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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도전! 에스퍼 리그
작가 : 은백
작품등록일 : 2016.10.28

수십 억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초능력 배틀 스포츠!
그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소년소녀의 작고 거창한 이야기

 
행간 - 천사의 추락
작성일 : 16-10-28 21:10     조회 : 428     추천 : 0     분량 : 8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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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의 발을 물어뜯을 수 있다.

  잔혹한 군인의 총구에 겨눠진 비무장 민간인도 주먹을 휘두를 여력은 있지.

  토끼에게도 사자를 골릴 꾀는 있으며, 항상 절대적인 최강자로 군림하는 존재란 없다.

 

  그래.

 

  까마득히 높은 벽은 있을지언정,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은 없다고 줄곧 믿어왔고,

  엘피스 또한 나한테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걸로 89 대 0! 출기제승!”

 

  내 유약한 등이 콘크리트와 고인 물이 만들어낸 2단 노면 위로 추락했고 허파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시야를 은은히 물들이고 있던 주황 색채가 마치 약이 다된 백열등처럼 깜박이다가 수명을 다했다. 그러자 탁한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시그마의 렌즈 너머로 음침한 잿빛 안개가 가득한 공원의 전경이 드러났다.

 

  거기에다, 옅은 하늘색의 단발머리에 비췻빛 눈동자의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건네고 있다. 승리감에 젖어 환희에 싸인 저 순수한 미소는 내가 평생을 걸려도 따라잡기 힘든 묘기일 것이다.

 

  페이트. 이 얄미운 천재 녀석.

 

  “뭐해, 아더? 일어나. 또 하자! 건곤일척!”

  “이런, 또?”

 

  잔인하기도 하셔라. 난감한데.

 

  “당연하지, 인마! 헤일로 비전이 뭐라고 생각해? 이겨도 한판 더! 져도 한판 더! 그게 헤일로 비전에 임하는 에스퍼의 모토이자 신념 아니야? 권토중래!”

  “그건 그냥 고집인데. 넌 계속 이기기만 하니까 그런 배부른 소리가 나오지.”

  “불문곡직! 문답무용! 자, 빨리 빨리!”

 

  아무래도 내가 오리주둥이를 한 채 내뱉는 볼멘소리 따윈 시원하게 흘려듣는 모양이다. 이렇게 민폐덩어리인 낙천주의도 찾아보기 힘들 텐데.

 

  그렇게 난 또다시 비오는 날의 샌드백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분해…….”

  “앙? 남자애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게 무슨 말이야? 이해불가!”

 

  창피하게도 절로 목이 메이고 슬슬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나왔다. 반면에 페이트는 무신경하게도 옆에 다소곳이 앉아 주먹밥 도시락만 축내고 있었다. 먹성 좋은 건 괜찮은데 그 중 하난 내 거라고 이 하마야. 다 먹지 마라.

 

  “매일 져서 그래? 푸핫, 보기보다 너 되게 여리구나?”

  “넌 패배란 걸 안 당해봐서 그래!”

 

  에덴 보육원의 앞뜰에 자리한 간이 참나무 공원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페이트와 대련을 시작한지도 어연 몇 년째. 해가 쨍쨍한 날이나, 오늘처럼 습하디 습한 우기나, 내 야심찬 도전은 때를 가리는 법이 없었다. 물론 결과는 항상 일방적이었지만.

 

  “저기, 아더.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뭔데.”

 

  페이트는 내 퉁명스런 기운이 밴 대답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잠시 주춤하다가, 이렇게 나지막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패배라는 거…… 힘들어? 많이 아파?”

  “지금 나 놀리는 거냐?”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콧대가 이제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성층권까지 뚫을 기세네.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위협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이자 페이트는 그제야 손을 홰홰 내저으며 늦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아니아니, 그런 의미가 아냐! 모의봉격!”

  “그럼 뭔데? 실컷 떠들어봐.”

