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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 '날'에 베이다
작가 : 셰리프a
작품등록일 : 2016.10.26

서른을 코 앞에 둔 은동명은 수십억의 빛과 출구없는 사랑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고있다.
어느날 백장미에게 속아 술에 취한채 국화랑과 원나잇스탠드를 하게 된다. 비록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국화랑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은동명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남자 정의와 정의의 범법행위를 뒤쫒고 있는 국화랑 그리고 그들의 삶속에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은동명, 그들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의 평화롭던 어느 날 저녁, 몇 방의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6
작성일 : 16-10-28 01:31     조회 : 390     추천 : 0     분량 : 7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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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자신을 화랑이라고 소개한 촌스러운 뿔테 안경의 남자가 동명을 안내한 곳은 도시락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8층짜리 상가 건물이었다.

 화랑은 노후하고 좁은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한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서슴없이 8층 버튼을 눌렀다.

 

 “여기 있을까요?”

 “그럴 겁니다.”

 

 동명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호신용 스프레이를 꼭 움켜쥐었다. 일단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정말 여기 맞아요?”

 “네”

 

 건물 제일 위층인 8층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어둡고 음침한 것이 마치 어릴 적에 놀러갔었던 유원지에 급조된 유령의 집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래층의 사무실들과는 달리 주거용으로 개조된 8층에는 단 하나의 입주자만이 있었는데, 그 입주자가 걸어놓았음이 분명한 간판에 그녀는 또 한 번 뜨악했다.

 

 <우주와 교신하는 생명체들의 모임>

 

 이런 수상한 간판을 단 쑥쑥한 장소에 과연 백장미가 있을까?

 의심에 휩싸인 동명이 주저하는 사이 화랑은 익숙한 태도로 수상한 간판 아래에 달린 인터폰을 눌렀다. 그리고는 동명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옆으로 떨어져 서주시겠어요. 모니터에 잡히지 않게요.”

 

 화랑은 여전히 ‘도시락전문점 프린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벨을 누른지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일분이 지났다 그리고 또 다시 일 분.

 하지만 그는 다시 벨을 누르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참다못한 동명이 참견을 하려는 찰라,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철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깜짝이야! 도대체 저게 뭐야?’

 

 한 뼘 정도 열린 문틈으로 갑자기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란 동명은 간신히 비명을 삼켰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피자 문틈으로 나온 손 안에 몇 장의 지폐가 들려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여셔야 도시락을 드릴 수 있는데요.”

 

 화랑은 이 상황이 익숙한지 여상하게 말했다. 문 안쪽에서 팔만 내밀고 있는 사람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냥 문 앞에 둬요.”

 “하지만 주문하신 도시락이 맞는지 확인해주셔야 합니다.”

 “됐어요.”

 

 뭔가 나른하고 음침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화랑은 주문하신 도시락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셔야 한다며 버텼다.

 동명은 황당한 기분이었다. 백장미가 이런 곳에 있을 턱이 있나? 괜한 짓에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짙어지는 순간이다.

 

 “야! 너 뭐해? 도시락 받으러 나가더니 아예 도시락을 만들고 있냐?”

 

 시원하게 쭉 뻗은 하이 톤 목소리가 문 밖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문 밖으로 나와 있던 팔이 움찔 떨렸다.

 

 “빨리 가져와.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재촉하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팔의 주인이 팔을 아래로 내리더니 체인을 풀기 위해 문을 안으로 당겼다 다시 열었다.

 문이 삼분의 일쯤 열리는 것을 지켜보던 동명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문손잡이를 힘차게 밖으로 잡아 당겼다.

 

 “우왁!”

 

 팔의 주인이 괴상한 비명을 울리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동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신을 잔뜩 골탕 먹인 주제에 느긋하게 밥타령이나 하고 있는 백장미 때문에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어? 어!?”

 

 동명의 느닷없는 습격에 백장미도 좀 놀랐는지 입을 벌린 채 어버버 거리기만 했다.

 그녀는 막 샤워를 했는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고 짧은 배스가운만 걸친 채였다. 동명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백장미가 얼른 표정을 고치며 배시시 웃었다.

 

 “어머! 동명이 아니니? 안 그래도 지금 막 전화 하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어련하시겠어요.”

 “얘!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오늘 돌아가려 했다니깐. 정말이야.”

 

 동명은 백장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다 거짓말일 테니.

 

 “장 감독님에게는 연락했어요?”

 “흥! 그 꼰대한테 내가 왜?”

 

 동명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연락도 없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요?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어쩌긴. 나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라도 있대?”

