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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매버릭(maverick).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3.29

<원래 바둑에는 천지 방원(方圓)의 상징, 음양의 이치, 성신(星辰) 집산의 질서가 담겨있다. 또한 비와 구름의 변화, 산하(山河) 기복의 형세는 물론 세상사의 흥망, 일신의 성쇠 등 무릇 그 속에 비유되지 않는 것이 없다.
바둑은 또한 행함에 있어 인(仁)으로, 결정하는데 지(智)로, 거두는 데 예(禮)로써 한다.
이러하니 범백(凡百)의 다른 기예를 어찌 감히 바둑과 비교할 수 있으랴.
···현현기경(玄玄碁經) 중에서.>

 
17화.청부를 맡다2.
작성일 : 16-04-03 16:34     조회 : 772     추천 : 0     분량 : 7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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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청부를 맡다2.

 

 

 집으로 돌아온 도민우는 인터넷을 열어 중국의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무림에서의 장천상은 지금 잠들어 있는 상태, 하지만 도민우가 다시 그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면 곧바로 하북 무주로 여행을 가야한다.

 도민우가 인터넷으로 중국의 옛 지도를 샅샅이 뒤지는 이유는 바로 그 여행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도로는 도시와 도시로 연결되며 잘 발달되어 있어 기실 길을 잘 몰라도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도민우는 낙양에서 하북 무주까지의 관도는 물론이고 여정을 단축시킬 수 있는 산길마저 모두 알아내 머릿속에 단단히 암기해 둔 후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공기가 다르다.

 공해로 찌든 현대도시의 공기가 아니었다.

 폐부 깊숙이 청량감이 가득 차는 느낌을 주는 공기랄까.

 게다가 몸 주위에서 넘실거리는 기(氣)의 양도 현대와는 천양지차였다.

 마치 기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

 도민우는 눈을 뜨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다시 무림으로 건너왔음을 알고 있었다. 하북 무주로 여행을 떠나는 아침이 밝은 것이다.

 

 낙양을 출발한 도민우가 복양(濮陽)에 도착한 것은 낙양을 떠난 지 닷새만이었다.

 복양은 하남성의 동북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신화에 나오는 오제의 일인인 전욱의 장지(葬地)이기도 하다. 이 복양을 벗어나 동북으로 닷새정도를 더 북상해야만 하북의 경계에 들어서는데 바로 흑도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객점에서 휴식을 취하는 느긋한 여행.

 도민우가 말을 구입하거나 마차를 빌리지 않은 건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도 세상구경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관도를 따라 걷는 다소 편한 여행이었다면 복양에서부터는 산을 가로 질러야 한다.

 험하기는 해도 삼일 정도 여정을 앞당길 수 있었다.

 도민우는 하루를 복양에서 편히 지낸 후 다음날 아침 저자거리에서 이것저것 산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한 후 하북성으로 이어져 있는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략 한 시진 가량 산속으로 들어갔을까?

 어느새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아침 일찍 나섰지만 저자거리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때문이었다.

 도민우는 목표로 정한 봉우리 쪽으로 똑바로 가고 있는 걸 확인한 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도민우는 한쪽 바위 위에 걸터앉아 건량을 꺼냈다.

 현실세계에서도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포였다.

 고기를 건조시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은 육포는 지니고 다니기 편할 뿐만 아니라 열량이 높아 최고의 이동식이랄 수 있었다.

 

 산중의 밤은 빨리 찾아든다.

 현실세계에서 제대로 등산한번 못해본 도민우이지만 들은 게 있어 서둘러 모닥불을 피우고 마른 낙엽을 쓸어 모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과연 모닥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민우는 모닥불 옆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모닥불 불빛 너머 어둠에 잠겨 있는 숲이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방의 숲속에 미지의 괴물들이 웅크린 채 자신이 잠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게다가 현실세계에서는 빨라야 11시에 잠자리에 드는데 해가 져서 어둡긴 해도 시간으로 따져보면 아직 저녁 여덟시도 못되었으니 잠이 올 리 없었다.