  “사실은 말이야, 나 가끔 무서운 거 있지.”

  “무서워?”

 

  작년 원내 납량특집 이벤트에서 감쪽같이 귀신으로 분장한 엘피스 얼굴을 신나게 밟아대던 너도 무서워하는 게 있었냐.

 

  “우리 보육원에서 헤일로 비전 프로 선수로 장래희망의 가닥을 잡은 아이는 우리 둘 밖에 없고, 엘피스도 원래 그쪽에서 현역으로 뛰던 경력이 있다 보니 암암리에 전폭적으로 밀어줬잖아. 그래서 나한테 있어서 변변한 대전 상대는 엘피스랑 너밖에 없었고,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잖아. 불패신화.”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미칠 듯한 재능을 타고 나서 그렇지.”

  “그, 그게 무서워.”

 

  페이트가 뜬금없게도, 대하는 입장 난처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빨갛게 상기된 뺨, 그렁그렁 맺힌 눈물로 봐서 어설픈 연기는 아닐성싶다. 왜 이러냐?

 

  “일이 잘 돼서 프로로 데뷔하고 무대로 나아가면 엄청난 선수들이 많겠지? 현역 때도 2류에 그쳤던 엘피스보다도 훨씬 강한 적들이……. 그럼 나 분명히 몇 번은 질 거 아니야.”

 

  정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어째 대답이 궁하네.

  페이트가 씹다 만 밥알이 타액과 섞여 질질 흘려 추한 몰골을 자아냈지만 신경 안 쓰는 모양이다. 가질 건 다 가진 주제에, 뭐가 그렇게 간곡하고 두렵고 처절할까.

 

  “지기 싫어. 지는 게 무서워. 너무너무 무서워. 비록 이기적인 생각 같지만, 철없는 응석 같지만, 딱 한 번도 지기 싫어. 그게 누구든. 일류 선수든, 챔피언이든……. 한번이라도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간 그동안 품어왔던 열정과 목표성이 산산조각날거 같아.”

  “…….”

  “그래서 내심 한번쯤은…… 차라리 너나 엘비스한테 져봤으면 하고 바랬는데……. 그럼 처음부터 나는 질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는 걸 알고,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머리로는 그 사실을 이해해도, 가슴이 인정을 못해서 먹먹하기만 해…….”

 

  여러 의미로 말문이 막혔다. 이건 페이트 말마따나 놀리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의미의 상담 요청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상대가 나일까. 엘피스라면 훨씬 친절한 대답을 해줬을 텐데. 바보 같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상하고, 친절하게.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비록 그 정확도는 보장 못하지만.

 

  미안하지만 페이트.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이거 하나다. 단순무식해서 미안.

 

  “이 멍청아!”

  “응?”

 

  그런데 거짓으로 쥐어짜낸 소리임에도 나도 모르게 격분해있었다. 마치 좀 전까지의 평온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양.

  어쩌면 이게, 내가 페이트 앞에서 꺼낸 말 중 제일 진솔한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내가 강해지면 되잖아!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널 보란 듯이 쓰러뜨리면 될 거 아냐! 일절의 변명의 여지도 없이 속 시원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도 바보였을까. 왜 이 녀석 따라 목이 메지?

 

  “나한테 지기 전까지, 그 누구한테도 지지 말라고! 알겠어? 얼마 안 가 철저히 박살을 내줄 테니까! 그딴 팔자 좋은 고민 따윈 내버려! 재수 없는 자랑질 좀 그만하고!”

 

  응원? 도발? 격려? 도전? 아니면 혹시 전부일지도.

  페이트는 그 본의조차 모호한 내 외침에, 참 녀석 답지 않은 태도를 내보였다. 다소나마 의외라는 구석은 단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예상대로의 반응이라는 듯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고마워. 만장생광.”

 

  오히려 벙 쪄서 할 말을 잊은 쪽은 나였다.

 

  “기대하고 있을게. 꼭.”