 “언니......, 촬영 펑크 내면 얼마나 손해가 큰지 몰라요? 참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그래요? 또 뭣 때문에 심사가 뒤틀린 거냐고요?”

 

 백장미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화사한 얼굴을 찡그리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울 동명이 때문에 그런 건 아냐. 알지? 내 마음?”

 “됐거든요!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던 사람은 이미 3년 전에 사라졌다고요.”

 “치, 너는 그 순진하고 귀엽던 때가 좋았어. 지금은 닳고 닳은 아줌마 같아서 싫어.”

 “네, 네. 아무튼 잔말 말고 옷이나 입어요.”

 “왜?”

 “촬영하러 가야죠.”

 “싫어!”

 

 백장미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마룻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알몸 위에 짧은 배스가운만 입고 있던 백장미의 치부가 훤히 드러났다.

 아무리 같은 여자라지만 똑바로 쳐다보기에 심히 자극적인 광경이다. 동명이 얼른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백장미가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얘는, 매일 마다 보는 몸인데 새삼스럽게.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매일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절대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내 몸도 자세히 안 본단 말이에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네 몸에서 자세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게 뭐 있기나 하니? 납작 가슴에 밋밋한 엉덩이와 기아 수준의 일자 허리뿐인데.”

 

 백장미가 동명의 아픈 곳을 송곳으로 찍어댔다. 동명이 사나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수박만한 가슴 때문에 요통으로 고생하는 아무개씨보다야 제가 훨씬 더 낫거든요. 전 요통도 변비도 없는 아주 건강한 몸이라고요.”

 “흥! 몸만 건강하면 뭐하니? 서른이 코앞인데 남자 하나 없이 마냥 독수공방 신세면서. 그렇게 자랑하는 건강한 몸뚱아리는 뒀다 어디다 쓸려고? 응? 그건 뭐 관상용이야? 신주단지처럼 모셔만 두게. 그러다 거시기에 거미줄이나 안칠지 걱정이다.”

 

 동명이 이를 바드득 갈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 장 감독님이 언니를 찾은 줄 알면 굉장히 기뻐하겠어요. 잠시만요, 감독님! 저 동명인데요. 지금 막 장미언니를... 아야!”

 

 백장미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동명의 손에서 핸드폰을 잡아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아프잖아요. 핸드폰 이리 내요. 왜 남의 걸 가져가요. 이리 달라니까요.”

 

 백장미가 등 뒤로 감추고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뺏기 위해 동명이 이리저리 뛰었다. 백장미가 바동거리는 동명이 가소롭다는 듯 그녀의 이마를 주먹으로 살짝 밀어 간격을 유지하며 말했다.

 

 “의리 없는 것 같으니라고! 고 새를 못 참고 날름 고자질이냐?”

 “언니는요? 그렇게 의리 있는 사람이 날 이렇게 개고생시키는 거예요? 장 감독이 얼마나 달달 볶는지... 어휴! 말을 말아야지. 내가 그 날 언니 때문에... 흡!”

 

 동명이 급작스럽게 말을 삼켰다. 하마터면 하룻밤의 일탈을 자진해서 고백할 뻔 했다. 눈치 빠른 백장미가 그녀를 추궁했다.

 

 “그 날? 나 때문에 뭐? 무슨 일 있었냐?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더니만. 너 혹시.......”

 “아뇨!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호오! 수상해. 뭔가 냄새가 나는데.”

 “수상하긴 뭐가 수상하다고... 암튼 핸드폰이나 이리 줘요. 그리고 언니야말로 애인이랑 놀고 싶으면 진작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잖아요. 이렇게 여러 사람 골탕 먹일 것 없이 말이에요.”

 “애인? 누가 내 애인이야?”

 “저기 계신 이 집 주인이요. 아니에요?”

 “아냐!”

 

 백장미가 황당한 말을 들었다는 듯 발끈해서 소리쳤다.

 

 “못 믿겠어요. 수건 한 장만 걸친 헐벗은 차림으로 남자 집에 있으면서 그런 말하면 누가 믿어요.”

 “너 눈이 삐었니? 저런 미친 잉여 인간이랑 나를? 얘가 은근 사람 열 받게 만드네.”

 

 백장미가 펄펄 뛰다시피 했다.

 

 “애인 아니에요?”

 

 동명의 물음에 대답은 백장미가 아닌 그녀에게 잉여 인간이라 불린 수상한 집주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아니야! 돌았냐? 넌 눈도 없어? 어디서 저런 부푼 살덩어리로 된 여자랑 나를 감히 붙이려 들어?”

 “뭐라? 이 새끼가!”