 결국 도민우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잠도 안 오고··· 검법이나 수련해 볼까?”

 도민우는 먼저 어린아이 팔목 굵기의 나뭇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낸 후 잔가지를 제거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고 할까.

 검왕의 천검정록은 하나의 검법이지만 천하의 검법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검법이었다.

 천 가지의 검법이 담겨 있되 결국에는 하나의 검법으로 귀결된다.

 도민우는 이미 천검정록의 모든 구결을 암기해 놓은 상태였다.

 

 나뭇가지를 검 삼아 초식을 익힌다.

 가장 먼저 첫 번째 검식의 일초식을 흉내 내는 식으로 펼쳐보며 익힌 뒤 어느 정도 손에 익은 뒤에는 두 번째 초식으로 넘어간다. 그 뒤에는 다시 첫 번째 초식부터 복습을 하며 새롭게 세 번째 초식을 연마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씩 초식을 익혀 나가다 보면 언제고 천검정록의 모든 검초를 다 익힐 수 있다는 게 도민우의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은 공력은커녕 힘도 실지 못한 단지 춤사위 같은 동작이고 검결의 요체를 이해한 상태도 아니었다.

 짐작하건데 요체를 깨우치고 공력을 싣는 것은 모든 검초가 저절로 펼쳐질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익힌 뒷일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검초연습만으로도 깨닫는 바가 있었는데 검이 나아갈 때는 힘차고 빠르게, 회수할 때는 부드럽고 천천히 라는 이치였다.

 균천무상권결은 그림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고 요해는 단지 호흡을 일치시키는 것뿐이어서 오히려 익히기 쉬웠다. 게다가 장천상이 수없이 반복 수련을 해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바람에 도민우로서는 별반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천검정록은 구결만 있어 연성하기 어려운데다 칠십이식으로 나뉘어져 있고 일식마다 12초가 담겨 있어 초식의 변화가 실로 복잡하고 많았다.

 천검정록의 말미에는 따로 요해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었다.

 먼저 칠십이식, 팔백육십사초에 달하는 모든 검법을 완벽하게 수련한다. 일식에서 이식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일식에서 칠십이식으로 건너뛰기도 하고 기수식이 일식이 아니라 이십사식부터 시작하는 등, 뒤집고 마구 섞어 놓아도 검법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해져야 한다.

 그 뒤 그 모든 검식과 검초를 한 줄로 잇는 자신만의 검법을 만들어낸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뒤에 초식은 물론 검식마저 버리는데 있었다.

 먼저 초식을 버린 뒤 다시 검식마저 버린다.

 이 경지에 이르면 이른바 비검(非檢)인 바 검이되 검이 아니고, 검이 아니되 곧 검이다.

 주위의 모든 것이 검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일개 나뭇가지로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절세의 검초가 되고 곧 검법이 된다.

 검왕은 칠백년 전의 인물이었는바 천검정록을 남겼지만 그 자신도 기실 비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비검의 다음 경지였다.

 비검마저 버리는 경지, 이른바 심검의 경지였다.

 검왕은 말년에 명상을 통해 비검과 심검의 경지를 엿본 뒤 천검정록을 남겼다는 전설이 있을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대로 펼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름대로 해석해 제일식의 십이초 모두를 반복해서 연습하던 도민우가 나뭇가지를 내려놓은 건 근 한 시진이 흐른 뒤였다.

 

 ···목표물에 비도를 던져 맞추는 게 아니라 목표물과 비도가 보이지 않는 한 줄로 연결되어 있어 그 줄 위에 비도를 올려놓는다고 마음먹어야 해.

 

 잠시 후, 도민우는 모닥불 옆에 앉아 헤어지기 전 혈비 하단표가 전수해준 비도술의 요체를 떠올렸다.

 혈비 하단표는 숲에서 도민우에게 시범을 보여줬는데 오십 장 밖의 작은 들쥐에 적중되는 놀라운 솜씨였다.

 ‘비도를 던져서 목표에 적중시키는 게 첫 단계라면 궁극의 단계는 마음과 목표물, 그리고 비도를 보이지 않는 한 줄로 연결하는 것이라 했다.’