  조금은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그리고 그 약간의 배신감은 전조도 없이 터진 대형사고로 인해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그건 단지 외부에서 뜬금없이 굴러들어온 폭탄이었을까, 아니면 혼자 조용히 카운트를 세고 있었을 시한폭탄이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엘피스? 페이트가 보육원을 나갔다고?”

  “너 인마! 언제까지 원장한테 반말하는 버릇 안 고칠― 푸웍!”

  “그런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쓸 만큼 가벼운 사태가 아니잖아!”

 

  벼락을 맞고 일어난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아침이었다. 난 엘피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뭉개면서 나머지 손으로 누릿한 종이에 인쇄된 글귀를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엘피스의 까끌까끌한 수염의 감촉이 거슬렸지만 이내 잊었다.

 

  「친애하고 유능한 에덴 보육원장 엘피스에게, 그동안 많은 은혜 입은 페이트가 글줄 남깁니다. 그동안 다른 애들 눈 피해서 저 같은 꼬마 가르친다고 굉장히 고생 많으셨네요. 물론 그 못지않게 제 고생도 많았죠. 그 형편없는 수업에 질려서 실력은 맴돌기만 하고, 무의미한 세월만 보냈으니까요. 덕분에 트라우마가 생겼지 뭐예요? 연습만 했다 하면 이기고, 배울 여지가 없다보니 패배도 자연히 모르게 되다보니 이젠 날로 먹는 승리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더군요. 그러다 우연히 저한테 몰래 러브콜을 보내온 프로 팀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패배가 두려워진 저한테 무조건적인 승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으로요. 그 수단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 않겠지만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줄곧 말해왔잖아요? ‘원생들이 이 가축우리, 베이스캠프 같이 비좁은 보육원에서 나가 성공하는 게 원장으로서 가장 큰 기쁨’이라고. 자기 소신도 마음대로 굽혔다 폈다 할 만큼 경박한 남자는 아니라고 믿어요. 아, 대면 인사는 일부러 실례했어요. 당신 얼굴만 보면 괜히 그 아이가 떠올라서 가슴 한편이 불편해지더라고요. 조만간 그 아이랑 에스퍼 리그에서 만나봤으면 좋겠네요. 어느 쪽의 길이 옳은지 스스로도 궁금하거든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장난이지?”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왼손바닥 너머의 입술이 옴짝달싹하는 감촉으로 보아 엘피스가 뭐라고 하는 모양인데 옹알거려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렇지? 이거 장난이지? 몰래카메라지? 도대체가 이건 어떻게 된 일이야!”

  “푸하! 이 몸한테 손이나 떼고 말해라, 무례한 자식아! 푸페페! 더럽다!”

  “페이트는 이렇게 험한 말 함부로 지껄이는 애가 아니라고! 내가 아는 페이트는……. 겸손하지 못하고 조금 건방진 끼가 있긴 해도 훨씬 인간적이고, 가까이 하기 쉬운 녀석이었단 말이야!”

 

  양손이 타겟이 이번엔 엘피스의 멱살로 바뀌었다. 사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맴도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입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내뱉고, 손발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이런 반응이 나온다. 일체의 가식도, 위선도, 과장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느낀 대로 드러낸 감정이란 이토록 추잡한 거였나.

 

  “엘피스는 뭐한 거야! 진짜 이런 편지 한 쪼가리만 덩그러니 놓인 거야? 혹시 눈앞에서 페이트가 떠나가는데 멍하니 지켜만 본 건 아니고? 앙? 진짜야? 진짜냐고!”

  “…….”

  “말이 없는 걸 보니 맞잖아! 왜 그런 거야! 책임감도 없이! 나는 물론 페이트까지 훌륭한 에스퍼로 성장시켜서, 제13지구 최고의 명문 팀 마스터즈 플랜의 어엿한 1군 멤버로 들어가도록 지도해주겠다고 한 게 누군데! 자기 마지막 두 개의 희망이라고 잔뜩 비행기 태워놓고는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놓아버리기야? 페이트를 왜 안 말린 건데! 왜! 도대체 왜!”

