냉면집 간판에는 큰 한자가 쓰여 있었다. 유나는 그중에 맨 첫 자와 끝 자만 읽을 수 있었다.
“을, 대! 중간은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율의 물음에 오근찬은‘밀’이라고 답했다.
“오, 아빠 한자 잘한다!”
“그럼 너희 아빠 변호사인데 저런 한자 정도야 뭐.”
엄마의 말에 유나는 순간 머릿속에 어려운 수 십 가지의 글자들을 한꺼번에 물으며 아빠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빠가 잘난 체한 게 아니었으므로. 유나는 아직도 왜 엄마만 보면 조금씩 화가 나는지 자신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싫은 구석이 있다. 그런 감정은 엄마가 뭔가 아이처럼 굴 때,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더 거세게 들었다. 엄마가 자기를 위해서 애쓰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건 늘 엇나갈 때가 많았다. 유학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엄마는 여전히 재판이 끝나면 유학을 가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유나의 눈에 엄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숨거나 포장하고 싶어 하는 기질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엄마를 대할 때마다 유나의 굳건했던 마음도 흔들리기기 일쑤였다. 유나는 그런 자신도 엄마도 싫었다.
“물냉면 세 그릇 나왔습니다.”
점원이 물속으로 사르륵 얼음이 녹아내리는 냉면을 유나 앞에 놓이는 순간 달아오르던 유나의 마음도 조금은 식어갔다. 유나는 냉면이 나오자마자 후루룩 육수부터 들이켰다. 몸속으로 냉기가 확 퍼졌다. 아빠는 이곳이 벌써 이 대째 평양냉면만 파는 곳이라고 했다. 고기를 육수로 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뒷맛도 좋았다. 역시 정성이 담긴 음식은 사람 기분을 좋게 한다. 유나는 냉면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 앞에 할이 서 있었다. 할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듯했다.
“누구니?”
아빠의 물음에 유나는 주머니에 있던 전기 충격기를 내밀었다. 할이 유나에게 준 이후 늘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이거 주인!”
아빠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네 친구구나? 이름이 뭔가?”
유나는 갑자기 바뀌는 아빠의 말투에 속으로 웃음을 지었지만 아빠의 물음에 손마디가 허예질 때까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할을 보며 곧 표정이 굳어갔다.
“제가 봤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할에게 쏠렸다. 할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세 사람의 표정에 자리를 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할도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제가 동영상을 찍은 사람입니다.”
핵폭탄이 터졌다. 유나는 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할이 모든 사건의 범인이라는 듯. 할은 유나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해. 그때 우연히 지나가다가 넌지 모르고…….”
유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피가 날 정도였다. 유나는 계속해서 할을 노려봤다. 계속 계속. 할은 유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할은 화실에서도 늘 저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자기의 그림자처럼 항상 뒤에 있거나 아무도 모르게 벌벌 떨고 있었다.
“거짓말.”
유나는 조용히 할을 지나쳐 집으로 올라갔다. 엄마도 유나를 쫓았다.
할과 오근찬만 여름밤 달빛을 맞으며 남았다. 오근찬은 할의 멱살을 잡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물었다.
“정말이야? 그럼 영상도 네가 올린거야?”
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영상을 올린 건 자기가 아니란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누군가 올렸다는 것이다. 오근찬은 할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속으로 가늠했다.
“ 그럼 혹시 그때 범인의 얼굴을 봤니?”
할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말해 봐.”
오근찬이 할의 양팔을 꼭 부여잡고 흔들었다.
“도망치느라 못 봤어요. 하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부탁이에요. 제가 유나를 위해서 뭐라도 하게 해주세요.”
오근찬의 손에 힘이 탁 풀었다. 그리고 이 녀석을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할의 눈의 진진함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한테 아무 소용도 없는 사람이야. 그만 가봐. 다신 유나 옆에 얼씬도 하지 말고!”
오근찬이 사라지자 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 번도 더 연습한 말이었는데 머저리같이 덜덜 떨기만하다 유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못 전한 것 같았다. 할은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없었으므로.
아침이 밝았다. 삼 일 후면 진실공방의 날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것에 유나의 엄마 서정은은 불안한 가슴을 안고 텅 빈 집에서 아이패드를 붙들고 있었다. 유나는 율이 운동을 시킨다고 데리고 나가고 남편은 서류더미를 잔뜩 안은 채 검사 사무실로 향한지 한 시간이 넘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서정은에게 틈틈이 성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들썩이는 언론 때문에 국회가 특별법 제·개정을 남발하고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서로의 밥그릇싸움을 하느라 애먼 성범죄 처벌 규정만 날로 복잡해져간다고 토로했다. 형법과 특별법으로 나뉜 성범죄 처벌 때문에 법조인들도 표를 그려놓고 적용법규를 찾는단다.
“그래서 그게 유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복잡한 설명을 간단하게 묻는 서정은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안 좋은 영향”이었다. 서정은은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손에 잡히는 대답이 왔으면 했다. 아니면 위로라도 좋았다. 하지만 논리적인 오근찬에게 그걸 바라는 자체가 무리였다. 서정은은 이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딸의 사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그녀는 일만의 희망을 품은 채 아이패드를 꺼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