 

 초면에 반말을 지껄이는 집주인 남자에게 동명이 뭐라 한 소리할 틈도 없이 백장미가 남자와 대거리를 시작했다.

 

 “이 새끼? 내가 왜 댁 새끼야? 댁이 날 낳았어? 댁이 내 엄마냐고?”

 “이게 어딜 감히 덤벼?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하! 같이 태어난 주제에 누가 누굴 키워 줘? 말도 안 되는 소리!”

 “야! 양수에 쌓여서 허우적거릴 적부터 엄마한테 받은 영양분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내가 얼마나 양보해 줬는지 알아? 맨날 얘들한테 얻어터지고 다니는 널 보호해 준 사람이 누구야? 엉?”

 

 백장미가 집주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소리 쳤다.

 그러자 그는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입안으로만 무어라 구시렁댔다. 그제야 동명도 상황을 좀 알 것 같았다.

 

 “혹시 두 사람이 남매...?”

 “그럼 뭔 거 같은데? 아! 혈압 오르네. 치 떨리는 새끼야! 저 그지 같은 간판이나 당장 떼버려!”

 “싫어!”

 “싫어? 죽을래?”

 “남이사 뭘 하던 무슨 상관이야?”

 “남? 상관? 이 화상아! 여긴 내 집이기도 해. 그런데 내 집에 저런 요상한 걸 붙여두니까 그렇지. 당장 떼!”

 “싫어! 싫어!”

 

 마치 서 너 살짜리 아이처럼 악을 쓰며 발악을 하는 남자의 모습에 동명은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평상시엔 중년 남자들처럼 느물거리는 백장미조차 남자에겐 학을 뗀 표정이다.

 

 “어휴! 어쩌다 내가 저런 놈이랑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서는.......”

 “쌍둥이에요?”

 “그래. 저 놈이 내 쌍둥이 동생인데, 방구석에 틀어박혀 묘한 일들만 벌리는 최저의 잉여 인간이야. 조만간 또 무슨 사고를 칠 것 같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지키러 와 있잖아. 내가.”

 “또... 그런 일이 자주 있었나 봐요. 그럼 그런 사정을 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싫어! 일 관계로 알 게 된 사람들에게 내 개인적인 일까지 까발리고 싶지 않아.”

 “...네. 그럼 저도 이 일은 못 본 걸로 할게요. 대신 언니가 직접 장 감독님에게 전화해서 스케줄 조정 다시 해주세요. 안 그래도 촬영이 많이 딜레이 되서 걱정들이 많던데.”

 

 백장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동명아......, 내가 이래서 널 사랑하잖니. 남의 아픈 곳을 토닥거려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우리 동명이.”

 “왜 이래요? 나는 언니가 칭찬하는 말 전혀 듣고 싶지 않거든요. 뒤에 또 무슨 속셈이 있나하는 생각부터 떠오른다고요.”

 “얘는, 넌 속고만 살았니? 왜 사람을 못 믿어?”

 

 속고만 살았다. 끊임없이 속고 또 속고.

 이제는 타인들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동명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건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촘촘하게 세우고 있어도 어느 사인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항상 진흙 구렁텅이 한가운데 까치발을 들고 서 있었으니까.

 

 “저 보는 앞에서 지금 당장 전화해요.”

 “알았어. 할게. 한다니까. 어차피 담 주까지는 시간 있잖아.”

 “상대 배우분이 다음 주엔 시간이 없으셔서 이번 주 안으로 반드시 촬영을 끝내야 한데요.”

 “걔? 그게 요즘 좀 뜬다고 폼 잡고 있네. 지가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스케줄 운운이야?”

 “언니.......”

 

 동명은 한숨을 폭 내뱉었다.

 불황이라고는 모르던 이쪽 판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치 척박해진지 오래다. 동명이 막 입을 열려는 찰라, 잔뜩 심통이 난 남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흥! 겨우 AV비디오나 찍는 주제에 지들이 뭐 대단한 배우나 된 것 마냥 나대긴. 아주 꼴값들이세요.”

 “무슨......!”

 

 너무 어의가 없다보니 말문이 다 막혔다.

 백장미와 쌍둥이라면 그녀와 나이가 같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저런 초딩스러운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해대는 남자는 서른도 훨씬 넘긴 어른이라는 의미다.

 백장미가 남동생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남동생이 주춤 뒷걸음을 치며 그녀의 눈을 한사코 피했다.

 

 “동백아~, 네가 누나 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어. 어쩌지... 누난 좀 슬프네. 하지만 누난 믿을 거야. 방금 한 말이 내 사랑하는 동생의 진심은 아닐 거라고. 아. 니. 지?”