 

  그 순간, 거친 타격음과 함께 오른뺨의 신경계가 불타는 듯한 통각이 밀려왔다. 난 볼품없게도 그 한방의 일격에 모든 힘을 잃고 바닥에 내꽂히고 말았다. 그나마 보육원 전체를 통틀어 난방이 제일 잘된 원장실의 바닥이지만, 허구한 날 페이트 앞에서 쓰러져 등을 맞댄 공원의 바닥보다 훨씬 차갑게만 느껴졌다.

 

  내 안면을 거칠게 강타한 엘피스의 주먹은 이번엔 반대로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숨이 턱 막히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열은 이만 식히고 이 몸의 말을 잘 듣거라, 아더.”

 

  갑자기 웬 진지한 척이냐고 클레임을 걸려던 내 움직임이 딱 멈췄다. 날 똑똑히 바라보는 엘피스의 눈동자에서 거칠게 풍겨 나오는 오오라는, 그동안 장난 끼 가득했던 그 낙천주의자의 그것이 절대 아니었다.

 

  “부분적으론 네 말이 맞다. 이 몸이 인정할게. 원래 페이트는 이 쪽지 하나만 남기려 했지만 이 몸은 그 뒤를 잡았지. 그리고 말 몇 마디만 나누고 그냥 놔줬어.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거기까지 가보니 되돌릴 마음도 생기지 않더구나.”

  “켁켁, 어째서?”

  “아더, 이 몸이 독심술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 아이가 하필이면 그날, 그런 맘을 먹고 에덴 보육원을 떠날 줄 알았을까?”

 

  성대 결절도 아닌데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애당초 내 반응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지 엘피스의 자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처음부터 페이트는 글러먹은 아이였어.”

  “……!”

 

  뭐라고?

 

  “페이트는 천재였단다.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야. 그 무시무시한 잠재 능력까지 치자면 제13지구 역대 최강의 선수로 칭송받는 패러독스 다음이야. 이 몸은 그 아이를 지도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오래 알아볼 수 있었지. 그런데 페이트는 본성은 착했을지언정, 결정적으로 겸손할 줄을 모르는 성격이었어. 오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보다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에 앞서 이해 자체를 못하는 아이였지. 대련 상대가 설령 우리가 아닌 일류 프로 선수였다 한들 이 단점은 상쇄하기 힘들었을 거야.”

 

  말과는 다르게, 엘피스의 얼굴에선 씁쓸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종양을 털고 일어난 암 환자마냥 개운한 모습이다. 그래서 더 충격이다.

 

  “페이트는 자멸할거야. 본선에서. 모종의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아이는 이 판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불가능이야. 제2의 패러독스가 될 수 없다고.”

 

  엘피스는 내 멱살을 놓아주고는 원장실의 구석에 자리한 목제 테이블에 걸터앉아 깍지를 꼈다.

 

  “그리고 하필이면 페이트가 떠나는 시점이 오늘이었던 이유. 그건 드디어 페이트를 뒤흔들 만한 힘과 매력을 동시에 갖춘 놈들이 접선을 시도했기 때문이지. 아마 놈들은 페이트의 재능을 마구 잡아 휘두르면서 단물을 있는 대로 빼낼 거다. 정작 페이트 본인은 그걸 모르겠지.”

  “그놈들이 누군데?”

  “장차 알게 될 거야. 벌써 알기엔 이르단다.”

 

  엘피스는 여기저기 구겨져 볼품이 없어진 양복의 가슴주머니에서 담배 개비와 라이터를 꺼내들고 조용히 불을 붙였다.