 수없이 던지고 또 던지는 수련을 해 목표물을 맞힐 수 있게 되면 그 뒤에는 움직이는 목표물을 대상으로 수련을 해야 한다.

 그 뒤에는 다시 온갖 자세에서 비도를 발출할 수 있도록 수련해야 하고, 또 상대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던지는 연습도 해야 한다.

 하지만 혈비 하단표가 도민우에게 전수해 준 것은 일반적인 비도술 수련 방법이 아니라 최후의 경지,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수없이 던지는 수련을 하다보면 언제고 그 깨달음이 오긴 올 것이다.

 하지만 혈비 하단표는 도민우가 자신이 겪어야 했던 수련의 단계를 모두 건너뛰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도민우는 품속에서 한 자루 비도를 꺼내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바로 혈비 하단표가 지니고 있던 열두 자루의 비도 중 한 자루였다.

 ‘백이면 백, 목표에 적중된다고 믿어야 한다. 던지기 전에 비도가 목표에 꽂히는 걸 상상하고 그 상상이 실현된다는 걸 확신해야 한다!’

 도민우는 혈비 하단표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과연 자신이 그 정도의 경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던지는 연습은 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맞추는 연습만 하라니···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구나.’

 잠시 후, 혈비 하단표가 전수해준 비도술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던 도민우는 머리를 마구 흩뜨리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머금은 채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 * *

 

 도민우가 하북성의 곡주(曲周)에 도착한 것은 산을 탄지 닷새만이었다.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산을 타넘는 것은 예상보다 더욱 힘들었지만 얻는 것도 적지 않았다.

 먼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 오직 그 혼자만이라는 상황은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준다. 이것은 일단 대국에 들어가면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이 그 혼자만의 싸움이 되는 바둑과도 일맥상통했다.

 산은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는 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장엄하게 다가온다.

 여기에다가 신비한 경관을 대할 때의 경이로움.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산과 낮의 산, 그리고 노을을 이고 있는 산은 그때그때 다른 모습과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비록 닷새뿐이었지만 도민우는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산과 숲의 모습에 매료되어 힘든 만큼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곡주에서 무주까지는 이제 불과 엿새 정도의 거리, 도민우는 곡주에 들어서기 무섭게 식당부터 찾았다. 지난 닷새 동안 대부분 건량으로만 때워 온 도민우로서는 제대로 된 따듯한 음식이 너무도 그리웠다.

 

 음식은 환상적이었다.

 그냥 첫 번째 눈에 들어온 식당으로 들어선 것이었는데 따듯한 음식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고 지난 닷새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은 탓도 있지만 음식이 너무도 맛있어 도민우로서는 행복하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그 작은 행복을 깬 건 일단의 무인들이었다.

 처벅··· 처벅!

 갑자기 자주 빛 장삼을 걸친 일단의 무인들이 2층의 주청으로 들어서며 좌우로 갈라져 늘어섰다.

 “이크! 적상마루(赤象魔樓)의 무인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구먼.”

 2층의 주청에서 식사와 술을 즐기던 삼십여 명의 손님들이 불안해하는 눈빛이 되어 수군거렸다.

 ‘적상마루? 사파 무림의 주축이랄 수 있는 팔비맹 중 한 문파이다.’

 도민우의 머릿속에 담겨있던 무림정세 중에서 적상마루에 관한 내용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이제 곧 조장 격 되는 인물이 앞으로 나서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라고 할 분위기이구나.’

 도민우는 들어선 무인들의 삼엄한 기세와는 달리 한가로운 생각에 빠졌다가 내심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두 줄로 도열한 뒤 한 사내가 천천히 들어섰다.

 사십대 중반의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차례 주청을 쓸어본 후 의자 하나를 일층으로 이어진 계단 쪽에 가져다 놓고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주청안의 손님들이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순간 한 명의 흑의청년이 천천히 들어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20대 중반의 청년에게서는 깊은 정적이 느껴졌다.