 언뜻 이 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동명은 침을 꿀꺽 삼키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백장미와 판박이처럼 닮은 백동백이 고집스레 입을 다문 채 백장미의 눈을 피했다.

 백장미가 한 번 더 화사하게 웃더니 돌연 하이 톤으로 말했다.

 

 “어머! 맞다! 울 동백이가 얼마 전에 귀요미를 하나 더 늘렸다고 들었는데, 어디 한 번 보러 가볼 까나?”

 

 백동백의 몸이 눈에 확 띨 정도로 움찔거렸다.

 백장미가 빠른 걸음으로 여러 개의 방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문으로 걸어가자, 그는 부리나케 달려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왜? 누나가 사랑하는 동생의 귀요미들 좀 보겠다는데 안 돼? 혹시 내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

 “어...없어!”

 “그럼 좀 비켜 봐.”

 “누, 누나... 잘못 했습니다!”

 “얘는, 누가 뭐래니? 비켜!”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이제 다신 그런 말 안 할게요. 누님!”

 

 갑자기 저자세로 돌아선 백동백이 무조건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이 안 되는 동명으로선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백장미가 오만하게 웃으며 남동생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어쩔까나... 아휴~ 나도 참 마음이 약해서 큰일이야. 동생이 이렇게 울면서 매달리면 그만 져주게 된다니까.

 동백아~, 오늘은 여기까지 찾아와 준 동명이 얼굴을 봐서 그냥 넘어가는데 한번만 더 이러면 네가 애지중지하는 뱀 새끼들이랑 거리로 나앉는 수가 있어. 알지? 이 누나는 입 밖에 낸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란 거. 그니까 알아서 기어라. 엉?”

 “... 네.”

 “그 지저분한 머리나 좀 빗어. 세수도 하고. 야! 샤워하기 전에 내 속옷들 좀 건조대에 걸어 놔.”

 “... 네.”

 

 백장미에게 KO패 당한 백동백이 탈진한 걸음걸이로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추정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명의 어의 없어하는 시선을 눈치 챘는지 백장미가 배시시 웃다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큰소리로 외쳤다.

 

 “아! 맞다! 내 도시락!”

 

 아차!

 그러고 보니 그녀를 여기까지 안내해 준 도시락가게의 알바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헐벗은 차림새 그대로 문으로 돌진하는 백장미의 목덜미를 잡아 멈춘 동명이 그녀 대신 밖으로 나갔다.

 화랑은 도시락봉지를 들고 얌전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라 그도 방금 전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을 터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찾았네요.”“그럼 약속은 꼭 지켜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내일은 몇 시쯤 오실 예정이세요?”

 “어...어, 그게.......”

 

 이 자식이 은근슬쩍 남의 일정을 손에 쥐려들어? 이거 보기보다 선수 아냐? 동명은 마스크로 얼굴의 반절을 가리고 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남을 속이는 데는 재주가 없지만 남에게 속는 데는 남달리 일가견이 있는 동명은 경계심을 바짝 세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속에 세워둔 날을 접어버렸다.

 겉으론 평온하게 그녀를 대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가 실은 연신 두 손을 맞잡았다가 곧 손바닥끼리 비비는가하면 두 손을 다시 바지 위에 문질러 닦는 등, 은연중 긴장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선의였으면 좋겠어.’

 철없는 아이도 아니면서, 그만큼이나 사람들에 당했으면서도 믿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불쑥 치밀었다.

 무언가 빼 먹을 거리를 찾아 친절한 체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가 좋아서 뭐 하나라도 더 주고, 한 가지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거라고.

 바보 같지만.

 

 “그 쪽은 언제가 좋은데요?”

 “내일은 오후근무라서 오후 4시부터 마감까지 일해요.”

 “나도 낼은 밤에나 들릴 수 있어요. 8시에 퇴근이니까 대충 밤 9시쯤.”

 “그럼 내일! 기다릴게요! 전 가게를 너무 오래 비워서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내일 봐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화랑이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녀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참, 드릴 게 있는데... 내일 드려도 될까요?”

 “저한테요? 뭔데요?”

 

 화랑이 머뭇거렸다. 남의 집 앞에 서서 말하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다.

 

 “지금은 좀... 내일 뵙고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기다릴게요. 내일.”

 

 화랑은 엘리베이터가 8층까지 올라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계단을 이용해 후다닥 내려가 버렸다.

 

 “뭐야... 기다리겠다니... 괜스레 가슴 떨리게.”

 

 누군가에게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들은 지가 거의 수십 년 만의 일인 것 같았다.

 동명은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문지른 후, 백장미가 애타게 기다리는 도시락 봉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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