 

  “아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바깥세상은 거칠기 그지없어. 이 몸이 여기 아이들을 내심 빨리 내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 비유를 하자면 바늘과 풍선의 관계랄까? 누구나 장대한 꿈을 품고 크게 성공하고 싶어 하지. 그 꿈은 무한정 거대해지고 싶은 풍선의 소망과도 같아. 하지만 ‘현실’이라는 바늘이 사방에 빼곡이 진을 친 채로 풍선을 기다리고 있어. 계속해서 커지다간 어느 한 군데가 바늘에 닿아 뻥 하고 터지고 말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서슬 퍼런 바늘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기에 적당한 시점에서 현실과 타협이 필요하지. 처음부터 크게 부풀어 오를 생각이 없다면 아예 터질 일도 없을 테고, 그렇다 한들 바늘에 찔려 조각 조각난 풍선보단 상황이 나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그건 비겁한 변명이야!”

 

  도저히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또 멱살을 잡히거나 한방 먹어도 상관없다. 이대로 페이트와의 이별, 엘피스의 설득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목숨보다 귀중한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에 휩싸여 아무 것도 못할 것만 같았다.

 

  “난 이대로 페이트를 놔둘 수 없어! 녀석이 이대로 챔프를 먹든, 엘피스 말대로 몰락하든 말이야! 몇 년이나 함께 한 친구로서, 에스퍼 리그를 같이 바라본 동료로서 페이트를 구원해보겠어! 꿈이 풍선이고, 바늘이 현실? 그러라고 해! 그럼 나는 바늘에 찔려도 터지지 않는 풍선이 되겠어! 까짓것 안 되면 스카치테이프라도 덕지덕지 붙이지 뭐! 만약 내 방식도 페이트처럼 엘피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대로 떠날 거야!”

 

  나는 조용히 눈을 질끈 감고 심판을 기다렸다. 꾸중이든, 폭행이든, 내버림이든,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었다. 이대로 엘피스와 인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감안하겠다.

 

  나한텐 엘피스도 소중하고, 페이트도 소중해.

 

  하지만 말이야, 끝까지 일탈하려는 제자를 붙들어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스승은 필요 없고, 단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몰락해가는 동료는 눈 뜨고 볼 수 없어! 그런 스승이 있다면 기꺼이 내버릴 테고, 그런 동료가 있다면 얼마든지 구원해내고 말테다!

 

  “하하하하하.”

 

  목제 테이블에 앉은 장년 남성에게서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어린 아이를 얼레거나 회유하기 위한 수단적 웃음이 아니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본질적인 이유조차 없는 순수한 웃음이.

 

  “정말이지, 멋진 어리석음이구나. 이거 미처 예상도 못했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야.”

  “뭐?”

 

  나로선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볼썽사나운 양반이 내가 눈을 감은 틈을 타서 약주라도 한 잔 했나?

 

  “페이트를 대어로 봤는데, 그저 부록으로 여기던 놈이 훨씬 거물이었다니 대단한 반전인걸. 하하하, 하하하하하!”

 

  실없는 헛웃음만 연신 내다가 갑자기 낫빛을 고친 그 남자는 엘피스가 아니었다. 마치 엘피스의 껍질을 쓴 또다른 존재처럼 색다른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럼 네가 이 몸을 대신해서, 마저 불어다오. 「에스퍼 리그 우승」이라는 이름의 풍선을 말이야. 물론 터뜨리면 책임질 마음가짐은 돼 있겠지?”

 

  물론 이쪽이 진짜 엘피스라면 나로선 대환영이다.

 

  “응!”

  “좋아. 그럼 기념으로 특별히 너한테 궁극의 스킬을 전수해주지. 아마도 페이트는 죽었다 깨어도 성공하지 못할 거다. 나도 현역 시절 끝내 완성시키진 못했지만, 넌 어쩌면 해낼 수도 있겠구나.”

  “우와! 그 스킬의 이름이 뭔데?”

 

  엘피스는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고 위세등등하게 외쳤다.

 

  “이름하여, ‘크로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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