 얼굴은 준미한 편이었는데 그 눈빛이 너무도 맑고 투명해 언뜻 유리알처럼 느껴진다.

 도민우는 그가 주재자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흑의청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의자에 앉긴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흑의청년이 자리에 앉자 사십대 중년인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위압적인 태도, 기계적인 말투.

 “우린 적의 간자를 추적하고 있다. 한명씩 신분을 확인할 것이니 신분을 증명할 호패를 꺼내놓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험한 꼴은 겪지 않을 것이다.”

 도민우가 내심 실소를 터트렸던 상황 그대로였다. 적상마루의 무인들은 과연 주청안의 사람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입구를 막은 것이었다.

 적상마루의 무인들은 입구와 가까운 쪽부터 한명씩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세가 흉험해 주객들은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은 세밀하기 이를 데 없어 반 시진 가량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받은 사람은 겨우 다섯에 불과했다.

 문득 손님들 중에서 사십대 후반의 화복중년인이 혀를 찼다.

 “쯧쯧···! 이거 곤란하구먼.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약속에 늦겠어.”

 화복중년인은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주위를 둘러보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좀 먼저 보내주시오. 중요한 약속이 있단 말이오.”

 화복중년인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우두머리겪인 중년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입구 쪽의 의자에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흑의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당겨졌던 고무줄이 한순간에 수축되는 것처럼 그의 몸이 순식간에 화복중년인 앞으로 미끄러졌다.

 새하얀 섬광이 허공을 가른 것은 찰나지간의 일.

 흰 빛의 궤적 속에 화복중년인의 목이 정확히 자리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잘려진 목에서 핏 기둥이 솟구치자 그 위에 얹혀있던 목 윗부분이 그 피의 분사에 밀려 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내리고···

 머리가 떨어진 동체가 잠시 제자리에 서있는 것 같더니 이내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무너져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킨다.

 도민우는 흑의청년이 의자에서 일어서는 걸 보았지만 검을 뽑아 화복중년인의 목을 베어낸 일련의 과정은 똑바로 보지 못한 상태였다.

 놀라울 정도로 잔혹하고 빠른 움직임.

 도민우가 자신이 본 게 과연 현실속의 일인가 멍청해지는 순간 흑의청년은 어느새 검을 회수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이쿠!”

 “으헉!”

 그제야 나머지 손님들이 참혹한 광경에 경악성을 터트렸다.

 놀라운 건 방금 한 사람을 죽인 흑의청년의 눈에 여전히 권태로운 빛만이 떠올라 있다는 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참혹한 시신으로 바뀌었다.

 그 처참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주었다.

 도민우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한 것이다.

 하지만 공포가 도민우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 공포가 이내 분노로 바뀐 것이다.

 무인이 아니다. 무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상인이 단지 통제를 위한 본보기로 희생된 것이다.

 도민우의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하지만 도민우는 분노에 몸을 맡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바둑을 둘 때 상대방에게 패했다고 화를 낼 수는 없다. 또한 승기를 잡았다고 들떠서도 안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둑이다.

 이내 도민우가 평정을 되찾았다.

 와장창!

 이때, 창 옆쪽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뛰어 내렸다.

 “저 놈이다! 잡아라!”

 “서라!”

 적상마루의 무인들이 일제히 도주한 사내를 뒤쫓기 시작했다.

 도민우는 이 순간 흑의청년이 보일락 말락 희미하게 미소 지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뛰쳐나가도록 유도하기 위해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만 막고 일부러 창문 쪽을 비어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도 막상 자신들이 쫒고 있는 인물이 누군지 몰랐다는 의미··· 저 사람은 함정에 넘어가 오히려 신분을 드러냈구나.’

 도민우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이었을까?

 막 계단 쪽으로 걸어가던 흑의청년이 고개를 돌려 도민우를 바라보았다.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지만 감정을 엿볼 수 없는 차가운 눈.

 흡사 뱀의 눈을 닮은 그 눈이 짧은 순간 도민우의 얼굴에서 멈춰졌지만 도민우를 보는 게 아닌 듯 역시 아무런 빛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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